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화

541화 그들은 곧장 광화문의 본부로 김독자를 옮겼다. 아일렌을 호출했고, ‘구암신의’ 같은 의료계 성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계획은 완벽했다. 실패할 리 없는 계획이었다.」 세계의 각지에 흩어진 모든 설화 전문가들을 불러들였다. 「실패해서는 안 되는 계획이었다.」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수십 명의 명의들이 들러붙어 김독자를 치료했다. 어떻게든 남은 설화를 수습하여 영혼체를 복구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으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밤샘 작업으로 혼절한 이설화를 대신해, 러시아의 설화 전문가가 말했다.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겁니다. 이 아이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테니까요. 그럴 리가 없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 이야기의 끝이 그런 식일 리 없었다. 무너지는 일행들을 지탱한 것은 유상아였다. “문제는 독자 씨의 영혼인거죠?” 그렇다면 영혼을 복구하면 된다. 일행들은 그들 중 가장 영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성좌에게 도움을 구했다. [이 아이의 영혼은 ‘명계’로 온 게 아니에요. 어떤 세계관의 저승에도 이 아이의 영혼은 오지 않았어요.] 명계의 여왕 페르세포네는, 슬픈 얼굴로 김독자의 이마를 쓸었다. [······이것이 이 아이의 선택이군요.] “선택? 웃기지 마요. 당신도 봤잖아요. 그 지하철에서, 독자 씨가 가지고 있던 설화들을 봤잖아요! 우리랑 있고 싶다고, 우리에게 구해달라고―” [한 사람의 영혼에는 수많은 설화들이 있어요. 우리가 본 말들은 그중 일부일 뿐이죠.] “그렇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세요.” 정희원은 그렇게 외쳤다. 그렇게 외치지 않고는 견딜 방법이 없었다. 선택이라고? 이게, 김독자의 선택이라고? 「일행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설화를 수선하는 것도, 영혼을 되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환생자들의 섬’의 주인, 석존이 자애로운 미소로 그들을 맞이했다. 마치, 그들이 올 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애석하게도 그는 이 몸이 환생시킬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영혼 일부가 아직 남아 있어요. 우리가 가진 설화들을 나눠주면 돼요. 그때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윤회의 힘을 이용하면¬” [나의 아라한이여. 당신의 슬픔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는 환생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다는 듯 유상아를 보던 석존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고요히 잠든 김독자를 보는 석존의 눈동자 위로 무수한 실선이 떠올랐다. 개수를 온전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숫자의 붉은 실. 유상아도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인연(因緣)의 실. 밤하늘을 뻗어 나가, 마침내 <스타 스트림> 조차 관통한 그 실선을 바라보며, 유상아는 김독자가 왜 환생할 수 없는지를 깨달았다. “······그렇군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사실이었다. “이 사람의 영혼은······ 이미 다른 세계선에서 환생한 거군요.” 석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영혼들’이라고 해야겠지요.] * 모두 앞에서, 한수영은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김독자의 영혼은 우주 전체로 흩어졌어.” 암전된 방에서 [제4의 벽]과 마주했던 순간의 기억. 그 모든 대화를 낱말 하나 빠짐없이 온전히 일행들에게 전달했다. 누군가는 주저앉았고, 누군가는 절규했다. 이지혜가 외쳤다. “다시 녀석을 찾아 가봐요. [제4의 벽]에게 가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독자 아저씨 영혼을 회수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짓을 하면 다른 세계에서 환생한 김독자는? 걔도 거기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을 텐데.” “그건······.” 씩씩거리던 이지혜가 탁자 위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거예요. [제4의 벽]은 뭐든 알고 있다면서요.” “······놈을 다시 만날 방법이 없어. 벽을 열 때 파편을 모두 써버렸잖아.” 순식간에 나흘이 더 지났다. 일행들은 몹시 피폐해졌다. 끼니를 거르거나 잠을 자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흘렀을까. 정희원이 유중혁을 찾아갔다. “중혁 씨.” 버릇처럼 [흑천마도]를 닦던 유중혁이 고개를 들었다. 볕이 눈부신 듯 잠깐 눈살을 찌푸리던 유중혁은 다시 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닦아도 검에 묻은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김독자의 활자를 베었던 그 얼룩이었다. 가만히 그 얼룩을 내려다보던 유중혁이 입을 열었다. “나흘이면 꽤 결심이 빠르군.”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유중혁은 무표정한 눈으로 그런 정희원을 마주 보았다. 그토록 많은 비극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불타오르는 눈동자. 언젠가의 그 역시,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할 수 있어요. 벌써 두 번이나 해냈고요. 그러니까―!” 유중혁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잘 만들어진 환상 같은 계획이었다. 이번만큼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설령 이 세계의 끝이 비극이라고 해도······ 너희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그때의 그 녀석도 그랬을까. 유중혁이 말했다. “그래, 우리는 해냈지.” “제발, 한 번만 더 해봐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제대로 할 수 있어요! 독자 씨를, 반드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서 이번 회차보다 더 나아질 거란 생각은 하지 마라.” 