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6화 객실 곳곳을 뛰어다니는 곤충들을 보며,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 이봐요! 왜 그런 짓을―” 사람들이 멍하니 경악만 하고 있는 사이, 판단이 빠른 몇몇은 나를 밀치고 지나갔다. “두고 보자 개자식아.” “……빨리들 찾는 게 좋을 겁니다. 이제 3분밖에 안 남았으니까.” 그 말을 신호로 사람들은 이성을 상실한 짐승들처럼 지하철 좌석 구석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잡았다! 아아악!” 운 좋게 곤충을 손에 넣은 사람들의 환희와, 다시 그 사람을 공격하는 악의가 어우러져 객실 안은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어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그냥 곤충을 내줘도 됐잖아?” 옆을 돌아보니 김남운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수상쩍게 목을 푸는 김남운을 경계하며 대답했다. “객실에 남은 사람의 숫자는 열둘이야.” “……응?” “채집통에 남은 곤충은 세 마리고.”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김남운이 파안대소를 했다. “12 대 3? 하하하핫! 그러네. 어차피 모두 살아남을 수는 없다 이거지? 그래서 저걸 던진 거다?” “그래.” “웃기지 마.” “……?” “상식이 제대로 박힌 인간이라면 그딴 이유로 저런 짓을 벌이진 않아.” 김남운의 얼굴에 웃음기가 짙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봐. 넌 그냥 저 광경을 보고 싶었던 것 아니야?”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멸살법’의 김남운을 떠올렸다. 귓가에 메시지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이 발동합니다.] 이어서 눈앞에 멋대로 떠오르는 창. 내 특성이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눈앞의 일람창을 보고 있자니 대강 감이 올 것도 같았다. + <인물 정보> 이름 : 김남운 나이 : 18세 배후성(背後星) : 없음(현재 두 개의 성좌가 해당 인물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용 특성 : 중2병 (일반) 전용 스킬 : [비정상적인 적응력 Lv.3], [나이프 파이팅(Knife fighting) Lv.1], [흑화(黑化) Lv.1] 종합 능력치 : [체력Lv.3], [근력Lv.4], [민첩Lv.6], [마력Lv.4] 종합 평가 : 특별한 계기를 맞아 흑화한 중2병입니다. 엮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 ‘멸살법’에 등장하는 중2병들 중 대부분은 실재가 된 악몽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하지만 눈앞의 김남운만은 달랐다. 망상악귀(妄想惡鬼) 김남운. 훗날 그런 별명으로 불리게 되는 이 청년은 평범한 중2병이 아니었다. 세계의 멸망만을 오래도록 기다려왔기에, ‘비정상적인 속도’로 이 세계에 적응해버린 청년. “나랑 같이 팀을 짜자. 어때?” 그 청년이, 지금 내게 제안하고 있었다. [등장인물 ‘김남운’이 당신에게 호감을 표합니다.] [등장인물 ‘김남운’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지금 김남운과 손을 잡는다면 당장 생존은 보장되겠지. 만약 내가 ‘멸살법’을 읽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선택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난 혼자가 좋아서.” “그래? 흠, 아쉽게 됐네.” 가볍게 입맛을 다신 김남운이 내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럼 이제 좀 비키지? 난 뒤쪽 노인네한테 볼일이 있으니까.” 노인네, 라는 말에 뒤를 돌아봤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할머니가 가까스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곤충은 안 잡는 거냐?” “곤충? 내가 그딴 걸 왜 잡아?” 김남운이 비릿하게 웃었다. “이미 다 잡아 놓은 벌레가 있는데.” 김남운의 살기가 코앞에서 느껴졌다. 소설의 문장으로만 존재하던 캐릭터가 생생한 광기를 지닌 채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조금 감탄하고 말았다. 김남운은 정말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인간이었구나. [등장인물 ‘김남운’의 호감도가 미미하게 하락합니다.] “뭘 봐? 빨리 비키라니까?” “그건 힘들겠는데.” “뭐?” “비켜줄 수 없다고.” “하하, 이제 와서 정의의 사도 흉내라도 내겠다는 거야? 이중인격이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남운의 얼굴에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호감으로 빛나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혹시 처음부터 이러려고 채집통을 저쪽으로 던진 거였어? 진짜?” “…….” “그 노인네 살리려고? 하하하! 대박! 진짜 대박! 아니지? 응?”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녀석을 보자니 새삼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이거, 알고 보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이었네. 역시 나이든 새끼들은 다 똑같다니까.” 내가 멸살법을 읽는 내내, 이 자식 때문에 얼마나 속이 터졌었는지. [등장인물 ‘김남운’이 당신을 멸시합니다.] “비키라고 했지?” 속으로 타이밍을 재고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날아드는 주먹. “어쭈, 제법인데?” 