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51화 “저, 저희와 같은 <선지자>라고요?” “그래. 처음에는 그놈이 <선지자>라는 것을 몰랐는데, 이제보니 그랬던 것 같군. 그놈도 너희처럼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런?” “게다가 너희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는 것 같더군. 놈은 망상악귀를 죽인 것으로도 모자라, 시나리오 초반부에 있던 히든 시나리오들을 독식했다. 덕분에 내 계획이 상당히 꼬였어. “그, 그런 놈이 있을 리가······?” 물론 있다. 바로 네 눈앞에. “심지어는 내 이름을 사칭하고 다니는 것 같더군. 지난번에 마주쳤을 때 죽기 직전까지 패줬었는데, 아직도 충무로 인근에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뻔뻔함에 감탄합니다.] “······충무로? 설마?” 정민섭은 화들짝 놀라더니, 이성국처럼 스마트폰을 열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선지자들>에게 정보를 알리고 있는 거겠지. 그 외에도 정민섭은 내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고, 나는 간단히 놈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랬구나! 아······, 그래서 3회차에 이런 변화가······. 진짜 유중혁 님이 맞으셨군요.” 정민섭은 진심으로 감동한 얼굴이었다. “망상악귀 대신 저 여자를 얻으신 것도 이해가 갑니다. 김남운을 대신하기에도 충분해 보입니다. 저를 한 방에 제압할 정도라면······.” 가장 주효했던 것은, 놈들의 오해였다. 잠시 생각하던 정민섭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유중혁 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망상악귀를 죽였다는 그놈이 누구인지 알 것 같습니다.” “······알 것 같다고?” “예.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미리 한 가지를 알려드리자면, 저희 <선지자들>은 모두 같은 편이 아닙니다.” 아까 대화를 듣고 예상은 했다. 미래를 아는 놈이 48명이나 있으면, 개중에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놈들이 있게 마련이니까. “자신을 12사도라 칭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자신들만이 진짜 계시를 읽었고,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놈들이에요.” 12라. 그것은 ‘멸살법’ 50편의 조회수와 정확히 일치하는 숫자였다. “그놈들은 너희들과 뭐가 다르지?” “그들은······ 저희보다 더 많은 ‘계시’를 읽은 자들입니다.” 역시 그렇군. “지금까지 알려진 사도는 11명입니다. 그러니 추측컨대, 어쩌면 유중혁 님이 만났다는 문제의 <선지자>는 알려지지 않은 마지막 사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시, 창의력이 뛰어난 놈들이라 하나를 던져주면 그걸 알아서 설정에 끼워 넣어준다. 편리한 오해다. 아니, 잠깐만······ 오해가 아닌가? 생각해 보면 50편을 읽은 12명 중의 하나는 나일 텐데. “사도란 놈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모양이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그 녀석들은 저희와는 달리, 계시록을 이용해 이 세계를 찬탈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내 얘기도 아닌데 왜 양심이 찔리지? “그들은 유중혁 님을 도와 세계의 멸망을 막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과 영달만을 추구하는 놈들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십악’ 같은 놈들이지요.” “십악이라······.” “그래서 유중혁 님께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부디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놈들을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런가. 이 녀석들의 진짜 목적은 이것이었군. 솔직히 말하면 조금 의외였다. 설마 같은 <선지자들>끼리의 내분 때문에 나를 필요로 할 줄이야.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다. 너희를 받아들이지. 동맹을 체결하겠다.” “저, 정말이십니까?” “단, 조건이 있다.” 조건이라는 말에 이성국과 정민섭의 얼굴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먼저, 창신역을 내놔라.” “예? 창신역이라면······.” “동묘앞 바로 위에 있는 역이다. 이미 너희가 먹었을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충무로역’의 표적 역이······.” 