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화
543화
일행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자리를 찾아 떠났다.
누군가는 보안 업체를 세웠고, 누군가는 정부 소속이 되었다.
한수영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웹소설로 현대 철학 읽기』
한수영은 센터에서 그런 이름의 강의를 했다.
마지막 시나리오가 끝난 뒤, 현실과 환상은 다시 분리되었다.
“그래서 롤랑바르트의 ‘애도’를 이 소설에 적용해보면······.”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저게 무슨 크로와상에 쌈장 찍어 먹는 소리냐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흥미를 갖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손을 번쩍 든 학생 하나가 물었다.
“교수님 관점은 무척 흥미로운데요. 저는 이견이 있습니다.”
한수영이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 작가가 의도한 걸까요? 맞춤법도 틀리고 비문도 많은 이런 소설에, 그런 거창한 이론을 적용해서 읽는 게 알맞은 독서법일까요? 솔직히 작가가 거기까지 생각한 거 같지는 않은데요. 여기 과하게 쓰인 의성어와 의태어만 봐도―”
한수영은 자신이 예시로 가져온 소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비문이 많은 소설이었다. 기어코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하는 듯, 학생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수영은 잠시 고민했다. 저 학생에게 낱낱이 말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수영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맞아. 진실은 작가만 알겠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너무 무책임한······.”
“누군가가 너라는 사람을 평가한다면 어떨까.”
“예?”
“그 누군가는 급하게 수업에 나오느라 제대로 씻지 않은 얼굴이나, 슬리퍼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발톱 같은 걸 먼저 볼 거야. 그리고서 생각하겠지. 아, 저 녀석은 행색을 보아하니 게으를 거야. 게으른 녀석이 똑똑할 리 없지. 저런 놈 의견 따윈 들어볼 필요도 없어.”
“그게 무슨―”
“혹은. 아, 저 학생은 어젯밤 밤새도록 오늘 강의 내용을 미리 공부했나보다. 교수에게 저렇게 적극적인 태도로 질문하는 걸 보면 말야. 겉모습은 좀 꾀죄죄하지만, 아마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는 사람인가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흔들리는 학생의 눈을 보며, 한수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네 말대로 이 글을 쓴 작가가 별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결국 이 소설에서 무얼 찾아낼지 결정하는 건 읽는 너야. 네가 쓰레기 같은 것밖에 찾지 못했다면 이건 쓰레기로 끝날 거고, 아주 약간이라도 의미를 찾아준다면 그것만으로 이 작품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겠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건 네 마음이지만, 그래도 나는 네 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는 쪽을 택했으면 싶네. 그렇지 않으면 내 수업을 견디는 건 꽤 버거운 일이 될 테니까.”
학생은 입을 다물고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을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눈동자를 굴리던 학생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이제 신작 안 쓰시나요?”
“음?”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작가는 글을 쓰니까 작가다. 글을 쓰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 라고.”
작가도 아닌 너한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대충 그런 뉘앙스가 스며있는 말이었다. 한수영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먼 허공을 가늠하는 듯 불투명해진 눈동자. 한수영은 무심히 중얼거렸다.
“그래, 난 이제 작가가 아니야.”
“예?”
“내 글을 읽어 줄 독자는 이제 없거든.”
한수영의 다음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시계의 종이 울렸다. 빙긋 웃은 한수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 다음 강의에 읽어 올 소설은······.”
강의실을 떠나는 학생들을 배웅하며, 한수영은 교탁에 남았다. 펼쳐진 노트북의 바탕화면 위로 문서 파일 하나가 보였다. 얼마 전부터 시험 삼아 쓰기 시작한 소설. 한수영은 파일을 열어 자신이 쓴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뒤쪽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재미있는 수업이네요. 그 사람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흠칫 화면을 끄며 돌아보자, 그곳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긴 손가락이 교탁 위에 흩뿌려진 수업 자료를 섬세하게 살피고 있었다.
“아, 이 강의도 재미있겠다. 부르디외로 시작하는 현대판타지 읽기, 버틀러와 함께하는 로맨스 판타지 해부······.”
“웹 소설 작가 무시하러 왔냐?”
살짝 고개를 기울인 유상아가 생긋 웃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미소였다. 그녀는 한수영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물었다.
“갑자기 안경은 왜 썼어요? 그새 눈 나빠졌어요?”
“관심 꺼.”
“아하, 알겠다. 너무 어려 보여서 학생들이 무시했구나?”
눈살을 찌푸린 한수영이 까만 안경을 홱 벗자, 유상아가 놀리듯 덧붙였다.
“가요. 내가 한 잔 살게.”
*
각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복숭아 스무디를 쪽쪽 빨아 마시며, 두 사람은 거리를 걸었다. 어색하게 떨어진 거리를 유리한 채, 그저 걷는 것에만 집중했다. 지나가듯 한수영이 물었다.
“정부 쪽 일은 어때. 재밌어?”
“재밌자고 하는 일인가요.”
