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화

536화 Epilogue 4. 전지적 독자 시점 처음으로 그 소설을 읽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갑갑한 병동. 로비에 비치되어 있던 단 하나의 PC. 컴퓨터를 하기 위해 줄을 섰을 때, 중절모를 쓴 신사가 나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모니터에는 마침 내가 좋아하는 소설 플랫폼이 띄워져 있었다. 멍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다가 키워드를 입력했다. 세 개 정도를 입력했던 것 같은데, 뭐라고 입력했었는지는 잊어버렸다. 다만 그때 떠올렸던 장면들은 기억한다. 교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샤프심과, 창문 밖으로 펼쳐져 있던 쪽빛 하늘. 확실한 것은 창문을 열었던 그 손으로 내가 무언가를 입력했고, 그 소설을 찾았다는 것뿐이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나는 그 이야기로 살아남았다. 「이 이야기가 태어난 것은 결코 네 잘못이 아니라고.」 속이 메슥거렸다. 어지럼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앞의 텍스트가 잘 보이지 않았다. 「한수영이 tls123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한참이나 자리에 누워 있었다. 머릿속에는 똑같은 질문만이 맴돌았다. 어째서. 왜? 「나 같은 것을 위해서」 한참이나 쓰러져 있었다. 울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울부짖고 소리쳐도 이미 쓰인 문장은 바뀌지 않았다. 한수영은 나를 위해 13년의 세월을 살았고, 자신을 깎아 만든 문장으로 나를 살렸다. 그리고 소멸했다. 「김 독 자」 [제4의 벽]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읽 어 야 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에 비친 꼴이 말이 아니었다. 더 이상 성인 남성의 육체라고 말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키는 작아졌고 얼굴은 어려졌다. 입던 코트는,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 내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코트를 벗었다. “······올해로 몇 년째지?” 「지 구의 시 간 은 아 무런 의미 도 없 어.」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다. 이 지하철은 ‘가장 오래된 꿈’이 꿈을 꾸는 장소. 다른 세계선의 시간으로는 이 지하철에서 흐르는 시간을 잴 수 없다. 실제로 이 지하철에 온 뒤 나는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래도 체감 시간이라는 게 있을 거 아냐.” 「대 충 21763년.」 “생각보다 오래 안 됐네. 아직 ‘은밀한 모략가’보다도 어린 거잖아.” 「아 직 애 송 이 지」 키득거리는 [제4의 벽]의 웃음이 들렸다. 그나마 저 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진즉에 이곳에서 미쳐버렸을 것이다. 파스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새끼손가락 끝이 줄어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몸이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계속 작아지는 건가?” 나는 창밖으로 흘러나가는 설화의 부스러기들을 지켜보며 물었다. “저 설화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거지?” 「우 주의 무의 식」 “거기가 어딘데?” 「네 가 의 식 하지 않 는 세계 선」 ‘가장 오래된 꿈’의 임무는 모든 세계선을 상상하는 것. 내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도, 내 무의식은 끊임없이 세계선을 지켜보고 있다. 「저 설화 들 은 또 다른 김 독자 로 태 어 날 거 야」 “김독자로?” 「비 유 하자 면 그렇 다는 거 야」 문득, [제4의 벽]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은하를 넘어 다른 세계선을 향해 흘러가는 설화들. 저 설화들은 곧 ‘나’였다. 1864회차의 어딘가에 동료들과 남아 있을 49%의 나처럼, 저 파편들 또한 어딘가의 세계선에서 ‘김독자’로 태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우주는 그런 식으로 순환하고 있으니까. “저 정도 양이면 ‘김독자’라고 부르긴 어렵겠는데. 저렇게 작은 파편으로는 날 닮지 않을 테니까.” 「그 렇 겠지」 나와는 이름도 얼굴도 다를 존재. 그럼에도 그 존재들은, 어딘가에서 태어나 우주를 상상할 것이다. 이야기를 읽으며 감동하고, 세계선을 지켜볼 것이다. 