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화
도깨비가 사라진 후,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몇몇 사람들은 열차 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몇몇 사람들은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유상아는 그들 중 후자였다.
“경찰, 경찰이 전활 안 받아요! 어떡해요, 어떡해…….”
“진정해요. 유상아 씨.”
나는 초점이 없는 유상아의 동공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유상아 씨. 개발팀에서 이번에 만든 게임 해본 적 있죠? 그 왜, 세계가 모조리 멸망하고 소수의 사람만 살아남는 게임.”
“네? 갑자기 무슨…….”
“이렇게 생각하세요. 지금 그 게임 속에 들어왔다고.”
유상아가 멍하니 입술을 달싹였다.
“게임…….”
“간단해요. 모든 게임에는 규칙이 있잖아요. 그걸 따라가면 돼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 역시 천천히 호흡을 다스렸다.
내게도 이 모든 일을 제대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소설 속에서만 존재했던 묘사들이 지금 내 눈앞에서 사생(寫生)되고 있었다.
「안테나를 뻗은 도깨비.」
「객실 내에 쓰레기처럼 널려 있는 시체들.」
「피투성이가 된 채 떨고 있는 직장인.」
「노약자석에서 기도하는 할머니.」
나는 그 장면 하나하나를 유심히 보았다. 실재(實在)를 의심하는 매트릭스 속 네오라도 된 것처럼. 관찰하고, 의심하고, 결국엔 납득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틀림없었다.
‘멸살법’은 현실이 되었다.
생각하자. 이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자, 여러분! 다들 진정하시고. 침착하게 심호흡부터 하세요.”
누군가가 앞으로 나선 것은 도깨비가 사라진 후 정확히 5분이 지나던 시점이었다.
“진정들 되셨습니까? 다들 하던 행동 멈춰 주시고, 잠시만 저한테 주목해 주십시오.”
짧은 투블럭 컷으로 깎은 머리. 평균 키보다 머리 하나쯤은 더 큰 건장한 사내의 말에, 흐느끼거나 통화를 하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죽였다. 모두의 시선이 충분히 모였을 즈음, 투블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국가 재난 상황에서는 작은 소란이 큰 인명 피해로 번질 수 있습니다. 현 상황은 지금부터 제가 통제하도록 하겠습니다.”
“뭐야, 당신 누군데!”
“국가 재난 상황? 뭔 개소리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몇몇 사람들이 ‘통제’라는 말에 강하게 저항하며 일어섰다. 그러자 청년이 지갑 속에서 공무원증을 꺼내 보였다.
“저는 현재 6502부대에서 근무 중인 육군 중위입니다.”
그 말에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쳤다. “군인, 군인이래.” 그러나 안도하기엔 일렀다.
“조금 전, 부대에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군인의 스마트폰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마침 근처에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1급 국가 재난 상황 발생. 전 병력은 신속히 부대로 집결.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국가 재난 상황.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나는 놀라지 않았다. 사실 내가 놀란 것은 다른 쪽이었다.
육군 중위 이현성.
그 ‘이현성’이 바로 이 사람이구나.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실제로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의 이름 하나는 머릿속에 또렷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멸살법의 주요 조연 중 하나였다.
「강철검제 이현성.」
결국 소설 속의 인물까지 등장했다. 이젠 정말 사태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군인 양반!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야?”
“저도 부대랑 연락을 취해보고는 있습니다만…….”
“청와대는! 청와대는 뭘 하는 거야! 대통령한테 빨리 연락해!”
“죄송합니다만 저는 말단 군인이라 청와대 핫라인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근데 무슨 통제를 한다는 거야!”
“모두 시민 여러분들의 안전을 위해서…….”
황당한 질문 세례에도 침착하게 응대하는 이현성을 보며, 나는 소설 속의 묘사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이현성이 원래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인물이었나?
퍼뜩 스쳐 간 의문과 함께 꺼림칙한 예감이 들었다. 멸살법의 유일한 독자인 내가 장담하건대, 이현성의 첫 등장은 결코 이런 식이 아니었다.
그가 작중에 등장하는 시점은 적어도 첫 번째 시나리오가 끝난 후의 일이다.
……그럼 이 상황은 뭐지?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다시 한 번 ‘멸살법’을 읽을 수 있다면 더 명확히 알 수 있을 텐데.
“국무총리 연설 떴어요! 진짜 1급 국가 재난 상황이래요!”
누군가의 외침에 너도나도 자신의 스마트폰을 켰다. 유상아가 내 쪽으로 화면을 돌려주었다.
“……독자 씨, 이것 좀 봐요.”
딱히 검색어를 입력할 필요도 없었다. 포털 사이트의 실검 1위가 ‘국무총리 연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 영상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불특정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연설의 내용은 간단했다. 현 정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테러범들과 맞서 싸울 것이며, 협상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은 안심하고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기 바란다…….
소설로 읽을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실제로 저 대사를 듣게 되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테러라……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편리하긴 하겠지.
“근데 대통령은 어디가고 국무총리가 연설을 한대?”
“대통령이 이미 당했다는데요.”
“뭐? 진짜?”
“확실한 건 아니고, 네이버 댓글에―”
“그럼 카더라잖아!”
