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4화

504화 Episode 97. 볼 수 없는 별 웅웅, 하는 소리와 함께 코트 속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모든 이야기는 그가 그 소설을 읽은 순간 시작되었다.」 스마트폰 위로 떠오르는 문장들. 눈앞의 광활한 벽은 스마트폰의 액정과 몹시 닮아 있었다. 유중혁의 3회차부터 1863회차까지. 아마도,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가 쓰여 있을 벽. 「QA팀에 근무했던 시절, 김독자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만, 이 버그를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너······.” 등을 돌리자 한수영이 그곳에 있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정확히 말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쥐고 있던 왼손의 붕대가 점차 흩어지고 있었다. ‘심연의 흑염룡’의 가호가 담긴 붕대였다. 나는 일행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정희원은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었고, 이현성은 혼절한 이길영을 안고 있었다. 이설화와 공필두는 서로를 부축하며 방주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멀리서, 스승들과 함께 가까스로 선실을 탈출한 장하영의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는 신유승의 모습. 나를 불렀다기보다는,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아이의 손에는 ‘키메라 드래곤’의 비늘 조각이 남겨져 있었다. 그런 아이의 어깨에 유상아의 손이 닿았다. 흐느끼는 떨림을 느끼며, 유상아는 말없이 우리가 빠져나온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아는 별들이 저물었다.」 현기증으로 시야가 흔들렸다. 별들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별들이 소멸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이것은 그저 대도깨비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관리국의 모든 채널들이 커다란 타격을 받으며 이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중심을 바로 잡자, 마지막으로 유중혁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의 흑천마도에 죽은 대도깨비들의 시체가 꿰어 있었다. 죽은 성좌들의 설화가 녀석의 칼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녀석은 나를 보고 있었다. 「이것이 네가 원하던 결말인가.」 [‘제4의 벽’이 격렬하게 흔들립니다!] [‘제4의 벽’이 더욱 강하게 발동합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최종 시나리오 완료가 임박했습니다.] 눈앞에 내가 줄곧 찾아온 방주의 내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영롱한 노란 빛의 광물. 이 세계선을 표류하는 무수한 ‘거대 설화’들의 힘이 응집된 정수. [방주의 내핵]. 거대 설화 병기인 ‘최후의 방주’의 에너지원. 저것을 부수면, 우리가 싸워온 99번 시나리오도 끝을 맺는다. [<스타 스트림> 최후의 설화가 완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츠츠츠······! 순간적으로 발걸음이 굳었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덩굴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차라투스트라’들이 내게 제어 스킬을 걸고 있었다. 송구스럽다는 듯 내 시선을 피한 셀레나 킴의 얼굴. 이어서 예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수고를 덜었어요, 구원의 마왕.” 어느새 방주의 내핵을 손에 쥔 안나 크로프트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김독자와는 다른 결말을 꿈꾸는 인간의 영웅.」 “별로 놀랍지는 않겠죠? 내핵은 내가 가져가겠어요.” 나는 그녀가 꿈꾸는 세계를 이미 들었다. ‘완전한 밤’. 모든 성좌들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그녀의 꿈은, 이 세계선의 화신들과 함께 다른 세계선으로 무사히 이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방주는 부서졌어.” “다시 만들면 됩니다.” 안나 크로프트는 부서진 방주를 돌아보았다. 방주는 이미 재활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인간 화신들 중에도 설화 병기 제작에 능한 이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데리고 있는 아일렌도 그중 하나고요. 방해할 신화급 성좌도 이제 없으니―” “그 내핵 이리 내.” “······그렇군요. 아직 ‘신화급 성좌’가 하나 남아 있었죠.” 안나 크로프트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대악마의 눈동자]. 이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읽어내는 그녀의 힘이 나를 옥죄기 시작했다. 이제 완연한 눈의 힘을 각성한 그녀는, 어지간한 설화급 성좌 이상의 격을 갖춘 상태였다. 「모든 별들의 대적자.」 원작과 똑같았다. 이 세상의 모든 성좌들을 증오하는 안나 크로프트. 그렇기에 별의 힘을 이용해 별을 파멸시키고자 맹세한 인물. 그녀는 자신의 밤을 완수하기 위해, 나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정말 원작과 같은 것이라면.」 나를 가리킨 안나 크로프트의 검극이 뭔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김독자.” 원작에서는 한 번도 없었던 일. 곁에서 [흑천마도]의 손잡이를 움켜쥐던 유중혁이 희미하게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가볍게 숨을 들이켠 안나 크로프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당신이 꿈꾸는 결말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내 [미래시]로도 거기까지는 읽어낼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짐작 가는 것은 있어요. 내 [미래시]가 당신의 결말을 알 수 없다는 건, 아마 당신의 결말이 저 [최후의 벽]과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잘 생각하세요, 김독자. 그게 정말로 우리 모두를, 인류를 위한 길인지 말이에요.” 