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화
487화
5부 시작
Episode 93. 전지적 작가 시점
“저는 작가입니다.”
작품을 집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수영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하곤 했다.
친구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도 그랬다.
“아, 작가님이셨군요!”
이미 듣고 나왔을 텐데, 호들갑은.
남자는 눈동자를 재빠르게 굴리더니 웃으며 물었다.
“그럼 신춘문예 같은 걸로 등단하신 건가요?”
“아뇨.”
“예? 그럼······.”
“웹소설 써요.”
“웹소설요?”
언제나 이즈음부터가 문제다.
사내의 눈동자가 자신의 후줄근한 후드티를 훑는 것이 보였다.
“아하, 그러니까······ 그건가요? 인터넷 소설? 이모티콘 많이 들어가는 그런 거······?”
“아, 예~. 그겁니다요.”
“요즘 신기한 직업들 참 많아요. 유튜버, 인터넷 작가······.”
남자는 빙긋 웃으며 바로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쭉 빨았다. 찬 시계를 보니 꽤 고가의 브랜드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상황인데.
“요즘은 다들 돈을 쉽게 벌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쵸?”
“어렵고 힘들게 돈 벌고 싶은 사람도 있나요?”
“저도 연 1억쯤 버는데, 이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 보면 참 한숨 나와요. 어디서 남의 돈 쉽게 받아먹으려고······.”
말하는 본새를 보니 이미 이 자리가 소개팅이라는 것 따윈 잊은 모양이었다. 약간 화가 난 기색으로, 남자의 눈이 테이블 위에 놓인 차키로 향했다. 나이에 비해 제법 가격대가 있는 외제차였다.
한수영은 남자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스마트폰을 켰다. 새로운 댓글 알림이 잔뜩 떠올라 있었다.
―작가님 너무 고구마 아닙니까?
―흠... 담편에는 사이다로 시작하는 거죠? 아니면 하차합니다.
“어릴 때 공부도 열심히 안 한 사람들이 운 좋게 얻어걸려서는······.”
문득, 사람들이 왜 웹소설을 읽는지 알 것 같았다.
친구 자식이 왜 이런 나부랭이를 소개해줬는지도 이해가 됐다. 만나면 알게 될 거라더니, 뭘 바라고 자길 이곳에 보냈는지 아주 훤히 보였다.
보통이라면 귀찮아서 그냥 넘겼겠지만······.
“그래서······ 듣고 계신가요?”
“아 예, 연봉이······?”
그제야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그걸 다시 물을 줄 알았다는 듯 활짝 펴지는 남자의 어깨.
“세후 1억입니다.”
“흠, 저랑 비슷하시네.”
“예?”
남자가 피식 웃었다.
“작가신데 연봉이 1억이시라구요?”
한수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신형 포르셰. 남자의 것보다 정확히 세배 더 비싼 모델이었다. 그나마도 귀찮아서 잘 몰고 다니지도 않지만.
키의 흔들림을 따라 남자의 눈동자도 흔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어색하게 떠오르는 미소.
“하하, 근데······ 작가들은 수입이 불규칙해서 ‘연봉’이라는 개념은 없지 않나요? 수입도 일정치 않으니까요.”
종알거리는 사내의 입술이 뻔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다음 회차에 잠깐 등장시킬 악당의 대사로 쓰면 딱인 수준. 그럼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면 된다.
“연봉이라곤 안 했는데.”
“예? 아, 그럼 평생 버신 금액인가요?”
“이번 달 중순까지 수입만 1억이고, 흠······ 아직 이번 달이 2주가 더 남았으니까······.”
“······예?”
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듯, 사내의 표정이 급격하게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친구 녀석이 원하는 대로 된 셈이었다.
소설로 썼다면 사이다였겠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렇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허둥지둥 어딘가로 톡을 보내는 남자의 모습. 아마 소개팅을 주선한 친구에게 이것저것 묻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기. 혹시 쓰신 작품 제목이······.”
얘한테 제목 알려주고 싶진 않은데, 생각할 찰나.
한수영의 스마트폰에 다시 알람이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웹소설을 좋아하는 한 독자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작가님의 작품을 읽게 되어······.
