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40화
아쉽게도, 6층에 유중혁은 없었다.
그나마 6층의 영화가 쉬운 편이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대표적인 반전 스릴러 영화였는데, 애초에 범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놈을 죽이는 것으로 빠른 클리어가 가능했다.
[극장 주인이 바뀐 영화의 엔딩에 만족합니다.]
[출연료로 5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이지혜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진짜 그놈이 범인이었어?”
“스포일러니까 말하지 마. 여기 안 본 사람 있을 수도 있잖아.”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스포일러를 싫어합니다.]
아무튼, 영화의 특징 때문인지 보상으로 나온 아이템도 특이했다.
[‘스킬북 : 냉철한 관찰력’을 얻었습니다.]
냉철한 관찰력. 꽤 쓸만한 스킬이 나왔다.
이 스킬은 대상의 움직임을 보고 해당 인물의 종합 능력치를 어림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등장인물 일람]을 쓸 수 있는 대상에게는 별 의미가 없지만, 유상아나 이길영처럼 [등장인물 일람]이 작동하지 않는 인물들에게는 꽤나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연기력이 좋은 범인을 단번에 특정해서 이런 스킬을 얻은 게 아닐까 싶었다.
[전용 스킬, ‘냉철한 관찰력’을 획득합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마음은 있었다. 뭔가 검투사라든가, 하여간 그런 소재의 영화가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내겐 아직 마땅한 전투 패시브 스킬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코인으로 [무기 연마] 같은 스킬을 구매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와 그 정도 등급의 스킬에 코인을 쓰기엔 아까웠다.
“···이제 영화는 지긋지긋해요.”
정희원의 말에 정확히 동감한다.
나도 당분간 영화관은 쳐다도 보기 싫을 지경이니까.
출연료라도 많이 받은 걸로 만족해야겠지.
우리는 곧바로 일곱 번째 층으로 올라갔다. 이번에야말로 유중혁이 뒤통수를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젠장. 7층의 포스터도 대부분 찢어져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유중혁은 보스 방에 있다는 얘기.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이제 정말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달리죠. 곧 마지막 층입니다.”
우리는 뛰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녀석을 따라잡아야 한다.
놈이 이성을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기 전에, 어서.
상영관들을 지나쳐서 통로를 내달렸다. 7층의 포스터들은 역대 한국의 흥행 영화들을 일렬로 붙여 놓은 것이었다.
제발, 제발 모두 다 찢어져 있어라······.
그러나 이번에도 희망과는 달리, 마지막 포스터가 살아있었다.
“망할······.”
[해당 층의 상영이 시작됩니다.]
청색 스포트라이트가 일행을 덮음과 동시에, 장면이 바뀌었다. 한바탕 화면이 어지럽게 변한다 싶더니, 코끝에 짠내가 불어왔다.
다시 무대는 바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람선이 아니었다.
매캐한 포연의 냄새. 판옥선의 까칠한 감촉.
흔들리는 뱃전에서 고개를 든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엎드려라―!”
반사적으로 자리에 엎드린 순간, 총탄 세례가 주변을 헤집었다. 투탕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몇몇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함선을 물려라―!”
옛 조선 수군의 복장을 한 병사들이 주변에서 황급히 포를 준비하고 있었다. 불안한 전란의 바람이 솜털을 일으켰다. 휘몰아치는 울돌목(鬱陶項)의 소용돌이와, 멀리서 다가오는 해전의 북소리.
빌어먹을.
이건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영화였다.
왜냐하면, 현시점에서 이 영화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관람한 영화니까.
어느새 다가온 정희원이 수평선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거······ 어떻게 이기죠?”
‘극장 던전’의 엔딩은 ‘사이다’를 향해 나아가야만 열린다.
쿠구구구구구!
바다를 까맣게 메운, 330척의 왜선(倭船)들.
나는 황급히 우리 쪽 전력을 확인했다. 그래도, 이건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만든 영화니까 희망은 있겠······지?
“······뭐야 이거?”
분명 열두 척이 남아 있어야 할 판옥선이, 한 대밖에 없었다. 나는 황급히 주변의 수군을 붙잡고 물었다.
“통제공은 어디 계십니까?”
“통···제공?”
“이순신 장군님 말입니다!”
수군은 전혀 모르겠다는 투였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뭔가, 내가 아는 영화랑은 다르다.
