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365화 Episode 69. 대천사 사냥 ‘반항하는 녀석들이 없으니 재미도 없군.’ 너부러진 전장의 시체들을 보며, 미카엘은 연초를 태우고 있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 2세대의 장인들이 만든 담배. 미카엘이 악마 사냥이나 외유를 즐기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담배를 마음껏 태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에덴에서 담배는 ‘악’이다. 그 자리에서 몇 대를 줄기차게 피워댄 미카엘은, 시체들의 살점에 담배를 비벼 끄며 생각했다. ‘너무 오래된 건가.’ 「오래되긴. 이제 시작인데.」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미카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닥쳐.’ 「어서, 날 깨워. 날 해방시키라고.」 미카엘은 새 담배를 꺼내 들었다. 오래 전부터 그에게 들려오는 설화의 목소리. 저 목소리를 들을 때면, 미카엘은 연초를 태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냐.’ 미카엘은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성운, <에덴>으로부터 새로운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 [대천사 사냥이라, 꽤 흥미롭군요.] 내 이야기를 들은 아스모데우스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거기다 다른 대천사도 아닌 ‘타락의 구원자’라······ 진심입니까?] “물론.” [하지만 당신은 <에덴>과 친하지 않습니까? 그런 짓을 벌이면 그들과 적이 될 텐데요.] “상관 없어. 어차피 난 ‘마왕’이고.” 여기서는 말이라도 이렇게 해야 했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아스모데우스를 설득해야 하니까. 실제로 아스모데우스는 꽤 고뇌하는 눈치였다. “잘 생각해 봐. 글자 [원]이 필요하잖아? 덤으로 대천사의 설화도 얻을 수 있을 거고. 「위대한 대천사를 사냥한 자」. 생각만 해도 짜릿하지 않아?” 그러나 아스모데우스는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의중을 탐색하는 듯한 시선. 나는 이쯤에서 더 큰 수를 던지기로 했다. “실망이네. ‘미식협’의 회원인 당신이라면 다른 성좌들과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내 말에 아스모데우스의 아미가 크게 꿈틀거렸다. [마왕 ‘아스모데우스’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해당 인물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발동합니다!] 처음으로 듣는 메시지였다. 드디어, 일부 성좌들의 내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전지적 독자 시점’의 숙련치가 쌓인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스모데우스의 속마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건방지기 짝이 없어, 구원의 마왕.」 마치 끈적끈적한 늪 같은 내면. 그윽한 눈길로 나를 보는 녀석의 생각을 듣고 있자니, 영 속이 거북했다. 생각은 이어졌다. 「이토록 빠져주고픈 함정이라······.」 역시 아스모데우스가 괜히 ‘차기 대마왕 후보’에 올라간 것이 아니다. 녀석은 이미 내 제안이 함정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마 구원의 마왕의 표적은 ‘타락의 구원자’겠지.」 「나와 다른 성좌들을 이용해 미카엘을 사냥한 후 수식언 목걸이를 얻으려는 것이고.」 「제법 머리를 쓰는 것이 가상하긴 한데, 그냥 넘어가 주긴 좀 괘씸하단 말이지.」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점차 싸늘하게 변해갔다. 역시 이 정도 설득으론 무리였던 모양이다. 「미카엘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천사야. 아무리 2세대의 개연성 제약을 받는다 해도······.」 충돌하던 아스모데우스의 사고가 마침내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의 긴 손톱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살기. 내 곁에 있던 안나 크로프트가 긴장하며 전투태세를 취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미래시]를 통해 뭔가를 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슬슬 그녀의 [미래시]로는 관측 불가능한 일이 벌어질 때가 됐으니까. 그리고 다음 순간,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음?」 잠깐 굳어 있던 아스모데우스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하고 있었다. 텅빈 허공 위에서 뭔가를 읽어내는 듯한 눈빛.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무수한 감정이 교차하던 아스모데우스의 눈이 나를 향했다. [후후, 이것 참······ <스타 스트림>의 의지란 알 수가 없다니까.] “······무슨 말이지?” [그냥 혼잣말입니다. 좋아요.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대천사 사냥’ 한번 해보죠.] 아스모데우스의 선언에, 곁에 있던 안나 크로프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입맛을 다신 아스모데우스는 누군가를 향해 열심히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아마 다른 ‘종말의 구도자’들과 통신 중이겠지. 그리고 내 머릿속에도, 누군가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저 잘했죠?)」 ‘네, 고맙습니다. 상아 씨.’ 아스모데우스가 변심한 이유. 