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35화 시나리오상의 쓸모 때문에 공필두를 죽일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공필두를 자기 땅에서 걸어 나오게 할 수도 없다. 이런 곤란한 딜레마를 풀 때는, 차라리 딜레마의 전제에 집중하는 편이 해결에 도움이 된다. 가령 놈이 자신의 ‘사유지’에 안에 있는 게 문제라면, 그 ‘사유지’ 자체를 부수면 되는 것이다. “으윽······ 꺼, 꺼내줘.” “이런 개 같은······.” 다만,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다. 단 한 방에 거대한 ‘사유지’를 부술 수 있는 압도적인 무력. 이현성의 진화를 서두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어억······.” 지하 3층으로 낙하하며 무너진 바닥재에 깔린 사람들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작전은 성공했다. ‘그린 존’은 사라졌고, 건물주들은 ‘방’을 잃었다. 먼지 속에서 악에 받친 얼굴의 공필두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녀석이 입을 열려는 순간, 비형의 목소리가 먼저 귓가로 날아들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거야! 으아아아!] ‘조용히 해.’ [미친놈아! 너 때문에 충무로 도깨비들 난리났다고!] 안 그래도 머릿속으로 왕왕 울려 퍼지는 성좌들의 메시지 때문에, 나는 두통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당신의 난장을 좋아합니다.] [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당신의 혁명을 좋아합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파괴와 혼돈을 좋아합니다.] [3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저, 저 새끼 잡아!” “죽여 버려!” 하나둘씩 일어난 연합원들이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이현성과 함께 아래층 플랫폼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을 발동합니다!] + <등장인물 요약 일람> 인물 : 이현성 특성 : 정의를 되찾은 자 (희귀) 성흔 : [태산 부수기 Lv.1], [태산 밀기 Lv.2] 전용 스킬 : [총검술 Lv.2], [위장 Lv.2], [인내심 Lv.1], [정의감 Lv.2], [무기 연마 Lv.3] + 이현성의 진화는 무사히 성공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제 겨우 첫발일 뿐이지만, 이현성이 ‘태산 부수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행의 전력은 크게 강화될 것이다. “현성 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쓸 수 있겠어요?” “······많아 봐야 한두 번이 고작일 것 같습니다.” 숨을 헐떡이는 이현성은 상당히 지친 기색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태산 부수기’급의 성흔은 체력과 마력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일종의 궁극기니까. 단순한 물리력으로만 따졌을 때, 육체 강화형 스킬 중 ‘태산 부수기’를 능가하는 스킬은 그리 많지 않다. 지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일행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선두에서 달려오는 유상아를 향해 물었다. “안 부순 곳 있어요?” “모두 부쉈어요!” “‘방’이 이런 식으로 부서지는 건진 몰랐네요. 다 같이 바닥 전체를 열심히 두들겨 줬더니 폭삭― 하고······ ” 뒤따라온 정희원이 첨언했다. 유상아와 정희원, 이길영은 제각기 소규모의 ‘그린 존’들을 맡았다. 공필두의 ‘그린 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그린 존들은 3인 미만의 것들이었다. 규모가 애매한 것들도 있었지만, 그것들을 처리할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야! 내 말 안 들려? 이제 어쩔 거냐고!] 한편, 비형은 여전히 ‘도깨비 통신’으로 유난을 떠는 중이었다. ‘뭐가 걱정이야.’ [잊었어? 충무로엔 내 ‘채널’만 있는 게 아냐. 이런 짓 하면 무슨 일 벌어질지 진짜 몰라서 그래?] 당연히 안다. 아마 ‘공필두’를 데리고 있는 채널에서는 지금 성좌들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공필두는 누구 채널이지?’ [···비류 녀석 채널이야. BIR-3642.] ‘비류라면 얼마 전 너 대신에 왔었던 그 도깨비?’ [맞아. 그 새끼.] ‘구독좌 구성이 어떻게 돼?’ [‘유희 찾기’ 집단이 주력인 채널이야.] ‘유희 찾기’ 집단을 주력으로 삼는 도깨비라. 그래서 그때도 방송이 그렇게 과격했었군. 잘 됐다. 그렇다면 채널 내의 반응은 내 예상보다 훨씬 뜨거울 것이다. 