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73화
첫 번째 설화는 쌓았다.
이걸로 네 번째 시나리오의 메인 목표는 달성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야?”
“아니, 왜 왕좌를 부순 거냐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사람들과, 화난 도깨비가 무슨 짓을 할까 봐 냉큼 겁부터 집어먹은 사람들.
사람들의 입장에서 나는 ‘다섯 번째 시나리오’를 어렵게 만든 천인공노할 죄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도깨비한테 외치기도 했다.
“다시 ‘절대 왕좌’를 만들어 줘! 시나리오에 다시 참가할 테니까!”
“이번에야말로 진짜 왕좌의 주인을 가리자고!”
[이미 끝난 시나리오는 누가 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당신들에게 벌어지는 일은, 모두 저 인간 때문입니다.]
중급 도깨비의 대답은 냉랭했다.
도깨비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고, 차가운 비바람이 젖은 사람들의 어깨를 흔들었다.
[왕이 없는 세계? 좋습니다. 한 번 살아가 보시죠. 구심점이 없는 당신들이 얼마나 잘 생존할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중급 도깨비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광화문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뭐야! 갑자기 뭐야!”
······이건 예정에 없던 전개인데?
돌아보니, 정희원과 유상아, 이길영을 포함한 다른 일행들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독자 씨!”
다음 순간, 유상아가 사라졌다. 이길영이, 정희원이. 거기에 정민섭과 이성국까지. 도깨비가 투박한 손가락을 튕긴지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순식간에 넓은 광화문에 남은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중급 도깨비가 소름 돋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았다.
[명심하세요. 이 세계가 멸망한다면, 그건 당신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말을 하려는 순간, 딱,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위가 흔들리며 몸이 어딘가로 움직였다. 심각한 구역질과 두통이 동반되었다. 안 그래도 크게 심력이 소모되어 있던 차였기에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네 번째 시나리오의 정산 보상으로 100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
성좌들과의 과도한 접촉으로 피로해져 있었기 때문인지 나는 꽤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심지어 꿈도 꾸었다.
아직, 멸망이 시작되기 전의 꿈이었다.
―야, 눈 안 까냐?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이것이 고등학교 시절의 일임을 깨닫는다.
일진들한테 처맞고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
······그래. 이런 적도 있었지.
유치한 꿈이지만 새삼 떠오르니까 갑자기 열 받는다.
―어쭈? 눈깔 봐라? 사람 죽이겠다?
놈의 따귀에 내 고개가 홱 돌아간다.
터진 입술에 고인 피와, 얼얼한 뺨에서 느껴지는 수치심.
팔, 다리, 어깨.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쑤셔오는 고통.
꿈인데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아프다.
어쩌면 그곳에는 [제4의 벽]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 꼬우면 찔러봐 새꺄. 너도 니네 엄마처럼 신문에 쌍판 함 까면 되잖아?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지만, 차마 놈을 때릴 수 없었다.
당시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더라.
‘······만약 내가 유중혁이었다면.’
그래, 맞다. 비참하게도 나는 그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도 ‘멸살법’을 한창 읽고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교복 명찰에 적힌 녀석의 이름이 보인다.
송민우.
이 새낀 지금은 뭐하고 있으려나.
양아치 주제에 대학도 잘 가고, 직장도 잘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지.
지금은 살아나 있을까 모르겠지만.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발동합니다.]
같잖은 꿈의 정경이 무너지고, 나는 다시 어둠 속에 남았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3단계가 발동합니다.]
이어서 목소리들이 겹쳐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봐요, 내 말 들려요? 괜찮은 거예요?」
「대표님?」
「독자 씨, 어디에 계십니까?」
내가 아는, 친근한 사람들의 목소리들.
[전지적 독자 시점]의 3단계 능력인 ‘3인칭 관찰자 시점’을 통해 전해져 오는 말들이었다. 묻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목소리들이었다.
「“아······ 왜 하필 여기로. 독자 씨? 내 말 들려요?”」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구비 되어 있는 바(Bar). 잔뜩 인상을 찌푸린 정희원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연애편지라더니······ 내가 그 아저씨 다시 만나기만 해봐라······ 젠장, 근데 짜증나게 왜 학교에 떨어진 거야?”」
누군가에게 처맞은 것인지, 탱탱 부은 볼을 만지는 이지혜.
