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2화

452화 그 눈빛, 그 살기. 내가 아는 대천사의 그것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저것이 진짜 ‘우리엘’의 모습이었다. 냉혹하고 잔인한 심판자. 정의를 위해 [업화의 불꽃]에 걸리는 모든 적들을 태워버리는 존재. 「그런 우리엘이 자신의 ‘결’에 도달했고.」 [<스타 스트림>이 새로운 ‘이계의 신격’의 출현을 응시합니다.] [<스타 스트림>이 대상의 개연성 여부를 판별합니다!] 「‘은밀한 모략가’를 죽이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왕이둘왕이둘왕이둘왕이둘】 ‘은밀한 모략가’에 준하는 격을 가진 외신의 출현에, ‘이계의 신격’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성좌, ‘고려제일검’이 ‘이계의 신격’의 존재에 경악합니다!] [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머리를 닦는 것도 잊은 채 전장을 응시합니다.] [성좌, ‘물병자리에 핀 백합’이 눈을 부릅뜹니다!] 놀란 것은 성좌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본래라면 이곳은 방송 불가 지역일 텐데. 아무래도, 숲이 불타면서 채널 방벽이 제거된 모양이었다. [<관리국>이 ‘은가이의 숲’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엘의 손에서 [업화의 불꽃]이 움직였다. 숲 전체를 녹여버린 일검이 창공에서 날아드는 순간, ‘은밀한 모략가’가 가볍게 고개를 틀었다. 그를 스쳐간 일검이 전당의 절반을 날려버리며 불타올랐다. 【가아아아아아아아】 흉포한 파괴에 놀란 ‘이계의 신격’들이 비명을 질렀다. 다시 한번 [업화의 불꽃]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전당 전체를 충분히 날려버릴 수 있는 격. 전신의 솜털이 비죽 솟았다. 원작에서 지구를 날려버렸던 265회차의 수르야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콰아아아아아! [업화의 불꽃]의 끝에서, 거대한 유성이 낙하하고 있었다. 이 숲 전체를 날려버리고, 어쩌면 이 공간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힘. 나는 영혼체에 깃든 힘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제대로 된 화신체도 없는 마당에 저런 공격을 막을 수 있을 턱이 없다. 애초에 저런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거대 설화, ‘고독한 멸망의 순례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결국 ‘은밀한 모략가’가 나섰다. 휘두른 [진천패도]의 끝에서 새카만 흑빛의 입자들이 쏘아졌다. 거대 설화의 힘. 장벽처럼 펼쳐진 새카만 격이 유성의 충격을 받아냈다. 콰아아아아앙! 숲의 저변에 광풍이 몰아쳤고 뿌리가 뽑힌 나무들이 허공을 배회했다. 불꽃의 소용돌이가 주변의 모든 것들을 궤멸시키고 있었다. 이만한 대결을 보는 것은 정말 간만의 일이었다. <기간토마키아>에서 하데스와 포세이돈이 붙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거대 성운들이 두 존재의 대결에 주목합니다.] 츠츠츠츠······! 격과 격이 부딪치는 중심에서 스파크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은밀한 모략가’가 뻗은 [진천패도]가 떨렸다. ‘은밀한 모략가’가 밀리고 있었다. 나와 유중혁과의 대결로 인해, 격이 줄어든 탓이었다. 이것이 ‘결’을 본 우리엘의 힘. 이대로라면, 나와 ‘은밀한 모략가’는 은가이의 숲과 함께 <스타 스트림>에서 소멸하게 될 것이다. [현재 당신의 영혼체는 ‘은밀한 모략가’에게 일시적으로 귀속된 상태입니다.] [영혼체 귀환까지 20시간 31분 20초 남았습니다.] 영혼체가 귀환하기까지는 아직 20시간도 넘게 남았다. 단순히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었다. ‘은밀한 모략가’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어 보이진 않았으니까.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발동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나는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이봐! 저 우리엘이 왜 널 공격하는 건데?” 애초에 저 ‘우리엘’은 대체 어떤 세계선에서 온 존재란 말인가. 그리고 왜, ‘은밀한 모략가’를 공격하는 것인가. [999회차의 ‘유중혁’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살아있는 불꽃’을 응시합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설마? 내가 가장 좋아했던 회차.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가장 완벽했던 회차이자, 역시나 ‘결’의 코앞까지 다가갔던 회차. 우리엘이 말하고 있었다. 【외신이여, 999회차의 일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기억하고 있다.】 【다행이군.】 