그녀가 그토록 많은 말을 한꺼번에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나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불행을 겪었어요. 많은 것들을 잃었고, 소중한 것을 조롱당했어요. 무엇이 기쁨이고 무엇이 슬픔인지 구별해낼 수 없을 만큼 닳아버렸고, 이야기에 지쳐버렸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아직도 이 세계의 ‘단 하나의 설화’가 궁금한가요? 고작 그런 것을 위해, 인류의 생존을 밀어내겠다는 건가요?” 한 마디 한 마디에 절박함이 있었다. 자신의 정의를 역설하고, 나의 정의를 원망하는 말들. 이내 그것은 설화가 되었다. ‘안나 크로프트’와 차라투스트라들을 감싸는 눈부신 설화. 그것은 성좌들의 것처럼 밝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굳건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이 쌓아온 설화의 모든 국면에 그들의 신념이 담겨 있었다. 무수한 별들이 오래전에 잊은 감정. 저 마음을 잊지 않았기에, 그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김독자. 당신의 ■■를 포기하세요.” “······.” “부탁입니다. 당신도 내 ‘완전한 밤’으로 함께 가요.” 그 말에 몇몇 차라투스트라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 그녀의 제안은, 그녀의 신념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었다. 지금 안나크로프트는 내게 새로운 세계의 밤을 밝힐 단 하나의 별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고마운 제안이었다. 그러나 [나는 성좌입니다.] 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츠츠츠츠······. 가볍게 일으킨 격에 내 손발을 구속하던 덩굴들이 일제히 떨어져 나갔다. 그녀의 선의를 조롱하듯, 내 모든 설화들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마왕의 뿔이 머리에서 돋아났고. [거대 설화, ‘신화를 삼킨 성화’가 포효합니다!] 신을 죽인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 거칠게 울었으며. [거대 설화, ‘빛과 어둠의 계절’이 인간의 세계를 바라봅니다.] 대천사를 배신하여 얻은 날개가 펼쳐졌고. [거대 설화, ‘잊혀진 것들의 해방자’가 <스타 스트림>을 조롱합니다.] 불길하고 사악한 혼돈의 아우라가 내 전신을 덮었다. 안나 크로프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내 모습에서 한 줌의 인간성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치열하게 움직이는 눈. 하지만 나도 알고 그녀도 아는 사실이 있었다. 인간성을 애써 찾아야 하는 존재를, 어찌 평범한 인간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당신도 결국은 똑같은 건가, 구원의 마왕.” 안나 크로프트의 중얼거림에 깊은 비탄이 묻어 있었다. 담담한 사실의 토로라기보다는 어떤 결의가 서린 목소리였다. “당신을 여기서 죽이겠습니다.” 안나 크로프트의 전신에서 가공할 격이 범람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그녀가 힘을 아끼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당신이 아무리 ‘신화급 성좌’라고 해도, 그런 몸 상태로 나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당신의 동료들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니―” 정희원도, 이현성도, 이길영도, 신유승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 심지어는 한수영조차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항상 나를 믿어줬던 그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의 배후성들이 당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본 이들이었다. “이만 끝내죠.” 열댓 명의 차라투스트라들이 순식간에 유중혁을 향해 미끄러져 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섬광처럼 다가온 안나 크로프트의 단검이 내 목을 찔러왔다. 나는 태연히 그 단검의 끝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장난은 그만둬, 로키.] 그 말과 함께, 안나 크로프트의 움직임이 굳었다. 나는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단검을 옆으로 치웠다. 경악한 안나 크로프트가 중얼거렸다. “이, 이게 무슨······?”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한 성좌가 킬킬 웃습니다.] “로키, 당신! 이건 약속과는 다른―!” 엄청난 양의 격이 안나 크로프트와 차라투스트라들을 내리눌렀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 <아스가르드> 최후의 별인 ‘로키’가 그곳에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들 중 누구도 로키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을 <아스가르드>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켜준 이가 바로 저 로키였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안나 크로프트가 혼절했다. 그녀의 손에서 떨어진 내핵이 바닥을 굴러 내 발치로 다가왔다. 나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그동안 정말 재미있었어, 구원의 마왕.] 허리를 들자 눈앞에 사내가 있었다. 초록색 머리카락에 장난스러운 표정. [성좌, ‘자신의 존재를 바꾸는 자’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존재를 바꾸는 자. <아스가르드>의 최상위 성좌들 중 하나인 ‘로키’. 여기까지 오는 내내 몇 번이고 우리를 도와주었던 성좌이자, 그 의중을 전혀 알 수 없는 성좌. 그는 묵시룡의 재앙에서 무사히 벗어나 우리를 쫓아왔던 것이다. “도와줘서 고맙군.” [이제 세계의 결말이 코앞인데 하찮은 인간 때문에 모든 걸 망칠 수는 없지. ······그보다 이제 겁줄 대상도 사라졌으니, 그 무서운 모습은 해제해도 될 거 같은데.] 나는 뿔과 날개를 해제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쪽도 그만 본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겠군.” [무슨 소리지?] “피차 연기는 그만두기로 한 거 아니었나?” 내 말에, 아까부터 상황을 지켜보던 유중혁이 말을 걸어왔다. ―김독자. ―네 생각이 맞아. 나는 로키를 노려보았다. 성좌, ‘자신의 존재를 바꾸는 자’. 