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57화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당신의 투지에 갈채를 보냅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당신의 용기를 격찬합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전술에 호기심을 보입니다.]
······.
[상당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활약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20,0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거름망 없이 통째로 쏟아지는 간접 메시지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그런 칭찬이 한 번에 수십 개씩 쏟아지면 그건 테러다.
비형 이 자식은 메시지 관리도 안 하고 어디 간 거야?
아······지금쯤 관리국에 불려 갔으려나.
히든 시나리오 보상이 따로 안 들어 오고 있는데다, 중급 도깨비가 말없이 사라진 걸 보면 대강 상황이 예상은 된다.
그나저나 후원 합산금이 2만 코인이라······.
역시 ‘소수 채널’과 ‘상당수 채널’은 밥벌이가 다르다.
나는 재빨리 화룡종의 몸을 뒤져 핵을 끄집어냈다.
[5급 화룡종의 핵]
은은한 붉은 빛으로 감싸인 핵.
소재앙 급이라 그런지 나오는 핵의 품질도 심상치 않다.
열화판이지만 용의 일종인 만큼 떼어서 팔 부분도 많다. 뼈라든가, 가죽이라든가. 좋은 대장장이에게 맡겨서 가공할 수도 있고, 거래소에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 죽은 화룡종의 시체를 마저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소재앙을 잡았는데, 겨우 이것만 줄 리가······.
그런데 난데없이 짜악― 하는 소리와 함께 등짝에 통증이 일었다.
“독자 씨 무슨 게임 캐릭터에요?”
언제 다가온 것인지, 등 뒤에 정희원이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쿨럭, 하고 기침이 나온다.
“······저 지금 체력이 바닥이라 그렇게 때리시면 죽습니다.”
“어차피 죽어도 살아나잖아요.”
“항상 그런 건 아닙니다.”
이쯤에서 한 번 더 대거리를 해줘야 정희원인데, 어쩐지 조용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죽었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지.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지, 그 정희원이 울긴 무슨.
그녀는 다른 일행들을 의식한 것인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이번에도 다 알고 행동한 거예요?”
“전부는 아니고요······.”
“정말 죽었으면 어쩔뻔했어요!”
“그치만 살아났잖습니까.”
다시 한번 등짝에 매서운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뒤늦게 이현성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독자 씨!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멀리서 쭈뼛대며 다가온 정민섭과 이성국까지 모두 모였다.
사실 저 녀석들은 여기서 죽었으면 했는데, 정말 운이 좋은 놈들이다.
뭐, 어차피 놈들은 이제 내 그룹원이라, 언제든 통제가 가능하니까.
그런데······.
갑자기 침묵이 내려앉길래 뭔가 싶었는데, 다들 나를 보며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나씩 물어보세요. 궁금한 게 뭡니까?”
그리고 갑작스런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
“부활은 제가 새로 얻은 특전입니다. 배후성이 예수님이라든가 그런 건 절대 아니고요.”
나는 곤란한 항목은 적당히 피해가며, 일행들이 알아야 할 정보만 알려 주었다. 정희원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람을 살릴 때마다 부활이라니······ 완전 사기 아니에요?”
“대략 백 명당 부활 1회꼴이긴 하지만, 사기는 사기죠.”
솔직히 인정했다.
하지만 이 ‘불살의 왕’에도 치명적인 약점은 있었다.
이 특성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사람의 목숨을 ‘직접’ 끊을 수 없다.
상처를 입히거나, 제압하거나,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죽여서는 안 된다. ‘불살의 왕’은 동족을 직접 살해하는 순간 바로 왕위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항들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알려져서 좋을 것도 없고.
“앞으로 사람 열심히 살려야겠네요.”
“살리려고 노력해야죠. 곤란한 경우도 있겠지만······.”
“걱정 마요. 그런 놈들은 내가 죽여 줄게요.”
자신만만한 정희원의 목소리.
사실 ‘불살의 왕’을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정희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멸악의 심판자’를 키운 이유가 이것 때문이기도 했고.
솔로로 뛸 때는 답답한 순간도 있겠지만, ‘불살의 왕’을 중후반까지 유지할 것도 아니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뒤로 갈수록 이보다 사기적인 특성은 많이 나온다. 초반에 좋은 특성 하나 얻었다고, 버스를 갈아탈 타이밍을 놓쳐서는 곤란한 것이다.