분노한 우리엘의 검격에 그녀가 쌓아온 설화가 담겨 있었다. [거대 설화, ‘영겁의 불꽃’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우리엘의 거대 설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사부,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이지혜의 목소리. 활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혁 씨. 조금만 버티십시오. 거의 다 왔습니다!”」 왼팔을 잃고, 오른쪽 다리를 잃고, 자신의 두 눈을 잃은 999회차의 유중혁이 그곳에 있었다. 오직 일행들을 위해 살았던 유중혁. 어둠 속에 물든 그의 세계에, 한줄기 빛살 같은 목소리가 있었다. 「[패왕, 정신 차려라.]」 맞다. 999회차에는 우리엘이 있었다. 그녀는 유중혁의 동료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싸우는 유중혁을 위해, 기꺼이 그의 편이 되어준 대천사. 「[이 세계의 결말이 눈앞에 있다.]」 다시 돌이켜 보아도 999회차는 기적이었다. 아무리 운이 좋았다고 해도 고작 999회차에 결말의 근처까지 가다니.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운’만은 아니었다. 「999회차의 유중혁은, ‘이계의 신격’과 계약했다.」 내가 [절대 왕좌]를 얻지 않았던 것, 그리고 가능하면 ‘이계의 언약’을 맺지 않으려 했던 것은 모두 ‘999회차’의 결말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름조차 모를 미지의 신격. 그리고 그 신격과 맺은 ‘이계의 언약’이, 결국 유중혁의 목숨을 앗아갔다.」 원작에서는 그 ‘이계의 신격’이 누구인지 서술되지 않았다. 개연성을 희생하면서까지 999회차의 유중혁에게 가공할 힘과 기연을 내준 존재.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구원의 마왕. 나 역시, 너와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어리석게도, 정해진 과거를 바꾸려 했었지. 그 ‘이계의 신격’이 바로, ‘은밀한 모략가’였다. ―이제 알았겠지. 이것이 세계선을 뒤튼 대가다. 그는, 이미 원작에서 과거의 세계선에 개입해 개연성을 뒤튼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로 999회차의 결말을 본 우리엘은 이곳으로 왔다. 【내 세계선의 원한을 이곳에서 갚겠다.】 그때의 외신에게, 동료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 【네가 나의 소중한 것을 빼앗았듯, 나 또한 그럴 것이다.】 한없이 정당한 분노가 새겨진 그 진언에, 나는 힘이 쭉 빠졌다. 우리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999회차의 유중혁이 죽던 순간을 나 역시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작가님. 설마 이제 완결인가요? 이대로는 중혁이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999회차의 유중혁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동료들을 결말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 자신은 세계의 결말을 볼 수 없었다. 빌어먹을 ‘이계의 언약’ 때문이었다. 폭주한 개연성이 그의 목숨을 앗아가버린 까닭이었다. ―그냥 되살리면 안 되나요? 명계라든가, 환생이라든가. 방법은 많잖아요. 아니, ‘이계의 신격’이 대체 뭐길래······. 나는 작가를 원망했고, ‘이계의 신격’을 원망했다. 결말을 눈앞에 두고 죽어가는 유중혁을 보며 절망했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다음 날 연재분을 읽기를 망설였을 정도였다. 궁금했다. 왜 ‘은밀한 모략가’는, 999회차에서 그런 짓을 했는가. 【바꾸고 싶었다.】 ······뭐? 【제대로 된 결말을 보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다른 세계선이라 해도.】 ‘은밀한 모략가’는 말했다. 개연성을 조심해야 한다고. 올바른 결말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는 ‘은밀한 모략가’조차, 사실은 과거를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이 회차를 바꾸고 싶었듯, ‘은밀한 모략가’ 또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결과가 원인을 삼키든. <스타 스트림>의 개연성이 무너지든. 한번은 제대로 된 결말에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동료와 함께 도달한 결말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한심하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네놈과 같은 실수를 했다는 것이.】 ‘은밀한 모략가’의 격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의 몸이,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그의 안에 잠재되어 있던 무수한 유중혁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명을 대변하듯 【이 모든 비극을 만든 존재를 찾고 싶었다.】 ‘은밀한 모략가’가 말하고 있었다. 【이 세계를 만든 존재. 나를 회귀하게 하고, 시나리오를 반복시킨 존재. 내 목적은 ‘벽’의 너머에 있을 그 존재를 죽이는 것이다.】 그것이 ‘은밀한 모략가’의 진짜 목적이었다. 회귀를 멈추는 것도. 