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화

427화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다만 아이들을 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들려왔다. [경고합니다! 당신은 <김독자 컴퍼니>의 멤버 중 일부와 조우했습니다!]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혼돈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 [심사위원 ‘돌원숭이의 왕’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냅니다!] [이번 공모전은 볼 만한 게 없군.] 전신에 황금빛이 감도는 미모(美毛)가 자라난 어린 원숭이는 금빛 갈기를 벅벅 긁더니 패널 속의 화면을 보며 하품을 연발했다. 그 꼴을 보던 카우보이 복장의 원숭이가 핀잔을 주었다. [심사위원 ‘천계의 마구간 관리자’가 ‘돌원숭이의 왕’을 질책합니다.] [미후왕(美猴王) 너는 인내심이 없다. 뭐든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한두 개쯤은 괜찮은 게 있는 법인데.] [흥, 필마온(弼馬溫) 네놈은 그 잘난 인내심으로 보름이나 말똥을 치워댄 거냐?] [······여기서는 고상한 이야기만 하고 싶군.] [네놈 취향이야 뻔하지. 어차피 마구간 이야기만 안 나오면 고득점을 줄 테니까.] [그러는 너도 화과산 이야기만 나오면 환장하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 [어이, 제천대성! 넌 어떻게 생각하냐? 볼 만한 거 좀 찾았어?] 그 질문에, 여의봉에 턱을 괸 채 하품을 하던 백금발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올해는 확실히 참신한 게 없긴 하다.] [그렇지.] [예전에는 상상력이 기발한 것들이 더러 있었는데 말이지. 우리가 사실은 죽을 고비를 넘길수록 강해지는 전투 종족이라든가······.] [흠, 확실히 그건 재미있었지. 근데 우릴 인간처럼 묘사한 게 아쉬웠다.] 필마온의 말에 제천대성이 피식 웃었다. [이봐, 너넨 원숭이지만 난 거의 인간이라고.] [······너도 그 설화의 영향으로 변한거잖아.] 미후왕, 필마온, 그리고 제천대성. 이들은 ‘손오공’이라는 하나의 진명을 이루는 손오공의 다른 설화체들이었다. 처음에는 하나의 존재였지만, 각기 다른 분기의 설화들이 발달하면서 인격이 쪼개진 것이다. [페이후 녀석 성장세가 굉장한데······ 이번에 잘하면 새로운 ‘손오공’이 나올 수도 있겠어.] [수천 년 동안 없었던 일인데 퍽이나 그러겠다.] 널따란 심사위원실에 모인 세 명의 손오공은 패널 너머로 흘러가는 ‘서유기 리메이크’의 설화들을 감상했다. 지루한 것도 있었고, 흥미로운 것도 있었다. 개중 낯선 것에는 ‘좋아요’를 눌러주고, 평점을 매기기도 하며 세 존재는 왁자지껄 떠들었다. 미후왕이 물었다. [제천대성,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걔넨 어떻게 됐냐?] [누구.] [왜, 네가 도와달라 해서 나랑 필마온이랑 힘 빌려줬잖아.] [아, ‘성마대전’? 잘 해결됐지. 근데 거기 대표가 행방불명됐어.] 그 말에 필마온이 비꼬았다. [네가 졸졸 쫓아다녔지만 결국 배후성으로 안 골라준 그놈 말인가?] [······졸졸 쫓아다니진 않았다. 놈의 간청에 한 두 번 응답해줬을 뿐.] [그런 것치곤 몇 가닥 없는 머리털도 주던데.] [닥쳐라.] 제천대성이 여의봉으로 거칠게 귀를 파내며 말을 돌렸다. [근데 투전승불(鬪戰勝佛) 그놈은 아직 안 왔나? 손오공 다 모이는 자린데 왜 그놈만 없어?] [그 샌님이야 늘 늦잖아.] [팔계랑 오정은?] [천궁 쪽이랑 접선하러 갔다.] [······옥황 녀석, 이번에도 심사에 개입할 셈인가?] [우리 의견만 안 흩어지면 그쪽이 간섭해도 소용 없어.] [우리 의견이 모인 적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심사위원실 문이 열리며 저팔계와 사오정이 등장했다. [저, 형님들. 윗선에서 슬슬 올해의 유력 후보작을 발표하셔야 한다고······.] [닥쳐, 지금 보고 있잖아.] 미후왕의 위협에 저팔계와 사오정이 찔끔 놀라며 물러섰다. 제천대성이 물었다. [그런데 너희 뒤에 선 아낙은 누구냐?]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심사위원입니다. 석존의 후계자라는군요.] [······석가에게 후계가 있었나?] 누군가 차분한 발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고운 법의와 작은 관을 쓴 여인을 본 순간, 제천대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낌새를 눈치 챈 필마온이 물었다. [아는 얼굴인가?] 제천대성은 대답하지 않은 채 가만히 여인의 얼굴만을 볼 뿐이었다. 여인은 손오공들을 마주보는 대신, 테이블을 가로질러 설화들이 재생되는 패널을 향했다. 필마온이 턱짓을 하며 말했다. [마침 잘 됐군. 신입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거기 석존의 후계는 어떤 설화가 마음에 드는가?] 바삐 흔들리던 여인의 법의가 마침내 한 자리에 멈춰 섰다. 석존의 후계자는 고요한 눈으로 화면 속의 이야기를 보고 있었다. 