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393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인드라의 전신에서 황금빛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수르야도 그렇고, <베다> 쪽은 유독 황금빛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콰아아아아아아! 범람한 격의 파장이 인드라를 중심으로 복잡한 방사를 이루었다. 전격의 파도가 내 몸을 덮쳐왔고, 인드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어떤 성좌도 감히 대적하기 힘든 위력이었다. 전신을 갈기갈기 찢고, 분쇄하고, 으깨버릴 폭력.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거대 설화, ‘신화를 삼킨 성화’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그것을 버텨내고 있었다. 허공에 불똥처럼 튀는 스파크. 전격의 급류를 헤치고 한 걸음, 다시 한 걸음을 다가간다. [다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격’에 깜짝 놀랍니다.] 전장 건너편의 성좌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전용 스킬, ‘책갈피’를 발동합니다!] [5번 책갈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전용 스킬, ‘전인화(電人化) Lv.23(+13)’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현재 당신의 육체 구성이 해당 등장인물의 육체 구성과 상이합니다.] [당신의 ‘격’이 육체 조건의 패널티를 극복합니다.] 눈부신 섬광이 번뜩이며, 나는 어느새 인드라의 눈앞에 있었다. [크어어어억!] 힘껏 갈긴 발차기에 녀석의 배에 돋아난 눈들이 터져 나갔다.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경악한 눈동자. 그렇겠지. 고작해야 작은 성운의 초짜 설화급이 이런 격을 가지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실제로 내가 모은 두 개의 거대 설화만으로 이 정도 힘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대 설화, ‘카이제닉스 제도’가 당신을 조력합니다.] [거대 설화, ‘명계’가 당신에게 개연성을 제공합니다.] [당신이 모은 ‘단 하나의 이야기’가 ‘전(轉)’에 거의 근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내가 쌓아온 두 개의 설화에 카이제닉스 제도의 설화, 그리고 <명계>의 거대 설화가 함께 한다면― 적어도 이 ‘성마대전’에 한정해서, 나는 전(轉)을 완성한 성좌에 가까운 힘을 낼 수 있다. [어떻게 그런 개연성을······ 네놈은······!] 지금의 나라면, 상위격의 ‘설화급 성좌’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나는 제석천(帝釋天)! 여덟 <로카팔라>의 수장이자 <베다>의 왕이다!] 그것이, 설령 저 신들의 왕이라고 해도. [성좌, ‘뇌전의 신왕’이 성흔 ‘천지뇌우(天地雷雨)’를 발동합니다!] 인드라를 둘러싼 눈들이 일제히 빛을 내뿜으며 세상을 하얗게 뒤덮었다. 하늘 전체가 벼락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 뇌우의 풍경을 향해 나는 달려나갔다. [당신이 사용한 개연성이 한계치를 한참이나 넘어섰습니다.] [성운 <명계>의 가호가 당신의 화신체를 보호합니다!] 금강저와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 부딪쳤다. 인드라의 전격과 [전인화]의 격이 서로 반발하며 잿빛 스파크를 토해냈다. <베다>의 격에 밀려난 내 검이 튀어 오르며 하늘을 날았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인드라. 하지만 애초에 검은 미끼였다. 나는 검이 솟아오르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녀석의 다리를 강하게 찍었다. [크억······!] 인드라의 거구가 무너지는 순간, 나는 녀석의 멱살을 쥐고 바닥을 향해 던졌다. 머리부터 내려꽂힌 인드라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나는 균형을 잃은 녀석의 위로 올라타, 양손으로 녀석의 안면을 연타했다. 살점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인드라의 입에서 설화 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고작 <명계> 따위가, <올림포스>의 하위 성운 따위가······!] [고작 <명계>? 집안 건드리기 있냐?] <명계>에 실질적으로 소속된 성좌는 열을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성좌들이 <명계>를 두려워하는 이유. [성운, <명계>가 진노의 가호를 내립니다!] [내 부모님, 화나면 엄청 무섭거든?] [성좌, ‘가장 어두운 봄의 여왕’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부유한 밤의 아버지’의 가호가 당신을 보호합니다.] 마지막 발악인지, 인드라의 몸에서 전격의 세례가 폭발했다. 피부의 표피가 까맣게 타들어갔고, 감전당한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시야가 고장난 형광등처럼 깜빡거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깟 번개, 키리오스에게 당하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자, 첫 충돌로 날아갔던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 나를 향해 돌아왔다. 