내 생각이 맞다면, 이 자는 ‘성좌’가 아니었다. [성좌, ‘자신의 존재를 바꾸는 자’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드러냅니다!] [성■좌,■ ‘자신■의 ??존재■를??’······.] 눈부신 빛이 로키의 몸을 감싸더니, 이내 그의 외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키가 조금 작아졌고, 얼굴의 주름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러더니 볼을 중심으로 두 개의 커다란 혹이 자라났다. 「<스타 스트림>의 버그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존재. 세상 모든 도깨비들의 숙적이자, ‘종말의 구도자’의 창시자.」 그는 언젠가 나와 조우한 적이 있는 존재였다. 서유기의 통천하에서, 그는 나를 방해하는 대도깨비들을 대신해서 상대해주었다. 희미하게 일그러진 그의 입술에 불온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스타 스트림>의 종말을 꿈꾸는 것은 그대들만이 아니지.] “······혹부리 왕.” 그의 정체를 알아본 유중혁이 망설임 없이 [흑천마도]를 뽑았다. [집어넣지. 나는 그대들과 싸울 생각이 없다.] 혹부리 왕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하나뿐이야. 너희들이 찾아온 이 최후의 벽 너머에 있는 ‘무언가’. 그뿐이지. 그리고······.] 고오오오오! [지금 그대들은 날 신경 쓸 처지가 아닌 것 같은데.] 뒤를 돌아본 순간, 누군가가 내 멱살을 강하게 붙들었다. 이지혜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그녀의 화신체에서 흘러 나온 분노의 원망의 설화가 내 전신을 두들겨 패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뭔데. 응? 이것도 계획의 일부야?” 이지혜에게서 느껴지던 바다의 기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 지하철에서 소녀와 마주했을 때 불어오던 은은한 소금향을, 이제는 맡을 수가 없었다. “김독자!” 이지혜가 울면서 나를 흔들었다. 누구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유상아도, 정희원도, 신유승도. 모두 고개를 숙인 채로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김독자는 그 마음을 이해했다.」 이 원망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이지혜.” 「한수영이었다.」 “이거 놔!” 어깨를 잡는 한수영의 손길에 이지혜가 거칠게 반응했다. 하지만 한수영은 그녀의 어깨를 놓지 않았다. 완강한 손길로 이지혜의 앞머리를 넘기고, 그렁그렁한 눈물을 닦으면서, 한수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흑염룡도, 우리엘도, 해상전신도 안 죽었어.” “그걸, 그걸 어떻게 아는데.” “느낄 수 있어. 아주 희미하지만, 녀석들이 살아있다는 걸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고. 그리고.” 차갑지만 다정하고, 정확하지만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 오직 한수영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였다. “눈물 닦고 똑바로 봐. 지금 네가 멱살 잡은 놈이 어떤 상태인지.” 혼미한 눈으로 고개를 떨어트린 이지혜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들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머뭇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왜······?” 이지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아저씨가 울어······?” 내 멱살을 잡았던 손이 풀렸다. 그 틈을 파고든 한수영이 내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정신 차려, 멍청아! 제대로 설명해주라고. 너도 아무 생각 없이 여기까지 온 거 아닐 거 아냐!” 그 말은 거꾸로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반드시 나를 죽여버리겠다는 엄포였다. 한수영이 물었다. “배후성들을 구할 방법이 있는 거지? 그치······?” 「그런 방법 따윈 없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캄캄한 <스타 스트림>의 밤하늘. 많은 성좌들의 불빛이 꺼졌지만, 자세히 보면 여전히 반짝이는 것들이 있었다. 아주 오래 보아야만 어렴풋이 빛을 느낄 수 있는 별이었다. 「김독자는 성좌들을 증오했다. 단 한순간도 그 감정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 내가.” 「하지만 이 세계의 시나리오는, 그런 김독자조차 변하게 만들었다.」 나는 [최후의 벽]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모든 ‘설화’가 기록된 벽. 모든 도깨비들의 소망인 ‘단 하나의 설화’를 기록하기 위해 존재하는 벽. “너무 늦었을 수도 있어.” 이 모든 불행은, 저 벽에 기록되기 위해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저 벽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가능할 수도 있어.” 이미 일어난 일들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영혼까지 소멸한 이들을 되살리고, 받은 상처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일 따위 가능할 턱이 없다. 이미 멸망해버린 세계선을 구원하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이 세계의 빌어먹을 개연성은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은 한수영이 말했던 ‘네모난 원’과 같은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하다면.」 「‘네모난 원’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벽’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면.」 나는 손안의 내핵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메인 시나리오 # 99 ― ‘이야기의 적’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완료 보상 정산이 시작됩니다.] [현재 보상 정산을 담당할 대도깨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상 정산이 지연됩니다.] . . . [당신은 ‘이야기의 왕’을 만날 자격을 얻었습니다.] 눈부신 벽이, 우리를 향해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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