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화

368화 [당신은 ‘1회차’ 회귀자입니다.] 처음 회귀를 선택했을 때, 그는 자신이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시나리오에서 살아남을 기회. [당신은 ‘2회차’ 회귀자입니다.] 두 번째 회귀를 선택했을 때, 그는 이 삶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으면서. 그는 앞으로 자신이 몇 번이나 이 일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는 대가로, 그는 자신의 소중한 동료들을 몇 번이고 더 잃게 될 것이었다. [당신은 ‘3회차’ 회귀자입니다.] 세 번째 회귀, 그는 이것이 저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몇 번이나 더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는 이 모든 시나리오의 끝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그는 ‘유중혁’이 아니라, ‘회귀자’가 되기로 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어쩌면 그가 계속 살았을지도 모를 날들. 그런 그의 회귀를 멈춘 것은, 예상치 못한 누군가의 말이었다. ―언제든 회귀할 수 있다는 건 ‘죽음’에 의미가 없다는 것일 테지. 하지만 죽음의 의미가 없다는 것은, 삶의 가치 또한 사라진다는 거야. ―유중혁, 정신 차려라. 몇 번을 반복하면 나아질 거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서 유중혁은 다음 회차로 가지 않았다. 몇 번이고 다시 살 수 있었던, 더 유리한 고지에서 더 유리한 정보를 가지고 시작할 수 있었던 삶을 포기했다. [당신은 ‘3번 중섬’에 진출하였습니다!] 눈부신 빛살과 함께 도착한 3번 중섬. 그와 함께 섬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야 여긴?] [바로 ‘본섬’으로 가는 게 아니었나?] 유중혁은 칼을 뽑아 들었다. [히든 시나리오 ― ‘수식언 뺏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도륙이 시작되었다. 몰아치는 핏빛 검풍에 성좌들의 목이 달아났다. 유중혁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화신체의 심장을 도려냈고, 달아나는 성좌들의 뒤통수를 작살냈다. [성좌, ‘우중충한 밤바다의 까마귀’의 수식언 음절을 획득하였습니다.] [성좌, ‘해변의 전술가’의 수식언 음절을 획득하였습니다.] 힘든 적들도 있었다. 본래의 3회차였다면, 쉬이 상대하기 까다로웠을 적들. 그러나 그런 적들을, 유중혁은 아주 간단히 해치웠다. 「‘자작나무의 전갈’은 꼬리 아래가 약점이다.」 「‘초승달의 군주’는 머리의 별빛이 사라질 때 공격해야 한다.」 본래의 유중혁이라면 알지 못할 정보들이었다. 4회차, 5회차, 100회차, 다시 1000회차를 거쳐야 알 수 있었던 정보들. [성좌, ‘자작나무의 전갈’의 수식언 음절을 획득하였습니다.] [성좌, ‘초승달의 군주’의 수식언 음절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의 정보를, 3회차의 유중혁은 알고 있었다. 『한수영― 1863회차의 기록 (上).』 『한수영― 1863회차의 기록 (下).』 아주 먼 미래, 그가 본래대로 살았다면 맞이했을지 모르는 1863회차의 기록. 후우우우우― 그로부터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유중혁의 주변은 조용해졌다. 푸슈슉! 그는 마지막 성좌의 숨통을 끊은 뒤,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단순히 시나리오를 서두르기 위함이 아니었다. 얼마간 걸음을 옮기자, 피로 물든 전장이 나타났다. [풍요의 숲]. 무수한 화신체들의 시체. 마치, 누군가에 의해 학살당한 듯한 풍경. 유중혁은 자신에게 필요한 ‘수식언 음절’들을 모으며, 학살자의 향방을 좇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으로 휩싸인 커다란 고치를 발견했다. 유중혁은 그 고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에덴>이 만든 괴물이군.” 미카엘의 고치. ‘마왕화’가 진행된 미카엘이 누군가에게 죽었을 때 나타나는 고치였다. 이 고치 안에서, 미카엘은 새로운 생명을 얻어 태어날 것이다. 마치 유중혁이 매번 죽음 후 다음 ‘회차’를 시작하듯이. 차이가 있다면, 미카엘은 되살아날 때마다 기억의 일부를 잃는다는 것이었다. 악을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악. 미카엘의 존재는, 그가 결코 <에덴>을 좋아할 수 없는 이유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유중혁은 고치의 주변을 살폈다. 미카엘이 이 꼴이 되었다는 건 누군가가 미카엘을 해치웠다는 뜻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중혁은 강력한 마왕의 설화 파편들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미카엘과 싸웠고, 심하게 다쳤다. 흐릿한 비안개 속에 하얗게 빛나는 설화의 흔적들. 그것은, 유중혁이 잘 아는 존재의 자취였다. 움찔. 미카엘의 고치가 들썩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음습한 기운과 함께 고치의 꼭대기가 열리고 있었다. 유중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벌써?’ 보랏빛 안개 사이로 빠르게 스며드는 어두운 감정. 새로운 화신체로 빚어진 미카엘의 나신이 고치 사이로 드러나고 있었다. 유중혁은 자리를 피할 준비를 했다. [구······원···의 마왕······!] 그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유중혁은 그대로 자리를 피했을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유중혁이, 반쯤 열린 고치 사이로 다가갔다. 아직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미카엘이 무방비한 상태로 고치 안에 잠들어 있었다. 번뜩. 미카엘이 눈을 뜨는 순간, 유중혁의 검이 움직였다. “좀 더 자고 있는 편이 좋겠군.” 푸우욱! [파천강기]가 미카엘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직 [마왕화]도 [천사화]도 발동하지 않은 연약한 화신체가 2세대의 개연성에 힘없이 부스러졌다. 그아아아아아아! [당신은 ‘타락한 천사들의 왕’의 177번째 화신체를 처치하였습니다.] 미카엘의 고치는 급격하게 쪼그라들더니,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아마 녀석은 178번째 화신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성운 <에덴>이 당신의 행위에 적대감을 드러냅니다!] [성좌, ‘하늘의 서기관’이 당신을 노려봅니다.] 쏟아지는 하늘의 시선을 받으며 유중혁이 말했다. “······말했을 텐데? 김독자를 죽이는 것은 나라고.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하늘은 더이상 대답이 없었다. 