명백히 알고 피했음에도 머리 위쪽으로 후끈거리는 열감이 남았다. 평범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흑화(黑靴) Lv.1] 김남운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어두운 오오라. ‘중2병’ 특성의 전용 스킬이었다. 본래 첫 번째 시나리오가 끝나기 전에 스킬을 해방하는 경우는 드문데, 저 김남운은 벌써 스킬을 발현하고 있었다. 사이코패스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이놈을 영입했던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퍼억! 녀석에게 맞은 어깨에 심한 경련이 왔다. 이대로 싸운다면 승산은 없다. ……지금 ‘그걸’ 써야 하나?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던 찰나, 메시지가 들려왔다. [등장인물 ‘김남운’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1단계의 사용 조건에 근접했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 이건 또 뭐야?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1단계의 사용 조건에 도달했습니다!] 꽈앙, 하는 소리와 함께 김남운의 주먹이 바닥을 내리쳤다. “하하, 뭐야? 나 꽤 세잖아?” 객실 바닥에 희미하게 남은 주먹 자국. 이제 김남운도 조금씩 자신의 힘을 깨닫고 있었다. 한방만 맞아도 뼈가 부러지기 충분한 타격이 연속해서 바닥을 내리쳤다. 김남운이 답답한 듯 성질을 부렸다. “아, 왜 이렇게 안 맞아!” 당연히 안 맞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내 두 번째 스킬 덕분이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1단계가 발동합니다!] 스킬이 발동한 순간, 나는 김남운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양 그의 공격 방향을 훤히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오른쪽 옆구리」 재빨리 몸을 뻗어 공격 방향의 사각으로 물러나고, 「오른쪽 눈」 빠르게 허리를 숙여 연달아 날아드는 주먹을 피해낸다. “존나 안 쳐 맞네 진짜!” 부실한 운동신경 탓에 반격까지는 무리였지만, 적어도 공격을 대부분 회피할 수는 있었다. 「왼쪽 대퇴부」 이 정도면 버티기엔 충분했다. 중요한 건 시간을 버는 것. 나는 날아드는 김남운의 주먹을 피하며, 허공의 시계를 가리켰다. “이제 2분 남았다, 꼬맹아.” 다급해진 김남운이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이런 씨……!” 선택의 순간, 김남운의 눈이 할머니 쪽에 고정되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안고 굴렀다. 할머니가 죽으면 김남운은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런 놈을 다음 시나리오로 보낼 수는 없다. “하하, 그렇게 움직일 줄 알았다니까.” 어째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새 김남운이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고 있었다. 하얀 형광등 빛을 머금은 칼날에 눈이 시렸다. 휴대용 맥가이버 칼.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이 골수 밀리터리 오타쿠였다는 것을. 쉬이이익! 기술형 스킬인 [나이프 파이팅]과 강화형 스킬인 [흑화]의 연계. 칼끝의 방향은 명백했다. 「심장」 방향을 알아도 피할 수 없는 공격. 빠르게 판단을 내린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이면 차라리 맞는 게 낫다. 가능하면, 최소한의 피해로. 가까스로 심장을 빗나간 칼날이 어깨를 깊이 긋고 지나갔다. 아프다. 정말 아프다. 피부가 타는 듯한 통증이라는 건 이런 것이었구나. 시야가 흔들리며, 죽음의 느낌이 성큼 다가왔다. “하하, 이제 그만 죽어!” 시나리오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1분 30초. 나는 할머니 쪽을 흘끗 살폈다. 할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이젠 정말 ‘그걸’ 쓰는 수밖에 없다. “청일고교 2학년 김남운. 너에게 질문이 하나 있다.” “……뭐?” “곤충의 알은 ‘생물’일까 아닐까?” 나는 아까 죽인 메뚜기의 사체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통통한 알집의 부피가 푸짐했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는 진액. 찝찝한 느낌이 손안에 흥건히 퍼지며 메시지가 들려왔다. ……. [생명체를 살해했습니다.] [추가 보상 100코인을 획득합니다.] [생명체를 살해했습니다.] [추가 보상 100코인을 획득합니다.] ……. 귓가를 두드리는 무수한 메시지. 김남운이 인상을 썼다. “곤충의 알?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시간 끄냐?” “그런 셈이지.” “내가 그딴 걸 어떻게 알아? 난 생물 시간에 항상 졸았다고.” 피에 젖은 내 어깨를 보며 김남운이 즐거운 듯 웃었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아는 게 하나 있어. 뭔지 알아?” “뭔데.” “바로 지금 네가 뒤질 거란 거야!” 대답하기도 전에 김남운의 맥가이버 칼이 움직였다. 역시나 피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대량의 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코인 사용 도움말을 확인하시겠습니까?] 나는 귓가로 들려오는 설명들을 생략했다. 어차피 아는 내용이라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 죽는 건 너야.” 