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화
549화
유중혁은 꿈을 꾸었다.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과 ‘서유기 시나리오’를 수행하던 시절의 꿈이었다. 꿈속에서 유중혁은 통천하의 강 위를 달리고 있었다. 주변에서 함께 달리는 정희원과 유상아, 이현성과 신유승의 모습이 보였다.
【없없없없없없없없】
단말마를 반복해서 토해내며 요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맞다. 그들은 김독자를 구하기 위해 서유기에 참가했었다.
그런데······ 김독자는 어디 있는 거지?
츠츠츠츠······.
【······한심하기 짝이 없네. 겨우 이 정도로 ‘이야기의 바깥’까지 나왔다고?】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인근에서 위험한 설화 파동이 감지된다 싶더니······ 이 자였군요.】
【어떡할 겁니까, 대장.】
【우린 이제 간섭하지 않기로 했잖아. 진짜로 도와줄 거야?】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들.
이런 기억이 있었던가? 누가 이런 말을 했었지?
돌연 눈앞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새카만 그림자가 빛을 가리고 섰다. 이계의 신격이 어둑한 그림자 가운데 있었다. 유중혁은 저도 모르게 전의를 내비쳤다.
그랬지. 그때 이 녀석과 싸웠다.
1863회차의 회귀로 세계의 끝을 본 또 다른 자신, ‘은밀한 모략가’.
유중혁이 채 스킬을 사용하기도 전에, ‘은밀한 모략가’가 말했다.
【회귀자의 끝이 그리 쉬울 거라 생각하는가?】
통천하가 뒤집혔다. 강의 곳곳에서 솟아난 요괴들이 유중혁을 덮쳤다. 버려진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그의 몸 위로 들러붙었다. 그의 입으로 코로, 잊힌 설화들이 빨려 들어오고 있었다. 머리가 깨져버릴 듯한 고통 속에서 유중혁은 조금씩 강 아래로 가라앉았다.
【잊지 마라. 우리에겐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진언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반전되었다. 유중혁은 물을 토해내듯 숨을 헐떡이며 깨어났다. 꿈속에서 들러붙어 있던 요괴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대신,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 유중혁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바로 눈앞에 흐릿한 인형이 있었다. 인형에게서 뿜어져 나온 온화하고 다정한 기운이 그의 전신을 덥혔다.
······꿈인가?
조금씩 시야가 회복되자, 인형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유중혁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씻었다. 착각일까. 소녀의 외관이 어쩐지 김독자를 닮아 있었다. 별처럼 빛나는 눈은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여기서 대장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이제 세계선을 떠돌던 내 기분을 조금은 이해하겠다. 그치?]
이 아이는······.
[걱정하지 마. 흩어진 설화는 대충 복구시켜 뒀으니까. 임시로 서브 시나리오도 부여했으니까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설마······.
[섭섭하게. 이렇게 말해야 알겠어?]
장난스럽게 웃던 소녀의 머리 위로 작은 뿔이 돋아났다. 한껏 벌어진 소녀의 입술이, 그가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울음을 토했다.
[바앗.]
*
“사부한테 연락 온 거 있어요?”
“아니.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유중혁이 떠난 후 어느덧 3개월이 흘렀다. 원고 작업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클라우드 시스템의 업데이트도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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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 동안, 유중혁은 성흔을 사용해 클라우드 시스템에 로그인한 적이 없었다.
‘유중혁 이 자식,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스멀스멀 차오르는 불길함. 역시, 대신 갔어야 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옆에서는 유미아가 땀을 뻘뻘 흘리며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오빠의 두 다리를 부러트릴 수 있을 만큼 강해질 거예요.”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빛내는 유미아를 보며, 한수영은 열심히 하라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을까. 갑자기 머릿속으로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당신의 화신이 ‘클라우드 시스템’에 로그인했습니다.]
*
대강의 사정을 전해 들은 비유의 반응은 이러했다.
[······그러니까, 한수영의 성흔을 통해 공유받은 이야기를 다른 세계선에 퍼뜨린다. 이게 계획의 요지지?]
“맞다.”
[그 이야기를 독자 아저씨의 환생체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거고?]
“그렇다.”