“오늘 누구누구 온대?”
“현성 씨는 미국에 있어서 어려울 거 같고, 희원 씨는 올 거 같아요. 그리고 설화 씨는 아시다시피······.”
“애들은?”
“다 올 거예요. 한 번도 빠뜨린 적 없잖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광화문 거리가 나왔다. 골목길로 들어가 얼마간 걷자, 이내 찾던 식당이 나왔다. 《마르크 앤 셀레나》. 한수영이 문을 벌컥 열었다.
“어서오세······ 와, 이게 누구야!”
능숙한 한국어로 그들을 반긴 이는 셀레나 킴이었다. 주방에서 피자를 돌리던 마르크가 휘파람을 불었다. 셀레나 킴이 그들을 안내하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요리 금방 나올 거니까.”
“먼저 온 사람들은?”
셀레나 킴은 직접 확인해 보라는 듯 바테이블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익숙한 뒤통수 세 개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한수영은 어쩐지 간질간질한 느낌을 참으며, 슬그머니 그들의 뒤로 접근했다. 그렇게 바로 뒤까지 다가갔을 때, 잽싸게 손바닥을 휘둘러 뒤통수 세 개를 연속으로 두드렸다.
“와아악! 어떤 새끼야!”
“많이 컸네, 우리 꼬맹이들.”
“수영 언니! 상아 언니!”
무려 1년 만의 해후였기에, 그들은 짧은 소회를 나누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정말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뭐 시킨 거야? 요리 이름이 뭔데?”
“파멸 산장의 악마 곱창 볶음.”
요리를 내온 마르크가 씩 웃었다. 한수영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오징어 순대처럼 생긴 요리를 포크로 푹 찍었다.
“뭐야, 맛있잖아.”
과연 이름만큼이나 대단한 요리였다. 다른 일행들도 긴장을 풀고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가하게 요리를 먹어본 게 얼마만의 일이었더라. 세계선을 건너온 게 벌써 2년 전의 일이었음에도, 한수영은 그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워우워우워어어······!
바테이블의 상단에 설치된 패널에서는 콘서트장의 모습이 실황 중계되고 있었다. 요즘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하나는 원숭이, 하나는 용, 하나는 대천사. 마이크를 붙잡은 제천대성이 바이브레이션이 한껏 들어간 사자후를 퍼붓자, 무대의 뒤쪽에서 우리엘이 화려한 조명과 함께 등장했다.
오물오물 곱창을 씹던 유상아가 말했다.
“엄청 잘 나가네요.”
“나도 어제 팬클럽 가입했어. 우리엘 포스가 진짜······.”
이지혜의 말에 이길영이 태클을 걸었다.
“난 디오니소스 무대 본 이후로 쟤들 무대는 못 보겠던데. 특히 저기 쟤는······.”
“심연의 흑염룡? 왜? 귀엽잖아.”
신유승의 말에 흘기듯 눈을 뜬 이길영이 포크를 씹으며 말했다.
“저딴 게 무슨.”
패널에서는 성좌들의 신곡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안대를 쓴 심연의 흑염룡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속사포 랩을 시작했다.
―이것은 아주 오래된 설화! 시나리오가 노래하는 신화! 시간 속에 바래지는 한 인간의 진화!
“······저게 대체 뭔 소리야?”
흑염룡의 속사포랩이 쏟아지는 동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이 있었다. 이미 어디서 한 잔 걸치고 오는 길인지 묘하게 들뜬 얼굴들. 장하영과 정희원이었다.
“뭐야! 다들 벌써 왔네?”
한달음에 달려온 장하영이 한수영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잘 지냈냐?”
유상아와 가볍게 손바닥을 부딪친 정희원이 패널을 보며 한마디를 했다.
“아, 저 랩 시끄러워 죽겠어.”
“다들 오랜만에 얼굴 보니까 좋네요.”
“오늘은 이 멤버가 다인가?”
“그런 거 같네요.”
정희원은 새로 이사한 집에 대해 떠들었다. 대충 역세권에서 벗어나서 좀 불편하다는 이야기와, 근처에 공원이 있어 운동하기 좋다는 이야기.
그녀는 이제 광화문에 살지 않는다. 3호선의 근처에도 살지 않는다. 한수영이 물었다.
“그래서, 둘이 같이 살아?”
그 말에 일행들의 관심이 갑자기 집중되었다. 정희원이 쓰게 웃으며 음료수 잔을 흔들었다.
“아니, 따로.”
“왜?”
“같이 있으면 생각나잖아.”
“······뭐가 생각나는데요?”
눈을 반짝인 이지혜가 정희원을 다그쳤다. 그러나 정희원의 표정에는 별다른 웃음기가 없었다. 정희원은 말없이 음료수를 휘저었다. 이지혜가 벌어졌던 입을 닫았다.
패널에서는 다음 곡의 전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이름 없는 구원(Feat.대머리 의병장) – JUS
패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한수영은 조금 늦게 덧붙였다.