‘극장 주인’ 놈이 이야기를 바꾼 것이다.
어느새 적군과의 거리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충무공의 도움 없이, ‘명량 해전’을 이기라고?
나는 주변을 둘러 보며 다급히 외쳤다.
“이지혜!”
*
혹시나 이런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 실제로 내가 이지혜를 데려온 것도, 단순히 전력으로 활용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만약의 만약’을 고려한 것이었으니까.
[성좌, ‘해상전신’이 화신 ‘이지혜’를 딱하게 생각합니다.]
이지혜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배는 한 척뿐이었고, 충무공의 메시지가 들려오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으으, 으, 으으······.”
그녀는 1층 갑판 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구역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야, 괜찮냐?”
눈가가 흠뻑 젖은 이지혜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못해, 모, 못한다고!”
그건 나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성좌, ‘해상전신’이 화신 ‘이지혜’를 독려합니다.]
“절대, 절대 안 나가! 우웁······!”
다시 한 번 이어지는 헛구역질.
나는 알고 있다. 바다를 싫어하고, 그다지 정의롭지도 않은 이 애가, 충무공의 선택을 받은 이유를.
[전용 특성의 효과로 읽은 책에 대한 기억력이 상승합니다.]
머릿속에서 ‘멸살법’의 페이지가 넘어갔다. ‘멸살법’의 40편쯤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야, 근데 넌 바다도 무서워하는 애가 어떻게 충무공의 선택을 받았냐?”
“나도 잘 몰라. 음······ 내 선조 중에 장군님이 있으셨다는데, 그 때문인가?”
“······설마 너 충무공의 후손인거야?”」
멸살법 40편까지는 나 말고도 몇몇 독자들이 있었고, 때문에 그 부분을 연재했을 당시 상당한 비난이 일었었다.
아니, 우리 위대하신 충무공께서 고작 혈연에 연연하셨다는 게 말이 되냐?
하지만 멸살법의 에필로그를 제외한 모든 편수를 다 읽은 나는 안다.
이지혜는, 충무공의 핏줄이 아니다.
[성좌, ‘해상전신’이 화신 ‘이지혜’를 보며 오래된 전우를 그리워합니다.]
「“그럼 너도 덕수 이씨겠네?”
“아니, 나 전주 이씨인데.”」
[성좌, ‘해상전신’이 오래된 전우의 후손을 바라봅니다.]
이지혜는 충무공의 전우였던, 전라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의 후손이었다.
의민공(毅愍公) 이억기(李億祺).
충무공과 함께 당항포·한산도 대첩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충무공이 억울한 죄목으로 조정에 잡혀갔을 때 이순신을 변호해준 몇 안 되는 전우. 그러나 충분한 신화화가 이루어지지 못해, 위인급 성좌는 되지 못한 인물.
[성좌, ‘해상전신’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지혜를 바라봅니다.]
그 때문에, 충무공은 이지혜에게 깃들었다.
자신의 후손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줬던 친우의 후손에게. 어쩌면 그야말로 충무공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 충무공은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비호해준 친우의 후손이, 소중한 친구를 제 손으로 죽이며 악귀가 되어가는 모습을.
뭐······ 어디까지나 멸살법의 설정에 따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현상금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
<현상금 시나리오 ―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
분류 : 서브
난이도 : B+
클리어 조건 : ‘해상전신’이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충무공의 화신 ‘이지혜’를 독려하여 <명량 해전>을 승리로 이끄십시오.
제한시간 : 2시간
보상 : 충무공의 성흔 중 하나.
실패시 : ―
+
메시지를 읽는 순간 눈을 의심했다.
현상금 시나리오를 위인급 성좌가 혼자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보니, 역시 걸려 있는 보상이 남달랐다.
···충무공의 성흔?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 나는 <배후 계약>을 하지 않고도 충무공의 성흔을 쓸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지혜를 흔들었다.
“이지혜, 그만 일어나. 얼른.”
“싫어! 우욱······. 셋이 알아서 해결해!”
“조금만 견디면 안 되겠냐?”
“······견뎌? 아저씨는 몰라.”
모른다······.
그래, 그게 네 말버릇이지.
하지만 어리광을 일일이 받아줄 시간은 없다.
“아니, 알아. 너 뱃멀미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
“······뭐?”
“죽은 네 친구가 이 영화 좋아했잖아.”