다들 고구마를 제대로 먹었을 테니까. 4호선의 환승 계단으로 내려가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건들거리는 장도가 허공을 휘휘 젓고 있었다. “다 부쉈냐?” “응. 쉽던데.” 이지혜가 맡은 것은 5인에서 8인 규모의 ‘그린 존’들이었다. 정희원만으로는 제압하기 어려운 쪽들을 그녀에게 맡겼다. 과연 유중혁의 제자, 아니 성웅(聖雄)의 화신다운 저력이다. 이걸로 충무로에 남은 ‘그린 존’은 없다. “근데 이제 어쩔 거야? 그 새끼들 미친 듯이 달려올 텐데. 아, 저기 오네.” 내 뒤쪽을 바라본 이지혜가 이죽거렸다. “참고로 이번엔 안 도와줄 거야.” “바라지도 않아.” 훌쩍 물러나는 이지혜를 보며, 정희원이 눈을 흘겼다. “쟤는 뭐죠?” 그러고 보니 정희원은 이지혜에 관해 모르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알려줄 시간은 없었다. [하······ 너 이제 좆됐어, 인마.] 비형의 말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현상금 시나리오가 발생했습니다!] + <현상금 시나리오 – 암살 의뢰> 분류 : 서브 난이도 : C 클리어 조건 : #BIR-3642 채널 소속의 성좌들이 특정 인물을 살해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충무로역의 ‘김독자’를 해치우십시오. 제한시간 : 10분 보상 : 2000코인 실패시 : 없음 + 역시 이런 상황이 펼쳐질 줄 알았다. 아주 재밌게 돌아가는구만. 이제 역내의 모든 화신들이 나를 잡으러 3호선 플랫폼으로 모일 것이다. 곁에 있던 정희원이 물었다. “지금 독자 씨 죽이면 2천 코인 받는 거예요?” “왜요, 죽이시려고요?” “에이, 설마요. 20만 코인쯤 준다면 모를까.” 이 여자는 20만 코인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알고나 말하는 걸까. “독자 씨. 제 뒤로 오십시오.” 이현성이 먼저 내 앞을 나섰다. 그 옆을 정희원이 지켰고, 유상아와 이길영도 내 양쪽으로 나서 길을 막았다. 마치 나를 중심으로 방어진이라도 형성한 듯한 광경. 정희원이 웃었다. “이제 신세 좀 갚겠네.” “독자 씨, 어떻게든 저희가 막아 볼게요.”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분노한 건물주 연합원들은 물론이거니와, 현상금 퀘스트에 눈이 먼 세입자들에 이르기까지. 무기를 꾹 눌러 쥐는 이길영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긴장 안 해도 돼.” 나는 가볍게 이길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철길 쪽을 일별했다. “쟤들이 싸워야 할 건 우리가 아니니까.” 몇 회차였더라. 언젠가 분명 그런 장면을 읽은 적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회차 확인까지는 못 했지만, 반복된 회귀로 미쳐버린 유중혁이 충무로에 오자마자 ‘그린 존’을 다 부숴버린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도, 지금과 같았다. [역내의 모든 ‘그린 존’이 파괴되어 메인 시나리오 시스템이 폭주합니다.] [남은 시나리오 일정에 맞춰 난이도가 자동 조정됩니다.] [시나리오 내용이 갱신됩니다!] + <메인 시나리오 # 3 ― 긴급 방어전> 분류 : 메인 난이도 : B- 클리어 조건 : 역내의 모든 ‘그린 존’이 파괴되어 남은 일수에 생성 예정이던 괴물들이 한꺼번에 폭주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범람한 괴물들과 맞서 살아남으시오. 지속시간 : 8시간 보상 : 1000코인 실패시 : ― + 본래 남은 시나리오 지속 기일은 사흘. ‘그린 존’ 시나리오는 한 번 폭주하게 되면, 남은 시간 동안 생성될 예정이었던 괴물들을 한 번에 뱉어내게 된다. 즉, 쉽게 말하자면. [긴급 방어전이 시작됩니다!] 디펜스 게임이 시작된다고 해야겠지. “뭐, 뭐야!” 나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던 사람들이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 스크린도어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괴물들의 울음소리. 성난 파도처럼 꾸역꾸역 밀려오는 괴물들의 향연. “미친! 저것들 뭐야!” 3호선 플랫폼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괴물들을 보며 사람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어느새 ‘현상금 시나리오’ 따윈 까맣게 잊은 모습들. 크르르렁! 몇 마리의 그롤들이 달려와 연합원 몇 명을 물어뜯었다. 당황한 사람들이 우왕좌왕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나는 일행들에게 외쳤다. “환승길로 달려요!” 나는 일행들과 함께 환승 계단을 전력으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위층에 거의 도달했을 즈음, 도주로가 막힌 사람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뭐야! 빨리 비켜!” “뒤지고 싶어?” 