웬 장문의 메시지인가 싶었다. 무심결에 알람을 눌렀다. 말투는 정중하고 고리타분했고, 심지어는 약간의 순박함까지 느껴졌다.
―작가님이 쓰신 작품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란 작품과 지나치게 흡사합니다.
······이 자식은 뭐야?
「그것이 한수영과 김독자의 첫 만남이었다.」
김독자.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한수영은 그때의 기억을 반추했다.」
아바타를 만들면서 기억의 일부를 잃는 바람에 그때의 일들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분명 그때의 자신이 ‘멸살법’이라는 소설을 읽기는 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그 ‘김독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녀석 때문에.
―작가님! 오늘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한수영쯤 되면 몇 편만 읽어도 이게 뜰 글인지 아닌지 안다.
그런데 그녀가 보기에 ‘멸살법’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뜰 글이었다.
―이거 진짜 흥미로운 시작이네요.
시작부터 개노잼이었고.
―작가님, 그럼 유중혁은 그 많은 걸 다 기억하고 있는 건가요? 그럼 72회차에서는······.
지나치게 설명조였으며.
―크, 아깝다! 다음 회차엔 중혁이도 정신 좀 차리겠죠? 오늘도 꿀잼이었습니다.
주인공은 그저 외모 출중에 무쌍을 찍는 무개성 남주였다. 게다가,
―작가님! 2000회 달성 축하드립니다! 기왕 하시는 거 천 편만 더 연재해주셨으면······.
편수도 지나치게 길었다.
‘······이게 재밌다고? 정신 나간 놈인가?’
짜증이 나서 녀석이 쓴 댓글을 따라가며 비추천을 누르기도 했다.
한수영은 소설이 아니라 김독자가 쓴 댓글만을 홀린 듯 탐독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는 드디어 지혜가 각성하나요?
―작가님! 7페이지에 오타 하나 발견했습니다! 제 부족한 소견으로 여기 맞춤법은······ 아, 찾아보니 제가 틀렸네요. 죄송합니다. 오늘 하나 배워갑니다.
―중혁이 자식 뒤통수 좀 때려 주세요 제발······.
수천 편의 소설에 한 편도 빠짐없이 달린 댓글들. 그 모든 댓글들에 작가가 만든 세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한수영은 그것이 부러웠다.」
고작 이 따위 소설에 이런 독자가 있을 리 없다고, 당연히 작가의 자작이라 믿었다. 아이디를 두 개 파서 스스로 글을 쓰고 댓글을 달고 추천글까지 쓰는 것이라 생각했다.
―본인 추천 금지되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김독자에게 유중혁이 가상의 인물이었듯, 한수영에게 김독자 또한 그랬다.」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텍스트 속의 인물이 지금 한수영의 눈앞에 있었다.
“독자 씨―!”
삐이이이, 하고 들리는 이명. 곳곳에서 터지는 폭음들.
한수영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전장의 중심에서, 김독자가 별들의 격류를 헤쳐나가는 것을 보았다. 화신들이 비명을 질렀고, 별들이 포효를 터트렸다. 허공의 도깨비들이 웃고 있었다.
【■■■■■■■■■■■■■■■■■■■■!】
김독자가 외치고 있었다. 그것이 비명인지, 선포인지, 아니면 절규인지 한수영은 들을 수 없었다. 외신으로 변한 김독자의 목소리는 시나리오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내용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갸아아아아아아아아!
다만 그를 따르는 외신들이 있었다. 수많은 세계선에서 버려진 잔재들이 김독자의 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지막 시나리오의 하늘에서 신화급 성좌들이 그런 김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야 시작이군.]
<올림포스>의 왕이자 12신좌들의 지배자인 ‘번개의 좌’, 제우스가 그곳에 있었다.
[세계선의 ‘마지막 시나리오’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지막 시나리오의 모든 존재가 시나리오 참여권을 획득합니다!]
[‘이야기의 적’, 김독자를 살해하십시오.]
잇따라 떠오르는 시나리오 메시지. 그곳의 모두가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제우스의 입이 열렸다.
[쓸어버려라.]
