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36화
전투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공필두는 싸우고 또 싸웠다. 괴물들의 숫자는 거의 줄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괜히 공필두가 십악 중 ‘최강의 방어’로 손꼽히는 게 아니다.
“시벌 새끼들아!”
[등장인물 ‘공필두’의 ‘무장지대’ 레벨이 올랐습니다!]
[등장인물 ‘공필두’의 ‘사유지’ 레벨이 올랐습니다!]
[등장인물 ‘공필두’가 ‘방호벽’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무장지대]를 풀로 돌리는 만큼 스킬 레벨업 속도도 빨랐다. 공필두의 배후성도 급했던 모양인지 녀석의 성장세에 맞춰 후원을 퍼붓고 있었다. 아마 저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공필두는 엄청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으리라.
어디까지나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흐으어어어어어······!”
시나리오에 따르면 공필두는 앞으로 7시간을 더 버텨야 한다.
팝콘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바로 옆에서 이지혜가 낄낄대며 아래층을 구경하고 있었다.
아까는 사람 살려야 한다고 나한테 지랄을 하더니······ 과연 유중혁의 제자다운 태세 전환이었다.
“근데 유중혁은 왜 안 오냐?”
“내가 어떻게 알아? 사부는 늘 바빠.”
바쁘다······ 그래, 바쁠 수도 있겠지.
원래 혼자 다 처먹으려는 놈이 제일 바쁜 법이니까.
나는 다 죽어가는 공필두를 내려다보며 넌지시 물었다.
“유중혁이 ‘던전’에 들어간 게 몇 시야?”
“대충 오늘 오전 9시쯤······.”
이지혜가 말하다 말고 나를 쏘아보았다.
“···잠깐만, 사부가 던전 들어간 거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
나는 이지혜를 무시하고 속으로 시간을 계산했다. 지금 시각은 오후 8시. 단순 계산으로도 유중혁이 던전에 들어간 이후 벌써 11시간이 경과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젠장,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하나.
그래도 유중혁이 주인공인데 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
나는 도깨비 통신을 걸었다.
‘비형.’
허공에서 히죽거리던 비형이 내 쪽을 홱 돌아보았다.
[왜? 갑자기.]
‘도깨비 보따리 좀 열어봐.’
[뭐? 야, 안 돼! 지금 한창 구독좌 늘어나고 있는 중인데!]
알 만하다. 방금 내 활약으로 공필두의 주가는 하한가를 갱신하고 있을 것이다. 고구마를 꾸역꾸역 먹는 것도 모자라, 내 함정에 빠져 신나게 호구짓까지 해대고 있으니, 그 성질 급한 ‘유희 찾기’ 집단의 성좌들이 아직도 공필두가 속한 채널에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채널을 떠난 성좌들은 어디로 가는가?
[새로운 성좌들이 대거 채널에 입장합니다!]
당연히, 내가 있는 비형의 채널로 오겠지.
[#BI-7623 채널이 확장을 준비합니다.]
[흐흐, 흐흐흣, 이것 봐, 이것 봐! 이제 내 채널도······!]
그러니 비형이 저렇게 신이 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까지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채널 망하기 싫으면 빨리 열어. 채널 확장 준비로 잠시 광고 튼다고 하면 되잖아.’
[아, 시발······ 진짜······.]
비형은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광고를 내보낸 후 [도깨비 보따리]를 열어 주었다.
드디어 그동안 아껴 둔 코인을 풀 때가 왔다.
‘5000코인 줄게. 골드 멤버로 승급시켜 줘.’
비형은 잠자코 나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뒤이어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
[5000코인을 소모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도깨비 보따리’의 골드 멤버가 되었습니다!]
멤버 등급이 바뀌자, ‘도깨비 보따리’의 배경 화면도 바뀌었다. 역시 코인이 좋긴 좋다. 새로 추가된 아이템 목록들이 보였다. 나는 그중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 배후 계약서 ― 10000 C
* 중급 마력 회복의 물약 X 10 ― 5000 C
일단 계약서 한 장이랑, 중급 마력 물약 10개······ 이 정도면 되겠지.
