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4화
534화
한수영은 계속해서 글을 썼다.
새벽마다 주어지는 짤막한 토막 시간. 그 시간을, 한수영은 온전히 김독자를 위해서 사용했다.
“도깨비 왕.”
“예, 신이시여.”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말랬지. 앞으로 ‘멸살법’은 오후 7시에 연재될 거야. 아직 사이트에 예약 연재 기능이 없으니까, 네가 원고 가지고 있다가 그때 업로드해. 새벽에 올리면 애 잠 못 자고 기다릴 거 아냐.”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한수영은 한숨을 푹 쉬며 쓰던 원고를 바라보았다.
「유중혁은 지난 회차에서 있었던 일들을 점검했다.」
1863회차에 달하는 삶을 모조리 쓸 수는 없었다. 1863회의 삶을 담기에 3149회의 분량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어떤 회차는 생략해야 했고, 어떤 회차는 줄여 써야 했다.
삶이 그런 식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시에 어떤 삶은 그렇게밖에 서술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일단 그것만 인정하고 나면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1863회차의 유중혁에게 온전히 건네받은 삶이 있었고, 3회차의 김독자에게서 받은 정보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뛰어난 작가였다.
그녀가 쓰지 못한 여백은, 유중혁이 대신해서 살아갈 것이다.
활자의 맥락 속에서 숨을 쉬고, 새카만 활자들로 덮인 단단한 토지 위에 발을 디딜 유중혁.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유중혁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뿐.
한편의 글을 쓸 때마다, 김독자의 삶도 하루만큼 연장됐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쌓아갈 때마다 그녀의 시간도 흘렀다.
13살의 한수영은 14살이, 다시 15살이 되었다.
「장장 십여 년을 넘는 긴 연재가 시작되고 있었다.」
힘들었다. 체력은 부족했고, 어린 그녀의 몸은 터무니없이 연약했다. 그럼에도 한수영은 버텼다. 모니터 너머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고 있을 김독자를 생각했다.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버티어 나가고 있을 김독자.
―작가님. 오늘은 중혁이가······.
너는 이런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는 것일까.
반신반의하면서도, 한수영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썼다.
「“언젠가 내가 전해준 정보들이 도움이 될 거야.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읽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끝이라고만 생각했던 1863회차에서도 그랬다.
―작가님. 제 생각인데, 이참에 새로운 인물을 만드는 편이······.
매일 김독자가 남긴 댓글을 확인했다. 거의 새벽에만 활동할 수 있었던 까닭에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는 어려웠지만, 필요한 질문에는 답장도 했다.
―주인공을 하나 더 만들까요?
―기왕이면 예쁜 여캐로...
―아하, 미소녀 말씀이시죠.
「유중혁의 뺨을 두 번 갈겨버릴 정도의 외모. 화려한 금발의 미소년이 유중혁을 노려보며 외쳤다. “야, 만두남.”」
―...작가님??
16살, 17살, 18살의 김독자.
그는 이 이야기를 먹고 자라나, ‘가장 오래된 꿈’이 될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한수영은 지금의 시간을 즐겼다. 새하얀 설원 위에 활자들이 노니는 세계. 그 세계 위에 김독자가 있었고, 한수영이 있었다.
―작가님. 요즘 중혁이가 너무 불쌍한데요······.
가끔은 유중혁을 험하게 굴리기도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사생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렇게 글을 쓰다가 보면, 혼란에 빠질 때도 있었다.
정말 이 일은 이미 벌어진 일일까.
어쩌면 내가 써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한수영은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책임을 졌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 작품을 온전히 지배할 수 없다는 것도 인정했다.
「유중혁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천공을 노려보았다.」
언젠가 그녀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유중혁은 저 김독자를 실제로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한수영은 가끔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공전의 히트작! 『SSSSS급 무한 회귀자』!