이계의 신격들을 구하는 것도. 최후의 벽을 여는 것도. 모두, 그 목적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녀석의 손짓과 함께 [무림 만두]에서 내 영혼체가 빠져나왔다. 나는 긴장했다. 녀석의 속셈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재빨리 말했다. ―지금의 넌 저 우리엘조차 막지 못해. 하지만 내가, 우리 일행이 돕는다면······. ‘은밀한 모략가’가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가?】 ―알아. 임기응변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저쪽의 목적을 들었으니, 이제 내가 답할 차례였다. ―애초에 누군가의 삶을 멋대로 관음하고 탐식하는 세계는 잘못된 거야. <스타 스트림>은 잘못되었다. 유중혁의 회귀는 잘못되었고. 시나리오가 만든 이야기는, 부조리했다. ―그러니 이대로 두지 않을 거야. 결말을 보겠어. 너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결말을 볼 거야. 동료들과 함께 네가 넘지 못했던 벽을 넘고, 그 너머에 있는 존재를 반드시······. ‘은밀한 모략가’가 나의 마지막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이겠어. 너의 ‘가장 오래된 꿈’을 끝내겠다. 우리엘의 격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전당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듯 은가이의 숲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계의 신격’들이 최후를 예감한 듯 ‘은밀한 모략가’의 곁에 더욱 달라붙었다. ‘은밀한 모략가’의 입이 열렸다. 【너는 내 이야기로 살아남았다 했지.】 “······.” 【그렇다면 빚을 갚아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순간, 유중혁의 설화들이 흘러나왔다. [거대 설화, ‘고독한 멸망의 순례자’가 울부짖습니다!] [거대 설화, ‘영원불멸의 지옥도’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은밀한 모략가’의 기억들이, 설화들이 내게 깃들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했던 기억들. 그가 1863회차를 산 이후 알아낸 정보들이, 내게 흘러오고 있었다. ―너······! 내 뒤쪽으로 포탈이 발생했다. ‘이계의 신격’의 힘으로 열어젖힌 포탈. 그 포탈이 조금씩 나를 빨아들였다. ―아니, 잠깐만. 기다려! 너 대체 무슨 짓을······! 【네게 이 세계의 결말을 맡기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순간, ‘은밀한 모략가’는 더 이상 ‘은밀한 모략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는 회귀할 것이다.】 그는, ‘유중혁’처럼 보였다. 【나의 1864회차를, 1865회차를 살 것이다. 그 회차를 살아서, 다시 결을 보고, 또다시 이계의 신격이 되어서.】 마침내 전당이 무너졌다. 환한 빛살 속에서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1863회차에 달하는 두터운 역사를 베어낸 우리엘의 검이, ‘은밀한 모략가’를 향해 쇄도했다. 【이 세계선의 결말을 보기 위해, 되돌아올 것이다.】 힘없이 꿰뚫리는 ‘은밀한 모략가’. 나는 그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업화의 불꽃]에 베인 ‘은밀한 모략가’의 설화가 흩어지고 있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성흔 ‘회귀 Lv.???’을 발동합니다!] ‘이계의 신격’이 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회귀자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그의 회귀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는 1864회차의 지하철에서 다시 깨어나, 또다시 끔찍한 세계선을 만들어낼 것이다. 「김독자는 생각했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내가 영혼체에 깃든 설화들을 발출하려는 그 순간, 우리엘이 나보다 먼저 움직였다. 【너는 다음 회차로 달아날 수 없다.】 우리엘의 하얀 손아귀가 ‘은밀한 모략가’의 목줄을 틀어쥐었다. 손에서 뻗어나온 검은 빛이, 설화의 붕괴를 막고 있었다. 서서히 퍼져 나간 빛은 이내 ‘은밀한 모략가’의 전신을 덮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빛은 작은 구(球)의 형태를 이루었다. 나는 저 구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1863회차에서 ‘묵시룡’을 봉인했던 [봉인구]였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계의 신격’이 된 우리엘이라면, 유중혁이나 ‘은밀한 모략가’의 능력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영원의 회귀를 거듭하며, 결코 죽지 않는 존재라는 것도. 점점 더 죄어드는 손아귀. 새카만 봉인구가 이내 창백한 빛을 띄었다. 【너는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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