당장 지출이 좀 크긴 하지만, 곧 채널이 레벨업 될 테니 이 정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담은 물품을 확인한 비형이 신경질을 냈다.
[···그 계약서는 왜 사는 건데? 벌써 계약 내용 잊었어? 너 배후성 계약 안 하기로 했잖아!]
‘뭔 소리야? 내가 이제 와서 배후성 계약을 왜 해?’
그리고, 하더라도 내가 왜 내 코인 주고 계약서를 사겠냐.
하여간 비형 녀석도 어지간히 쫄보다.
[15,000코인을 소모하였습니다.]
[‘배후 계약서’를 획득하였습니다.]
[‘중급 마력 회복의 물약’ 1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허공에서 물품들이 내려오자, 유상아가 호기심을 보였다.
“그건 뭔가요?”
“‘갑’을 ‘을’로 만드는 계약서요.”
나는 꼼꼼히 계약서를 작성한 후, ‘갑’에 내 이름을 써넣고 조용히 기다렸다. 이제 슬슬 ‘을’께서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등장인물, ‘공필두’의 배후성이 주변 성좌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드디어 한계에 달한 공필두의 배후성이 채널 바깥으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놈의 배후성은 그렇게 많은 코인을 가진 성좌가 아니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성좌라고해서 모두가 부자인 것은 아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코웃음을 칩니다.]
공필두가 자초한 고구마로 채널 내의 다른 성좌들도 후원을 끊었을 테고, 하나뿐인 화신은 말라 죽어가고 있고······ 모두 계획대로다.
뭔가를 눈치챈 비형이 중얼거렸다.
[잠깐만, 너 지금 설마······.]
나는 거의 반죽음 상태에 이른 공필두를 향해 말을 걸었다.
“어이, 거기.”
두두두두! 미친 듯이 포를 쏘아 대던 공필두가 힘겹게 내 쪽을 올려다보았다.
“이대로 죽을래, 아니면 나랑 계약할래?”
“뭐, 뭐······?”
“나는 성좌가 아니라서 ‘배후성(背後星)’은 못 되지만, 원한다면 ‘배후자(背後者)’는 되어줄 수 있는데, 어때?”
“무슨 개소리냐 시발놈아······!”
“아, 공필두 넌 찌그러져 있어. 너한테 말한 거 아니니까.”
“뭐······?”
나는 한 손에는 ‘계약서’를, 다른 한 손에는 ‘중급 마력 회복의 물약’을 흔들며 물었다.
“빨리 대답해봐, 나랑 계약하면 이거 전부 지원해 줄게.”
이윽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등장인물 ‘공필두’의 배후성이 자신의 수식언을 드러냅니다.]
[성좌, ‘디펜스 마스터’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렇구만. 아직 ‘을’이 되실 준비가 안 되셨다 이거지.
안달하지 않는다. 어차피 시간이 지날수록 급해지는 건 저쪽이니까.
비형이 나를 보며 말했다.
[저기······ 혹시 미친놈이세요?]
‘또 왜.’
[살다살다 성좌를 후원하겠다는 놈은 니가 처음이다.]
‘못할 게 뭐 있어?’
[그래도 저쪽은 성좌야! 하찮은 인간과 계약할 리가 없잖아?]
‘그건 네 생각이고.’
성좌 디펜스 마스터.
녀석은 능력에 반해 격이 낮은 성좌였다.
그의 월드는 오래전 ‘시나리오’를 겪으며 완전히 멸망해버렸고, 때문에 디펜스 마스터의 신화는 이제 회자되지 않는다. 신화가 사라진 성좌는 코인을 수급할 수 없고, 언젠가는 존재조차 사라지게 된다.
디펜스 마스터를 비롯한 일부 성좌들이 ‘화신 찾기’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성좌들은 선택한 ‘화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기억시킨다.
‘저 녀석, 이제 남은 코인이 없어.’
[뭐?]
