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화
522화
김독자가 쓰러진 것도 벌써 일주일 째.
일행들은 의식이 없는 김독자를 돌아가며 병간호했다.
이설화와 아일렌이 번갈아 가며 진료를 거듭했고, 저명한 치료 스킬을 가진 화신들도 다수 방문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김독자가 갑자기 저렇게 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육체 구성이 불안해지고 있습니다.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어쩌면 <스타 스트림 시스템>이 약화 되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몇몇 화신들은 조심스레 [아바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저씨.”
여전히 의식이 없는 김독자. 그런 김독자를 바라보며, 신유승은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김독자다. 내가 기억하는, 틀림없는 김독자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중얼거려 보아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었다.
「눈앞의 존재에게선, 전혀 ‘배후성’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포근하게 자신을 안아주던 그 설화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설화, ‘별의 구원자’가 이야기를 더듬거립니다.]
자신과 김독자를 이어주던 설화들도 이야기를 머뭇거리고 있었다. 마치, 눈앞의 존재가 이야기의 소재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처럼. 신유승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현재 배후성과의 연결이 매우 희미한 상태입니다.]
[현재 배후성과의 통신 채널이 단절된 상태입니다.]
그녀와 김독자를 묶고 있는 ‘배후 계약’은 여전히 유효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밤하늘의 별빛.
「그렇다면 저 별빛은, 대체 누구의 것일까.」
신유승은 여전히 아물지 않은 김독자의 어깨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일행들을 지켜주었던 팔이었다. 그 팔로 김독자는 자신의 세계를 그렸다. 그 팔로 시나리오를 끝냈고, 최후의 벽을 부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김독자의 얼굴이 보인다. 서유기 시나리오에서 씌웠던 금테가, 아직도 김독자의 머리 위에 남아 있었다. 제천대성의 설화가 약화되며 이제는 그 힘을 잃어버린 긴고아. 신유승은 긴고아 사이로 헝클어진 김독자의 머리를 넘겨주었다.
「“걱정마, 유승아.”」
김독자는 약속을 지켰다.
「함께 가자고 했던 PC방.」
「한강에서 먹고 싶었던 피자와 콜라.」
마치 환상 같았던 그 풍경 속에, 분명 김독자는 있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생을 다해 건네준, 아주 연약한 풍경.
아득한 세월을 거치고 간신히 도착한 이 결말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엎드린 신유승은 울다 지쳐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누군가 고요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교대 시간······.”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길영은 잠든 신유승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의자 곁에 놓인 얇은 담요를 털어 신유승의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침대의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독자 형.”
이길영은 침대 밖으로 나와 있는 김독자의 손을 침대 안으로 넣어주었다. 상처로 가득한 손. 언젠가 소년에게 메뚜기를 쥐어 주었던 바로 그 손이었다.
「한때, 소년에게 김독자는 신이었다.」
한참이나 김독자를 내려다보던 이길영이 중얼거렸다.
“······형은 형이에요. 그렇죠?”
깊은 한숨을 내쉰 이길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병실 커튼을 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김독자가 살린 사람들. 김독자가 지킨 정경. 이길영은 오래도록 창가에 앉아 사람들의 수를 헤아렸다.
*
“······빌어먹을 자식. 아바타를 만들려면 좀 제대로 만들던가.”
투덜거리는 한수영이 공단을 걷고 있었다.
김독자가 쓰러진 후 일주일. 한수영은 판단을 내렸다.
「일행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는 없다.」
유상아의 말은 맞다. 이곳의 김독자도, 자신이 그리워하는 김독자도 모두 김독자였다. 그러니 이것이 정말로 김독자가 바란 결말이고, 그래서 일행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었다.
“야, 꼬맹이.”
“왜요, 흑염룡 아줌마.”
“니네 오빠 지금 어디 있냐?”
“알려주기 싫은데.”
“요게!”
쪼르르 달아난 유미아가 골목길 사이로 숨어들었다. 조그만 게 어찌나 빠른지 따라 잡았을 때는 이미 홀연히 자취를 감춘 뒤였다. 유미아가 이 곳에 있는 걸 보면, 유중혁도 분명 근처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한수영의 눈앞에 낯선 표지판이 나타났다.
[카이제닉스 구].
공단의 서쪽 일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주거 단지가 그곳에 있었다. 중세 판타지 풍의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 이수경에게 말로만 들었었는데, 생각보다 내실이 잘 갖춰진 도시의 풍경에 한수영은 내심 감탄했다.
놈을 찾으러 가는 김에, 눈요기나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찰나.
“수영아!”
그곳에,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유리?”