천공을 무너뜨리는 소리와 함께 제우스의 전격이 쏟아졌다. 퍽, 하고 뭔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한수영의 뺨에도 피가 튀었다. 이름 없는 것들이 검은 피를 내뿜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살려살려살려살려살려살······.】
무시무시한 ‘이계의 신격’들조차 신화급 성좌들이 일제히 내뿜는 격 앞에서는 물풍선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자비하게 터져 나가는 ‘이계의 신격’들이 버려진 설화들을 울컥거리며 토해냈다.
눈부신 번개의 광휘. 폐허의 중심에서 김독자가 제우스의 전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왜, 김독자는 저런 선택을 한 것일까.
[날개를 찢어라! 반경을 봉쇄해!]
성좌들의 포효와 함께 어마어마한 별들의 군세가 들이닥쳤다. 지옥 같은 시나리오를 뚫고 여기까지 온 성좌와 화신들이, 오직 ‘김독자’를 제거하겠다는 일념하에 하나가 되어 밀려들고 있었다.
그런 김독자를 구한 것은 그와 혼연일체가 된 제천대성이었다.
[성좌, ‘가장 오래된 해방자’가 자신의 격을 드러냅니다!]
창공을 도도하게 흐르는 전격. 제우스의 전격을 밀어낸 제천대성의 전격이 창공을 북처럼 찢어발겼다.
순간 성좌들의 기세가 주춤하더니, 이내 독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천대성이다!]
[물러서지 마! 저놈만 죽으면 시나리오도 끝이다!]
[이 세계선의 마지막 시나리오야!]
드디어, 모든 것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기대감.
개중에는 지나가듯 얼굴을 본 성좌나 화신들도 있었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저놈 스스로 선택한 거라고!”
<올림포스>, <베다>, <파피루스>, <수호의 나무>, <십이지>, <황제>······.
어지간하면 한 번씩 이름을 들어본 성운의 성좌와 화신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 김독자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모두가 김독자를 죽이기 위해 검을 들었다.」
찢어진 검정 코트 사이로 드러난 흰 코트.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맡은 김독자가 그곳에 있었다.
넝마가 된 채, 찢어진 흑과 백의 날개를 펼치고 마왕의 뿔을 단 김독자.
외신들의 선두에서 적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김독자.
순간 시야가 희뿌옇게 흐려진다 싶더니, 이내 김독자의 모습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두족류 특유의 이질적인 눈빛. 음습함이 느껴지는 외피.
김독자가 있었던 곳에, 세상 모든 괴생물의 특징을 섞어 놓은 듯한 거대한 외신왕이 있었다.
「이야기의 적」
작가인 한수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만약 이 세계가 소설이라면, 지금 김독자는 ‘최종 보스’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저 ‘김독자’가 죽어야만 끝난다.
“한수영!”
누군가가 그의 몸을 끌어냈다. 전격의 급류가 코앞을 휑하게 스쳤다.
“물러나! 빨리!”
유상아였다. 오직 유상아만이 이 번잡한 아수라장 속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다들 정신 차려요! 지금 독자 씨가······!”
김독자는 죽을 것이다.
“독자 씨랑 약속했잖아요! 다들 잊었어요?”
김독자는 거짓말쟁이다.
“정말로 독자 씨가 또 같은 짓을 할 리가······!”
사람의 선의를 믿는 사람. 그게 바로 유상아였다. 그런 유상아였기에, 누구보다 사람을 믿는 유상아였기에 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언제나 한수영과 부딪쳐 왔던 것이다.
유상아의 외침에도 일행들의 표정은 공허했다. 풀린 눈으로, 각자의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들을 붙잡은 질문은 동일했다.
「김독자는 대체 왜 저런 선택을 했는가?」
약속했으면서. 다시는 저런 식으로 희생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면서.
「대체 왜?」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유상아의 말은 틀렸다. 이미 이야기의 방향은 결정되었다. 김독자는 ‘이야기의 적’이 되었고, 이 빌어먹을 시나리오는, 김독자가 죽어야만 끝날 것이다. 이 모든 비극을 쓴 작가가, 이미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작가?