「어째서······ 왜······ 여기에······.」
근처의 군부대에 갇혀버린 이현성.
······사람들 반응을 보아하니, 대충 뭔지는 알겠다.
광화문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다들 자신과 연이 있던 장소로 이동한 듯했다. 그래서 학생이었던 이지혜는 학교로, 이현성은 근처의 군부대로 강제 전이된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이현성이 제일 불쌍하다.
아마 중급 도깨비 자식의 농간이겠지.
곳곳에 화신들을 뿌려 놓고 각개격파 당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었나 본데, 조금 의아한 일이다. 아무리 메인 시나리오와 무관하다 해도, 갑자기 이딴 짓을 벌이면 중급 도깨비 놈도 문책을 면치 못할 텐데.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난 괜찮으니까, 각자 몸조심하고 있으세요. 곧 찾아가겠습니다.’
내 말을 들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닿길 바라면서.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3단계를 해제합니다.]
서서히 의식이 육신으로 돌아오고, 눈꺼풀이 번쩍 떠졌다.
여전히 서울 상공에는, 블랙홀처럼 소용돌이치는 먹구름들이 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탁 트인 서울의 전경. 복잡한 고층 건물들이 비대칭적인 마천루를 그리고 있는 장소.
그러고 보니 나도 나와 연이 있는 장소로 이동했겠구나.
얼핏 둘러봐서는 서울 고층 건물의 옥상 같은데······.
“여기는······?”
젠장, 혹시나 생각은 했는데 진짜로 여기로 왔을 줄이야.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혼잣말에 기대합니다.]
“······미노 소프트.”
이곳은 내가 다녔던 회사, 미노 소프트의 옥상이었다.
[소수의 성좌들이 실망합니다.]
[느긋한 진행을 좋아하는 한 성좌가 만족합니다.]
왁자지껄 떠오르는 간접 메시지를 보니, 왕좌를 부순 뒤로 내게 집중하는 성좌들이 부쩍 많아진 느낌이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새로 나타난 다른 성좌들을 위협합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헛기침을 하며 터줏대감을 자처합니다.]
하필 떨어져도 여기로 왔나······?
자동차 하나 다니지 않는 서울의 대로. 불이 꺼진 사무실들.
반파된 건물들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코끝이 시리다.
무려 한 달 만의 회사 출근이었다.
팀장들한테 한 소리 들을 때마다 같은 팀의 윤 대리랑 여기 올라와 멍 때리던 게 꼭 어제 일 같은데, 기분 진짜 이상해진다. 신작 게임 테스트를 하던 내가, 정신을 차려 보니 칼을 들고 사람을 베고 있다.
······윤 대리는 살아있으려나?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서 깜빡이는 메시지가 보였다.
[다섯 번째 시나리오 시작까지 10일 남았습니다.]
시나리오는 내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절대 왕좌’를 부수면 서울 돔은 10일의 유예를 얻는다.
다섯 번째 시나리오, [그레이트 홀].
남은 유예 기간 동안, 나는 ‘절대 왕좌’ 없이 ‘다섯 번째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막간을 보충하기 위한 ‘서브 시나리오’가 진행 중입니다.]
+
<서브 시나리오 ― 생존 활동>
분류 : 서브
난이도 : C+
클리어 조건 : 폐허가 된 도시에서 10일간 살아남으시오. 매일매일 삼시 세끼를 챙겨 먹어야 하며, 하루에 6시간 이상의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합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루 생존비 500코인을 상납하는 것도 잊지 마십시오. 셋 중 하나라도 어길 시, 당신은 클리어 패널티를 받습니다.
지속시간 : 10일
보상 : 없음
실패시 : 사망
* 해당 시나리오는 ‘코인 이벤트’가 적용되는 시나리오입니다.
*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모든 괴수종들은 일정 확률로 코인을 드랍합니다.
+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기존의 시나리오가 완파되었으니, 그걸 급하게 때울 서브 시나리오를 끌어넣은 모양이었다.
게다가 코인 지급 이벤트도 겹쳐 있었다.
조만간 할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벌써 시작할 줄은 몰랐네.