천천히 뻗은 하얀 손끝이 화면에 닿자, 그리움처럼 화면에 물결이 번졌다. [저는 이 설화가 마음에 드는군요.] * 「알 고 있 었 잖 아 김 독 자」 [제4의 벽]의 말이 맞았다. 어쩌면,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 설화방의 인물들이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일지도 모른다고. [혹부리 왕과의 약속이 위험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럼에도 나는 이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어깨 위에 앉은 [999]가 나를 향해 속삭였다. 단지 아이들을 만난 것만으로, 내 화신체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약속 조건이 위태로워져 이계의 신격으로의 변이가 가속화됩니다.] ‘아직 약속 안 어겼어. 엄밀히 따지면 계약 내용은 [김독자 컴퍼니에게 내 정체를 드러내지 말 것]이잖아.’ ―그들이 알게 되는 순간 모든 게 끝장이다.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마.’ [이계의 신격화 진행률 : 3%] 아마 저 진행률을 다 채우게 되면, 나는 ‘은밀한 모략가’처럼 이계의 신격이 되고 말겠지. 그 전에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되니까, 솔직히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도란도란 내 앞에서 걸어가는 저 아이들을 보는 것이 좋았다. [소수의 관객들이 삼장이 어떻게 두 명일 수 있냐며 항의합니다.] 흘러나오는 메시지를 들으며, 나는 앞서가는 아이들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더니, 예전보다 부쩍 커진 키를 보니 새삼 실감이 났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것도 무척 오래되었다. 나는 이길영이나 신유승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시나리오 마스터의 말대로다. 나는 이 아이들을 멋대로 구해 놓고, 그 뒤는 책임지지 않은 채 내버려 두었다. 한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아이들은 줄곧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 구원의 마왕.” “예.” ······그러니 이것은 내가 받는 필벌인 셈이다. 지켜보던 신유승이 한마디했다. “모르는 사람한테 반말하지 마.” “수영 누나가 이렇게 하라고 했거든?” “그래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지.” 역시 내 화신이다.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훑어보던 신유승이 [성운 채팅]으로 이길영에게 귓속말을 했다. 물론, 같은 성운 소속인 나는 그 메시지를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이래야 우릴 믿는다고 멍청아. 쟤가 깽판치면 어쩌려고 그래? 소름이 돋았다. ―······넌 저런 게 무섭냐? 저놈 꼴을 보라고. 실제로 지금 나는 <황제>에서 판매하는 [제천대성 아바타 세트]를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려 500년이나 된 기본 복장을 입고 있었다. 신유승은 내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며 공손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좌님.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보다 두 분을 어떻게 호칭하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이길영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나는 현(玄) 법사. 그리고 이 녀석은 장(奘) 법사다. 앞으로 그렇게 부르거라.” 마치 게임이라도 하듯 장난스러운 목소리였다. 이길영은 현 법사. 그리고 신유승은 장 법사인가. 설마 현장(玄奘) 법사의 이름을 둘로 쪼개어 가질 줄이야. 정말 귀여운 발상이었다. [일부 관객들이 두 삼장이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심사위원들이 ‘두 명의 삼장’ 설정에 흥미를 느낍니다.] [가산점 4점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설정에 취해 있는 이길영이 자신에 대해 떠들어대는 사이, 신유승이 귓속말을 속삭였다. “이상한 설정들이 많아서 좀 당황하셨죠? 죄송해요. 저희 쪽 시나리오 마스터가 좀 괴짜셔서······.” “아닙니다.” 시나리오 마스터가 누군지는 짐작이 갔다. 이런 막 나가는 스토리를 짤 만한 녀석은 <김독자 컴퍼니>에 하나뿐이니까. “그치만 걱정마세요. 저희가 잘 돌봐드릴게요. 성좌님은 그냥 잘 따라오시면서 버스만 타시면 돼요.” 그 친절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아이들을 위로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챙겨지고 있다니.