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50화
“아홉 번째 하차자라······ 처음 듣는 특성이로군.”
“아, 아마 그러실 겁니다. 저희 <선지자들>이 나타난 건 이번 회차가 처음이니까요.”
자식이 변명은.
나는 조금 놀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데 이상하군. 네놈들이 정말 ‘계시’를 얻었다면 왜 ‘계시자’가 아니라, ‘하차자’지? 그 이름은 대체 무슨 뜻이냐?”
“그, 그건······ 아마 계시록이······ 아니, 계시록을······.”
이성국이 말을 더듬었다. [거짓 간파]에 안 걸리려고 용을 쓰는 모양새가 기특했다. 과연,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이성국이 눈을 질끈 감은 채 말을 이었다.
“계시록을 읽다가 만······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읽다가 말았다고? 왜 읽다가 말았지?”
“계시록 내용이 워낙 어렵고, 방대하고, 또 심오하다 보니······.”
“그래서 넌 그중 아홉 번째로 읽기를 그만두었다, 이거냐?”
“네에······.”
“겨우 그런 정도면 나한테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아, 아닙니다! 확실히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당황한 이성국은 계속해서 횡설수설하더니, 스마트폰을 껐다 켰다하며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다.
“스마트폰은 왜 자꾸 만지작거리는 거냐?”
“저, 죄, 죄송합니다. 제가 스마트폰 중독이라······.”
보나마나 다른 하차자 녀석들에게 조언을 구할 셈이었겠지.
하지만 그리 두지 않는다.
“아까 보니까 인터넷이 되는 것 같던데?”
“그, 그렇습니다. 저 은둔형 폐인의 능력을 이용해서······.”
이성국의 말에 나는 한동훈 쪽을 일별했다.
최면에 당한 소년은 무심한 눈으로 자신의 손톱을 뜯기 바빴다.
강력한 정보 조작 능력을 가진 ‘은둔한 그림자의 왕’.
이 소년을 계속 <선지자들> 밑에 둘 수는 없었다.
만약 모든 <선지자들>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에 개입하고 있다면, 원작은 망쳐지고, 내가 세워둔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모든 게 잘못되기 전에 이놈들을 멈춰야만 한다.
“다른 <선지자들>도 ‘하차자’라는 특성을 가진 거냐?”
“······그렇습니다.”
“총 몇 명이지?”
“그건······.”
이성국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대략 48명 정도입니다.”
48명?
생각보다는 적은 숫자다.
멸살법 1편의 조회수가 1200대고, 10편의 조회수가 120대인걸 감안하면, 적어도 백여 명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성국은 그런 내 궁금증을 해결해주기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제가 알기로 본래는 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첫 번째 시나리오를 넘기지 못하고 죽은 게 아닌가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아는데 죽었다고?”
“그게······ 계시를 받긴 했지만, 저희 모두 그게 ‘진짜’ 계시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제야 조금 납득이 된다.
아마 시나리오가 시작된 순간, 10년 전에 연재되던 소설이 현실이 되었다고 생각한 독자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미 기억도 까마득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이성국이 살아남은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아홉 번째 하차자’라고 했으니, 이놈은 말 그대로 극 초반에 하차한 독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저도 운 좋게 살아남은 케이스입니다. 마침 근처에 있던 또 다른 <선지자>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죽었을 테니까요.”
같은 장소에 또 다른 <선지자>가 있었다?
“그―”
이성국이 말을 이으려는 순간, 바닥에서 작은 진동이 일었다.
[음파 차단]을 했음에도 전해질 정도의 진동.
나와 이성국은 동시에 천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쿵!
갑자기 서브 시나리오라도 발생한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진앙의 중심지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서로를 마주보며 으르렁거리는 남녀. 하나는 내가 모르는 얼굴의 남자였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연급도 아닌 게······ 감히 나한테 개겨?”
“뭐라 씨부리는 거야 개 같은 새끼가.”
······아니나 다를까, 정희원이다.
“뭐? 개 같은······? 이 개 같은 년이?”
사내가 등에서 거환도(巨環刀)를 뽑아들었다. 사내의 종합 능력치는 눈대중으로 봐도 준수한 수준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택도 없다.
정희원의 몸놀림은, 이미 동급 능력치의 화신들을 한참 상회하는 수준이니까.
사내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낸 정희원의 칼날이 움직였다.
[정희원이 ‘미카즈키 무네치카’의 특수 옵션, ‘사신의 발자취’를 발동하였습······.]
“정희원!”
사내의 목이 잘리기 직전, 정희원의 칼날이 멈췄다. 눈을 부릅뜬 사내의 목에 솜털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의 차이. 내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사내는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깜짝 놀란 이성국이 달려나갔다.
“정민섭! 지금 뭐 하는 거야!”
당황한 이성국의 표정을 보고 나도 깨달았다.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을 발동합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해당 인물의 정보는 ‘등장인물 일람’으로 열람할 수 없습니다.]
[‘등장인물 일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렇군.
저놈도 <선지자>다.
*
잠시 후, 또 다른 <선지자>는 이성국과 함께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 친구 녀석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만······. 야, 너도 빨리 사과드려!”
그제야 곁에 있던 거환도의 사내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꽤 자존심이 있는 녀석인지, 말과는 다르게 얼굴에서 노기를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 나는 정희원을 보며 말했다.
“정희원,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말라 했을 텐데.”
“저 새끼가 먼저······!”
“정희원!”
처음으로 정희원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유중혁 님.”
고개를 꾸벅 숙인 정희원이 돌아서자, 이현성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그녀를 쫓아갔다. 정희원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칼을 겨눌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했다.
거환도의 사내가 나를 보며 물었다.
“유중혁 님이시라 하셨습니까?”