정통으로 턱을 얻어맞은 복서처럼, 이지혜의 턱이 덜덜 떨렸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스쳐갈 장면은 뻔했다.
태풍여고의 첫 번째 시나리오.
손으로 친구를 목 졸라 죽이는, 자신의 모습.
“그, 그걸.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아는지는 묻지 마. 그딴 거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이지혜가 멍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살겠다고 자기 손으로 친구를 죽여놓고, 결국은 여기서 이렇게 죽을 거냐?”
퍼거걱! 하는 소리와 함께 1층 갑판이 꿰뚫리며 갈고리가 들어왔다. 이지혜를 향해 쏘아진 그 갈고리를, 나는 맨손으로 잡아챘다. 부들부들 떠는 이지혜가 나를 보았다.
“여기서 네가 도망치든, 도망치지 않든. 너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와아아― 하는 함성 소리. 바깥에서 왜구들이 넘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네가 일어나면, 적어도 몇몇 사람들은 살릴 수 있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지혜를 두고 2층 갑판으로 나왔다.
이미 이길영과 정희원은 왜군 속에 포위되어 있었다.
나는 무기를 빼 들었다.
적은 평범한 왜군들이다. 그러니 일대일이라면 질 리가 만무했다.
문제는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지만.
“끄아아악!”
달려드는 왜구를 베고, 또 베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포화를 쏘아 올리는 적군의 함선들이 보였다.
이 배가 침몰하면 우리는 끝장이다.
이 영화의 엔딩은 비극으로 끝나고, 우리는 이곳에서 죽는다.
“이지혜!”
성웅의 위대함을 알겠다.
어떻게, 그는 이런 전투를 승리로 이끈 걸까.
“이제 그만 정신 차려!”
이것은 저주받은 시나리오다.
녹도만호 송여종도, 평산포대장 정응두도 없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충무공의 비호를 받는 나약한 소녀뿐이다.
그 소녀가 비틀거리며 2층 갑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난, 나는 역겨워. 나는······ 나는 살아있을 자격이······.”
그래, 역겹다. 너는.
그리고 그런 널 이용하는 나도.
“자격 같은 건 아무한테도 없어.”
“아, 아으아······.”
이지혜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헤라클레스의 방패]로 포화를 받아내며, 그녀를 등지고 섰다.
쾅! 콰앙! 콰아앙!
“살아남았으면 책임을 져! 평생을 속죄하든, 아니면 쓰레기 같은 삶을 지속하든. 어떻게든 계속 살아남아!”
무차별로 날아든 포탄 세례에 선체 곳곳이 부서졌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아니면 너, 정말로 여기서 죽고 싶은 거냐?”
[등장인물 ‘이지혜’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상당합니다.]
울음을 닦는 이지혜에게서 온갖 종류의 감정이 전해졌다. 울분, 자기멸시, 세상에 대한 환멸이 똘똘 뭉친 어두운 감정. 그럼에도 그 감정 속에서 자라난, 솔직한 한 마디가 있었다.
「죽기 싫어.」
성좌들은 제멋대로다. 화신이 청한다고 해서 반드시 후원을 주지도 않고, 화신이 죽어 나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놈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 어떤 성좌라도 자기 ‘신화’의 무대가 되는 장소에서만큼은, 화신을 외면하지 않는다.
[성좌, ‘해상전신’이 화신 ‘이지혜’의 의지에 반응합니다.]
눈부신 빛살과 함께, 이지혜의 몸에서 붉은 아우라가 터져 나왔다.
유중혁 자식한테 좋은 꼴이 됐지만, 뭐 어쩔 수 없다.
나도 얻는 건 있으니까.
[등장인물 ‘이지혜’가 새로운 ‘성흔’을 획득하였습니다.]
상처받은 검귀, 이지혜의 세 번째 ‘성흔’.
훗날 그녀를 해상제독으로 만들, 최강의 성흔이 발현되고 있었다.
“······신에게는.”
칼자루를 쥔 이지혜는 바다를 보았다. 적은 많았고, 아군은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세상을 향해 검을 뽑았다.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았으니.”
눈부신 빛살이, 그녀의 검 끝에서 갈라져 나왔다.
[등장인물 ‘이지혜’가 성흔 ‘유령 함대 Lv.1’를 발동합니다!]