“근데 진짜 무슨 판타지 소설 같습니다. 별의별 능력이 다 등장하니······.”
이현성의 말에 이성국과 정민섭이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일부러 놈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허튼소리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성국이 기어코 허튼소리를 했다.
“죽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끔찍했죠 당연히.”
갑자기 그런 건 또 왜 묻는 건가 싶었는데, 이성국이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다시 살아나시는 걸 보면서 조금 무서웠습니다.”
“무서웠다고요?”
“예. 엄밀히 따지면 육체 전체가 통째로 소멸했다가 복구되었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이 세계의 원리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우리 존재가 통째로 복제될 수 있는 것이라면······ 대표님은 ‘부활’하신 게 아니라 ‘복제’되신 걸 수도 있지 않습니까.”
태연한 목소리로 소름 끼치는 이야길 한다.
그건 생각도 못 해본 부분인데······.
그러고 보니 이 녀석 특성이 [최면술사]였지.
······이런 쪽에도 관심이 있는 녀석이었나?
정희원이 핀잔을 주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에요?”
“이건 중요한 문젭니다. 대표님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연속성이 없다면, 죽음 이전의 대표님과 부활 이후의 대표님이 동일한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이젠 어려운 말까지.
불현듯 어떤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이 자식, 혹시 프롤로그에 현학적인 악플을 달고 하차했던 그놈인가?
“굉장히 기발한 발상으로 저를 살해하시는데······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죽은 뒤에도 계속 의식이 있었거든요. 그러니 엄밀히 따지면 진짜 죽음은 아닌 거죠.”
“설마 영혼 상태를 경험하신 겁니까?”
“그걸 영혼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 찜찜한 느낌이 든다.
‘멸살법’은 결국 작가가 만든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는 현실이 되었다.
영혼이 입증되지 않던 세계는, 이제 영혼이 당연한 세계로 변했다.
그런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나라든가, 내 영혼이라든가.
그런 건 원래부터 존재했던 걸까?
아니면, 이런 ‘나’조차도 작가가 만든 이야기의 일부인 걸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아무튼, 이제 쓸데없는 질문은 끝났죠?”
“아, 한 가지만 더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뭐죠?”
“왜 갑자기 저랑 민섭이한테 존댓말을 쓰시는지······.”
“유중혁 컨셉은 이제 끝났잖아요.”
뒤늦게 뭔가를 눈치챘는지, 이성국이 ‘핫’하는 표정을 지었다.
“엇, 그러고 보니 대표님 모습이······.”
흐려진 말꼬리를 듣지 않아도 알겠다.
물론 컨셉이 끝났다고, 대우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이성국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스마트폰 좀 줘 봐요.”
“예?”
“폰 달라고요.”
이성국은 쭈뼛쭈볏 자신의 폰을 내밀었다.
좋은 기종이다. 내가 쓰던 것보다도 좋다.
“이거 내가 가져도 되죠?”
“······유중혁 컨셉은 끝나신 거 아니셨습니까?”
“이게 원래 내 컨셉이에요.”
이성국이 울상을 지었다.
“다들 조금 쉬고 계세요. 전 잠깐 찾아볼 게 있어서. 10분만 있다가 이동하죠. 아이템 수거하고 계셔도 되고요.”
일행들이 곳곳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수거하는 동안, 나는 정민섭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
태연한 척하고는 있지만, 사실 조금 초조한 상태였다.
[히든 시나리오 보상 정산이 지연됩니다.]
[현재 관리국에서 「개연성 적합 판단」이 진행 중입니다.]
바로 저 메시지 때문이었다.
개연성 적합 판단.
히든 시나리오의 보상 코인이 아직도 안 들어오고 있는 것도 아마 저 때문이겠지.
‘멸살법’ 텍본에서 관련된 부분을 좀 확인하고 싶은데, 설상가상으로 내가 쓰던 스마트폰이 불에 타버렸다.
정말이지 나답지 않은 실수였다.
불길하다.
만약, 작가가 보낸 메일이 지워져 있기라도 한다면······?
그런데 그때, 스마트폰 화면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새로운 기기에 동기화가 가능합니다.]