검을 거둔 유중혁은, 숲에 흩뿌려진 파편을 따라 길을 재촉했다. * 유중혁의 모습이 숲길 사이로 사라진 후, 미카엘의 고치 곁으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새카만 우의 사이로 흔들리는 짧은 단발. 주변에 한가득 떨어진 아이템을 본 그림자의 주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버스는 주인공 버스가 제맛이지.” 한수영은 주변의 아이템들을 허겁지겁 주머니에 넣으며 희희낙락거렸다. “하여간, 저 회귀자 자식 아이템 소중한 줄을 몰라요······.”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바닥에 떨어진 설화 파편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뭐 보냐?” 한수영은 흑염룡이 가리킨 파편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뻣뻣하게 굳었다. [설화 파편, ‘왕이 없는 세계의 왕’을 획득하였습니다.] “이거 설마······.” <스타 스트림>에는 무수한 종류의 설화들이 있지만, 이런 이름의 설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알기로 한 명밖에 없다. 그녀는 주워들었던 아이템을 내팽개치고, 이내 유중혁이 사라진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내가 유중혁에게 죽게 된다. 「(독자 씨.)」 앞으로 세 시간 뒤, 유중혁에게 나는 죽게 된다. 「(독자 씨!)」 나는 퍼뜩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예, 유상아 씨.’ 「(언제까지 얼빠져 있을 거예요? 독자 씨 답지 않잖아요.)」 ‘얼빠져 있는 게 아닙니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요?)」 ‘녀석을 설득할 방법이요.’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지금 나를 죽이러 오는 유중혁은, 내가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읽어온 ‘멸살법’의 유중혁이 아니었다. 지금 나를 찾아올 유중혁은 자신이 ‘등장인물임을 알게 된 유중혁’이다. 1863회차의 유중혁처럼. 「(죄책감 때문인가요······?)」 종종 유상아는, 내 속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 같다. ······지금은 정말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닙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선악과’의 힘이 당신의 죄책감을 부추깁니다.] 어쩌면 이 감정은 [선악과] 때문에 강제로 촉발된 것. 즉, 나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곁에서 나를 부축하던 안나 크로프트가 말했다. “곧 섬의 중심에 도착할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섬의 중심.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가는 포탈이 있는 장소이자, 내가 세 시간 뒤 유중혁을 만나게 될 장소. “당신이 선택한 미래에 참견하고 싶진 않지만······ 내 [미래시]는 어지간해선 바뀌지 않아요.” “······저주하는 겁니까?” “그냥 사실을 말해주는 거예요.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음절 ‘신’을 찾아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가는 게 좋을 테니까.” “일부러 안 가는 겁니다. 그 녀석과는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그동안 미루어 왔던 이야기. 하지만, 반드시 나눠야만 할 이야기였다. “이야기라······. 패왕이 그런 것도 할 줄 알던가요?” “할 줄 모르면 할 줄 알게 만들어야죠.” 안나 크로프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녀의 눈이 검푸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몇 성좌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도 알겠지만, 항상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어요.” 안나 크로프트는 예언자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겠지. 셀레나 킴을 속이고, 이리스를 속이며, 그녀는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런 말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만큼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법이에요.” 멀리서 섬의 중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음 시나리오로 떠나는 커다란 포탈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나를 부축하는 안나 크로프트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군요.” 수식언 음절을 모두 모은 안나 크로프트는, 이제 저 문을 넘어설 자격을 얻었다.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내가 등을 돌리는 순간, 안나 크로프트가 나를 불렀다. “김독자.” 성좌 ‘구원의 마왕’이 아닌, ‘김독자’. 그녀는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내 목표는, 이 <스타 스트림>의 주인을 바꾸는 거예요.” 그 순간, 나는 무척 곤란한 느낌을 받았다. 이어질 말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목적은 뭐죠?” ······역시나. “내가 대답해야 합니까?” “그걸 들어야 당신을 계속 살려 놓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녀는 나를 저울대에 올려놓은 셈이었다. 내가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방해가 될지. 만약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면, 그녀는 가차 없이 나를 여기서 탈락시킬 것이다. 나는 안나 크로프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여자에게 말해도 될까. 이 세계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언자인 그녀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러나 내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의 목적은 어떤 하찮은 이야기의 끝을 보는 것이다.” 서늘한 분노가 배인 목소리.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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