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63화 시스템 메시지에 놀란 이성국이 중얼거렸다. “또 새로운 시나리오라니······.” 확실히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다. 기존 시나리오의 클리어 조건을 완료하기도 전에, 다른 시나리오가 떠 버렸으니까. 나는 일단 새로 도착한 시나리오를 열어보았다. + <메인 시나리오 # 4 ―‘왕의 자격’> 분류 : 메인 난이도 : A 클리어 조건 : 광화문 사거리에 위치한 ‘절대 왕좌’를 차지하시오. 제한시간 : 8시간 보상 : 10,000코인 실패시 : ― * 해당 시나리오는 히든 시나리오 ‘왕의 길’을 완수한 자만이 도전할 수 있습니다. * 절대 왕좌를 차지한 왕은 다른 모든 왕들에게 절대적인 명령권을 가집니다. * 해당 시나리오에는 특수한 클리어 조건이 추가로 존재합니다. + 상황이 좋지 않았다. 우리 그룹은 아직 ‘깃발 쟁탈전’의 표적 역도 점거하지 못한 상황. 부담이 두 배로 늘어난 형국이었다. 폭군왕을 쓰러트리고 ‘창신역’을 점거하면서, 저 왕좌와 관련된 시나리오도 완수해야 한다. 중급 도깨비가 말했다. [후후, 당황한 얼굴들이시군요. 너무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시나리오는 천천히 진행할 테니까요.] 누구나 동요할 법한 상황이었음에도, 광화문은 잠잠했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왕들이라면, 지금 도깨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을 테니까. [네 번째 메인 시나리오는,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저 ‘왕좌’에 앉을 단 하나의 왕을 선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물론, 왕이라고 해서 모두가 저 왕좌에 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자격’을 증명한 사람만이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지요.] 중급 도깨비가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럼, ‘첫 번째 자격’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왕의 자격> 1. 「왕좌의 주인은 그 누구보다 용맹할지니」 ― 절대 왕좌는 결코 ‘약한 왕’을 원하지 않습니다. 왕좌에 도전하기 위해, 당신은 최소 [검은 깃발]을 소유한 왕이어야 합니다. (추가 자격 조건이 잠시 후 공개됩니다.) + 검은 깃발이라. 역시, 첫 조건부터 아주 지랄맞구만. [후후, 이제 동기는 주어졌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시길!] 중급 도깨비가 사라지자, 유상아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검은 깃발이라면······ 역을 20개 이상 점거해야 얻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우리 그룹의 깃발은 [갈색 깃발]. 10개 이상의 역을 점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깃발이다. “어쩌죠? 검은 깃발을 만들려면 아직 10개나 역을 더 점거해야 하는데, 근처에 빈 역이 있을 리가······.” “빈 역이 없으니까 생긴 조건인 겁니다.” “네?” 내가 알기로, 현시점에서 [검은 깃발]을 달성한 왕은 없다. “잊으셨어요? 깃발 색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하나가 아닙니다.” 역을 점거해도 깃발의 공적치는 오른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빠르게 공적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 바로, 다른 그룹 대표의 ‘깃발’을 빼앗는 것. 그리고 지금 광화문에는 깃발을 가진 왕들이 잔뜩 모여 있다. 나는 일행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당황하지 마세요. 예상 못했던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계획대로 하면 돼요.” 계획대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었다. 광화문 전체에 은근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폭풍이 불어 닥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긴장감. 병장기를 꺼내 드는 소리, 전열을 가다듬는 목소리가 살풍경한 빌딩 숲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듯했다. 이제 잠시 후면, 사람들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승진을 위해 경쟁하던 사람들은 이제 진짜 칼을 들고 서로를 죽일 것이고, 더 넓은 평수의 집을 원하던 사람들은 더 많은 역을 점거하기 위해 서로의 깃발을 빼앗을 것이다. 서로를 죽이고, 더 좋은 아이템을 차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펄라이트 보드로 마감된 차가운 도시의 건물들을 보던 이성국이, 비현실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쩐지 무섭습니다. 여기가 정말 한국이 맞는지······.” “한국이었던 곳이죠. 여전히 한국이기도 하고.” “대표님은 무섭지 않으십니까?” “저도 무서워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분명 나도 무서울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자주 그렇다. ‘멸살법’을 읽었다곤 해도, 나 역시 엄밀히 따지면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사람이니까. 내색은 안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물론, 고민은 오래가지 않는다. 생각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세계든 마찬가지다. 미노 소프트를 다니던 김독자에게도, ‘멸살법’의 세계를 살아가게 된 김독자에게도. 죽음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찾아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제대로 살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전용 스킬, ‘제 4의 벽’이 발동합니다!] 문득 돌아보니, 이성국이 경외심어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대표님은 이럴 때 보면 꼭······.” “쳐라!” 