그렇게, 이 우주를 유지할 것이다. “······그래.” 어쩐지 이 우주의 원리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창문을 향해 부서지는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보았다. 그러자, 조금씩 그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런 짓을 하 면」 “이게 이 이야기에 대한 내 속죄야.” 손가락뿐만 아니라 어깨와 다리에서도 조금씩 설화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흩어진 설화들은 우주를 날아, 세계선의 어딘가에서 우주를 지탱할 문장이 될 것이다. 「너는 이 이야기를 읽고 자랐지만, 이 이야기가 될 필요는 없다고.」 ‘멸살법’의 작가, 한수영은 그렇게 말했다. 분명하게 전달받은 말.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따를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보고서, 어떻게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눈을 감으면 우주의 전체상이 그려졌다. 한수영이 이야기를 썼고. 유중혁이 이 이야기를 살았으며. 내가 이 이야기를 읽었다. 그리하여 간신히 완성된 세계였다. 「“독자 씨.”」 이 비극이 있었기에 어떤 사람들은 만날 수 있었다. 누군가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 「김독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내 미래를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읽을 때마다 나는 부서질 것이다. 부서진 나의 설화들은 무수한 세계선으로 흩어져 이 우주를 지탱할 ‘시선’이 될 것이다. 나는 기억을 잃고, 사랑하는 것들을 잃겠지. 그리고 종국에는 ‘다음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욕망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 욕망이 없다면, 이 우주는 계속될 수 없다. 누군가가 지켜보아야만 이야기를 계속하는 우주. 이 우주에서 멈춰있는 것은 곧 죽음이다. 츠츠츠츠츠······. 입자로 나누어진 수많은 ‘나’가, 무수한 세계선으로 퍼져 나갔다. 설화가 흩어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모든 걸 잊고 나면······ 고통스럽지도 않겠지?” 「너 는 기 억 하지 못 할 테니 까」 상실의 흔적조차 사라진 자에게, 상실은 없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우며 말했다. “······한 번 정도는 더 읽을 시간이 있을까?” ‘멸살법’의 파일을 열고, 힘겹게 읽어낸 [작가의 말]을 아래로 내렸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나는 처음부터 소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유중혁의 3회차를 읽었다. 어떤 이야기는 알고 있는 것이었고, 어떤 이야기는 이제 새롭게 느껴졌다. 최종본은 내가 본래 알고 있던 원작 그대로였다. 그곳에 ‘김독자’는 없었다. 파스스스스······. 내 설화가 흩어지는 만큼, 다시 ‘멸살법’의 문장들이 내 안에 차오르고 있었다. 피곤할 때는 잠시 눈을 감고 쉬었고, 쉬고 나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5회차, 6회차······ 64회차······ 129회차······. 672회차. 914회차. 1642회차······. 페이지가 내려갔고, 나는 몇 번인가 기뻐하거나 슬퍼했다. 댓글을 달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다시 한번 한수영에게 이 감정을 전해주고 싶었다. 네가 전해준 이야기가 있어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너의 이야기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렇게 읽고, 읽고, 또 읽고. 얼마나 그 이야기를 읽었을까. 츠츠츠츠츠······. 「······」 마침내 에필로그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너무 소설을 많이 읽어서 눈이 멀어버린 것일까 싶었다.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천천히 시야가 되돌아왔다. 눈앞에 보인 것은 제대로 된 문장들이 아니었다. 문장과 문단들은 제각기 파편화되어 있었다. 온전한 소설의 형태가 아닌 글. 그럼에도 왜인지 나는 그 글을 읽을 수 있었다.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이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는 유일한 독자였다.」 그 이야기 속에는 내가 있었고. 「“나는 유중혁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한수영이라고 합니다. 