[제법인데? ‘가장 오래된 꿈’의 특징을 그렇게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나도 나쁘지 않은 계획이라고 생각······.”
[······라고 감탄할 줄 알았어? 진짜 그딴 계획을 세웠다고?]
······비유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던가?
[하긴, 대장은 그런 짓을 침착하게 저지를만한 성격이긴 하지.]
놀리는 듯한 말투에, 유중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 듣다 보니 김독자와 비슷한 말투 같기도 했다.
[성공 확률이 높지는 않아.]
“알고 있다.”
[그 세계선의 ‘가장 오래된 꿈’이 이 이야기를 읽지 않을 수도 있어. 고위 문명으로 갈수록 순수한 문자로 구성된 콘텐츠들은 도태되니까, 접근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고.]
“그 전에 세계선을 넘는 것부터가 문제다.”
유중혁은 반파된 방주를 돌아보았다. 비유의 도움으로 운 좋게 목숨을 부지하긴 했으나, 결국 방주가 없으면 세계선 순례는 불가능하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비유가 입을 열었다.
[왜 못 가? 좌표 어딨어? 줘 봐.]
유중혁은 미심쩍은 얼굴로 유상아가 준 좌표 목록을 건넸다. 목록에 표시된 세계선들을 확인한 비유가 빙긋 웃었다.
[나 누군지 알지? 나 도깨비 왕이야.]
순간, 유중혁은 당연한 사실을 떠올렸다.
[최후의 방주]는 관리국 소속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관리국의 최종 책임자는, 바로 ‘도깨비 왕’이다.
[내가 ‘암흑단층’에서 뭘 하고 있었게? 대장이랑 다른 일행들이 1865회차에 간 동안, 나도 열심히 뭔가 하고 있었다 이거야.]
호를 그리며 웃는 비유의 눈동자에서 깊은 현기가 느껴졌다.
암흑 단층. 다른 시공간보다 훨씬 시간의 밀도가 짙은 곳.
대체 비유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공간에 있었던 것일까.
품속에서 작은 혹주머니를 꺼낸 비유가 말을 이었다.
[죽은 혹부리 왕의 차원문도 얻어서, 가까운 세계선을 넘는 것 정도는 이제 아무 문제 없어. 먼 세계선의 경우는······ 뭐, 그것도 방주를 좀 손보면 가능할 거야. 문제는 동력으로 쓸 에너지인데······.]
유중혁은 자신의 화신체를 내려다보았다. 비유의 구명으로 다친 상처들은 대부분 아물어 있었지만, 그를 보호하던 설화들은 300일이 넘는 표류와 사냥개들과의 전투로 인해 대부분 손상되었다.
[그것도 해결될 것 같네.]
“······음?”
어찌 된 영문인지, 그의 내면은 설화들로 충만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설화들이, 유중혁의 내부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름 없는 것들’의 설화를 얻은 거야? 그것도 이런 어마어마한 양을······.]
시나리오로부터 버려진 설화들이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계의 신격’의 이름 모를 설화들이 당신과 함께하길 원합니다.]
언젠가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마주쳤던 ‘이름 없는 것들’의 설화.
그 어떤 별들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태어나, 누구의 시선도 없는 곳에서 죽어간 존재들.
그들이 유중혁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름 모를 설화들이 당신에게서 오래된 꿈의 향을 느낍니다.]
[그러고 보면 대장 주웠을 때도 좀 이상했어. 자아도 없는 ‘이름 없는 것들’이 대장을 보호하고 있지 뭐야.]
유중혁은 조금 전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서유기 시나리오.
‘은밀한 모략가’와 999회차 존재들의 목소리.
······그럴 리가.
황급히 기감을 높여 보았지만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유중혁은 비유의 목소리를 들으며,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우주의 정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설화를 연료로 쓰면 장거리 도약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얼른 움직이자. 이 근처는 사냥개들의 영역이라 지체하면 또 위험해질 수도 있어.]
또 사냥개들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유중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들어가긴 좀 비좁으니까······ 바앗!]
비유의 몸에서 풍성하고 새하얀 털이 솟아나더니, 순식간에 몸집이 주먹만큼 작아졌다.
