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428화 Episode 81. 만두의 추억 “이보게! 자네들 외지인인가?” 사내는 늙수그레한 중년인이었다. 그러자 예의 바른 신유승이 먼저 앞으로 나서며 인사했다. “저희는 서방 세계로 부처님을 찾아가는 길이랍니다.” “호, 부처? 보기완 다르게 고승이셨구려!” 감탄하는 중년인을 보며 이길영이 엣헴, 하고 뒷짐을 지고 섰다. 노인은 묘한 눈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내쪽을 돌아보았다. “그럼 옆에 계신 훤칠한 분도······ 히익!” 중년인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어깨 위의 무림 만두를 보고 있었다. “그, 그건 무림 만두······!” “아, 그냥 인형입니다. 제가 만두를 좋아해서.” “······그렇소? 깜짝 놀랐구려.” 중년인은 식겁했다는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깨에 찬 완장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가 이곳 공장의 작업반장인 듯했다. 우리는 마침 잘 됐다 싶어서 물어보기로 했다. “이 공장은 대체 뭡니까? 왜 여기서 만두를 잔뜩 만들고 있는 거죠?” “······설마 아무것도 모르고 오신 게요?” 중년인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게 다 무시무시한 요괴의 짓이요.” “요괴라고요?” “그렇소. 원래 이곳은 공장 단지가 아니었소.” 중년인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본래 평화로운 촌락이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신에 피부가 시커멓고 우락부락한 돼지 요괴가 나타나서, 마을의 여자들을 모두 납치하고 남자들은 노예로 부려 이 공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놈은 내 딸과 마누라를 모두 첩으로 삼은 뒤 우릴 이곳에 가두었소! 보면 알겠지만 이 공장에는 특수한 신통력이 감돌고 있어서 노예들이 함부로 나가지 못하게 되어 있다오. 게다가, 그 요괴 놈 어찌나 많이 먹어대는지······ 하루 종일 만두를 만들어도 손이 모자랄 지경이오.” [공장의 생산 시스템이 ‘작업반장’을 찾습니다!] “이, 이런! 이만 가봐야겠소.” 중년인은 허겁지겁 위생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착용하더니 이내 컨베이어 벨트 쪽으로 향했다. 내가 나서서 뭐라 말하려는 순간, 신유승이 먼저 중년인을 붙잡았다. “아저씨들이 이런 노역을 하는 건 부당한 일이에요. 게다가 그 요괴가 여자들까지 납치해갔다면서요.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역시 내 화신이다. 사실 이래야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한 행동이었겠지만······.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그 요괴는 어디에 있죠?” “아무리 스님들이라 해도 그 요괴는······ 정말 도와주실 거요?” “그럼요.” 중년인은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더니 이내 요괴가 있는 방향을 설명했다. “그럼 부탁하오! 꼭 그 요괴를 퇴치해주시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중년인이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였다. (만두 요괴는, 이 「만두의 길」의 끝에 있다.)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로 이어진 만두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었는지, 이길영은 중간중간 만두를 집어 먹었다. “······이거 맛있다!” 당연하다. 이건 무려 [무림 만두]니까. 그런데 [무림 만두]의 권위자께서는 조금 생각이 다르신 듯했다. ―향이 이상하군. ‘뭐?’ ―만두 하나를 줘 봐라. 나는 아이들을 뒤따르며 만두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 어깨 위의 만두에게 건넸다. 만두가 만두를 맛보는 광경은 무척 그로테스크했다. ―재료 배합이 틀렸다. [무림 만두]에 통달한 녀석은 아닌 것 같군. 무림 만두 [999]는 뭔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이것저것을 명령하기 시작했다. ―저기 녹색 통에 담긴 것을 반 스푼 더 넣어 보아라. 어차피 갈 길이 멀었기 때문에, 나는 녀석의 명령을 따라 만두피에 재료들을 넣어 보았다. ―삼매진화의 불길에 익혀야 한다. 노란 불꽃이 중심에 오도록 찜통을 놓고 가열해라. 어쩌면 이건 꿈인지도 모른다. 내가 만두의 길을 걸으면서 만두에게 만두 제작법을 교습받고 있다니. 그렇게 몽환적인 길을 얼마나 더 걸었을까. 나는 길의 끝에서 먹음직스런 무림만두 한 팩을 얻을 수 있었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999]를 보며, 나는 내가 뭔 짓을 한 건가 싶었다. “아무래도 저기가 도착지인 것 같아요.” 나는 신유승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컨베이어 벨트의 끝에는 거대한 돌담벽과 새로운 거주지로 가는 통로가 있었고, 몇몇 인부들이 포장된 만두를 거주지 안으로 운송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곳이 만두의 소비 지역인 모양이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경비병이 다가왔다. “누구냐?” 그러자 신유승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소승들은 서천 땅으로 부처님을 찾아뵙고 경전을 얻으러 가는 길인데, 우연히 이 길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괜찮다면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혹시 말로만 듣던 ‘당나라 스님 일행’이십니까?” “맞습니다.” 그 대화를 듣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여정을 시작한 게 며칠 전인데 여기까지 우리 소문이 날 턱이 없다. [설화, ‘발보다 빠른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신유승이 내게 속삭였다. “원작에서도 늘 이랬대요.” ······아, 그런 것이었나. [일부 심사위원들이 시나리오 마스터의 고증 능력에 감탄합니다.] [뛰어난 원작 반영으로 가산점 10점이 추가되었습니다!] 원작의 몰개연성을 답습한 것까지 고증으로 치다니······ 놀랍군. 문지기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우리 마을은 외부인들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발걸음하신 수고는 죄송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 켁!” 문지기의 말이 너무 길었던 모양인지, 이길영이 문지기의 배때기를 두들겨 기절시켰다. 이길영이 변명처럼 말했다. “그냥 그 요괴 놈이나 얼른 잡아 해치우자. 수영 누나가 그랬어. 빨리빨리 전개시켜야 관객들이 좋아한다고.” 