정민섭은 뭔가를 눈치챈 듯했다. 사실 이것이, 이번 동맹의 가장 주요한 부분이었다. [깃발 쟁탈전]에서 내가 차지해야 할 표적 역은 ‘창신역’. 그곳을 점거하지 못한다면, ‘왕의 길’을 끝까지 걸어도 네 번째 시나리오는 완료할 수 없다. 그리고 네 번째 시나리오를 완료하지 못하면, 나와 내 그룹은 모두 자동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런데, 이성국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저, 유중혁 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창신은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지?” “창신역의 주인은 저희 동묘앞 그룹이 아닙니다.” “너희가 아니라고?” 이상한 소리였다. 창신은 정말로 동묘앞의 코앞에 있는 역이었기 때문이다. 이성국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곳은 ‘폭군왕’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폭군왕.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놈이 벌써 왕이 됐다고?” ‘서울 7왕’중 하나인 ‘폭군왕’. 녀석은 현시점에서 유중혁에 비견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놈이 왕으로 개화하는 것은 적어도 며칠 후의 일일 텐데? 게다가 도봉구에서 시작했을 놈이, 벌써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내 시선을 받은 이성국이 눈을 조금 내리깔았다. “사실은······ <선지자들> 몇 명이 조금 실수를 하는 바람에, 녀석의 세력이 급격하게 커졌습니다. 그 와중에 일부 선지자들이 역으로 당해 죽어버렸고······ 그때까지만 해도 <선지자들>의 총원은 53명이었습니다.” 갑자기 이놈들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한다. 생각해 보니 소설의 초반부도 제대로 모르는 놈들인데, 왜 이놈들이 잘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지? “그,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마침 저희도 ‘폭군왕’을 제거하기 위해 강력한 병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폭군왕’ 뿐만 아니라, 12사도들을 상대하기 위한 병기를요.” 정민섭도 맞장구를 쳤다. “아마 지금의 유중혁님은 잘 모르실 겁니다. 이건 저희도 정말 어렵게 알아낸 계시라······.” 아니, 이제 확실히 알겠다. 이놈들은 그냥 두면 안 된다. 이 자식들이 이야기를 다 망치기 전에, 여기서 끝내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마침 잘 됐군요. 조만간 그 병기를 확인할 기회가 있습니다.” “병기를 확인할 기회?” “내일, 12사도를 제외한 집회인 <선지자들의 밤>이 열릴 겁니다. 저, 괜찮으시다면······.” 정민섭의 간절한 눈빛이, 나를 향했다. “유중혁 님께서, 그곳에 같이 가 주셨으면 합니다.” * 회담이 끝난 후, 나와 정희원, 그리고 이현성은 이성국이 마련해 준 숙소 안에 모여 있었다. 나는 등에 멘 충무로역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오후 내내 주변의 점거 구역을 돌아다니며 ‘동대문역’과 ‘청구역’을 양도받은 덕에, 어느새 내 깃발 또한 ‘남색’으로 변해 있었다. [남색 깃발의 특전을 사용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그룹원들과 ‘그룹 채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대화를 꺼릴 필요가 없다. 그룹 채팅은 인근 지역의 같은 그룹원이 아니고서야 도청이 불가능하니까. 나는 일행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정희원은 어렴풋이 예상한 눈치였지만, 이현성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맙소사, 믿을 수 없는 일이군요. 미래의 일부를 아는 놈들이 있다니······ 그래서 독자 씨가 유중혁 씨 연기를 했던 겁니까? ―그렇습니다. ―후······ 그러면 당분간은 여기서 머무르게 되겠군요.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내야 하니······. ―아뇨. ―예? ―오늘, 놈들을 처리할 겁니다. 나는 이어서 정희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정희원 씨. ―괜찮아요. ······쬐끔 상처는 받았지만. ―······. ―농담이에요. 독자 씨는 지금 그 양아치 연기해야 하는 거잖아요? 정 미안하시면, 아까 그 자식 내가 처리하게 해줘요. 정희원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오늘 밤은 모처럼 셋이서 뜨겁게 불태우는 건가요? ―뜨, 뜨겁..? 