【■■■■■■■■■!】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김독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언젠가의 기억이 되어 돌아왔다.
―한수영, 넌 작가지?
한수영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작가는 자기가 쓴 글 속에서 정말 전지전능한 걸까?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니, 그냥 궁금해서. 너는 글을 쓰면서 모든 걸 통제하는 거야? 이 인물은 이렇게 움직이고, 저 인물은 저렇게 행동하고······.
―그야 당연히······.
자신만만하게, 한수영은 선언했다.
―통제 못하지.
―왜? 작가잖아.
―작가가 진짜 신인 줄 아냐?
―이야기 속의 모든 건 작가가 만드는 거잖아. 상황도, 인물도······.
뭘 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만, 하고 한수영이 중얼거렸다.
―등장인물은 만들어 놓는 순간 제 맘대로 움직여. 작가는 그냥 무대를 제시할 뿐이야. 그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일지를 선택하는 건 등장인물들이라고.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진짜로.
―너 글 되게 편하게 쓴다.
―뒤질래?
복부를 얻어맞으며 허리를 꺾던 김독자.
그때 김독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재밌네. 작가도 이야기의 신은 아니라······. 그럼 ‘시나리오’라는 건 대체 누가 결정할 수 있는 걸까?
서서히 발끝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어쩌면 저곳에 있는 김독자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인지도 모른다.
츠츠츠츠츳!
어쩌면 김독자는 생각한 것이다.
이 완고한 시나리오의 세계에서, 결말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대도깨비들의 개연성의 범람에 당황합니다!]
[<스타 스트림>이 흔들리는 개연성의 향방에 주목합니다!]
시나리오는 완벽하지 않다.
[‘마지막 시나리오’가 격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분명 작가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살아가는 것은 등장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한반도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을 응원합니다!]
[<에덴>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을 응원합니다!]
[<명계>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을 지지합니다!]
[이름 모를 행성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을 응원합니다!]
[수많은 성좌들이 코인을 후원합니다!]
[절대 다수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의 마지막 싸움을 지켜봅니다!]
그 이야기를 지켜보는 이들이다.
츠츠츠츠츳!
[다수의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이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시나리오’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
김독자는 이곳에서 죽기 위해 ‘이야기의 적’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일행들을 배신하려고 희생을 택한 것이 아니었다.
「‘멸살법’은 유중혁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계는, 누구의 이야기일까.」
흔들리는 세계의 개연성을 보며, 한수영이 쓰게 중얼거렸다.
“······그렇지. 주인공이 죽길 바라는 독자는 아무도 없지.”
이 세계에서, 김독자와 <김독자 컴퍼니>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김독자가 마지막 시나리오의 대상이 된 것이 그 증거였다.
성좌들은 좋든 싫든 김독자의 설화를 보았고, 공감하거나 질투했다. 김독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세계의 모든 별들은 이제 그의 이야기를 보고 있었다. 아마 김독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등장인물’이 된 김독자가 건 최후의 도박이었다.」
멀리서 김독자가 이쪽을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라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듯.
여기서부터,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듯.
「그는 희생하지 않기 위해 희생한 것이었다.」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영영 닿지 못할 결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김독자가 내린 ‘누구도 희생하지 않을 방법’이었다.
그러니 지금 한수영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저 녀석 혼자서는 안 돼.’
한수영은 뒤를 돌아보았다. 일행들에게 알려줘야 했다. 지금 김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혼자만의 이해에 고취되어 있던 한수영이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
[설화, ‘예상표절’이 등장인물의 심리를 예측합니다.]
그것은, 이곳의 모두가 작가는 아니라는 것.
모두가 이 사태를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한수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일행들 중 누군가가 튀어 나갔다.
검격에 깃든 맹렬한 적의.
검극이 향한 곳을 본 순간, 한수영은 소스라쳤다.
“잠깐! 기다려! 저 녀석은 지금―”
누구의 검인지 알았기에, 믿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김독자를 아주 깊이 원망하게 된 사람.」
오래도록 김독자를 지켜온 김독자의 가장 단단한 검.
그 검이, 이 시나리오를 끝내기 위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