이성국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의 고함이 울려 퍼졌다. 삼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북쪽으로 진군을 시작한 왕이 있었다. 나와 같은 갈색 깃발을 가진 왕이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작은 지역구의 왕이겠지. 그와 거의 동시에 광화문의 곳곳에 숨어 있던 군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각기 뛰어난 병장기로 무장한 녀석들. 개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용포에 괴이한 가마를 탄 사내였다. 물어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목표, 도봉구와 성북구의 지배자인 「폭군왕」. 실제로 보니 새삼 느낌이 새로웠다. 서울 7왕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세력을 지배하는 폭군왕. 저 녀석이 움직였으니, 이제 첫 번째 사도와 후삼국의 왕들도 움직일 것이다. “아마 저들 대부분은 사인참사검을 노리고 움직일 겁니다.” 실제로 왕들의 진군 방향은 사인참사검이 있는 북부 고궁박물관 쪽이었다. 시야엔 잡히지 않지만, 표절 작가 녀석도 이미 그쪽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심지어 몇몇 세력들은 아예 피해를 도외시하고 박물관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해는 간다. 아직 왕의 자격 요건들이 모두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니, 일단 좋은 아이템부터 선점하는 것이 유리할 거란 생각이겠지. 실제로 사인참사검쯤 되는 아이템이면 깃발로 인한 공적치의 격차를 단번에 메워줄 수 있으니까. 이성국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우린 안 가도 됩니까? 사인참사검이면 꽤 좋은 아이템인데요.” “지금 가봐야 새우등만 터져요.” 우리는 일행이 많지 않다. 더욱이 저쪽에는 위인급 중에서 나름 네임드 성좌를 배후성으로 둔 녀석들도 있다. “우리는 서쪽으로 갑시다.” 나는 일행을 이끌고 곧장 움직였다. 모든 왕들이 북쪽 고궁박물관으로 향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서쪽 대로는 상대적으로 휑한 상태였다. 유서 깊은 광화문답게, 가는 길 곳곳에 박물관이 있었다. 신문 박물관, 한국금융사박물관, 경찰 박물관······. 유상아가 물었다. “저런 곳엔 가도 소용없겠죠?” “근현대 전시물들이 많은 곳은 피해야 합니다.” 유물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다. 물론 단순히 ‘오래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철기 시대의 농부가 사용했던 괭이도 아이템이 되긴 하지만, 그런 아이템의 등급은 F급으로 책정되니까. 중요한 것은 유명한 위인이나 설화와 관계된 것, 혹은 그럴듯한 ‘이야기’가 얽혀있는 것이다. “저기로 가죠.” 우리가 멈춘 곳은 경희궁에 면해 있는 ‘서울 역사 박물관’이었다. 유상아의 눈동자에 빛이 감돌았다. “여기선 뭘 찾으면 될까요?” “간평의(簡平儀)라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원반을 닮은 조선시대의 유물인데, 몇 층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좋아요, 한번 찾아볼게요!” “빨리 찾아야 하니까, 흩어지죠. 길영이 너는 상아 누나랑 같이 움직이도록 해. 그리고 이성국 씨는―” 피유웅― 파가각! 거기까지 말하는 순간, 뒤쪽에서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행들을 감싸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건물의 외벽을 꿰뚫은 화살. 화살대에 은은하게 실린 마력의 흔적이 보였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강마시(强魔矢)]. 궁술 스킬을 제대로 배운 놈이다. 대체 누구지? 예상외의 습격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설마 우리 일행의 동선을 읽은 놈이 있다고? “모두 안으로 들어가요! 빨리!” 화살 몇 대가 더 날아왔다. [‘신념의 칼날’을 발동합니다!] 검의 면적을 넓게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쳐냈다. 다행히 담긴 마력의 양이 많지 않아, 막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숫자였다. 피잇! 사각에서 날아든 화살 한 발이 허벅지 바깥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재빨리 물러서며 엄폐물 뒤로 숨었다. “하하하! 애송이 왕이 어딜 쏘다니느냐!” 범을 닮은 우렁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오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활과 검으로 무장한 무리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깃발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별동대를 내보냈다는 것.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왕들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템은 아이템대로 먹고, 군소지역 왕들의 깃발도 뺏겠다는 건가.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이 발동합니다.] 나는 전방에서 달려오는 거한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 <인물 정보> 이름 : 추왕인 나이 : 33세 배후성(背後星) : 황산벌의 마지막 영웅 전용 특성 : 단역배우 (일반) 전용 스킬 : [무기 연마 Lv.4], [연기 Lv.1], [약자 탐색 Lv.1] 성흔 : [백제검도 Lv.4], [결사항전 Lv.2], [별동대 운용 Lv.3] 종합 능력치 : [체력Lv.19], [근력Lv.19], [민첩Lv.21], [마력Lv.15] 종합 평가 : 별 볼 일 없는 인간도 뛰어난 배후성을 만나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케이스입니다. 배후성과의 동조율이 높아 성흔의 위력이 상당하니 주의를 요합니다. + 젠장, 호랑이도 말만 하면 온다더니. 하필 여기서 황산벌의 명장을 만날 줄이야. 배우 특성을 가진 이들은 이런 종류의 성좌들이 들러붙기 쉽다. “왕의 명예를 아는 놈이라면 순순히 깃발을 내놓아라. 