한수영 그 자식 차암 좋은 것 가르쳤다. [일부 관객들이 삼장 법사의 판단에 만족합니다.] [추가 가산점 1점을 획득하였습니다!] 나는 신유승과 이길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들어가 봅시다.” “아니, 아저씨는 여기 가만히 계세요.” “예?” “여기서 손오공은 버스만 타는 거라니까요.” “하지만······.” “하아······.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진짜.” 신유승이 염주를 쥐며 뭔가를 외기 시작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김독자. 헛짓거리하지말고가만히있심경······.” ······뭐? [삼장 법사가 ‘긴고주(緊箍咒)’를 외웠습니다!] [아이템 ‘긴고아(緊箍兒)’가 반응합니다!] 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기절했다. * ······이게 말로만 듣던 ‘긴고주’인가. 다시 깨어났을 때 신유승과 이길영은 이미 마을 안쪽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옆을 보자 만두 녀석이 나를 비웃듯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 거지? ‘······쫓아가야지.’ 보통이라면 두 아이에게 맡겨 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녀석들은 이제 내 도움이 없어도 충분히 강한 화신들이니까. 하지만, 뭔가 찜찜한 예감이 들었다. (손오공의 예상이 맞다면 이번에 만날 존재는 정해져 있었다.) 무림 만두라면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녀석이 노예를 부려 공장을 돌리고 여자들을 납치하는 악당이 되었다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손오공을 발견했다.) “꺅! 요괴다!” 돌아본 곳엔 몇몇 여인들이 있었다. (손오공의 외양을 본 여인들은 깜짝 놀랐다.) 여인들은 금빛 머리칼 사이로 자라난 내 원숭이 귀를 가리키며 물러섰다. 그러다 내 어깨에 놓인 만두를 발견했는지, 알은체를 했다. “무림 만두를 좋아하나 봐······.” “······그럼 착한 요괴인가?” 대체 왜 그런 논리 회로가 성립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잘 됐다 싶었다. “혹시 납치된 분들이십니까?” 내 질문에 여인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돌아보았다. “······납치? 그런 거 당한 적 없어요.” “하지만 시커먼 돼지를 닮은 요괴 하나가 당신들을 납치했다고 들었는데요.” “돼지? 설마······ 팔계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팔계님? “우리 팔계님 피부가 좀 타시긴 했지. 하지만 새카맣다고 할 정도는······.” “어떤 부분은 돼지를 닮으셨긴 해. 우람한 팔뚝이라든가, 단단한 허벅지라든가. 하지만 돼지와는 다르지······.”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마을의 중심에서 커다란 소란이 일어서, 나는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소란의 주범이 누구인지는 뻔한 일이었다. “멈춰라!”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아이의 목소리. 여인들의 인파 사이로 들어가자, 마을의 광장 중심에 커다란 가마와 그 앞을 가로막은 두 아이가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길영과 신유승이었다. 꼬마 장군처럼 앞으로 나선 이길영이 외쳤다. “네가 바로 마을의 뭇 여인들을 납치하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만두 공장을 만든 요괴렸다!” [일부 관객들이 삼장 법사의 귀여움을 찬양합니다!] [심사위원, ‘석가의 후계’가 가산점 5점을 추가합니다.] ······정말 귀엽다. 저 가마 안에 있는 게 누구든 간에, 저런 대사를 듣고서 아이와 싸울 수는 없을 것······ 아니지, 그놈이라면 또 모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휘장으로 막힌 가마 안에서 무시무시한 격이 휘몰아쳤다. “가마를 내려라.” 가마의 안에서 들려온 무거운 톤의 목소리. 한 마디만으로도 주변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놀라운 힘이 있는 목소리였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아이들의 뒤로 다가갔다. “······위험하니까 뒤에 있으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절 버리고 가시면 그게 더 위험합니다.” 가마의 휘장이 천천히 걷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마 안에서, 문제의 요괴가 등장했다. (손오공은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천봉원수(天蓬元帥) 저팔계.) 신유승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저팔계······ 라고요?” (손오공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가 기억하던 저팔계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순간 이 세계가 가지고 있던 미(美)의 추(錘)가 기우는 느낌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환호성이 쏟아졌다. “오오오오! 저팔계님!” 확실히, 저런 것을 두고 ‘요괴’라고 부른다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저런 외모를 가졌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저명한 화가가 일필휘지로 그린 듯한 눈썹. 조잡한 인간의 각도기로는 감히 잴 수 없을 듯 완벽한 각도로 뻗은 콧선과 턱선. 세상 모든 불행을 모아 그것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깎아 만든 것 같은 눈동자. 저런 외모를 보고 매료되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게 비정상일 것이다. 실제로 마을의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찬사를 퍼붓고 있었다. “저팔계님 만세!” “무림 만두의 창시자시여!” 반쯤 열린 검은색 조끼에, 흑청색 청바지를 입은 저팔계가 가마에서 내리고 있었다. “드디어 승부를 가릴 때가 왔구나! 이 시커먼 놈!” 이길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이길영은 조그만 주먹을 쥐불놀이하듯 휘두르며 저팔계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통할 턱이 없었다. “이것 놔! 이 돼지야!” 이길영의 뒷덜미를 가볍게 잡고 들어 올린 저팔계는 신유승을 슬쩍 일별하고는 이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네놈이 손오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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