“그래, 네놈도 <선지자>냐?”
“······그렇습니다.”
사내는 조금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는 나를 한 번 보고, 멀어지는 정희원과 이현성 쪽을 한 번 돌아본 후, 이성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유중혁 님.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를 좀 비우겠습니다. 성국아,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놈이 천막 바깥으로 나가자, 이성국이 쩔쩔매며 나에게 허리를 굽혔다.
“오래 기다리지 않겠다.”
“옙!”
본래의 유중혁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놈들을 허락한 이유가 있었다.
이성국이 밖으로 나가고, 기척이 멀어지자마자, 나는 곧바로 비형을 불렀다.
‘야, 비형.’
[왜? 한참 재밌는데 또······.]
‘청력 강화, 2000코인.’
[······.]
이제 비형도 꽤 적응이 된 모양인지, 3초도 채 되지 않아 광고를 띄운 후 물건까지 내놓았다.
[2000코인이 소모되었습니다.]
[전용 스킬, ‘청력 강화’를 습득하였습니다.]
비형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야, 네 번째 시나리오부터는 조심해. 이런 광역 시나리오부터는 슬슬 중급 도깨비의 관할······.]
나는 비형의 말을 무시하고 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전용 스킬, ‘청력 강화 Lv.1’을 사용합니다.]
나는 [음파 차단]이 걸려 있는 천막 바깥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숨기려 한 것 치고는 그다지 멀지 않은 위치였다.
“야, 뭔가 좀 이상하지 않냐?”
“뭐가?”
“네가 보기엔 저게 잘생긴 얼굴이냐?”
“갑자기 뭔 소리야······.”
“작가가 유중혁 잘 생겼다고 그랬잖아.”
저 새끼가?
다행히 이성국이 비호했다.
“작가마다 취향이 다를 수도 있지······. 유중혁 님이 확실해. 성격 더러운 것도 똑같잖아.”
“넌 인마, 겨우 ‘아홉 번째’ 주제에 뭘 안다고······.”
“이게······! 너도 읽은 지 오래돼서 정확히는 기억 못 한다며!”
“그래도 ‘기억력 특전’을 받아서 몇몇 장면은 꽤 또렷하거든? 넌 시발 특전이 있어도 프롤로그 밖에 기억 못하잖아? 나 없으면 살아있지도 못할 놈이······.”
한참을 투닥거리던 둘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이현성은 그렇다 치고, 저 이상한 여자는 또 뭔데? 내 기억이 맞다면, 3회차에 저런 여자는 없었어.”
“그럼 확인을 해 보든가. 진짜 유중혁인지 아닌지.”
“······근데, 진짜면 또 어떡하냐?”
“계획대로 가는 거지. 만약 여기서 유중혁을 손에 넣으면, 50편 이후까지 읽은 놈들한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거야.”
이거, 아주 쏠쏠한 정보들이 술술 들어오는구만.
댓글로는 주인공이 호구니 덜떨어졌니 하면서 온갖 욕을 퍼부어대던 놈들이, 막상 자기 상황이 되니까 저렇듯 허술하다.
이래서 인간이란.
어느새 이성국과 거환도의 사내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우리는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유중혁 님. 아까의 무례를 사과드립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민섭이라고 합니다.”
거환도 사내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다시 보니, 정희원에게 바로 제압당한 것 치고는 상당히 좋은 아이템들을 가진 녀석이다. 특히 녀석이 목에 걸고 있는 [도망자의 탈]은, 얼굴과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이었다.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네놈은 몇 번째 ‘하차자’냐?”
순간 정민섭이 이성국을 노려보았다.
뭐 그런 것까지 말했냐는 듯, 힐난하는 눈빛이었다.
“······저는 1089번째 하차자입니다.”
1089번째라. 1편의 조회수가 1200대이고, 10편의 조회수가 120대인 걸 감안하면 이 녀석도 초반 하차자이긴 마찬가지다.
아마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 이성국을 구해줬다는 놈이, 바로 이 녀석이겠지.
“계시록을 읽은 선지자로서, 유중혁 님을 만나 뵙게 되어 일생일대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유중혁 님, ······죄송합니다만,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질문? 무슨 질문?”
“그것이, 유중혁 님에 관한······.”
“내가 진짜 유중혁인지 의심하는 거로군?”
“······그, 그건 아닙니다만.”
내 강렬한 시선에 녀석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해 봐.”
“예?”
“해 보라고.”
당황하던 정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럼, 송구스럽지만 실례하겠습니다.”
이놈들을 제대로 속이려면, 나 역시 몇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제가 알기로 3회차의 유중혁 님은 ‘망상악귀 김남운’을 동료로 데리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김남운 대신 낯선 여자가 함께 있더군요.”
“······.”
“장도를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지혜인가 싶었지만, 암만 봐도 10대로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아까 다른 이름으로 그 여잘 부르는 것도 들었고요.”
기억력도, 관찰력도 대단히 좋은 놈이다.
정민섭의 말처럼 이미 이 세계는 내가 알던, 그리고 놈들이 알던 ‘3회차’와는 달라졌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달라진 세계를 최대한 ‘내 입맛에 맞게’ 바꾸는 일이었다.
“왜 망상악귀를 데리고 다니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라면, 대답은 간단하다. 지금 이 회차에, 망상악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 어, 없다고요? 혹시······ 죽은 겁니까?”
“그래.”
놈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정민섭이 물었다.
“아니, 어떻게······. 대체 누가 김남운을 죽인 겁니까?”
“망상악귀 김남운은······.”
서서히 입을 벌리는 <선지자> 녀석들을 보며, 나는 슬슬 마지막 쐐기를 꽂기로 했다.
“너희와 같은 <선지자>의 손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