그 무렵부터 ‘낮의 자아’도 작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자신의 재능을 고스란히 훔쳐다 썼기 때문에, 실패할 리 없는 작품이었다. 심지어 ‘낮의 자아’는 익명 계정으로 ‘멸살법’에 악플도 달았다.
―이걸 쓰고 계신 작가님의 인생이 걱정됩니다.
······더욱 황당했던 것은 김독자의 쪽지였다.
―작가님! SSSSS급 무한 회귀자란 소설 아시나요? 이 소설 설정이 멸살법이랑······.
한수영은 피식 웃으며 쪽지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쪽지까지 썼던 녀석이 1863회차에선 날 표절 작가로 몰았다 이거지.
―그래도 덕분에 조회수 올라서 좋네요.
그렇게 쪽지 답장까지 모두 끝내자, 창밖으로 희미하게 여명이 비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잠에서 깨어나도 정신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녀에게 할당된 시간을 다 쓰기 일쑤였고, 자율 활동 시간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피로감을 못 이겨 잠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는 기억력도 점차 감퇴하고 있었다.
유중혁에게 들었던, 김독자에게 받았던 정보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1863회차에서 있었던 일들이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설화가 소모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자율 활동 시간 역시,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한수영은 거의 매일 글을 썼다.
가끔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하루를 통째로 날리기도 했다.
짙은 피로감에 김독자의 댓글을 읽지 못하는 날들도 많아졌다.
―작가님. 저 모레 군대갑니다. 최전방 걸릴 거 같아요.
―김독자입니다. 양구입니다.
―중혁아······ 넌 제설해봤냐?
20살, 21살, 22살······.
371회차, 621회차, 972회차······.
유중혁의 회차가 쌓여갈 때마다 김독자도 나이를 먹었다. 유중혁의 비극을 먹고 자란 김독자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대학생이 되었고, 군인이 되었다.
한수영은 그런 김독자의 성장을 지켜보았다.
성인이 된 후 ‘낮의 자아’가 새벽 시간대에도 깨어 있기 시작하면서, 여유 시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글을 퇴고할 시간이 자연히 사라지자, 도깨비 왕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걱정 마십시오. 오타는 제가 수정하겠습니다.”
“맞춤법은 아냐?”
“압니다. 그걸로 먹고 살 생각입니다. 출판사에서 교정 알바를 구한다고 해서 자신 있게 지원했습니다.”
영 못 미더웠지만 당장 다른 도움을 구할 방법도 없었다. ‘낮의 자아’에게 도움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최근 기력도 많이 쇠하고 건망증도 심해져서, 김독자에게 답 댓글을 쓰는 것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런 식으로 마법처럼 몇 년이 흘러갔다.」
그 문장을 쓰며, 한수영은 어쩌면 자신의 삶도 유중혁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때로 삶은 정말로 그렇게 생략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흘러갔다고 해서, 그 삶이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눈앞에 쌓인 3천 편에 달하는 소설을 보며, 한수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완결을 앞둔 어느 날, 한수영은 모처럼 댓글을 달기 위해 플랫폼의 창을 열었다.
―힘내세요, 독자님.
······내가 이런 댓글을 달았었나?
처음엔 비몽사몽 간에 쓰고 잊어버린 거라 여겼다. 그런데 기억에 없는 댓글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질문에 답변을 드리자면······.
대체 언제 이런 댓글을 썼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댓글을 쓴 시간도 이상했다.
―그러니까, 그건 설정 오류라기보다는······.
한수영은 곧바로 도깨비 왕을 불렀다. 그러자 허공에서 츠츠츳, 하는 소리와 함께 중절모를 쓴 도깨비 왕이 나타났다. 한수영이 물었다.
“이거 네가 쓴 거냐?”
“예.”
“누구 맘대로?”
“미리 허락을 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
한수영은 도깨비 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의 ‘신’을 찾아 이 세계에 온 존재. 그는 이제 자신의 창조주가 누구인지 알았다.