.
.
.
“여기서 살고 있다고?”
“좀 됐어. 바쁜 건 알지만 이제야 보러 오다니 좀 섭하다 야.”
“······완전 한국 사람처럼 말하네 이제.”
눈앞에서 차를 홀짝이는 유리를 보며, 한수영도 반가운 심정이었다.
유리 디 아리스텔.
제도 카이제닉스에서, 한수영은 저 인물에게 빙의해 시나리오를 수행했었다.
그러고 보면 카이제닉스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빌어먹을 김독자를 기다리다가 수십 년의 세월을 허비하기도 했고······.
“근데 누구 찾으러 여기까지 온 거야? 혹시 나 만나러?”
“미안, 그건 아니고······.”
“쳇, 그럼?”
한수영이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자, 유리가 이해했다는 듯 박수를 쳤다.
“아, 네 약혼자 말이구나?”
“약혼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한수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거기서 결혼도 할 뻔했었다. 유리가 놀리듯 물었다.
“근데, 어느 쪽이 진짜 네 거야? 개인적으로 내 취향은 작은 쪽······.”
“됐고, 유중혁 지금 어딨는지 알아?”
“음? 그쪽이야?”
“대답이나 해.”
“그 바보라면······.”
······바보?
“마침 저기 지나가네.”
카페의 창가를 홱, 하고 지나가는 커다란 그림자. 한수영은 벌떡 일어나 카페를 뛰쳐나갔다.
“야! 계산!”
“미안, 다음에 내가 살게!”
앞서 달리는 덩치가 보인다. 트레이닝 복을 입은 채, 일정한 빠르기로 공단을 주파하는 유중혁. 주변에서 중얼거리는 공민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뛰네, 저 녀석.”
“스킬 쓰면 되는데, 왜 미련하게 저런 짓을 하지?”
“벌써 석 달 째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내의 뒤를 쫓으며, 한수영은 유중혁의 뒷모습을 관찰했다. 확실히 공민들의 말대로였다. 어떤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근력만으로 움직이는 육신.
가볍게 숨을 몰아 쉰 한수영이 스킬을 발동해 유중혁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뭐하냐?”
땀으로 흠뻑 젖은 유중혁이 흘끗 한수영을 바라보곤 눈길을 돌렸다.
“마라톤 나가게? 하긴, 너도 새로운 세계에서 직업을 가지긴 해야 할 테니까―”
그녀의 도발에도 유중혁은 대답이 없었다.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해서 이 벽창호 입을 열어야 할까 생각하던 찰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중얼거렸다.
“······저기 봐, 바보가 하나 더 생겼어.”
저것들이 진짜.
한수영이 대거리를 하려는 순간, 유중혁이 입을 열었다.
“달리고 싶어서 달린다.”
“왜. 속이 답답하냐?”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희미한 그림자가 그의 얼굴 위를 스쳤다. 한수영은 그 표정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너는 그 소설을 얼마나 읽었다 했었지?”
뜻밖의 질문에, 한수영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설마 유중혁이 그걸 물어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초반만 조금.”
“그 세계에서, 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예를 들면 0회차나, 1회차의 나는······.”
“갑자기 뭔 헛소리야. 그런 걸 왜 물어?”
“요즘 예전 일이 잘 기억 나질 않는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기억이 안 난다고?”
“아예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단편적이다.”
“회귀를 천 번도 넘게 했는데, 나라도 그러겠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한수영은 왜 유중혁의 기억이 불명확한지 알 것도 같았다.
엄밀히 따지면, 유중혁은 ‘멸살법’이라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모든 정보는 작가의 설정값이었고, 작가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멸살법’은 유중혁의 3회차부터 시작하는 소설.
그러니 유중혁이 0회차부터 2회차까지의 기억을 온전하게 반추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네가 어땠는지가 중요해?”
그것이 설정값의 문제이든, 아니면 정말로 까먹은 것이든······ 어차피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시간일 뿐이다. 뻔한 조언이라해도 한수영은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이라고. 하지만 유중혁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겐 중요하다.”
정직한 규칙으로 숨을 몰아쉬는 유중혁. 어떤 스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육체를 혹사시키는 유중혁을 보며, 한수영은 갑자기 뭔가를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중혁은, 이 세계에서 ‘시나리오’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시나리오를 잘 클리어할 수 있었던 패왕은, 역설적이게도 시나리오가 끝나자 그 쓸모가 사라졌다.
시나리오가 끝난 세계에서, 유중혁은 이제 무엇이 되는 것일까.
한수영은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였다.
“그때도 너는 유중혁이었겠지. 회귀자가 될 유중혁.”