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손오공은 이번 생에도 삼장을 지킬 것을 결심했다.) 맞다. 나는 이 아이들을 지킬 것이다. 지금까진 제 역할을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부터는― “쿠구구구구구구!” 어디선가 들려온 폭음. 나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쿠드드드드드!” 폭음도 폭음이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분명 뭔가가 터지는 소리인데, 왜 누가 입으로 외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잽싸게 내 곁으로 다가온 신유승이 속삭였다. “당황하지 마세요. 원작 설정을 반영한 거예요.” “······예?” “원작에서는 의성어들을 전부 큰따옴표에 묶어서 표기했대요.” [일부 심사위원들이 뜻밖의 원작 반영에 감탄합니다!] [가산점 10점이 추가되었습니다!] 아니, 이건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만 나오는 실수인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원작 고증에 당황할 틈도 없이, 나는 아이들을 뒤로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보아하니 폭음은 전방에 드리워진 거대한 협곡으로부터 나는 소리였다. (손오공은 눈앞에 드리워진 사반산(蛇盤山) 응수간(膺愁澗) 협곡을 응시했다. 이미 인생 2회차인 손오공은, 저 협곡에서 나올 존재가 뭔지 알고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서유기 원작에서 일행이 두 번째로 조우하는 것은······. (서해 용왕 오윤의 셋째 태자 옥룡.) ······맞다. 바로 그놈이다. 그리고 그놈이 바로. (녀석은 삼장법사의 백마로 환생할 존재였다.) 내레이션이 다 해주니 따로 할 말이 없군. 나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어딘가 숨어 계십시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플레이어 중에는 ‘삼장법사의 백마’ 역할을 맡은 이가 있었다. 아마 그가 바로 이 사태의 원흉이겠지. 아이들이 이 설화방에 참여한 걸로 봐서 나머지 사람들도 대부분 <김독자 컴퍼니>겠지만, 혹시나 이들에게 악의를 가진 존재가 끼어 있다면······. “······그냥 버스만 타시라고요.” 작지만 강한 악력이 느껴지는 손이 내 어깨를 잡았다. 뒤를 돌아보자 신유승이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옷도 제대로 안 걸친 게. 뒤로 빠져!” 주먹 관절을 꺾은 이길영도 앞으로 나섰다. 나는 다급히 아이들을 쫓으려 했으나, 이미 협곡을 향해 달려간 아이들이 날아오른 청룡과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쿠콰콰콰콰콰콰!” 이길영이 입으로 의성어를 내뱉으며 달려들자, 협곡에서 뛰쳐나온 청룡이 마주 울부짖었다. 나는 그 용이 누군지 바로 깨달았다. ······키메라 드래곤? 아이들은 허공에서 청룡과 춤을 추듯 사투를 벌였고, [길들이기]를 사용해 순식간에 용을 제압했다. [관객들이 꼬마 삼장의 무위에 감탄합니다!] [소수의 관객들이 삼장이 너무 강한 거 아니냐며 항의합니다.] [일부 심사위원이 뜻밖의 전개에 놀랍니다!] 그리고 잠시 후. [‘플레이어6’님께서 일행에 합류하였습니다!] 현장의 백마로 화한 키메라 드래곤이 낑낑거리며 아이들에게 끌려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 해결된 사건을 보며, 나는 시나리오 마스터와 나눴던 말을 떠올렸다. ―은퇴한 손오공이 뭘 한단 거죠? ―아무것도 안 해. 이제야,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애초에 이렇게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익숙한 성좌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심사위원, ‘긴고아의 죄수’가 설화의 전개에 흥미를 갖습니다.] [가산점 10점이 추가되었습니다.] *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나는 조금씩 이 설화방의 정체를 깨달아가고 있었다. “메뚜기다. 먹어라.” “구원의 마왕님. 혹시 다리 아프신가요?” 「이 설화는 ‘손오공을 위한 설화’다.」 (손오공은 편안했다.) 지금껏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래, 이렇게까지 한가한 적은 처음이었다. 뇌가 안락함에 절어 마비되는 느낌이다. [당신에게 새로운 설화가 발아합니다!] [설화, ‘손 안 대고 코풀기’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한수영이 왜 이런 시나리오를 짠 것인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심사위원, ‘긴고아의 죄수’가 이 전개를 좋아합니다.] ‘서유기’는 손오공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였다. 