나는 뒤따르는 사람 몇을 발로 찬 후, 곧장 칼을 뽑아 들었다. [백청강기]가 휘감긴 칼날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주춤 물러섰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네.” “뭐, 뭣?” “올라와도 당신들은 살아남을 수 없어.” 사람들의 표정에 절망감이 일었다. ‘방’은 이제 없다. 이 충무로 어디에도, 이제 괴물들로부터 안전한 지대는 없는 것이다. “우리 보고 어쩌라는 거야!” “어쩌긴. 맞서 싸워야지.” “미친 소리 말고 꺼져! 모두 너 때문이잖아! 네가 우리 방을 다 부수지만 않았어도······!” 나는 ‘신념의 칼날’을 전개해 환승 계단에 냅다 꽂았다. 콰르르릉! “우와아악!” 계단의 중심이 굉음을 일으키며 무너졌고, 사람들은 추락했다. 잔인하긴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미친! 빨리 다른 계단 찾아! 빨리!” 글쎄, 생각대론 안 될걸. 나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는 이현성의 뒷모습을 보았다. 미리 부숴 놓은 환승 계단을 제하면, 이제 남은 계단은 하나뿐이다. 곧이어 반대쪽에서 콰르릉, 하고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씨발! 으아아아!” 3호선 플랫폼에 갇힌 사람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언제 같이 올라온 것인지, 표정을 굳힌 이지혜가 나를 향해 말했다. “아저씨. 이건 나한테 했던 얘기랑은 다르잖아? 저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나도 알고 있어.” 나는 아비규환이 되어가는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저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밀려든 괴물들은 서로의 몸을 발판 삼아 위층으로 올라오겠지. 그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전용 스킬, ‘책갈피’가 발동합니다.] [‘인물 책갈피’가 활성화됩니다.] [사용 가능한 책갈피 슬롯 : 3개] [활성화 가능한 책갈피의 목록을 불러옵니다.] <책갈피에 등재된 인물 목록> 1. 망상악귀 김남운 (이해도 35) 2. 강철검제 이현성 (이해도 65) 3. 선동가 천인호 (이해도 20) 3번 책갈피 활성화. [3번 책갈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책갈피 스킬의 레벨이 낮아 활성화 시간이 단축됩니다.] [활성화 시간 : 5분]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등장인물이 가진 스킬의 일부만이 활성화됩니다.] [「선동 Lv.2」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갑자기 혀가 스스로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천인호의 기분이었군 그래. 나는 아래층을 바라보았다. 아수라장의 가운데, 멀거니 서 있는 한 중년인의 뒤통수가 보인다. “어이, 공필두. 언제까지 멍청하게 있을 거야?” 목소리를 들은 공필두가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 개 같은 놈······!” “살려면 움직여야 할 거 아냐? 당신이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살 수 있다고.” 공포에 젖은 사람들의 귓가에, 「선동」의 힘이 스며든다. “피, 필두 씨!” “필두 씨, 살려주십쇼!” 공필두의 표정이 차츰 일그러지는 것이 보인다. 아주 기분이 좋다. 금호역의 천인호도 이런 느낌이었겠지. “세 번째 시나리오는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 모두가 ‘방’을 포기하고 방어전에 참가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의 괴물들이 나온다고.” 내 말은 반 정도는 사실이었다. 만약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충무로가 하나로 단결하여 싸웠다면, 피해자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결국, 이 시나리오의 가장 큰 함정은 ‘그린 존’인 셈이었다. “거기에 공필두 당신이 사람들과 함께 싸운다면, 분명 모두 살아남을 수 있어.” 함께 맞서 싸우는 자들은 살아남고, 살기 위해 달아나는 자들은 죽는다. [이지혜의 배후성이 수식언을 드러냅니다.] [성좌, ‘해상전신’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 당신들이 달아날 ‘방’은 없어. 건물주든 세입자든, 그런 건 잊어버리고 얼른 싸워. 안 그러면 모두 죽을 테니까.” 지금처럼 긴급한 상황일수록 「선동」의 효과는 최고조에 이른다. “젠장, 저 망할 놈이······!” “필두 씨! 도와주십쇼!” 연합원들이 공필두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여기서 혼자 살겠다고 달아나면, 공필두의 ‘건물주 연합’은 궤멸한다. 결국 공필두가 결심을 마쳤다. “빌어먹을······. 