하루에 500코인씩 생존비를 상납하라니······ 코인 이벤트 없이는 절대로 클리어하지 못할 시나리오다.
아무튼, 이제 움직여 볼까.
코인을 보충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옥상 아래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끌고 가! 빨리!”
내려다보니, 무장한 인원들이 몇몇 사람들을 포박한 채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미노 소프트가 있는 이 지역은 서초구 인근.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서초구 일대에는 ‘왕’의 세력이 없다.
······그러면 저놈들은 뭐지?
무장 병력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핀 뒤에야,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그렇군. ‘방랑자들’인가.
멸망한 세계에서도 각자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가 ‘왕’이 되고, 누군가가 ‘백성’이 된다면.
또 누군가는, 소속이 없는 ‘방랑자들’이 된다.
그리고 서초구 일대는 그런 ‘방랑자들’의 땅이다.
이쪽 지역 정보를 찾아볼까 싶어 스마트폰을 켰지만, 안타깝게도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였다. 충전할 곳을 찾든가, 보조 배터리를 찾아야겠는데······.
나는 옥상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사장실을 지나고, 기획부와 재무부를 지나쳤다. 평소 일하던 QA팀의 사무실을 지날 때는 잠깐이지만 걸음이 멈췄다.
같잖은 추억 보정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 서랍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혹시나 보조배터리 같은 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이쪽으로 플래시를 켰다.
반사적으로 칼을 뽑으려는데, 저쪽에서 먼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어?”
······?
“도, 독자 씨? 김독자 씨 맞지!”
그제야 나도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윤 대리님?”
“아아,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QA팀의 윤 대리가 그곳에 있었다.
*
“정말로 끔찍했지.”
나는 윤대리에게 미노 소프트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다. 정확히는, 내가 퇴근한 후 미노 소프트에서 있었던 일들.
“야근 중이던 사람들한테 전부 ‘첫 번째 시나리오’가 시작됐거든.”
윤 대리가 자신의 코를 쥔 채 말했다.
용역이 사라진 회사의 복도는 곳곳에서 썩어가는 시체 냄새와 구더기로 들끓고 있었다. 개중에는 아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였지만, 윤 대리의 표정에는 딱히 애도나 슬픔의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거 알아? 내가 이 손으로 말이야. 김 팀장 그 새낄 죽였어. 왜, 우리 맨날 갈구던 그 자식······ 볼펜으로 목을 찔렀더니, 피가 푸슛 하고······ 진짜 게임 같았어.”
“······윤 대리님.”
“미, 미안. 이런 얘기는 불편하지? 하하.”
당연한 변화였지만, 그래도 변해버린 윤 대리의 모습을 보는 것은 씁쓸했다. 아니지······ 어쩌면 지금 이것이, 윤 대리의 본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혼자 계신 겁니까?”
“응? 아아, 혼자는 아니고, 같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근데 독자 씨는 어디 있었던 거야?”
“아, 저는······.”
“회사 안에서는 못 봤던 것 같은데. 어디 그룹 소속이야? 혹시 메인 깨다가 온 건가?”
“네, 뭐. 비슷합니다. 원래 광화문 쪽에 있었는데, 갑자기 일이 터져서······.”
끝까지 듣지도 않은 윤 대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아하, 그랬구나. 독자 씨, 역시 운이 나쁘네.”
“······예?”
“그 시나리오, 전부 깨지 않아도 된다고. 모르는 거야? 여기저기 잘 숨어 있으면서 적당히 꼼수만 부리면, 대부분 시나리오는 남들이 깨줘. 굳이 목숨 걸 필요 같은 건 없는데. 하하, 편하게 좀 살라구. 세상이 이 모양인데.”
사실이다. 소속이 없는 ‘방랑자’가 된다면, 반드시 클리어해야 하는 일부 시나리오를 제하고는 다른 사람이 클리어한 메인에 어영부영 묻혀갈 수 있다. 서울 돔을 잘 뒤지다 보면,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숨어 살다가 주변의 그룹들에게 걸리면 곧바로 저승행이라는 것이지만.
혼자 돌아다니는 ‘방랑자’만큼 좋은 먹잇감은 없다.
