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3화
「도깨비다. 놈이 처음 나타난 순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왜 갑자기 그 문장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급정거한 지하철. 정전된 객실.
기시감을 느끼기엔 정황의 디테일이 부족했다. 지하철 급정거야 드물지만 종종 있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왜일까. 나는 익숙한 소설의 서두가 자꾸만 떠올랐다. 하지만 말도 안 된다. 그럴 리가 없잖아?
3807칸의 앞쪽 문이 벌컥 열리며 전기가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곁에 있던 유상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도깨비?”
머릿속이 지잉― 하고 울렸다. 내가 알던 소설과, 눈앞의 현실이 겹쳐지며 사위가 불안하게 떨렸다.
「두 개의 작은 뿔. 작은 거적을 걸치고, 보송한 솜털이 돋은 괴생명체가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요정이라고 부르기엔 괴이하고, 천사라고 부르기엔 사악하며, 악마라고 칭하기에는 천진한 외형.」
「그래서 그 녀석은 ‘도깨비’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나는, 그 ‘도깨비’가 처음으로 꺼낼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아#@! ……」
[&아#@!&아#@!…….]
허구와 실재가, 정확하게 겹쳐진다.
“뭐라는 거야 저거?”
“증강 현실인가?”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나는 홀로 다른 세계에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저건 틀림없는 ‘도깨비’다. 수천 편의 멸살법에서 줄곧 비극의 서두를 열었던, 바로 그 도깨비. 상념을 깬 것은 유상아의 목소리였다.
“왠지 스페인어 같은데, 제가 한번 말 걸어볼까요?”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물었다.
“……저게 뭔지 알고요? 돈이라도 꿔 달라고 하시게요?”
“그건 아니지만…….”
정확한 발음의 한국어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아. 아. 잘 들리시나요? 이것 참, 한글 패치가 안 돼서 고생했네. 여러분. 제 말 잘 들리시죠?]
익숙한 언어가 들려와서일까.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이 풀리는 것이 보였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정장을 입은 덩치 큰 사내였다.
“이봐요,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예?]
“영화 촬영입니까? 저 오디션이라 빨리 가 봐야 하는데요.”
얼굴이 낯선 걸로 봐서 무명 배우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내가 캐스팅 디렉터였다면 단번에 뽑아줬을 만큼 패기 넘치는 목소리.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존재는 디렉터가 아니었다.
[아아, 오디션. 그렇구나. 이 시간에도 오디션을 보는구나. 하하, 이거 자료 조사가 부족했네. 분명 오후 일곱 시쯤에 유료화 들어가면 제일 많이 따라온다고 그랬는데.]
“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자자, 여러분들. 진정하시고 일단 자리에 앉아서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지금부터 중요한 말을 전해야 하니까!]
점점 가슴이 답답해져 간다.
“뭡니까! 빨리 열차 출발시켜요!”
“누가 기장한테 연락해요!”
“지금 시민 협조도 없이 뭐하는 거야!”
“엄마, 저거 뭐야? 만화야?”
틀림없었다. 이건, 내가 아는 그 전개였다. 말려야 한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조그맣고 귀엽게 생긴 CG 덩어리의 말을 사람들이 들을 리가 없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멋모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유상아를 말리는 것뿐.
“유상아 씨, 위험하니까 움직이지 마세요.”
“네?”
놀란 유상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떨결에 말하기는 했지만, 나도 지금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정확히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하하, 시끄럽네 정말.]
왜냐하면 누구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존재가 지금 눈앞에 있었으니까.
[내가 조용히 하라고 했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도깨비의 안광이 붉게 변했다. 뭔가가 퍼버벅, 깨지는 소리가 나고 지하철이 정적으로 물들었다.
“어, 어. 어…….”
오디션을 보러 가야 한다던 무명 배우의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몇 번인가 입을 뻐끔거리던 사내는 동공이 풀린 채 자리에 쓰러졌다.
[이건 영화 촬영이 아닙니다.]
박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다시 한번 이어졌다. 이번에는 기장 타령을 하던 아줌마였다.
[꿈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며.]
하나둘 허공에서 핏줄기가 뿜어져 나오며 사람들의 머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도깨비에게 항의했던 사람들. 비명을 지르며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소란의 기색이 보였던 사람들의 머리에 죄다 바람구멍이 뚫리고 있었다. 삽시간에 지하철은 피바다가 되었다.
[당신들이 알던 ‘현실’도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모두 닥치고 내 말을 들으세요.]