다들 모여!” 아래층의 사람들이 공필두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무장지대」는 새로 설치하는 데 시간이 걸려. 다들 조금만 버텨라!” 핵심은 공필두의 ‘무장지대’였다. 다만 ‘무장지대’는 한 번 자리를 옮길 때마다 설치하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약점이 있었다. 곳곳에서 피가 튀어 올랐고, 팔다리를 뜯긴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악!” 예상대로, 진형에서 가장 먼저 버려진 것은 연합원이 아닌 ‘세입자’ 들이었다. “유상아 씨.” “네. 맡겨 주세요.”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유상아는 이미 자기가 할 일을 이해하고 있었다. [실 묶기]를 통해 내뻗은 마력의 실이, 전투 불능이 된 사람들을 하나씩 구출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저 사람들의 임무는 공필두가 [무장지대]를 펼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뿐이다. “으, 으으······ 고맙, 고맙습니다.” 대롱대롱 매달린 세입자들이 하나씩 위층으로 구조되었다. 구출된 세입자들이 몸을 떨며 다친 부위를 감싸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나와 눈이 마주친 몇몇이 조심스레 병장기를 쥐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아, 현상금 노리시게요?” [‘현상금 시나리오’의 시간이 만료되었습니다.] [화신 ‘김독자’에게 걸려 있던 현상금이 소멸합니다.] “아쉽네, 조금 일찍 덤비지 그랬어요.” “죄, 죄송합니다.” 세입자들이 부끄럽다는 듯 병장기를 놓았다. 아래쪽에서 공필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비켜!” [등장인물 ‘공필두’가 스킬 ‘사유지 Lv.3’를 사용합니다!] [등장인물 ‘공필두’의 성흔 ‘무장지대 Lv.4’가 발동합니다!] 기계음과 함께, 바닥에서 다섯 개의 포탑이 고개를 들었다. 붉게 응축된 마력탄이 제각기 발포를 시작한 건 삽시간이었다. 투두두두두두! 쾅! 콰앙! 콰앙! 무장지대의 포탄 세례를 받은 땅강아쥐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그롤들의 기세가 주춤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여, 역시 필두 씨!” “우와아아아!” 과연 공필두. 적어도 농성형 시나리오에서만큼은 저 녀석의 전투 효율을 능가할 화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십악이 괜히 십악이 아니다 이거지. “다 뒈져, 이 개새끼들아!” 흥분한 공필두가 마구잡이로 포탄을 갈겨댔다. 이현성이 감탄한 듯 말했다. “정말 엄청난 성흔이군요. 마력 소모가 커 보이는데 괜찮을까요?” “가성비가 좋은 성흔이라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저희가 돕지 않아도······.” “공필두 혼자로도 충분해요. 괜히 내려가 봐야 포 쏘는 데 방해만 됩니다.” 공필두의 배후성인 ‘디펜스 마스터’는 이런 종류의 시나리오에 완전히 환장하는 녀석이다. 그러니, 놈이 공필두를 후원하는 한 공필두는 절대로 여기서 죽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후원’이 계속되는 한은 말이다. 나는 자리에 다리를 뻗고 앉으며 말했다. “우린 잠시 꿀이나 빨고 있죠.” “···벌써 개인 정비 시간입니까?” 이현성이 나를 따라 자리에 앉자, 긴장이 풀린 일행들도 하나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정희원이 물었다. “고마워요. 안 그래도 수면이 부족했는데······ 한숨 자도 돼요?” “그러세요.” 그대로 10분쯤 지나자 정희원은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코까지 골기 시작했다. 내가 그러라고 말하긴 했지만, 저건 대체 어떻게 된 신경인지 모르겠다. “우, 우리 이렇게 태평해도 괜찮은 걸까요?” 유상아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하긴, 혼란스럽겠지. 지금까지 이렇게나 ‘편한’ 시나리오는 없었으니까. 실제로 우리가 하는 일은 간간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하나씩 건져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줄을 잘 섰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저쪽은······.” “줄을 잘못 선 거죠.” 아래층의 공필두는 이제 거의 곤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우으으으아아아!” 그러게 사람이 평소에 착하게 살았어야지. “시발! 시바아아아알!” 끝나지 않는 괴물들의 행렬 속에서 공필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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