나는 백청의 마력이 휘감긴 그 칼날을, 있는 힘껏 인드라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푸슈슉, 하는 소리와 함께 인드라의 화신체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부르르 몸을 떨던 인드라의 화신체가 축 늘어졌다. 나는 녀석의 귓가에 댄 채 속삭였다. [몇 번이고 살아나 봐. 또 죽여줄 테니까.] 그리고 메시지가 들려왔다. [성좌, ‘뇌전의 신왕’이 진체에 끔찍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성좌, ‘뇌전의 신왕’이 더 이상 화신체를 소환하지 않습니다!] [성좌, ‘뇌전의 신왕’이 해당 시나리오를 포기합니다!] [성좌, ‘뇌전의 신왕’의 설화에 또 다른 패배가 기록됩니다.] [당신은 ‘뇌전의 신왕’의 천적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스타 스트림>의 일부 성좌들이 당신의 업적을 경외합니다.] . . . [성운, <베다>가 끔찍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성운, <베다>가 개연성의 후폭풍에 휘말립니다!] 하나의 성운이 눈앞에서 패배하는 것을 보며, 전장의 모든 성좌들이 침묵했다. [당신은 믿을 수 없는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당신에게 ‘성운’과 관련된 새로운 설화가 발아합니다!] 인드라의 시신에서 몸을 일으키자, 전열을 지휘하던 심판관들과 명계의 병사들이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당신의 화신체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습니다!] 당장이라도 자리에 엎어지고 싶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유중혁 저 자식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다. 녀석은 <명계>의 가호도 없이 반신체의 인드라를 한 번 끝장냈던 것이다. 나도 질 수는 없지. [또 <명계> 구경하고 싶은 놈 있어?]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적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나는 <명계>의 왕자다. [전장의 성좌들이 당신에게 두려움을 느낍니다!] <명계>와 대치하던 성좌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저 높은 하늘에서 나를 깔보던 성좌들이, 이제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베다>와 <파피루스>의 성좌들과 달리, <아스가르드>의 세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성좌, ‘공정함과 친절함의 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무스펠하임의 불꽃’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한 성좌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모두 쟁쟁한 성좌들이었다. ‘공정함과 친절함의 신’이라면 분명 빛의 신인 발두르일 것이고, ‘무스펠하임의 불꽃’이라면 보나마나 불의 거인인 수르트겠지. 그리고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는······. “구원의 마왕.” <아스가르드>의 화신들을 대표해서 나온 것은 내가 잘 아는 화신이었다. [셀레나 킴.] “우리는 당신과 싸울 의사가 없습니다.” [그건 화신들의 뜻입니까, 아니면 성좌들의 뜻입니까?] 내 말에 셀레나 킴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성좌 ‘공정함과 친절함의 신’이 자신이 ‘악’의 진영에 소속된 것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성좌, ‘무스펠하임의 불꽃’이 불꽃 튀는 전투를 원합니다.] 사실 나야 저쪽에서 먼저 물러서 준다면 고마운 상황이었다. 여기서 <아스가르드>와 싸워봤자 이쪽도 좋을 것은 없으니까. 어찌됐든 지금 저쪽에는 강력한 성좌들이 제법 참가한 상태였고, 그들과 싸우면 <명계>도 필연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다른 국지전에도 참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히 흘러가진 않았다. [성운 <아스가르드>의 일부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성운 <아스가르드>의 일부 성좌들이 ‘구원의 마왕’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역시, 거대 성운쯤 되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성좌든 인간이든 다수가 되면······.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을 타이릅니다.] ······응?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교묘한 화술로 이 싸움은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이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놀란 것은 셀레나 킴과 이리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덕분에 전장의 허공은 한동안 성좌들의 간접 메시지로 들끓었다. [성좌, ‘무스펠하임의 불꽃’이 성별 바꾸기나 좋아하는 놈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성좌, ‘공정함과 친절함의 신’이 성좌의 취향과 신용은 서로 분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좌, ‘목요일의 천둥’이 저놈은 근본적으로 사기꾼이지만 가끔 그럴듯한 소리도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스가르드>의 일부 성좌들이 그의 말을 믿었다가 <아스가르드>가 도탄에 빠졌던 것을 잊었냐고 주장합니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자신의 이름값과는 관계없이 이 전장은 <아스가르드> 측에 손해라고 주장합니다.]