정희원의 농담에 이현성이 기겁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요? ―지금 치면, 놈들 전체가 움직입니다. 그건 곤란하죠. 나는 말을 마치며 품속에서 작은 망토를 꺼내 뒤집어썼다. 갑자기 내 모습이 사라지자, 당황한 이현성이 중얼거렸다. ―엇? 독자 씨? ―신호를 드리겠습니다. 그때 움직이십시오. 아까 몰래 비형을 불러서 3000코인을 지불하고 구입한, 골드 멤버 특전 아이템인 [은둔자의 망토]. 비록 5회짜리 소모성 옵션이긴 하지만, 능력을 한 번 발동하면 적어도 20분간 ‘절대적 은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었다. 나는 스르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레벨 6이상의 [절대 감각]을 가진 상대에겐 별 쓸모가 없지만, 이곳에 그만한 스킬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보초들을 지나쳐, 한동훈이 있는 대표의 천막까지 이동한다. [음파 차단]이 걸려 있으니 일단 내부로 진입만 하면 오히려 도청 걱정은 없었다. 조심스레 천막을 열어젖히자, 홀로 자판을 두들기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낮에 봤던 것보다 더 짙어진 다크서클. 여전히, 혼자 댓글을 쓰고 있는 소년의 앙상한 등. <선지자들>은 분명, 이 소년을 감정이 마모된 기계로 만들 속셈이겠지. 허구와 진실을 뒤섞은 정보를 뿌려, 미래를 조작하는 선동 기계. 지금 당장은 큰 효과가 없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이 소년의 가치는 커질 것이다. 나는 조용히 녀석의 등 뒤로 접근해, 입을 막았다. 숨이 막힌 한동훈이 내 품속에서 버둥거렸지만, 10레벨밖에 안 되는 근력으로 내게 저항하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어, [은둔자의 망토]와 함께 비형에게 구입했던 [정신 각성제]를 꺼냈다. 이것도 무려 3천 코인짜리였다.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3천 코인으로 ‘은둔한 그림자의 왕’을 얻을 수 있다면, 오히려 이득을 보는 거래였다. 잠시 후, 강제로 각성제를 들이킨 한동훈의 눈빛이 변했다. [최면] 효과가 풀리며, 소년의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으, 으으, 다다당신······.” 최면에 걸렸다고 해서 모든 일을 잊은 것은 아니다. 지금쯤 이 작은 소년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트라우마들이 폭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최면]이 풀렸으니, 녀석의 배후성도 어느 정도 개입을 시작하겠지. [등장인물 ‘한동훈’의 성좌가 자신의 수식언을 드러냅니다.] [성좌, ‘장막 뒤의 그림자’가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5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한동훈은 깃발을 손에 쥔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 깃발을 유심히 보다가, 일부러 한 걸음을 멀어졌다. “걱정마라. 난 깃발을 빼앗으러 온 게 아니야.” “으, 으아, 아······.” “너는 똑똑하니까 금방 이해하겠지. 해치러 왔다면, 네게 걸린 [최면]을 풀어줬을 리가 없잖아?” “그, 그그, 그, 그럼.” “형이랑 친구하자.” 그 말에, 한동훈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잠시 기다려 주었다. 녀석의 머릿속에 몰아치는 의심의 파랑이 진정될 때까지. 하지만 한동훈은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대인기피증이었지. “직접 말로 하기 힘들지? 너만 괜찮다면, 이걸로 대화하고 싶은데.” 한동훈은 잠시 내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바라보더니, 이내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한동훈’이 당신의 스마트폰에 ‘광역 인터넷 Lv.5’을 사용하였습니다.] [등장인물 ‘한동훈’의 의식이 끊기지 않는 한, 당신은 ‘서울 돔’의 어디에서든 인터넷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잠시 후, 스마트폰 메신저에 한동훈의 이름이 떠올랐다. ―당신은 누구죠? ―너를 찾고 있었어. ―이성국도 그렇게 말했어요. ―그랬겠지. ―나는... 가엾게 떨리는 소년의 손가락은, 더 이상의 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이 소년을 설득하는 것은 무리다. 열흘 남짓한 기간동안, 이미 이 소년의 상처는 곪고 또 곪아서, 쉽게 회복될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기 때문이다. ―너를 이해해. 무섭고, 혼란스럽겠지. [등장인물 ‘한동훈’이 크게 동요합니다.] ―웃기지 말아요. ―나는 놈들과 달라. ―믿을 수 없어요. ―<선지자들>을 증오하지? 