[도깨비 왕 ‘비유’가 방주의 운항을 시작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방주의 도약 엔진이 작동했다. 방주는 푸른 설흔(說痕)을 남기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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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방주가 사라진 자리에 다섯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가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모르지.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빨리 돌아가자. 오늘 학부모 참관 수업이니까. 누가 독자랑 가기로 했지?】
【나나나나나!】
【네놈은 안 된다.】
은하 너머로 사라지는 방주를 보며, ‘은밀한 모략가’가 말했다.
【다시는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유중혁.】
*
2부 수정본을 함께 작업하던 장하영이 지루하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근데 한수영,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묻지 마.”
“유중혁한테 원고 전달은 어떻게 하라고 한 거야?”
장하영이 영 못 미덥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보니까 걘 게임이나 할 줄 알지 컴퓨터 잘 모르는 거 같던데. 사이트에 소설 업로드하는 법은 알려나?”
“직접 연재할 수는 없어. 그러면 한 세계선에 너무 오래 있게 되니까.”
“그럼?”
잠시 생각하던 한수영이 중얼거렸다.
“제일 이상적인 방법은 대신 연재해 줄 사람을 찾는 건데······.”
*
「제 Z865123 행성계. 이것은 바야흐로 제국력 2020년의 일로······.」
그날, 웹소설 작가 이학현은 고시원에서 원고를 쓰다가 편집자와 전화로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
―작가님, 대체 뭔 얘길 쓰시려는 거예요? 소설 제목은 뭔데요?
“······메소드 마스터입니다.”
―메소드 마스터? 무슨 얘긴데요?
“그러니까····· 판타지 세계의 배우인 주인공이 자신의 연기를 마스터하면서 소드 마스터가 되는······.”
―아 네, 거기까지. 근데 제가 제국력으로 시작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지는 편집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학현의 표정은 조금씩 우울해졌다.
―전작에서 어땠는지 잊으셨어요? 작가님, 잘 생각해 보세요. 제발······.
이학현은 그의 전작들을 떠올렸다.
그의 데뷔작인 『오크 철학자』는 처참한 성적으로 망했고(이 소설의 유료 연재분은 그의 베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구매하지 않았다), 호기로 썼던 차기작인 『스타 작가 되는 법』은 당연히 그가 스타 작가가 아니었기에 쫄딱 망하고 말았다. 그렇게 이걸로 벌써 세 번째.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 난 안 될 놈이다.”
이미 방세는 3개월이나 밀렸고, 당장 가진 돈으로는 오늘 저녁을 때우기도 어려웠다.
빈 한글 문서를 보던 이학현은 고시원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5층 높이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닥은 제법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니, 그래도 이건. 하아······ 응?”
이학현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착각일까. 뭔가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뭐지? 눈물인가?”
그것은 사람이었다. 흑색 코트를 입은 엄청난 미남. 그리고 그의 어깨엔 보송한 털 인형이 얹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외양은 아니었다.
꼭 여느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나오면 적당할 듯한······.
“네놈, 웹 소설 작가처럼 보이는군.”
사내의 패기에 이학현이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떨며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그럼 연재라는 것도 할 줄 알겠군.”
“그야······.”
순간 이학현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언젠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놀라운 대작을 써서 돌아오는 작가들의 전설. 예로부터 극소수의 작가들에게만 찾아온다는 행운.
이학현은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눈치채고 어깨를 떨었다.
‘서, 선택받은 작가 클리셰?’
지금까지 그가 읽어온 웹소설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제 저 사내는 자신을 소설 속의 세계로 데려갈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써 놓은 세계의 결말을 고쳐달라고 말할 것이며, 자신은 클리셰로 단련된 뇌를 십분 활용해 환상적인 활약을 하게 될 것이다.
“할 줄 압니다! 내가 당신 세계의 미래를 바꿔주겠습니다!”
“······?”
“어서 나를 데려가십시오! 전 이래 봬도 유료 연재 경험도 있는 프로 웹 소설 작가―”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학현은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다.
*
[아니 대장! 기절시키면 어떡해!]
비유가 뾰족한 음성을 냈다.
이곳은 제 Z865123 행성계. 그들이 살던 지구로부터 무려 17겹의 [암흑 단층]을 통과해야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세계선이었다.
“말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어쩌려고?]