“넌 대체 목적이 뭐야?”
“저는 ‘이야기꾼’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꾼’들이 그러하듯, 위대한 대서사시를 이야기하길 좋아하지요. 당신이 만든 세계 말입니다.”
“이 이야기의 독자는 하나뿐이야.”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한수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쏘아붙였다.
“네 꿍꿍이는 이미 알고 있어. 내가 쓴 소설을 유료화시킬 셈이잖아.”
이곳에 온 이후 줄곧, 한수영은 ‘그날’에 관해 생각했다.
그녀가 쓴 소설은 언젠가 우주를 멸망시킬 시나리오가 된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했다.
지금 이 세계선에서 그런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존재는 하나뿐이었으니까.
“넌 처음부터 그 목적으로 나를 이곳에 데려온 거야.”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제 역할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도깨비 왕의 몸 위로 희미한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있었다. 시스템의 개연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야기꾼의 왕이었던 그의 힘이 점차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한수영은 그 스파크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정말로 멸망이 시작된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사실 잘 이해가 가질 않아. 시간 순서도 말이 안 되잖아.”
“······시간 순서?”
“지금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 앞서 유중혁이 삶을 살았고 김독자가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런 내가 다시 김독자가 읽을 소설을 쓴다는 게······.”
“타임 패러독스. 인간들은 그걸 그렇게 부르죠. 하지만 그런 식으로만 작동하는 우주도 있습니다. 미래가 과거보다 먼저 쓰이고, 결과를 위해 원인이 만들어지는 우주. 당신은 이미 그런 우주를 알고 있을 텐데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한수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빙긋 웃은 도깨비 왕이 모니터를 툭 건드렸다.
“당신도, 그렇게 쓰고 있지 않습니까.”
한수영이 던져 놓은 단상들과 활자의 파편들이 그 안에 있었다.
시간의 바깥, 세계의 바깥에서 서로 연결되기를 기다리는 무수한 장면들.
어떤 장면들은 먼저 쓰였음에도 미래가 되었고, 어떤 장면들은 늦게 쓰였음에도 과거가 되었다. 한수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우주가 하나의 소설이란 얘기냐?”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니터의 활자들이 일렁였다. 누군가의 사랑을 원하는 활자들이 모니터 밖으로 하나둘씩 짝을 맞춰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별처럼 반짝이는 문장들.
어떤 문장은 다른 문장을 위해 기꺼이 어둠이 되었고, 어떤 문장은 그 문장을 통해 빛이 되었다. 어떤 문장은 다음 문장을 위해 존재했고, 다음 문장은 다시 최초의 문장이 있었기에 의미를 획득했다.
“이 우주에는 앞과 뒤가 없습니다. ‘최초의 세계선’이 가장 마지막에 완성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 물고 물리는 거대한 연쇄 속에서, 도깨비 왕이 황홀하게 웃었다.
“우주는 방금 전 만들어지기도 했고, 동시에 수억 년 동안 존재해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태초는, 종말이 찾아온 뒤에야 태어나기도 합니다.”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문장들.
<스타 스트림>이 자신의 신을 향해 노래하고 있었다.
한수영이 멸살법을 썼기에 김독자가 그것을 읽었다.
김독자가 멸살법을 읽었기에 유중혁이 회귀를 시작했다.
유중혁이 회귀를 시작했기에, 한수영이 멸살법을 쓸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썼으나 그녀의 손을 떠나 완성된 말들이었다.
「누군가를 구하고, 파멸시키고, 살게 할 이야기.」
그 말들이 그리는 지독한 궤적을 응시하며, 한수영은 자신이 끝나지 않을 거대한 순환 속에 내던져졌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녀는 세계를 만든 작가였지만, 무력한 신이었다. 단 한 사람의 독자조차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신. 그저 이 아득한 이야기의 부속일 뿐인 신.
[<스타 스트림>이 당신을 향해 미소합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완벽한 이야기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