그렇다면 그룹원들의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 어설픈 사극 말투를 보아하니 왜 특성이 단역배우인지 알겠다. 저런 놈한테 황산벌의 마지막 영웅인 계백 장군이 붙다니. 성좌든 사람이든 파트너 운이 따라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나저나 곤란한데. 계백 장군의 성흔, [백제검도]와 [별동대 운용] 레벨이 너무 높다. 거기에 무리의 숫자까지 감안하면 종합 능력치를 올리지 않고서는 모두 처리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보유 코인 : 68,150C] ······그냥 여기서 코인을 사용해야 하나? 하지만 여기서 코인을 사용해 종합 능력치를 마구 올렸다간, 네 번째 시나리오의 마지막 페이즈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그러면 계획 전체가 어그러진다. 그냥 눈 딱 감고 2만 코인 정도만 써 보면... “삼국의 이름을 달고 한낱 약소국의 왕을 핍박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웬걸 익숙한 인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계백의 화신 추왕인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쌍도의 여왕께서 여긴 웬일이신지?” “역시 망한 왕조의 장수라 말투도 천박하군요.” 오연한 표정으로 쏘아붙이는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미희왕 민지원. 아니, 이 여자는 또 어디서 나타난 거지? ······설마, 날 따라온 건가? 아니겠지. 그럴 리가. 민지원의 눈빛이 흘끔 나를 스쳐 갔다. [등장인물 ‘민지원’이 당신에게 희미한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진짜? “닥쳐라! 비겁한 신라의 핏줄이 이제와 삼국의 왕을 자처하느냐? 비천한 계집 따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호성이 추왕인의 전신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도 단역배우라고, 사자후 스킬도 없는데 목소리가 아주 시끄럽다. 그나저나 굉장히 흥미롭다. 진성왕도 계백 장군도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인데, 성좌가 되고 나니 이렇게 마주할 수가 있구나. 나는 민지원을 향해 물었다. “날 돕는 이유가 뭐죠?” “신라는 약소국을 외면하지 않아요.” “가야를 멸망시킨 게 신라일 텐데요.” “······그쪽도 한국사 1급이에요?” “그 정도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다 압니다.” 민지원의 얼굴이 살짝 침울해졌다. “전 고등학교 잘 안 나가서 몰라요.” 그럴 법도 했다. 작중 설정상 민지원은 10대부터 배우였으니까. 일찍부터 여배우로 살아온 그녀는, 아마 역사 대신 사회로부터 다른 것들을 배웠을 것이다. “당신 말이 맞아요. 돈으로는 사람을 구할 수 없죠. 아까 무례를 범한 빚을 갚겠어요. 그뿐.” 여배우로 살아온 민지원의 전사를 알고 있는 나였기에, 그 말에 담긴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의외다. 그 자존심 강한 진성왕의 화신이, 이렇게 순순히 자존심을 굽히고 나올 줄이야.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계백의 화신이 껄껄 웃었다. “왕이라는 자가 사사로운 일에 휘둘리는가? 저래서 계집은······.” 민지원을 대신해 앞으로 나선 것은 화랑대장이었다. “무례하다! 한낱 장수가 어찌 일국의 왕에게!” 화랑을 일별한 계백의 화신의 눈동자에 이채가 깃들었다. “화랑······? 이거 재미있군. 설마 그 애송이 성좌와 계약한 놈도 있었던 건가?” 그 말에 화랑대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고 보니 저 화랑대장, 배후성이 관창이었지. “너도 네놈 배후성처럼 목이 잘리고 싶은 게냐?”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관창은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 “닥쳐라!” 도우러 와준 것은 고마운데, 성좌들 사이의 상성이 최악이다. 동조율이 높은 녀석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위인급 성좌들 사이에는 생전의 역사에 따라 상하관계가 있다. 장수는 자국의 왕에게 거스를 수 없고, 숙적은 역사적 기록에 따라 상성이 매겨진다. 가령, 일본의 장수인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충무공에게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관창이, 죽었다 깨어나도 계백한테는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민지원도 그걸 아는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군을 물리세요. 못 이깁니다.” 군세도 백제군이 조금 더 많았다. 계백은 기본적으로 지휘관이고, 많은 군세를 이끌수록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관창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한 장수인 것이다. 유상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독자 씨! 찾았어요!” 뒤쪽에서, 작은 원반을 닮은 유물을 쥔 유상아가 달려오고 있었다. 벌써 찾았다고? [간평의(簡平儀)] 벽걸이 시계을 닮은 유물이, 유상아의 손에서 빛을 뿜고 있었다. 순간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간평의를 한 번 보고, 민지원을 한 번 보고, 공포에 질린 관창의 화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이거, 어쩌면 코인을 안 쓰고도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쳐라!” [등장인물 ‘추왕인’이 성흔 ‘별동대 운용 Lv.3’을 발동합니다!] 백제군의 위세에 눌린 화랑들이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다급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는 민지원을 향해, 내가 말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여기서 황산벌 전투를 재현해 보죠.” 역시나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황산벌은 원래 신라가 이기는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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