[동기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뭐야 이거?
확인을 누른 순간, 갑자기 파일의 다운로드가 진행되더니 배경화면에 새로운 파일 하나가 생성되어 있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txt]
그렇군. 이런 식인가.
하긴, 도깨비나 성좌들도 못 읽는 파일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리가 없지.
아이템을 수거하며 시시덕대는 이성국과 정민섭의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혹시 하차자 녀석들은 이걸 읽을 수 있을까?
일단은······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좋겠지.
나는 텍본을 열어 ‘멸살법’을 읽기 시작했다.
[특성 효과로 ‘읽기 속도’가 증가합니다.]
내가 찾아낸 부분은 유중혁의 6회차에서 일어났던 「개연성 적합 판정회」에 관한 서술이었다.
「서울 관리국의 중급 도깨비장 ‘바람’은 자신의 앞에 놓인 시나리오 자료를 읽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서류의 맨 위에는 <회귀자 유중혁>이라는 이름이 쓰인 파일이 올려져 있었다.
‘회귀자라······ 젠장. 하여간 요즘은 도깨비고 성좌고 죄다 눈치가 빨라서······.’
바람이 입맛을 다시며 판정회의 도깨비들을 훑어보았다.
상급 도깨비나 대 도깨비는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지역 돔 수준에서 발생한 ‘개연성 적합 판정’이니까. 지역구의 일은 지역구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바람은 긴장한 표정의 도깨비들을 향해 물었다.
“이거 어떤 놈이 청원 넣은 거야?”
“일본의 아오오니입니다.”
“그 놈은 자기 나라나 신경 쓰지, 왜 남의 나라 개연성을 물고 늘어져? 그 새끼들은 상도(商道)도 없대?”
“아무래도 요즘 하급 도깨비들 사이에 신경전이 치열하다 보니······.”
바람이 인상을 찌푸렸다.
확실히 보고서에 따르면, 이 ‘유중혁’이라는 놈은 개연성 적합 판정 시비를 걸만한 건덕지가 있었다.
시작부터 상급 숙련계 스킬들을 갖고 시작한 것도 모자라서, 자동 필터링이 되는 중요 정보들도 잔뜩 갖고 있다.
게다가 이 [현자의 눈]인가 뭔가 하는 스킬때문에 시스템상 접근할 수 없는 항목이 있어서 자료 조사로 상급 관리국의 도움까지 받아야 했다.
바람이 한숨을 쉬며 보고서를 덮었다.
“됐어. 이놈은 윗대가리들이 허락한 놈이야. 그냥 내버려 둬.”
“괜찮겠습니까? 그랬다간 후폭풍이······.”
“그 정도 후폭풍은 감당할 수준의 배후성이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성좌 하나가 그걸 감내할 수 있겠습니까? 개연성을 나눠 감당할 성좌 연합이 있지 않다면······.”
바람이 피식 웃었다.
“짬도 안 되는 게 어디서 훈계질이야? 네가 가서 이놈 배후성이 누군지 알아올래?”
“그, 그건 아닙니다.”
“슬슬 다섯 번째 시나리오 진행될 거니까, 거기에나 신경 써. 이 정도 개연성은 시나리오 진행되면서 차츰 상쇄되니까. 그리고.”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중급 도깨비들이 입을 다물었다.
“요즘 너네 일 안 하냐?”
“읏······!”
“미국이랑 인도 지역은 왜 매출이 이 모양이야? 미국엔 예언자가 있고, 인도에는 성좌 연합이 있잖아? 호구들이 잔뜩 있는데 왜 매출이 그따위야? 상품 똑바로 안 만드냐?”
“그, 그게······.”
“시발, 개연성은 개나 주라고 해! 빨리 코인 상품이나 팔라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째 도깨비놈들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일하던 미노 소프트가 생각난다.
거기 기획부도 장난 아니었지.
어쨌거나, 지금의 나도 멸살법의 유중혁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언젠가 이런 상황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래서 눈에 띄면 안 좋은 법인데.
이거······ 적합 판정 걸려서 손해 보는 거 아냐?
그때,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때문에 관리국에 몇 번이나 불려가는지······.]
비형이었다. 나는 재빨리 통신을 걸었다.
‘어떻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