그 말에 한동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최면]에 걸린 채 인형이 되었던 소년의 동공 깊은 곳에, 뿌리 깊은 분노가 일렁였다. ―너만 허락한다면, 내가 놈들을 없애 줄 수 있다. ―...왜요? <선지자들>은 당신을... ―그 녀석들은 존재해서는 안 돼. ‘에필로그’에 방해가 되거든. 한동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술을 꾹 깨문 채 자판을 두드렸다. ―나한테... 바라는 게 뭐죠? 어차피 당신도 내 능력을 이용할 거잖아요. 나는 고개를 들고, 한동훈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바라는 건 그 반대야. 나는 한동훈의 눈을 바라보며, 일부러 소리내어 이야기했다. “너는, 지금부터 아무것도 하지 마라.” * “이제 이 좆같은 시간도 끝이야. 내일만 되면 다 끝난다고.” “후······ 이럴 때 소주 한 병 빨아야 되는데.” “그러니까. 아까 낮에 저 새끼 눈빛 봤냐? 현자의 눈 쓰고 나 노려보는데 개쫄아서 심장 터질 뻔했다.” “하핫, 프롤로그에서 하차한 새끼가 그게 현자의 눈인지 뭔지 어떻게 아냐?” 화기애애한 목소리. 너무 흥미진진해서 계속 들어주고 싶을 정도다. “야, 근데 다른 선지자 새끼들이 자꾸 의심 하는데······ 이 자식들 어떻게 설득하지? 아까부터 자기들이 충무로 가보겠다고 지랄들인데······.” “내가 말할 테니까 폰 줘봐. 하여간······ 응?” 폰을 빼앗아 자판을 두들기던 정민섭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야, 갑자기 인터넷이 안 되는데?” “그 새끼 또 졸고 있는 거 아냐? 가서 한 번 확인해 봐.” 천막 밖으로 나가려던 정민섭의 몸이 허공의 뭔가와 부딪쳤다. 사색이 된 녀석이 거환도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여, 여기 뭐가······.” 기이이이잉! “으아아악!” 정민섭이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가볍게 [은둔자의 망토]를 벗으며, ‘신념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유, 유중혁님? 어째서?” 당황한 이성국이 더듬거리는 사이, 천막 밖에서 정희원이 잠깐 고개를 내밀었다. “대충 몇 명은 처리했어요. 하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오래 버티진 못할 거예요.” 정희원이 사라지고, 바깥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제 보초들이 몰려들 것이다. “이, 이런 짓을 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십니까? 아무리 유중혁 님이라도, 저희 모두를 감당하실 수는 없습니다!” “모두? 모두를 감당할 필요는 없지. 대표만 처리하면 되니까.” 그 말에 이성국의 입술이 일순 실룩거렸다. “죄송한 얘기지만, 결코 유중혁 님의 뜻대로는―” 까드드드득! 가볍게 휘두른 에테르 블레이드가 쓰러진 정민섭이 입고 있던 갑옷을 그대로 반쪽 냈다. 정민섭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녀석의 갑피가 찢어지며, 품속에 들어있던 천조각이 떨어졌다. 놈의 얼이 빠진 사이, 나는 떨어진 천조각을 가볍게 주워들었다. [당신은 ‘동묘앞 그룹’의 깃발을 획득했습니다.] [당신의 ‘남색 깃발’이 ‘남색 깃발’의 누적 공적치를 흡수합니다.] [당신의 ‘남색 깃발’이 ‘갈색 깃발’로 진화합니다.] [강력한 깃발의 가호가 당신을 보호합니다.] “역시 동묘앞의 진짜 대표는 너였군.” “어, 어떻게······.” “너희들이 아무리 멍청이라도, 그렇게 대놓고 깃발을 전시할 리가 없잖아.” 애초에 ‘한동훈’에게 대표를 줬다고 주장하던 것부터가 이상했다. 어차피 미래를 아는 것은 자기들인데, 소설 속 등장인물에게 대표를 내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국은 대표가 아니다. 그러니 답은 하나뿐이었다. [‘동묘앞 그룹’의 남은 그룹원들이 당신의 처우를 기다립니다.] 이제 보초들은 의미가 없어졌다. 절망한 정민섭이 말을 더듬었다. “유중혁 님! 다, 다른 선지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인터넷이 안 될 텐데, 어떻게 알리려고?” 그제야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이성국이 빌빌 기며 나를 향해 다가왔다. “어째서······ 어째서 저희에게 이러시는 겁니까!” “글쎄. 이제 와 그런 질문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군. ‘진짜 유중혁’이었더라도, 너희 같은 놈들이랑은 동맹을 안 맺었을걸?” “그, 그게 무슨······ 설마······?” 안색이 창백해진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씩 웃어주었다. “그러게, 끝까지 읽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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