언젠가 유중혁의 입으로 말했던 그 말을 돌려주는 것. 그것이 한수영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한수영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보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너도 알겠지만 이 세계선의 김독자는―”
“아바타지. 알고 있다.”
역시 알고 있었군. 한수영은 곧바로 한 마디를 쏘아붙이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유중혁’에게, ‘멸살법’을 기억하는 김독자를 구하러 가자고 말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 답을 알 수가 없어서, 한수영은 그저 혀끝에 맴도는 말을 삼킬 뿐이었다. 그런데 먼저 입을 연 것은 유중혁이었다.
“놈을 구하려면, ‘최후의 벽’ 너머에 있는 지하철로 다시 가야 한다. 문제는 평범하게 세계선을 넘는 방식으로는, 다시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잠시 동요하던 한수영이 곧바로 답했다.
“······다시 ‘최후의 벽’을 열면 그곳으로 갈 수 있어. 문을 열 ‘파편’들을 모아야 해. 이미 파편 하나는 있는 것 같은데.”
「라고 한수영은 말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제4의 벽]의 메시지. 이제 한수영도 그것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마치 이 세계를 설명하듯 불규칙적으로 끼어드는 문장들. 아마도, 이 세계선의 김독자가 가진 [제4의 벽]에 기록되는 문장일 것이다.
“문제는 다른 파편들이야.”
유상아가 가지고 있던 ‘윤회를 결정하는 벽’.
정희원과 이길영이 가지고 있던 ‘선악을 가르는 벽’.
그리고 장하영이 가지고 있던 ‘불가능한 소통의 벽’.
그 벽들은, 최후의 벽을 열 때 함께 소멸해버렸다. 분명 다시 구할 방법이 있긴 할 텐데, 지금의 한수영으로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수영.”
“왜.”
“지금까지 세 바퀴다.”
세 바퀴?
그 말을 들은 순간에야, 한수영은 눈앞에 아까와 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이 지역에 들어섰을 때 보았던 광경. 그들은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뭘 보았지? 나는 탑 위의 새를 보았다.”
유중혁이 말하고 있었다.
“늘 이 시간이 되면 날아오는 새들이지.”
“······.”
“저 카페는 늘 이 시간이 되면 북적거리지.”
“너······.”
“카이제닉스의 첨탑의 시계를 본 적이 있나? 초침과 분침, 시침에는 각각 다른 사람의 얼굴이 양각되어 있지. 네 얼굴도 있다.”
유중혁의 문장을 따라, 한수영은 고개를 돌렸다. 유중혁이 사생한 그대로의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아마도, 유중혁은 몇 번이고 같은 원을 반복해서 돌며 이 광경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저딴 걸 왜 보고 있는데? 드디어 돌아버린 거냐?”
유중혁이 홀로 그리고 있었을 이 거대한 원이 안타까워서, 한수영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유중혁이 말했다.
“한 번 더 뛰면.”
어느새 멈춰선 유중혁이 묻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뛰면, 잘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한수영이 자리에 멈춰 섰다.
[화신 ‘유중혁’의 성흔이 희미한 빛을 뿜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까 전부터, 이게 다 무슨 소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 방법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
김독자를 구할 방법.
사라진 세 개의 ‘파편’을 다시 모을 방법.
오직, 유중혁만이 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그 ‘벽’이 존재하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 그리하여, 그 시나리오의 지옥도를 다시 한 번 걷는 것.」
“너 혼자 또 그 짓을 하겠다고?”
자신도, 김독자도 그런 것은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유중혁이 아무리 대단해도, 혼자서는―
“혼자는 못 한다.”
담담한 유중혁의 선언에, 한수영이 눈을 끔뻑였다.
“그래서 물은 것이다. 너는 뭘 보았냐고.”
꿈틀거리는 유중혁의 근육에서 초월의 격이 떠오르고 있었다. 성좌의 힘을 넘어선 그의 초월형이 진화하고 있었다.
[화신 ‘유중혁’의 성흔이 진화 중입니다.]
한수영은 자신이 지나온 거리를 돌아보았다. 첨탑의 시계들이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열심히 움직이는 초침 위로, 멍청한 자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만약, 저 시간을 다시 한 번 달릴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러면, 더 잘 달릴 수 있을까.
어쩌면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철저하게 준비한다면.
그리고······ 이 세계를 함께 살았던 동료들이 함께할 수만 있다면.
돌아보자, 이미 그 거리를 무수히 달려본 회귀자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한수영.”
[성흔 ‘회귀’가 ‘집단 회귀’의 가능성을 획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