물론 나는 그게 카더라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와아악! 뭐야!”
곳곳에서 들려온 총성에 사람들이 폰을 떨어트렸다. 총성의 발원지는 스마트폰 속이었다. 치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핏빛으로 물든 화면. 사람들은 잠시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닫고 숨을 삼켰다.
“구, 국무총리가…….”
국무총리가 죽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머리가 터지면서.
몇 번인가 총소리 같은 게 들리고 곧 화면 속은 잠잠해졌다. 뒤이어 화면에 등장한 것은 도깨비였다.
[여러분, 제가 말했잖아요. 이건 ‘테러’ 같은 장난이 아니라고.]
말을 잃은 사람들이 멍청한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아직도 못 알아들은 모양이죠? 안 되겠네. 지금도 이 상황이 게임처럼 느껴지나 봐요?]
너무나 여유로운 톤이라 오히려 불길하게 느껴지는 말투.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하하, 자료 조사에 의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게임에 능하다던데, 그럼 어디 난이도를 좀 올려 볼까?]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거대한 타이머가 떠올랐다. 동시에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는 시간.
[잔여 시간이 10분 감소했습니다.]
[현재 남은 시간 10분.]
[앞으로 5분 안에 최초의 살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을 시, 해당 칸의 모든 생명체는 절멸합니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장난이죠?”
“방금 메시지 들었어요? 이봐, 당신들도 들었어?”
“군인 양반!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경찰은 왜 안 와!”
“여러분, 잠시만 진정해 주시고 제 말 좀―”
도깨비의 한 마디로 객실 상황은 이현성의 수습 범위를 넘어섰다. 유상아가 내 옷깃을 꼭 그러쥐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이 상황의 위화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조연급인 이현성이 나왔다. 그런데 왜 ‘그 녀석’은 나오지 않고 있는 걸까. 내가 아는 이야기대로라면, 지금쯤 녀석이 나타났어야 하는데.
“뒤, 뒤 칸에서 살인이 벌어졌어요!”
통로 쪽 창문으로 피바다가 된 3907칸의 정경이 비치고 있었다. 해당 칸의 살인자들과 눈이 마주친 이들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못 들어오게 해! 아무도 못 넘어오게 해요!”
사람들이 철문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러나 불필요한 짓이었다. 애초에 적은 그쪽이 아니었으니까.
[해당 칸의 시나리오가 완료되기 전까지 모든 종류의 출입 행위가 제한됩니다.]
메시지와 함께, 사람들은 투명한 장벽에라도 부딪친 것처럼 철문에서 튕겨 나왔다.
“이, 이거 왜 이래?”
그리고 다시 한 번, 도깨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꽤나 재밌어진 곳이 있는 반면, 아직도 시작하지 않은 곳도 있네요. 좋아요, 특별 서비스에요. 앞으로 5분 안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드릴게요.]
지하철의 허공에 거대한 스크린 같은 것이 나타났다. 스크린에 비친 장소는 어떤 교실이었다. 군청색 교복을 입은 채 떨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 한 남고생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저거 태풍 여고 교복인데?”
힘을 합쳐 문을 부수려는 소녀들도 있었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골몰하는 소녀들도 보였다. 누구도 죽이지 않고 시나리오를 해결하려는 저 마음. 어리석은 어른들보다도 훨씬 현명한 학생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저 광경이 너무나 슬프다.
삑삑삑삑― 하고 울려 퍼지는 불길한 신호음 속에서, 소녀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제한시간이 경과했습니다.]
[유료 정산이 시작됩니다.]
안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맨 앞줄에 앉은 학생의 머리가 폭발했다.
하나씩, 다시 하나씩. 점점이 폭발해 흩어지는 머리들.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교실 문과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아아, 어, 어떻게 저런―”
청소 도구가 부서지고 손톱이 뜯겨 나갔으나, 교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누구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펑, 퍼어엉. 계속해서 학생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소녀 하나가 친구의 목을 조른 것은 그때였다. 끅끅거리는 신음과 함께 떨어지는 팔. 그리고 잠시 후, 화면에 남은 것은 독기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마지막 소녀뿐이었다.
[#Bay23515 채널. 태풍여고 2학년 B반 생존자 : 이지혜]
화면을 노려보던 여고생의 모습이 사라지고, 도깨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때요. 재미있죠?]
도깨비가 웃으며 말했지만, 사람들은 이미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화들짝 서로에게서 멀어지며 외쳤다.
“씨발 뭐야! 이게 다 뭐냐고!”
심지어 유상아조차 나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나 아직 내게서 떨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양손이 자유로워진 나는 스마트폰을 켰다.
왜 ‘그 녀석’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거지?
내가 알고 있는 소설 속의 정보들과 알지 못하는 정보들의 혼재.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다시 멸살법을 읽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그 소설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너무 인기가 없어서 불법 공유조차 되지 않은 그 소설을…… 아니 잠깐만.
[첨부 파일 1개.]
스마트폰에 떠오른 메일을 보며, 나는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
설마…… 아니겠지?
잠시 후 메일의 첨부함을 연 순간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에 젖었다. 작가가 보낸 첨부 파일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