고오오오, 하는 떨림과 함께 인근 해역 전체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해역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물줄기와 함께, 바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열두 척의 유령 함선들.
“이 원수를 갚을 수 있다면.”
당황한 왜선들이 북을 울렸다. 쏘아진 포탄들이 유령 함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명징한 실체가 없는 유령 함대는, 적군의 공격에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이곳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라.”
마침내 이지혜의 함대가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무수한 포화의 격랑을 꿰뚫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열두 척의 배. 하얗게 타오른 포신이 발포를 개시하자, 앞길을 막고 있던 왜선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콰콰콰콰콰!
울지 않는 소녀가 전장을 지휘했다.
무지막지한 유령 함대의 위세 앞에, 왜선들은 완전히 압도당했다. 나뿐만 아니라 정희원도, 이길영도 살짝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것이 진짜 ‘성흔’의 힘이다.
해상전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충무공의 힘인 것이다.
저무는 노을 속에서, 왜구들의 비명이 포연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울돌목의 소용돌이가 피로 물든 왜구들의 시신을 빨아들였다. 궤멸 된 적군의 마지막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그로부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극장 주인이 바뀐 엔딩에 만족하였습니다.]
[네 번째 ‘Ending credit’에 도달했습니다.]
[출연자 : 김독자, 정희원, 이지혜, 이길영]
[출연료로 각각 5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엔딩 크레딧의 보상을 받자마자, 이어서 추가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상금 시나리오를 클리어 하였습니다.]
[현상금 시나리오의 보상으로 ‘해상전신’의 성흔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조금 기대했다.
어쩌면 ‘유령 함대’를 줄 수도 있는 거니까.
그것만 얻을 수 있다면, 해상전이 벌어져도 이지혜가 부럽지 않다.
[성흔, ‘칼의 노래’를 습득하였습니다.]
들려온 메시지에, 나는 순간 뭔가를 잘못 들었나 싶었다.
성흔 「칼의 노래」.
이 성흔은 본래, 이지혜가 이야기의 중반부를 넘어서야 습득하게 되는 성흔이었다. 그런데 그런 성흔을 충무공은 내게 준 것이다.
[성좌, ‘해상전신’이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령 함대’ 보다도 당장의 내게 필요한 스킬.
이 성흔이 있다면, 8층에서 정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 해도 해 볼 만 할지도 모른다.
주변의 정경이 천천히 뒤바뀌며, 우리는 영화관의 내부로 돌아왔다. 탈진한 이지혜가 나를 보고 있었다.
“아저씨.”
“넌 여기서 조금 쉬다가 올라와. 유중혁은 우리가 구할 테니까.”
“하지만...”
“말 들어.”
새로운 성흔을 얻었지만, 좋다고 헤벌쭉 웃을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좋은 성흔을 얻어도 이 ‘세계’가 끝나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 ‘끝’을 막기 위해 나는 유중혁을 살려야만 한다.
나는 아껴두었던 종합 능력치 앰플을 모두 들이켰다. 능력치 레벨을 올릴 때는 10레벨 단위로 코인 소모량이 올라가기 때문에, 일단 코인을 먼저 쓴 후 가성비를 고려해 앰플을 사용했다.
[총 4000코인을 소모했습니다.]
[종합 능력치 강화 앰플을 사용하였습니다.]
[체력 Lv.18 -> 체력 Lv.24]
[근력 Lv.18 -> 근력 Lv.24]
[민첩 Lv.11 -> 민첩 Lv.20]
[마력 Lv.10 -> 마력 Lv.15]
[모든 종합 능력치가 크게 증가합니다!]
우리는 마지막 계단을 올라갔다.
“모두 준비하세요.”
[지상 8층, ‘하늘 정원’에 진입했습니다.]
극장의 8층은 옥상이었다. 불투명한 돔으로 둥글게 둘러싸인, 마치 오페라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작은 돔. 초록빛 잔디가 깔린 옥상에 발을 내딛자마자 보인 것은, 내가 그토록 찾아왔던 회귀자 녀석의 뒷모습이었다.
아······.
저놈 살리겠다고 지난 시간 동안 죽어라 고생했던 걸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 분노가 치솟았다.
다행히, 놈의 뒤통수는 내가 때려줄 수 있을 정도로 멀쩡했다.
“야, 유중혁!”
나는 그대로 유중혁을 향해 달려가 놈의 뒤통수를 내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