유중혁은 품속에서 챙겨온 기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이 녀석의 뇌리에 한수영이 쓴 소설을 강제로 주입 시킨다.”
[뭔 소리야? 그런 식으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잖아! 앞으로 세계선 방문할 때마다 계속 그딴 식으로 세뇌할 거야?]
“그건······.”
생각해 보면 이 방법은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감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중혁이 떠난 후에도 세뇌가 지속 될지 알 수 없었다.
[한수영이 아직 소설도 덜 썼다며? 이 세계에 두 번이나 방문할 시간은 없어. 이대로면 소설을 넘겨줘도 도중에 연재가 끊길 거라고!]
“한수영 이 자식······.”
[남 탓하지 말고. 그 클라우드 시스템인가 뭔가 하는 거 써봐.]
무언가 묘책이 있는 눈치라, 유중혁은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화면 공유해 줘.]
눈앞에 떠오른 [클라우드 시스템]의 파일들을 살피며 비유가 이것저것을 건드려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비유의 손이 특정 파일 앞에 멈췄다.
[도깨비 왕 ‘비유’가 관리국의 권한으로 클라우드 시스템에 접근하려 합니다.]
[일부 파일의 열람을 허가하시겠습니까?]
유중혁은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파일 하나에서 투명한 실선이 뻗어 나오더니 이내 쓰러진 웹 소설 작가의 머리와 연결되었다.
[도깨비 왕 ‘비유’가 권한을 사용해 ‘클라우드 시스템’을 조정합니다.]
[시스템의 영향이 약한 세계관입니다. 개연성을 추가로 소모합니다!]
[설정, ‘영감동기화(靈感同期化)’가 생성되었습니다!]
비유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클라우드의 파일을 이 인간의 무의식과 동기화시켰어. 앞으로 한수영이 쓴 이야기들은 이 인간의 무의식으로 함께 업데이트될 거야.]
그야말로 놀라운 설화 조작 능력이었다. 그 한수영조차 성흔 하나를 만드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유중혁이 물었다.
“이 방법은 안전한 건가? 이 녀석이 쓸데없는 의심을 하면······.”
[의심은 무슨. 오히려 좋아할걸. 영감이 폭발하는 데 좋아하지 않을 작가가 어딨어? 분명 전부 자기가 쓴 거라고 굳게 믿을걸?]
씩 웃으며 사내를 내려다보는 비유. 그런 비유와 함께 쓰러진 웹소설 작가를 보며, 유중혁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본래부터 소설이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쓰러진 사내의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비유가 말했다.
[아마 뮤즈라도 왔다 갔다고 생각하겠지.]
*
다시 눈을 떴을 때, 이학현은 자신의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꿈이었나? 으······.”
부스스 일어나 입을 닦으며, 이학현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상할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다. 흑색 코트를 입은 사내에게 위협을 당하는 꿈. 그리고 솜털 뭉치처럼 동동 떠 있던 인형······. 아무래도 오랫동안 골방에 처박혀서 글만 쓰다 보니 머리가 맛이 가버린 모양이었다. 한숨을 푹푹 쉬며, 이학현은 다시 빈 노트북 화면을 열었다. 그곳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그가 쓴 적 없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게다가, 그의 손이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타이핑을 계속하고 있었다.
「웹소설 플랫폼을 띄운 낡은 스마트폰이 힘겨운 듯 화면을 밀어냈다. 스크롤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가. 몇 번이나 그러고 있었을까.
“진짜야? 이게 끝이라고?”」
“······오?”
무섭도록 키보드를 두드리는 자신의 양손을 보며, 이학현은 드디어 자신이 돌아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디선가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지난번에는 작가를 주인공으로 썼다가 망했잖아. 이번에는 독자가 주인공이면 어때?
「김독자(金獨子). 아버지는 혼자서도 강한 남자가 되라고 내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셨다.」
한 문장을 쓰면 다음 문장이 떠올랐고, 다음 문장을 쓰면 다시 그다음 문장이 떠올랐다. 폭포수처럼 샘솟는 영감.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어느새 프롤로그에 이어 1화를 완성한 상태였다.
「내 인생의 장르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학현은 한참이나 멍하니 그 화면을 바라보다가,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편집자님. 전 아무래도 될 놈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