아마 아스모데우스는 방금 ‘계시’를 읽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나와 유상아가 위조하여 퍼트린 ‘가짜 계시’를. 「타락한 대천사는, 늙은 망자들의 섬에서 ‘소드 마스터’의 검에 죽게 될 것이다.」 * “······또 계시가 내려왔다고?” 새로운 계시의 소식에 뒤집어진 것은 관리국도 마찬가지였다. 제일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판매 부서였다. “갑자기 ‘소드 마스터’ 관련 스킬들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스킬 재고 보충해! 관련 하청 업체한테 연락 돌려서, 양산 성흔들의 스킬 전환을 가속하라고 말해!” “그, 그래도 재고가 부족합니다!” “제길······ 설화 제작자들 다 어디 갔어? 아! 그 누구냐, ‘양산형 제작자’한테 부탁하면―” 비형은 그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곁에 있던 대도깨비 ‘바람’이 말했다. [비형, 새로운 시나리오를 열게.] “······이미 열었습니다.” 탁 트인 시나리오의 감시 화면에,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서브 시나리오 ― ‘대천사 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 숲과 벌판 곳곳에 숨어 있던 성좌들이 어딘가로 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도깨비 보따리]를 통해 ‘소드 마스터’ 관련 설화를 구매한 자들이었다. “이런 시나리오를 열어도 괜찮은 겁니까? <에덴>에서 반발할 텐데요.” [서기관의 승낙은 이미 받았다. 상관없다더군. 보수는 이미 지불했으니 거리낄 것도 없어.] “자기네 천사를 시나리오 소재로 허가하다니······ 절대 선의 수장답지 않군요.” [‘절대 선’은 원래 그런 법일세. 더 커다란 선을 위해, 보다 작은 선을 짓밟기도 하지.] “그건 알고 있지만, 요즘 들어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무엇이 말인가?] “<에덴>과 마계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까? 이제 와서 ‘성마대전’ 시나리오에 동의한 것도 그렇고······ 그런 짓을 하면 모두 공멸하는 것 아닙니까?” 바람은 알 수 없는 눈길로 비형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런 말이 있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지구인들의 말이군요.” [그래. 이야기의 영원성을 경배하는 말이지. 그러나 자네도 알겠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아무리 대단한 설화도 언젠가는 죽어. 단지 설화의 수명에 비해, 인간의 삶이란 것이 터무니없이 짧을 뿐이지.] 바람의 말투에는 깊은 세월의 회한이 담겨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성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말해온 도깨비의 목소리. [알고 있는가? 한때 이 <스타 스트림>에 ‘선악’의 구도가 없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 화면 속에서 미카엘의 검에 죽어 나가는 성좌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 그 전투를 관음하는 성좌들이 있었다. 누군가를 후원하거나, 욕설을 내뱉거나, 즐거워하는 성좌들. 코인들이 오고 갔고, 쾌락과 절망의 비명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정경 속에서, 누구도 선악을 논하지 않았다. “아······.” 그 짧은 탄식 속에, 비형은 비로소 대도깨비의 지혜에 도달했다. 바람이 말했다. [이것은 사라지지 않기 위한 전쟁일세.] * 이틀 동안 나는 안나 크로프트와 사냥 준비를 했다. 아스모데우스는 우리와 함께 행동하지 않았다. [이틀 뒤 자정. 사냥터에서 만나죠.] 그 말만 남기고 떠났을 뿐. 아마 녀석도 나름대로 천사 사냥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약속한 ‘대천사 사냥’의 장소는 섬의 북쪽에 위치한 ‘풍요의 숲’이었다. 숲에 도착하기 직전, 안나 크로프트가 물었다. “정말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당신이 도와줄 거잖아.” “나라고 모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지금은 단기 미래만 읽어도 충분해.” 내가 피해가야 할 것은 단기적인 변수들뿐. 그리고 ‘안나 크로프트’의 [미래시]는, 그런 변수들을 피해가기에 적합한 스킬이었다. “······내가 배신하면 어쩌려고 그러죠? 만약 내 ‘표적’이 당신이라면―” “아닌 거 알고 있어.” 애초에 안나 크로프트의 표적은 내가 될 수 없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시나리오에 투입됐으니까. 안나 크로프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제게 반말을 하기로 한 거죠?” “그러고 보니 그러네. ······다시 존댓말 해드릴까요?” “가증스러우니 그만두시죠.” “참, 오늘 [미래시]는 몇 번이나 더 쓸 수 있습니까?” 어이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던 안나 크로프트가 대답했다. “세 번이요.” “함부로 쓰지 말고, 내가 신호하면 사용해줘요.” “내가 왜 당신 말을―” “내 말을 들어야, 이 빌어먹을 시나리오가 끝날 테니까.” 멀리서 성좌들과 화신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벌써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끔찍한 폭음과 함께, 고고한 대천사의 진언이 숲 전체를 진동시켰다. [감히 나를 ‘시나리오’의 소재로 쓰겠다고?] 나와 안나 크로프트는 인근의 풀숲에 숨어서 전장을 훔쳐보았다. 아직 아스모데우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3번 섬에 남은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풍요의 숲’으로 몰려와 있었다. 