나는 입으로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속으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2700코인을 ‘체력’에 투자합니다.] [체력 Lv.1 -> 체력 Lv.10] [체력 레벨이 크게 증가합니다!] [육체의 내구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김남운의 맥가이버 칼이 내 심장 어림을 파고들었다. 정확히는, 파고든 것처럼 보였다. 마치 단단한 바위를 긁은 것처럼 생채기만 남은 피부. 김남운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떻게!” “아까 문제의 정답을 알려줄게. 답은 ‘알은 생물이다’야.” “뭐, 뭐?” “그리고 산란기의 메뚜기는, 한 번에 100개 이상의 알을 낳지.” 알. 생물. 100개. 안타깝게도 머리 나쁜 김남운이 그 정보들의 의미를 이해하기엔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뭔 개소리야!” “이해하리라 생각하지도 않았어. 이제 1분 남았네.” 그제야 김남운의 얼굴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죽어! 죽인다!”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맥가이버 칼의 궤적. 나는 일부러 공격을 방어하지 않았다. 카가가각! 가슴 보다는 취약한 부위였던 까닭일까. 조금 전보다는 깊은 생채기가 남았지만,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김남운.” 발악하는 김남운의 뒤쪽으로, 여전히 벌레들을 찾아 드잡이질을 벌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서로를 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아까 네 말이 맞아. 나는 너랑 똑같은 종류의 인간이야.” 어쩌면, 내가 구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씨발 뭐야! 왜 안 죽어! 왜 안 죽는 건데!” 55초. 50초. 45초. 나이프는 계속해서 생채기만을 남겼다. 핏줄기는 흘렀지만, 칼날은 살가죽 아래를 헤집지 못했다. 김남운이 다시 입을 연 것은 30초를 남겨둔 시점이었다. 칼을 떨어뜨린 김남운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 살려줘.” 25초.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주세요!” “내가 왜?” 20초. “사, 사람 목숨은 중요하잖아! 그게 당연한 거잖아!” “그건 ‘예전 세계’의 법칙이겠지. 네가 말했잖아.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법칙이 필요하다고.” 10초. “싫어, 싫어! 죽기 싫어! 으아아아아!” 5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 김남운이 나이프로 내 눈을 노렸다. 날붙이가 내 망막을 파고들려는 바로 그 순간. [제한 시간이 경과하였습니다.] 퍼버버벅― 하는 소리와 함께, 김남운의 머리가 폭발했다. [유료 정산이 시작됩니다.] 김남운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사람들의 머리가 터져 나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폭죽처럼 터져나가는 머리들. 나는 약간의 환희와 약간의 죄책감, 그리고 알 수 없는 괴리감 속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왜일까. 어째서 저 광경을 보면서도, 나는 이토록 침착할 수 있는 것일까. 마치 소설이라도 보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총 124개체의 생명체를 학살하였습니다.] [학살 내역 : 메뚜기 1마리, 메뚜기알 123개] [저항력이 없는 생명체를 살해하였기에 획득 코인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총 62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능력치 레벨업에 사용한 코인이 자동 감산됩니다.] [총 35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과도한 학살로 ‘대량 학살자’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지하철의 새카만 창문에 내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거울을 보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표정. 나는 뺨 언저리에 묻은 핏자국을 문질러 닦았다.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유리창에 묻은 피였다. 기우뚱, 하는 느낌이 들더니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덜덜덜, 소리를 내며 달리는 열차. 곧 빛이 들이치며 창문에서 어둠이 밀려났다. 압구정에서 옥수로 향하는 3호선의 지상철 구간. 창밖으로 한강을 비롯한 서울의 정경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아. 누군가가 벅차오르는 신음을 흘렸다. 살았다, 라는 깊은 안도가 느껴지는 신음이었다. 하지만 그 신음의 의미가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 아……. 창밖에 비치는 풍경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서울이 아니었다. 포연과 먼지 속에서 폐허가 된 시내. 무너진 한강의 대교들. 군인들의 시체로 붉게 물든 한강과, 쓰러진 빌딩 사이로 K1 탱크를 장난감처럼 짓밟는 괴물들. [메인 시나리오 #1 – 가치 증명이 종료되었습니다.] [기본 클리어 보상으로 3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채널 이용 수수료로 100코인이 감산 되었습니다.] [추가 보상 정산이 시작됩니다.]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유일한 독자였다.
🏠 인덱스 ← 이전 화 다음 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