75화
75화
흠칫 놀란 사람들이 동시에 한수영을 돌아보았다.
쪼그려 앉아 그들을 보던 한수영이 퉤, 하고 침을 뱉었다.
“니네 등신들이야? 정신 차려. 살고 싶으면 제대로 머리 굴리라고. 언제 또 나쁜 새끼들 만날지 모르는데, 기껏 동료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줄이면 어쩌자는 거야?”
“그, 그건······.”
“이런 세계에서 약자가 공평히 연대할 수 있는 건 같은 약자뿐이야.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그깟 쓰레기 같은 아이템 몇 개를 두고 싸워?”
불현듯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뒤늦게 얼굴을 붉혔다.
아마 중급 도깨비는 몰랐을 거다.
녀석이 흩어 놓은 사람 중에는, 웹 소설 작가도 있다는 것을.
“필요한 병장기나 생필품은 대충 챙겼잖아? 평소에 생존물 안 봤냐? 이럴 때 이기적으로 구는 새끼들은 맨 먼저 뒤지는 플래그인 거 몰라? 막말로 니들이 그런 거 몇 개 더 줍는다고 여기 이 사람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본 생존자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몇몇 사람들의 눈에서 살기가 조금씩 걷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자길 못 건드릴 만큼 강해질 자신이 없으면, 믿을 수 있는 동료부터 만들어. 당연한 상식 아니냐?”
표절 작가 녀석이 저런 말도 할 줄 알다니, 제법이다.
실제로 그녀의 말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사람들이 뒤늦게 서로를 향해 어색한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 누군가 입을 열면 저들은 다시 단합할 수 있겠지. 단 몇 마디의 말로, 저들의 생존율은 급격히 상승한 것이다.
나는 한수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너 말이야, 방금 그 대사······.”
“알겠어? 다들 똑바로 하라고!”
한수영은 그 말을 남기고 재빨리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체력이 바닥이었던지라, 그녀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헉, 헉! 왜 쫓아오는 건데!”
“넌 어떻게 평소에 하는 말까지 표절이냐?”
「“아무도 자길 못 건드릴 만큼 강해질 자신이 없으면, 믿을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라.”」
그건 ‘멸살법’에서 조언을 구하는 생존자에게 유중혁이 던진 말이었다.
한수영이 빽 소리를 질렀다.
“표절 아니거든? 내 소설에 나오는 대사야!”
“근데 왜 도망가?”
“······그냥! 그러는 넌 왜 쫓아오는데!”
끝까지 지가 표절했다는 소리는 안 한다.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구해줬으면 값을 해야지.”
“무, 무슨 값을 하란 거야!”
잔뜩 긴장하는 한수영을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보조 배터리 있으면 좀 꺼내봐. 너 텍본 가지고 다니니까 잔뜩 있을 거 아냐.”
한수영의 얼굴이 무참히 구겨졌다.
*
처음부터 한수영을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한수영이 지금껏 저지른 짓을 고려하면, 이 녀석도 악질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이 녀석의 ‘아바타’ 능력은 상당히 쓸모가 있었고, 당장 몇 가지 알아내야 할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서브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는데도, 이 녀석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고······.
“보조 배터리는 없어. 나도 광화문에서 다 잃어버렸다고.”
“그럼 네 표절작이라도 내놔봐.”
“싫어. 보고 싶음 돈 주고 사보든가.”
“플랫폼들 다 망했는데 어떻게 돈을 주고 사보냐?”
나는 간단히 녀석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았다.
당황한 한수영이 내 어깨에 매달리듯 팔을 뻗었다.
“뭐야! 내놔!”
텍본은 녀석의 바탕화면에 있었다. 허술하기는.
[SSSSS급 무한 회귀자]
어디 보자······.
앱 파일을 누르며 나는 조금 긴장했다.
혹시, 이 녀석의 파일도 내가 가진 텍본처럼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을까봐서였다.
물론, 기우였다.
마침 소설을 읽던 중이었는지, 페이지는 중간부터 떴다.
「······유준현은 조용히 자신의 상태창을 켰다. 방금 얻은 ‘현인의 눈’을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인물 정보>
인물 : 유준현
나이 : 27세
계약성(契約星) : ???
전용 특성 : 회귀자 <3회차> (신화), 프로게이머 (희귀)
전용 스킬 : [현인의 눈 Lv.1], [백병전 Lv.1], [무기연마 Lv.1], [정신 방벽 Lv.1], [거짓 간파 Lv.4]······(중략)······.