“그래, 그렇겠네.”
그리고 일행들의 대화가 끊어졌다. 침묵은 늪처럼 그들의 발목을 감았다.
이것이, 그들이 자주 만나지 않은 이유였다.
―이것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 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이야기.
그 시간이 이야기가 되기에, 2년은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한수영은 알고 싶었다.
“비유는 요즘도 소식 없지?”
“안나 씨한테 물어봤는데 따로 통신 들어온 것도 없대.”
일행들이 돌아오기 직전, 비유는 [암흑 단층]으로 수련행을 떠났다. 때문에 지난 2년간 그들은 비유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공필두는?”
“충무로에서 또 혼자 술 마시고 있겠지. 그때 가족들이랑 헤어지고 나서 충격이 큰가 보더라.”
“그 인간은 그냥 1865회차 남으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기어코 같이 돌아와서는······.”
“명오 아저씬 어때? 그 아저씬 공단 사니까 한수영 네가 잘 알 거 아냐.”
“그 양반이야 늘 잘 있지.”
“시커먼 놈은 요즘 뭐 한대요? 전에 프로게이머 좀 하다가 그만뒀단 이야긴 들었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장하영이 마티니 잔을 척 들어 올렸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마시자!”
“너 벌써 많이 마신 거 같은데.”
“말리지 마! 오늘 끝까지 달릴 거니까!”
“나도요. 나도 한 잔 주세요.”
“유승이 넌 아직 미성년자잖아.”
“회귀 전 나이부터 따지면 성인이거든요?”
입술을 비죽 내민 신유승이 조르는 사이, 자신의 잔에 소주를 콸콸 따른 이지혜가 안주도 없이 원샷을 했다.
“수영 언니 내 레포트 좀 대신 써줘요.”
“나한테 그딴 부탁하면 죽는다.”
2년의 시간. 날수로 쪼개면 약 730일.
지금의 대화는 그 730일을 필사적으로 살았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고, 이사를 가고. 그날로부터 한 걸음씩 멀어지기 위해 일행들은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그날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오히려 그날을 향해 다가간 사람도 있었다.
「김독자는 ‘멸살법’이라는 이야기로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우리를 살게 만든 건 무슨 이야기였을까.」
메모장에 뭔가를 쓰는 한수영을 보며, 정희원이 한마디를 했다.
“뭘 그렇게 메모해?”
“그냥 습관이야.”
“요즘도 글 써?”
메모를 쓰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대신 대답한 건 유상아였다.
“아까 보니까 쓰는 거 같던데요.”
“진짜요? 무슨 글? 소설이에요?”
한가득 새로 퍼온 안주를 으적으적 씹어먹던 이지혜가 물었다.
“······그냥 손풀기로 쓰는 거야.”
“진짜? 신작 내려고?”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할 찰나, 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여기 있으려나?”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자리를 비웠던 이길영이, 어느새 한수영의 노트북을 들고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몰래 한수영의 노트북으로 컴퓨터 게임을 한 적이 있었던 이길영은 자연스레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을 했다. 신유승이 헛짓거리하지 말라며 눈을 부라렸다.
“이길영.”
“아 왜.”
몰래 몇 잔을 홀짝였는지, 이길영의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초조해진 신유승이 한수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왜일까. 보통이었으면 역정을 내며 이길영의 뒤통수를 갈겼을 한수영이, 말없이 눈앞의 마티니를 홀짝이고 있었다. 마치, 봐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그것을 일종의 허락이라고 여겼는지, 이길영이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티니 잔을 내려놓은 한수영이 물었다.
“꼬맹아.”
“······.”
“읽을 자신 있겠어?”
이길영의 안색이 점차 희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것처럼 이야기를 읽어대는 이길영. 괴로운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이길영은 계속해서 화면을 읽었다. 그리고 몇 분 뒤. 당장이라도 울음을 쏟을 것 같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거, 몇 편까지 있어요?”
“아직 많지는 않아. 2권 분량 좀 안 되는 분량이야.”
“조금 더······ 읽어도 돼요?”
“그래.”
이길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자, 일행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뭔 내용이길래 그래?”
“수영 씨 신작이라니 나도 궁금한데······.”
“전 패스. 나중에 책으로 나오면 볼래요.”
그렇게 말하며 자작을 시작한 이지혜를 제외하고, 모든 일행이 이길영의 뒤로 모여들었다.
한수영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나둘, 일행들의 시선이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단순히 이야기가 흥미로워서는 아닐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는······.
“한수영, 너······.”
흔들리는 정희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수영은 자신이 기록한 문장을 떠올렸다.
「“회귀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걸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맞다. 회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날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왜,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회귀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김독자는 ‘멸살법’이라는 이야기로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우리를 살게 만든 건 무슨 이야기였을까.」
사실 한수영은 그 질문의 대답을 알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야기야.”
그들에게는 이야기가 남았다.
그들이 사랑한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