“걱정할 만한 일은 없으니 마음 놔. ‘방랑자’들도 어엿한 세력이 있거든. 꼭 ‘왕’이 있어야만 세력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우리는 미노 소프트 바깥으로 나왔다. 이 회사를 중심으로 인근이 ‘방랑자들’의 영역인 모양인지, 이미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아까 납치한 사람들을 옮기던 치들도 보였다. 무장 중인 한 사내가 말을 걸었다.
“윤성호 씨, 그 사람은 누굽니까?”
“아, 제 회사 동료입니다. 우연히 만났습니다.”
“흐음······ 방랑자입니까? 다른 그룹은 받지 않습니다. 알고 계시겠죠?”
윤 대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사내는 우리의 곁을 지나갔다.
나는 사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방금 그 사람은 뭐죠?”
“‘코인 농장’의 관리인이야.”
“코인 농장이요?”
“아······, 독자 씨는 잘 모르겠구나.”
순간 윤 대리의 표정에 음침한 빛이 스쳐 갔다.
코인 농장······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하지만, 벌써 그걸 시작한 놈들이 있다고?
“저길 봐.”
어느 동물원이나 경찰서에서 뜯어온 것인지,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철창 안에 두 사람이 갇혀 있었다. 주변에 몰린 방랑자들이 흥분한 듯 소리를 질러댔다.
“야야! 장난치냐? 좀 더 격렬하게 싸워야지! 그렇게 미적거리면 누가 코인을 주겠냐?”
철창 안에서, 두 사내가 서로의 전신을 난자하며 싸우고 있었다. 피가 튀고, 눈이 뽑히고, 내장이 흘러내린 사내들이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콜로세움을 좋아하는 한 성좌가 즐거워합니다.]
자세히 보니, 그런 철창들은 여러 개였다.
테마라도 있는 모양인지, 모든 철창들이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벌거벗은 한 명의 여자와 남자들이 들어간 철창도 보였고, 반대로 한 명의 남자와 여러명의 여자들이 들어간 철창도 있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울음소리.
철창 밖에서 방랑자들이 낄낄대고 있었다.
“야, 어떠냐? 좋냐? 나도 하게 빨리 나와!”
“미쳤어? 저 새낀 예쁘장하지만 남자라고.”
“남자든 뭐든! 코인 준다잖아 멍청아.”
[색다른 관음을 좋아하는 한 성좌가 몹시 흥분합니다.]
윤 대리가 입을 열었다.
“게임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왕이었고, 미노 소프트에서는 사장 새끼가 왕이었지. 독자 씨,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누가 왕일 것 같아?”
“······설마 성좌들의 후원을 이용하는 겁니까?”
“그래. 가끔 저런 걸 좋아하는 정신 나간 성좌들이 있거든. 자극적인 광경을 보여줄수록, 성좌들이 주는 코인도 많아져. 별풍선 같은 거지. 우린 쟤들한테서 코인 수급하고, 대신 먹을만한 식량을 던져주는 거야.”
윤 대리는 그 말을 하며 감옥 안으로 초코바 하나를 던졌다.
축 늘어져 있던 생존자가 기어와 초코바를 손에 쥐었다.
어떤 세계든 시스템을 제일 먼저 파악하고 이용하려는 놈들이 있다. 그리고 저 ‘코인 농장’은, 이 세계의 자본 구조를 가장 먼저 이해한 인간들이 고안한 희대의 착취 시스템이었다.
“우리 회사 사람들도 보이는 것 같은데······.”
“우리 회사였던 사람들이지.”
그 차가운 말투에,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내가 알던 미노 소프트도, 내가 알던 ‘윤 대리’도.
이젠 이 세상에 없다.
“야! 새로운 노예 들어왔다! 수감해!”
“옙!”
우렁찬 외침과 함께 노예들이 수감실 쪽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기절한 사람들 중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윤 대리가 웃었다.
“오, 새 물건 들어왔나 보지? 어이! 쟤 빼고 얘 철창 안으로 들여보내!”
자그마한 몸집에, 새하얀 피부.
살짝 올라간 눈꼬리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고운 흑발.
눈을 비비고 봤지만, 틀림없었다.
첫 번째 사도, 표절 작가 한수영이 그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