성흔 : [사망회귀 Lv.3]
종합 능력치 : [체력 Lv.24], [근력 Lv.24], [민첩Lv.25], [마력Lv.23]
+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한 유중현이 작게 웃었다.
“후후, 드디어 현인의 눈을 얻었군. 이번 회차는 처음부터 운이 좋아.”」
거기까지 읽던 나는 얼척이 없어져서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너 진짜 양심 없는 거 아니냐?”
“······뭐가?”
“인물 정보 이거 ‘멸살법’ 그대로 베낀 거잖아? 너도 작가면 구성이라도 좀 바꿨어야 하는 거 아냐?”
잠깐 머뭇거리던 한수영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멸살법은 ‘배후성’이고, 내건 ‘계약성’이거든? 완전 달라. 그리고 내 소설엔 종합평가도 없다고!”
“······그렇다고 치자. 근데 주인공 이름은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중간에 ‘중현’이라고 오타낸 건 또 뭐냐. 이거 복붙한 거 아니지? 멸살법 작가가 보면 울겠다, 인마.”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한수영이 소리를 질렀다.
“그건 그냥 오마주······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뭐가 궁금한 건데!”
“너 원작 몇 화까지 봤어?”
“구십 구······ 야! 그거 빨리 안 내놔?”
역시, 이 녀석이 99화까지 본 녀석이었나?
자기 소설을 두 번째로 많이 본 독자가 자기 소설을 표절한 작가라는 걸 알면 ‘멸살법’ 작가는 뭐라고 말할까.
표절 논란에도 조회수 올라간다고 기뻐했던 양반이니까, “99화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과연 진정한 독자십니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99화면, 다섯 번째 시나리오에 나올 ‘운석’ 위치는 좀 알겠네? 혹시 네 소설에도 그거 나오냐?”
“내 소설에 ‘운석’ 같은 건 안 나와!”
의외다. 그것도 당연히 베꼈을 줄 알았는데.
“‘봉인석’은 나오지만!”
베꼈네.
“그럼 지금부터 ‘봉인석’ 구하러 갈 거니까, 준비해.”
“‘운석’을 구하러 간다고?”
“용어 통일 좀 하자. 아무튼, 너도 구해봤으니 알지?”
“구해는 봤지만······.”
내가 죽였던 ‘화룡종’이 들어 있던 운석은 한수영이 찾아낸 것이었다. 이 여자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지. 그러고 보니 그때 화룡종 사체들을 거래소에 올려놨었는데, 아직 안 팔렸으려나?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수영을 잠시 내버려 두고 비형을 불렀다.
‘비형.’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존 시나리오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완파되었으니, 아마 서울 돔의 도깨비들은 죄다 대책 회의에 들어갔을 것이다.
회의라고 해봤자 다들 모여서 “어차피 이번 판은 망했으니 코인 상품이나 잔뜩 팔아치웁시다” 따위의 말이나 하고 있겠지만······.
그런데 다음 순간, 눈앞에 [거래소] 창과 [도깨비 보따리] 창이 동시에 열렸다.
이 자식, 메시지 보낼 시간은 없어도 할 일은 한다 이거지?
[상당수의 성좌들이 갑작스런 광고에 불만을 표합니다.]
게다가 광고 트는 것도 잊지 않았고.
나는 우선 [거래소]를 열어 판매 내역을 확인했다.
[아이템 ‘화룡종의 비늘’을 8000코인에 판매하였습니다.]
[아이템 ‘화룡종의 뼈’를 5000코인에 판매하였습니다.]
뜻밖에도, 그 비싼 아이템들을 사 간 사람이 있었다.
거기다 팔려고 올려놓은 게 아닌 아이템까지 팔렸다.
[아이템, ‘화룡종의 뼈’를 22222코인에 판매하였습니다.]
······보관할 곳이 없어서 올려둔 뼈까지 팔리다니.
누군가 화룡종의 뼈가 엄청나게 간절했던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부 99999에 올려 볼 걸.
현시점에서 이만한 재력을 가지고 있는 화신은 성운의 지원을 받는 안나 크로프트나, 인도의 란비르 칸, 그리고 중국의 페이후(飞虎) 정도인데······ 하여간 누군진 몰라도 땡큐다.