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그나저나,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저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좌, ‘사랑과 고양이의 여신’이 이 전장에서 이탈하면 ‘성마대전’의 거대 설화를 손해 보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렇게 설왕설래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아스가르드>의 성좌들이 판단을 내립니다.] 잠시 후, 반대편 진영에 서 있던 셀레나 킴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셀레나 킴이 입을 열었다. “성좌님들도 동의하신다고 합니다. <아스가르드>는 당신 및 <명계>와 대적할 의향이 없습니다.” [성운 <아스가르드>가 당신과 싸울 이유가 없음을 천명합니다.] 저 성좌가 <아스가르드>의 꼬장꼬장한 성좌들을 대체 어떻게 설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친선을 위한 제안은 나쁠 것이 없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명계>와 <아스가르드>에 소속되어 있던 성좌들이 일제히 자신의 격을 거두었다. 나 역시, [마왕화]를 해제했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자신의 공을 치하합니다.] ······확실히, 저 성좌가 없었더라면 불필요한 싸움이 벌어졌겠지. 나는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보상을 원합니다.] “······코인이라도 원하시는 겁니까?”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아주 작은 부탁이 있다고 말합니다.] “부탁이요?”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별거 아닌 부탁이라고 첨언합니다.] 별거 아닌 부탁이라. 오히려 불안해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김독자 컴퍼니>에 해를 끼치는 부탁이라면 들어줄 수 없습니다.” 나는 간접 메시지에 들러붙은 수식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성별을 바꾸는 것도 안 됩니다.” [성별 바꾸기를 좋아하는 성좌가 그런 부탁은 절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 부탁이 아니라면, 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허공에서 히죽거리는 아이의 웃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123번 국지전의 모든 존재가 전투 의사를 보이지 않습니다.] <베다>의 성좌들은 전의를 잃었고, <파피루스>의 성좌들은 애초부터 소수만이 참가한 데다 유중혁에 의해 전투 불능이 된 상황. 거기다 <아스가르드>와 <명계>는 더 이상 대적 의사가 없는 상태. [123번 국지전이 강제 종료됩니다.] [해당 국지전은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해당 전장의 참가자들에게 전투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해당 국지전은 ‘성마대전’의 분류에서 제외됩니다.] 이것으로, 123번 국지전도 마무리되었다. [혼돈 수치가 5 상승했습니다.] [경고합니다! 혼돈 수치가 70을 넘었습니다!] 어느새 혼돈 수치는 70을 돌파했다. 이걸로 메타트론과 아가레스도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1863회차에서 <에덴>의 멸망을 본 메타트론이라면 더욱. 나는 일행들이 있을 다른 국지전에 참가하기 위해 허공의 게이트를 올려다보았다. [현재 117번 게이트가 활성화 중입니다.] [현재 119번 게이트가 활성화 중입니다.] 한쪽은 정희원과 이현성이 참가한 게이트. 그리고 다른 한쪽은, 한수영이 참가한 게이트. 나는 두 게이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한쪽을 선택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해당 게이트는 진입할 수 없습니다.] 진입할 수 없다고? 왜? [해당 게이트의 국지전은 종료된 상태입니다.] ······벌써 전투가 끝났다니. 돌아보자, 안나 크로프트가 멍한 눈으로 게이트를 보고 있었다. “김독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서늘해졌다. 이번 ‘성마대전’에서 선악의 승패가 가려지지 않은 국지전은 무효처리가 되며 ‘강제 종료’ 시퀀스에 돌입하게 된다. 그런데 저 국지전은, 그저 ‘종료’되었을 뿐이다. 즉. [해당 국지전의 승자가 판별되었습니다.] 저 게이트로 들어간 <김독자 컴퍼니>는, 자신의 임무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지전에서 패배한 참가자에게 사망 패널티가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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