그룹에서는 차상경 님의 보좌를 맡고 있고요.”」 그들이 있었다. 「“만약, ‘시나리오’가 시작되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요?”」 「“독자 씨 배후성이 혹시 ‘외눈 점쟁이’ 같은 건 아니죠?”」 「“독자 씨, 수류탄 던져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저씨는 좋아하는 음식 있어요?”」 그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돌파했다. 「형은 혹시 신인가요?」 「“장전.”」 「“다들 마음 놓고 싸워요. 내가 아무도 안 죽일 거니까.”」 「“망할 놈들! 또 나만 빼놓고······!”」 「“내가 좋아하는 건 네가 아니라 구원의 마왕―”」 「[바앗!]」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았다. 「“다음 시나리오는······.”」 시련을 겪었고, 몇 번이나 죽음의 위기에 봉착했다. 성좌들을 만났다. 몇 번이나 불가능한 시나리오를 돌파했고. 마침내, 지옥 같던 시나리오의 끝에 도달했다. 「[당신의 ■■는 ‘영원’입니다.]」 일행들은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무너진 PC방을 재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찢어진 게임 포스터를 다시 붙이는 사람들. 종말을 극복한 세계에서, 사람들은 다시 유희를 찾는다. 유중혁은 그 광경을 보며, 오랫동안 마우스를 쥐지 않았던 자신의 오른손을 조용히 움켜쥐었다.」 「신유승과 이길영은 임시 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아닌 말 그대로 ‘임시 학교’. 신유승은 세상에 그런 장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부서진 ‘태풍여고’의 정경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이지혜가 운동장을 걸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뛰어다니던 바로 그 운동장. 이지혜는 닳아버린 운동장의 라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출발 자세를 취해 보았다.」 이어지는 일행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눈을 닦았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엔딩. 일행들은 그곳에서 분명히 살아가고 있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곳에는 나도 있었다. 49%의 나. 일행들에 대한 기억을 가진, ‘멸살법’을 알지 못하는 김독자·····. 「그리고 김독자는, 그 문장을 읽었다.」 그런데. 「“너, 대체 누구냐?”」 이게, 대체 뭘까. 「“말해. 너 누구냐고.”」 이렇게 될 리가 없었다. 「“틀림없어. 김독자는 아직도 거기에 있다고.”」 어째서. 「“다시 한번 더 뛰면, 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왜? 츠츠츠츠츠츠······.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끝나야 할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들이 ‘끝내지 않기로’ 선택했다. 「[성흔, ‘집단 회귀 Lv.1’이 발동합니다!]」 나는 반쯤 절규하듯 그 문장을 읽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절대로, 쓰여서는 안 되는 문장이었다. 문장은 무심히 다음 문장으로 이어졌다. 「“명심해라, 기회는 한 번뿐이다.”」 일행들이 다시 한번 싸우고 있었다. 그 시나리오의 지옥은, 어떤 이유로든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일행들은 그곳으로 되돌아갔다. 「“꼬맹이, 이번엔 동전 안 던져?” “던지든 말든 똑같으니까요.” “왜?” “100번을 던져서 한 번이 나와도, 단 1%의 형만이 그곳에 남아 있어도. 그래도 구하러 가야죠. 그 1%도 형이니까.”」 그리고 시작된 시나리오. 허공에서 터져 나가는 코인의 향연 속에, <스타 스트림>의 도깨비들이 경악하고 있었다. 성좌들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 일행들이 외치고 있었다. 「“야 아바돈! 날 선택해! 난 앞으로 저 시커먼 놈보다 무조건 백배 더 강해질 거야!”」 「“장군님! 계세요? 나 보고 있죠!”」 「“배후성은 필요 없으니 코인이나 주세요.”」 「“······흑염룡, 좋은 말할 때 메시지 그만 보내라. 이번엔 안 고른다고 했잖아.”」 미친 사람들이었다. 「“후후, 충무로까지 오는데 오래도 걸리는군. 그래서 그 비실이를 구할 수나 있겠나? 참고로 이 일대는 이미 이 몸의 영역······.” “닥치고 깃발 내놔, 공필두.”」 미쳐버린 사람들이, 미친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클리어해대고 있었다. 몇 번이나 위기가 닥쳐왔지만, 일행들은 굴하지 않았다. 