심지어 이후에 변주된 이야기들도 대개 구성이 비슷했다. 그런데 만약, ‘손오공을 위로하는 설화’가 나타난다면 어떨까. [심사위원, ‘긴고아의 죄수’가 당신을 부러워합니다.] [심사위원, ‘천계의 마구간 관리자’가 당신을 부러워합니다.] [득표수 : 312] 역시 한수영이 인기 작가가 맞긴 한 모양이었다. 설화의 득표수는 벌써 300개를 넘어서며 순조로운 항해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런 전개는 일행들에게도 나쁠 것이 없었다. 명목상의 주인공은 손오공이지만, 실제 전투는 다른 일행들이 도맡으니 최종적인 설화 지분은 자연히 <김독자 컴퍼니>의 것이 될 터. 득표수도 얻고 설화 지분도 챙기고, 참으로 치밀한 설계가 아닐 수 없다. “아, 폰게임 하고 싶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많이 했잖아.” 아이들은 티격태격하면서도 나를 먹이고, 재우고, 심지어는 내 머리털을 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이길영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넌 원래 뭐하는 놈이냐?” “사생활 묻는 건 실례잖아 멍청아.” 마찬가지로 곁에서 내 새치를 뽑던 신유승이 태클을 걸었다. 나는 이런 메타적인 대화가 허용이 될지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말해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으니까. “저는 그냥 소설 읽는 걸 좋아합니다.” “소설? 오, 나도 좋아하는데.” 이길영이 소설 읽는 걸 좋아한다고? 이건 의외의 정보였다. 신이 난 이길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하나 추천해줄까?” 장르 독자 경력 10년이 넘는 내게 감히 추천을 하다니, 어디 들어나 보자. “[SSSSS급 무한회귀자]. 개꿀잼이니까 꼭 읽어라.” 나도 모르게 제2의 자아가 튀어나왔다. “그건 희대의 망작입니다만.” “망작? 그거 인기 많았다던데. 보는 눈이 없네~” 한수영 이 자식, 애들한테 자기 소설을 자랑한 건가.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신유승도 끼어들었다. “저도 소설 좋아해요!” “그러십니까? 어떤 소설을 좋아하시죠?” 나는 조금 기대했다. 그래, 유승이라면― “네! 레,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 ······어디서 많이 듣던 작가 라인업. 내가 없는 사이 아이들 교육을 누가 담당했는지 알 것 같았다. 유상아 씨, 지금쯤이면 무사히 환생했겠지. 내 어깨의 만두를 본 신유승이 물었다. “그런데 무림 만두를 좋아하시나 봐요?” “예, 좋아합니다.” “······제가 아는 아저씨도 그거 무척 좋아하는데.” 누가 그걸 좋아하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이길영도 배를 만지며 중얼거렸다. “아, 만두 먹고 싶다.” 어깨에 얹혀 있던 무림 만두가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가 너무 오래됐다. (그러자 갑자기, 어디선가 만두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서유기의 사건들 중 대부분은 이렇듯 ‘갑자기’ 시작된다. 우리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이 환상적인 냄새의 진원지를 따라갔다. 그렇게 오솔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 눈앞에는 거대한 공장 단지가 나타났다. “······이 시대에 이런 게 있을리가?” 한수영의 서유기는 스팀 펑크 세계관인 건가 하고 생각할 찰나, 공장 단지 안에서 몇 명의 인파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으으, 모두 달아나!” 그러나 달아나던 무리들은 전부 무형의 힘에 이끌리듯 붙잡혀 공장으로 되돌아갔다. “안돼에에에에!” 저게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 우리는 공장 인근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수천 명에 이르는 노예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붙어 뭔가를 조물딱거리며 만드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저거 설마······.” 내 어깨 위의 만두 [999]가 말했다. ―[무림 만두]로군. 수천 개의 무림 만두가 컨테이너 벨트 위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하염없이 흘러가는 만두의 강을 보며, 이번에 우리가 만날 인물에 관해 생각했다. (‘서유기’에서 이렇게 먹을 것을 탐하는 인물은 하나뿐이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우리에게 말을 건 사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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