무심코 그 말을 내뱉고서 유중혁은 잠시 숨을 멈췄다. “······왜 그런 말을 하죠? 이번 회차는 분명히 나아졌어요. 더 잘할 수 있다고요!” “불가능하다.” “왜, 해보지도 않고서―”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희원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당장이라도 협력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베어버리겠다는 듯 칼자루를 그러쥔 손. 하지만 정희원의 위협에도 유중혁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던 정희원의 표정에 뭔가가 떠올랐다. “당신, 혹시······.”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정희원이 다그쳤다. “정말이에요? 진짜로······.” 유중혁은 눈앞에 떠오른 자신의 특성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제 나는 회귀자가 아니다.” 그의 특성에는 이제 [회귀자]라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성흔도 사라졌다. [회귀]도, [집단 회귀]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어떤 성흔도 없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맞으며, 유중혁은 <스타 스트림>의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항상 느껴지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기감을 키워보아도,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단 하나의 독자가 사라지며, 그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회귀도. * “세계선을 넘으면 돼요.” 그리고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꼭 회귀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세계선을 넘어서, 다른 시나리오 지역으로 가요. 거기서 다시 ‘최후의 벽’을 모아서 [제4의 벽]을 만나는 거예요.” 미친 계획이었다. 더욱 환장할 것은, 그 미친 계획을 제안한 것이 저 침착한 유상아라는 것이었다. 한수영이 말했다. “그 녀석이 도와주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해봐야죠. 안 해보는 것보단 낫잖아요.” 이미 한 번 해본 일, 두 번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한수영은 이게 올바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또 세계선을 넘으려 하지는 않을까. 그렇게 세계선을 넘고, 또 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들은 999회차의 ‘이계의 신격’들과 다를 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지도 모른다. 비참한 것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유혹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세계선은 어떻게 넘을 건데? 이제 회귀도 할 수 없잖아. 여긴 우릴 도와줄 ‘은밀한 모략가’도 없어.” “잊었어요? 이 세계선은 1864회차와는 달라요.” 그 순간, 한수영의 뇌리에 뭔가가 스쳐갔다. 「방법이 하나 더 있었다.」 쿠구구구, 하는 소리와 함께 광화문에 거대한 그림자가 내려앉은 것은 그때였다. 거리 일대를 모조리 덮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비행체. [후후, 다들 오랜만이야.] 그 비행체 위에 비형이 타고 있었다. 관리국이 폭삭 망하고 이 세계의 도깨비 왕이 된 비형. 그는 이 망해버린 세계가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 이게 필요하다 이거지?] 그곳에 ‘마지막 시나리오’의 전유물이 있었다. 「최후의 방주」. 한수영은 천천히 방주를 향해 다가갔다. 확실히 저걸 쓰면, 세계선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시나리오의 도깨비와 성좌들도 저걸 타고 다른 세계선으로 달아나려 했었으니까. 유상아가 말했다. “하지만 저걸 쓰면······ 우리도 결국 도깨비들과 똑같아지는 거겠죠.” “그런 얘긴 집단 회귀 시작했을 때 했었어야지.” 한수영은 방주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비형이 경고하듯 말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이 방주는 보기보다 많이 낡아서 한 번 밖에 못 써.] “상관없어.” 다른 세계선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유중혁의 ‘회귀’와 흡사한 용도로 이 방주를 쓸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세계선 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유중혁의 ‘회귀’ 때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식으로 세계선을 이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수영은 재빨리 외쳤다. “비형. 우리가 가고 싶은 세계선은······!” 그런데 한수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메시지가 돌아왔다. [해당 세계선으로는 항해가 불가능합니다.] 비형의 표정이 기이해졌다. [음? 이게 왜 이러지? 이런 적은 없었을 텐데?] “뭐야. 고장 났어?” [다른 세계선 불러봐.] 한수영은 다시 한번 말했다. 그러자 다시 메시지가 떠올랐다. [해당 세계선으로는 항해가 불가능합니다.] 한수영은 몇 번이나 다른 세계선들을 말했다. 말하고, 또 말하고. 그러나 떠오르는 메시지는 언제나 같았다. [해당 세계선으로는 항해가 불가능합니다.] [해당 세계선으로는 항해가 불가능합니다.] . . [해당 세계선으로는 항해가 불가능합니다.] 당황한 비형이 중얼거렸다. [그 세계선들은 모두 통로가 닫혔어. 세계선 사이에 열려 있던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버렸다는 얘기야.] “못 간다고?” [그런 것 같네. 허, 이런 경우도 있나?] 그녀가 기억하는 ‘멸살법’과 관련된 모든 세계선이 막혀 있었다. “······그럼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거야?” [한 군데 있어.] “뭐? 어딘데?” [근데 여긴 모든 시나리오가 종료된 세계선이야.] 비형은 입력된 항로를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항해의 목적지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장소였다. 유중혁의 제 1864회차. 모든 시나리오가 종료된 이후의 8612 행성계. 그들이 떠나온 지구였다.
🏠 인덱스 ← 이전 화 다음 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