[도깨비 보따리]를 열어 필요한 아이템 몇 개를 마저 구매하고 나자, 타이밍 좋게 한수영이 말을 걸어왔다.
“근데 왜 나랑 같이 가려는 건데? 너 혼자 가도 되잖아.”
“아까 낮에 네 입으로 말했잖아. 생존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믿을 수 있는 동료를 구하는 거라고.”
한수영이 미심쩍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흠······.”
나는 품속에서 방금 산 아이템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 서약해.”
[아이템, ‘임시 서약서’를 사용합니다.]
+
<임시 서약서>
1. 김독자(갑)는 한수영(을)과 진행 중인 서브 시나리오가 끝날 때까지 계약을 맺는다.
2. 김독자(갑)와 한수영(을)은 진행 중인 서브 시나리오가 끝날 때까지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3. 계약 기간 중 김독자(갑)와 한수영(을)은 ‘취침 패널티’를 대비해 교대로 잠을 잔다.
······.
6. 계약 기간 중 일행의 행동 지침은 김독자(갑)의 의견에 우선한다.
7. 계약 기간 중 한수영(을)은 시나리오 클리어를 위해 김독자(갑)에게 전력 협조하며, 생명이 위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김독자의 명령에 따른다.
8. 계약 기간 중 김독자(갑)은 한수영(을)의 생명권을 보장한다.
9. 해당 계약은 서브 시나리오가 끝나는 순간 효력이 소멸하며, 위배 시 육신이 소멸한다.
+
임시 서약서. ‘배후 계약서’ 급의 효력은 아니지만, 짧은 기간 계약을 맺기에 이만한 아이템은 없다.
한수영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딴 걸 계약할 것 같아?”
“싫음 말든가.”
“······근데 내가 왜 을이야? 난 인생에서 한 번도 을이었던 적이 없다고.”
“잘됐네. 첫 경험은 중요한 법이니까.”
한수영이 까드득, 이를 갈았다. 말은 저래도, 녀석이 수락할 거라는 건 알고 있다. 마력이 고갈되어 지친 녀석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방랑자들이 들끓는 서초구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고, 당분간 녀석은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좋아. 계약할게.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거야. 어때? 나도 너한테 묻고 싶은 게 많거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나 [거짓 간파] 얻었으니까.”
나도 못 얻은 걸 벌써 얻었다고?
[인물 ‘한수영’이 ‘거짓 간파 Lv.1’을 발동합니다!]
······진짜네.
한수영은 바로 치고 들어왔다.
“너 대체 특성이 뭐야?”
“나도 몰라.”
[인물 ‘한수영’이 당신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였습니다.]
한수영이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손바닥으로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을 한 대 쳤다.
“······이거 고장났나?”
“아니, 정상이야. 다음 거 물어봐 빨리. 딱 세 개만 대답해 줄 테니까. 참고로 이미 한 개 썼다 너.”
“아니, 자기 특성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진짜 몰라. 자, 다음 질문.”
눈을 가늘게 뜬 한수영이 마지못해 질문을 이어갔다.
“왜 ‘왕좌’를 포기한 거야?”
역시,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지.
“너 때문에 내 계획 다 망쳤잖아.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멸망 막겠다고 병신 같은 <사도> 놈들 데리고 얼마나 힘들게 준비했는지 알아? 내가 왕좌 앉았으면 벌써 다음 시나리오까지 착착 준비하고 지금쯤······.”
“네가 그 왕좌 앉았으면 서울은 멸망했을 거다.”
[인물 ‘한수영’이 당신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였습니다.]
한수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왜 자꾸 고장이 나지?”
“고장 아니라니까. 그리고 네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 왕좌 앉았으면 우린 다 망했을 거야.”
[인물 ‘한수영’이 당신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였습니다.]
한수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몇 번째 하차자야? 네가 어떻게 나도 모르는 걸 아는 건데?”
“난 하차자가 아냐.”
[인물 ‘한수영’이 당신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였습니다.]
한수영은 커다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입술을 한참이나 우물대더니, 쥐어 짜내듯 질문을 던졌다.
“너······ ‘멸살법’ 어디까지 읽었어?”
“질문 세 개 끝났다.”
“이게 제일 중요한 질문이라고!”
한수영의 턱이 덜덜 떨렸다.
“설마······ 아니지? 너······ 그런 미친놈이 있을 리가······ 그래, 그럴 리가 없어······.”