「[화신, ‘이지혜’가 성흔 ‘전승 Lv.1’을 발동합니다!」 「“이 시커먼 자식! 이런 걸 쓰니까 지 혼자만 강해졌지!”」 [전승]. 전생의 기억을 강하게 반추하는 것으로 스킬을 재습득하는, 회귀자 전용 스킬. 「“우리엘! 제천대성! 심연의 흑염룡!”」 거기에 성좌들의 조력까지 이어지며, 일행들은 일사천리로 시나리오를 클리어해 나갔다. 정말이지 가공할 속도였다. 「“여긴 아바타로 깨면 돼. 아무도 죽을 필요 없어.”」 하지만 항상 그들이 승승장구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패왕. 미안하지만 여기서 죽어줘야겠다.”」 그들이 함께 회귀한 이들 중에는, 배신자도 있었다. 「“당신이 본래의 힘을 찾는다면 우리 셋이 덤벼도 상대가 안 되겠지만.”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처음부터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회귀행에 동참한 자들. 그들은 하필이면 시나리오 초반, 유중혁이 유미아와 함께 있는 시점을 노렸다. 분명 저 때가 제일 약한 시기라고 판단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뭐? 「“미아야.”」 유중혁의 목소리와 동시에, 유미아의 입에서 긴 장도가 뽑혀 나왔다. 「흑천마도.」 중반부 시나리오에나 가야 얻을 수 있는 최상급 아이템이, 유중혁의 손에 쥐어졌다. 소름이 돋았다. 설마 유미아의 ‘인벤토리’를 저렇게 사용할 수 있을 줄은······ 가공할 살기를 내뿜은 유중혁이 선언했다. 「“잘 가라.”」 그 뒤로도 문장들은 드문드문 이어졌다. 「“이번 회차의 ‘구원의 마왕’은 나다!” “아니, 내가 하기로 했잖아! 그 수식언 내 거야 누나!”」 일행들은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고. 「다수의 성좌들이 ‘김독자 컴퍼니’의 화신들에게 적의를 드러냅니다!」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김독자 없는 ‘김독자 컴퍼니’는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시나리오를 클리어했다. 어떤 장면은 서술되어 있었고, 어떤 장면들은 생략되어 있었다. 뒤로 갈수록 장면 사이의 분절은 더욱 심해졌다. 마치 아이디어 스케치를 그대로 남겨 놓은 것 같았다. 20번 시나리오에 있던 일행들은 15번 시나리오에 있기도 했고, 다시 35번 시나리오에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일행들은 분명히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들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들은 빈 여백 위를 달렸다.」 시나리오의 설원을 달리는 일행들. 그들은 한 문장, 다시 한 문장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울었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의식이 흐릿해질수록, 욕망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읽고 싶다.」 그렇게 끊어진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읽었다. 더듬거리듯, 그 문장과 문장의 사이를 상상했다.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그리고 독자가 예상할 수 없는 그 지점. 문장으로 표기되지 않는 그 행간 속에서, 일행들은 시나리오를 조금씩 완성해갔다. 「누구도 그들의 생을 침범할 수 없는 행간 속에서, 그들은 이 이야기의 신(神)이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인가 정신을 잃었다. 읽는 속도는 점점 더 느려졌고, 내 설화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일행들의 문장은 착실하게 쌓여갔다. 98번 시나리오를, 다시 99번 시나리오를. 그들이 자신의 생으로 쓴 문장들이 정확히 한 문장씩 쌓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마침내 그녀가 쓴 결말에 도달했다.」 마지막 문장이 찾아왔다. 그것이 ‘멸살법’의 끝이었다. 마치 쓰다만 듯한 이야기. 그리하여, 제대로 완결되지 못한 이야기. 그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 너머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소리. 혹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이 꺼지자 새카만 액정 위로 아이가 된 내 얼굴이 비쳤다. 나는 울고 있었다. 「김독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지하철의 진동. 언제부터였을까. 쿵―! 누군가가, 객실의 뒷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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