대부분 ‘악’ 또는 ‘중립’ 계통의 성좌들이었다. 위인급 성좌들 다수에, 하위격의 마왕도 눈에 띄었다. 68번째 마계의 ‘무가치한 암흑’ 벨리알. 아마 아스모데우스의 부름을 받고 온 모양이었다. 녀석을 비롯해 성좌들의 손에는 죄다 2세대의 롱소드가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쳐라!] 벨리알을 필두로 달려드는 성좌들의 모습에, 미카엘이 노기를 터뜨렸다. [고작 하위격의 마왕 따위가······ 단체로 돌아버린 모양이구나.] 미카엘은 가공할 풍압으로 벨리알을 날려버린 후, 자신의 격을 발동해 바람의 결계를 발동했다. 그런데 결계를 가르고 달려드는 이들이 있었다. [성좌, ‘노력 전문가’가 스킬 ‘양산형 검강’을 발동합니다!] 참가자들이 쥔 롱소드에서, 일제히 같은 스킬이 발동했다. 샛노란, 혹은 새파란 아우라를 이루는 검강의 물결이 미카엘의 격을 헤치고 진격했다. 미카엘이 조소했다. [······에테르 블레이드? 미친놈들이군.] 내가 유상아를 통해 흘린 계시는 위조된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어떤 ‘소드 마스터’라 해도 저 대천사 미카엘을 죽일 수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가짜 계시라고 해서, 아주 가능성이 없는 헛소리는 또 아니었다. 츠츠츠츠츳! [2세대의 개연성이 특정 스킬에 강력한 버프 효과를 부여합니다!] 지금은 초월좌들만의 전유물로 천대받는 [검강]. 하지만 한때 2세대의 세계관에서, 검강은 최강의 스킬이었다. [효과가 있다! 계속 베어라!] 치이이이익! 미카엘이 만든 바람의 결계가 검강의 세례에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었다. 당황한 미카엘이 새로운 설화를 발동하려는 순간, 허공에서 새카만 에테르의 섬광이 그어졌다. 스가가각! 마치 공간을 통째로 잘라내는 듯한 마법 같은 선분. 으스러지는 결계 사이로 마왕의 긴 손톱 자국이 남았다. [늘 궁금했었죠. 날개가 사라진 대천사는 과연 날 수 있을까, 없을까?] 찢어진 미카엘의 한쪽 날개가 허공에서 힘겹게 움직였다. 흩날리는 깃털들 사이로 아스모데우스가 웃었다. [오늘 그 답을 알게 됐군요. 날개의 유무는, 대천사들의 비행 능력과 무관하다.] [······아스모데우스!] 광기에 휩싸인 미카엘이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마력을 퍼부었다. 하지만 화신체의 결손으로 인해 균형을 잃은 미카엘은 정확한 타격점을 찾지 못하고 힘을 낭비하기 시작했다. 반면 아스모데우스는 성좌들을 이용해 미카엘에게 착실히 데미지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역시 아스모데우스.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전투였다. “가세하죠. 이대로면 저 마왕에게 신화급 설화를 빼앗기고 말 거예요.” “아직은 아닙니다.” 내 태연한 목소리에 안나 크로프트는 당황한 눈치였다. 아직 금일분의 [미래시]를 사용하지 않은 그녀는 모를 것이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이 어떤 것인지 말이다. [설화, ‘악을 멸하는 악’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미카엘의 전신에 새카만 아우라가 봉오리처럼 모여들었다. 대천사의 것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탁기. 「그 선(善)은, 악을 멸하기 위해 악의 길을 택했으니.」 뭔가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성좌들이 맹공을 퍼부었으나, 검은 봉오리에는 약간의 흠집도 나지 않았다. 마치 양분을 받아먹듯 힘을 흡수한 봉오리가, 천천히 개화하기 시작했다. [대천사 미카엘이 타락합니다!] 그 압도적인 정경을 보며, 나는 ‘멸살법’의 문장을 떠올렸다. 「이 세계의 성좌들이 모두 ‘성좌’와 ‘마왕’으로만 구별되지는 않는다. 오직 딱 하나. 성좌와 마왕의 힘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 오래된 <에덴>의 역사 속, 처음으로 성유과를 먹은 존재. 「그의 진체를 본 악마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으니.」 쿠구구구구구! “······맙소사.”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새카만 날개, 마왕을 상징하는 뿔. [마왕, ‘타락한 천사들의 왕’이 전장을 응시합니다.] 타락한 천사들의 왕. 그것은 마왕이 된 대천사 미카엘의 수식언이었다. 콰아아아아! 간단한 손짓 한 번에, 악계통의 성좌들이 모조리 쓸려나갔다. 같은 마(魔)라고 해도 급이 다르다. 저것이 바로, 신화급 대천사인 ‘미카엘’의 진짜 힘. 심지어 저 아스모데우스조차 굳어진 표정이었다. [이건······ 계시에 없던 일인데.] 이어서 미카엘의 격이 쏟아졌고 몇몇 마왕들이 나가떨어졌다. 아스모데우스의 화신체도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입니다.” “지금 돌입하자고요?” “네.” “······방금 못 봤어요? 아무리 당신 표적이 저 대천사라지만―” “왜 내 표적이 ‘대천사’라고 생각합니까?” 내 말에, 안나 크로프트가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대악마의 눈동자]가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설마······?” 멀리서 실이 끊어진 연처럼 나가떨어지는 아스모데우스의 신형이 보였다. 처음부터, 타락한 대천사를 상대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신화급 설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대천사만이 아니다. [당신의 표적 수식언은 ‘정욕과 격노의 마신’입니다.] 허공에 떠오르는 메시지와 함께, 내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자, 신화급 설화를 얻으러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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