두다다다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나는 방언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한수영을 데리고, 재빨리 근처 건물의 후면으로 피신했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형체로 봐서 사람인 건 확실한데······?
나는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인파들을 향해, [등장인물 일람]을 사용해 보았다.
[해당 인물의 정보는 ‘등장인물 일람’으로 열람할 수 없습니다.]
[‘등장인물 일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자세히 보니, 달려온 사람들은 죄다 전신에 부숭한 털이 나 있었다.
얼굴은 사람이지만 육신은 이족 보행을 하는 늑대에 가까운, 몸집도 인간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괴물들.
자세히 보니, 선두의 괴물 하나가 한 손으로 사내의 멱살을 쥐고 있었다.
괴물들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녀석이었다.
“크르르······! 그놈들 어디 있어?”
“이, 이 근처였습니다! 그놈들이 ‘코인 농장’을 전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목이 날아갔다. 아까 미노 소프트 앞에 있었던 그 방랑자들 중 하나였다. 달려든 괴물들이 늘어진 사내의 몸을 정신없이 뜯어 먹었다.
왠지 저 괴물들의 정체가 뭔지 알 것 같은데.
한수영도 뭔가를 깨달았는지 중얼거렸다.
“······인외종?”
방랑자들은 방랑자들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이 있다. 여전히 인간으로 존재하면서 ‘코인 농장’을 만드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종(種)의 길을 걷는 녀석들도 있는 것이다.
크아아아앙―!
인외종들은 성장치에 한계를 갖지만, 인간이길 포기했기에 초중반까지는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도깨비의 농간으로 나타났던 ‘마인’ 또한 인외종의 일종이었다.
아마 저 녀석들은 ‘웨어울프’ 쪽 인외종들인 것 같은데······.
“······운석의 힘을 얻었군.”
이제 겨우 다섯 번째 시나리오를 앞둔 상황. 이 시점에서 인간이 웨어 울프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운석의 힘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방랑자 그룹은 이미 서초구에 떨어진 운석 중 하나를 손에 넣은 것이다.
한수영이 작은 탄성과 함께 입을 열었다.
“나 저놈 알아. 저 자식, 하차자야.”
“······어떻게 알아?”
“난 알 수 있어. 마지막 하차자의 특권이지.”
“특권?”
“읽다가 하차한 녀석들은 위치 정보랑 특성이 다 내 눈에 보이거든.”
살짝 으스대는 듯한 말투.
그러고 보면, 정민섭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시나리오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사도’가 그들을 찾아왔다고 했었지. 만약 한수영에게 하차자들을 찾는 스킬이 있다면, 그 기적도 설명은 된다. ‘아바타’를 이용해 하차자들을 찾아가면 그만이었을 테니까.
한수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네 정체를 의심했던 거야. 하차자가 틀림없는데 내 스킬에 안 걸리는 녀석이 있으니까······.”
나를 흘겨보던 한수영이 다시 인외종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내 제안을 거부한 녀석이 몇 명 있었어. 저 방랑자는 그 녀석들 중 하나야. 대부분 초반에 죽어 나가길래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저놈은 용케 저렇게 컸네······.”
“저 녀석 뭔데?”
“송민우란 녀석이야.”
송민우?
분명 등장인물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6급 인외종(人外種), ‘낭인(狼人) 송민우’가 주변을 탐색합니다.]
멀리서 두리번거리는 녀석의 얼굴.
아······, 혹시.
어떤 기억들이 떠올랐다. 몇 시간 전에 꿨던 꿈. 고등학교 시절, 일진들에게 맞던 시절의 기억.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얼굴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명찰에 적힌 그 이름은 잊을 수가 없다.
송민우······ 틀림없다.
근데, 저 자식이 ‘하차자’라고?
그 일진 새끼가 소설을 읽을 리가 없는데?
“저놈 몇 번째 하차자인데?”
“저 자식은······ 좀 이상해. 평범한 하차자랑은 좀 다르거든.”
“뭔데?”
잠깐 고민하던 한수영이 말했다.
“내 눈에 저놈은······ ‘173편만 본 하차자’라고 떠.”
순간, 송민우의 코가 벌름거리더니 놈의 고개가 이쪽을 향했다.
노랗게 변한 녀석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찾았다.’
네 발로 땅을 박찬 녀석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