절반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 피와 시체 조각이 낭자한 퇴근길의 지하철. 이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강력한 포식자를 앞둔 원시시대의 유인원처럼, 모두가 공포에 질려 도깨비를 보았다.
나는 놀라서 딸꾹질을 반복하는 유상아의 어깨를 꾹 누른 채 숨을 죽였다.
이건 진짜다.
이상한 메시지가 귓가에 들려왔을 때도, 도깨비가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도 실감 나지 않았던 감각이 피바다가 된 객실을 보며 깨어나고 있었다.
[여러분, 지금까지 꽤나 살기 좋았을 겁니다. 그렇죠?]
노약자석. 도깨비와 눈이 마주친 노인들이 벌벌 떨며 허리를 숙였다. 그런 노인들을 비웃듯 도깨비가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너무 오래 공짜로 살아왔어요. 인생이 너무 후했죠? 태어나서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잘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제멋대로 번식을 해대고! 하! 여러분 정말 좋은 세상에 살았네요!]
공짜. 퇴근길 지하철 안에 공짜로 살아온 사람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버는 사람들의 공간. 그곳이 바로 이 퇴근길 지하철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좋은 시절은 이제 다 끝났어요. 언제까지 공짜를 누릴 수 있을 리 없잖아요? 행복을 누리고 싶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게 상식이지. 안 그래요?]
헐떡거리는 사람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호, 혹시 돈을 원하시는 겁니까?”
대체 이 와중에 어떤 인간이 그런 소릴 지껄일 수 있는가 싶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유상아 씨. 저 사람 재무팀 한 부장 아닌가요?”
“……맞아요.”
틀림없었다. 회사의 대표적인 낙하산이자, 신입 사원들의 기피 1순위 상관. 재무팀의 한명오 부장. 저 인간이 왜 지하철에 타고 있는 거지?
“돈이라면 얼마든지 주겠습니다. 받으시죠. 참고로 저,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명함까지 꺼내 보이는 한 부장의 패기에 사람들이 응원 섞인 시선을 보냈다.
“얼마면 됩니까? 큰 거 한 장? 아니면 두 장?”
일개 계열사의 부장이 함부로 부르기엔 지나치게 많은 액수였다. 한때 한명오 부장이 계열사 총수의 막내아들이란 소문이 돌았는데,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부장급이 저렇게 많은 수표를 지갑에 넣어 다닐 수는 없을 테니까.
[흐음, 그러니까 당신네들 돈을 준단 말이죠?]
“그, 그렇습니다! 지금 가진 현금은 얼마 안 되지만…… 여기서 나가게 해 주신다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돈, 좋죠. 많은 인간들의 상호 주관적 합의가 깃든 식물의 섬유.]
그 말에 한 부장의 안색이 밝아졌다. ‘역시, 돈이라면 다 된다니까’라는 표정이었다. 불쌍하게도.
“저, 지금 가진 건 이것뿐이니까 이거라도―”
[어디까지나, 당신네 시공간에서는 그렇다는 얘기에요.]
“예?”
다음 순간, 허공에서 불길이 일었다. 한 부장의 손에 쥐어져 있던 수표들이 모조리 불타올랐다. 기겁한 한 부장이 비명을 질렀다.
[그딴 종이는 거시 차원계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 한 번 더 그딴 짓을 하면, 머리를 터뜨려버릴 거니까 명심하세요.]
“으, 으으…….”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금 공포가 번져갔다. 다들 뒤 내용이 빤한 소설책 같은 표정들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기 쉬웠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그리고 오직 나만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었다.
[휴, 이렇게 떠드는 시간에도 당신들 부채는 쌓여가고 있다고요. 뭐, 그래요. 제가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여러분이 직접 돈을 벌어보는 게 빠르겠죠?]
도깨비의 뿔이 안테나라도 된 듯 길어지며, 몸체가 열차 천장 쪽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메시지가 들려왔다.
[#BI-7623 채널이 열렸습니다.]
[성좌(星座)들이 입장합니다.]
멍하니 눈을 끔뻑이는 사람들의 위쪽으로 제각기 작은 창이 떠올랐다.
[메인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
<메인 시나리오 # 1 ―가치 증명>
분류 : 메인
난이도 : F
클리어 조건 : 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시오.
제한시간 : 30분
보상 : 300코인
실패시 : 사망
+
몸체가 투명해진 도깨비가 다음 칸으로 사라지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여러분. 부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