아까부터 공필두의 힘이 급격하게 빠지고 있었다. 디펜스 마스터는 ‘잡배의 왕’ 같은 놈이랑은 다르게 자신의 화신을 아끼는 녀석이다. 그런데 공필두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제 코인이 바닥났다는 뜻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코인이 없으면 새로운 ‘배후 계약’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화신을 만들 수 없는 성좌는 어떻게 되는가?
‘공필두가 죽으면, 녀석은 잊혀진다.’
그리고 성좌에게 잊혀짐은, 곧 죽음을 뜻한다.
비형의 동공에 희미한 두려움이 깃들었다.
[넌 대체······?]
공필두는 수족으로 둘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카드다. 그 ‘유중혁’ 조차 무수한 회귀 속에서 몇 번이나 공필두를 수하로 거두려 시도했다. 물론,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유상아가 말했다.
“독자 씨, 저 사람 저러다 죽겠어요.”
공필두가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이제 [무장지대]에 남은 미니 포탑은 이제 두 개뿐.
슬슬 치킨런도 끝날 때가 됐다.
[성좌, ‘디펜스 마스터’가 계약서의 내용을 궁금해합니다.]
왔군. 곁에서 그 광경을 보던 비형이 눈을 껌뻑였다.
[······진짜? 아니, 진짜로?]
나는 곧바로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성좌, ‘디펜스 마스터’가 계약서를 읽기 시작합니다.]
아래층에서 피를 철철 흘리던 공필두가 갑자기 소리쳤다.
자기 배후성의 발언이니, 아마 놈도 메시지를 들었겠지.
“뭐, 뭐야! 이 메시지 뭔데!”
뭐긴, 네가 팔려 가는 소리지.
“무, 무슨 일입니까 필두 씨?”
[성좌, ‘디펜스 마스터’가 잠시 고민할 시간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좌, ‘디펜스 마스터’가 계약 항목을 추가하였습니다.]
[이 항목에 찬성할 경우, 성좌, ‘디펜스 마스터’는 당신과의 계약에 동의할 것입니다.]
나는 곧바로 계약서를 읽었다.
······.
14. 화신 김독자(갑)은 성좌 디펜스 마스터(을)의 재산권을 인정하며, 을의 사유재산인 ‘공필두’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
15. 화신 김독자(갑)은 성좌 디펜스 마스터(을)의 사유재산인 ‘공필두’가 잘 성장할 수 있게끔 곁에서 도와야 한다.
······.
생존권과 성장권의 보장. 사실, 기입하지 않아도 될 내용이었다. 공필두가 수족으로 들어오면 죽지 않을 정도로 막 굴려서 키워주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러니 나한테 정말 중요한 항목은 3번뿐이다.
3. 화신 김독자(갑)은 현 시간부로 성좌 디펜스 마스터(을)의 사유재산인 ‘공필두’에 대한 명령 권한을 가진다. (일일 최대 10회)
계약 내용을 모두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한다.”
이윽고 공필두와 나 사이에 희미한 실이 연결되더니,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당신은 계약에 따라 화신 ‘공필두’의 ‘공동 배후자’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계약에 따라 화신 ‘공필두’에 대한 명령권을 획득했습니다.]
[해당 계약의 기한은 5년이며, 갱신하지 않을 시 자동 연장됩니다.]
무장성주 공필두를 이렇게 쉽게 얻다니, 유중혁이 알았다면 기절할 일이다. 원작을 후반부까지 읽지 않았더라면 나도 <배후 계약서>를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겠지.
나는 유상아에게 회복 물약들을 건네주었다.
“이거, 공필두한테 주세요. 한 40분마다 하나씩 주면 될 거예요.”
“···줘도 괜찮을까요?”
줘야 한다. 안 주면 녀석이 메인 시나리오를 못 깰 테니까. 유상아를 통해 물약을 건네받은 공필두가 이쪽을 보았다.
“이건 뭐야?”
“먹고 싸우라고.”
순간 의심하던 공필두가 이내 물약 뚜껑을 땄다. 푸른색 연기가 녀석의 몸에서 피어오르며, 망가져 가던 포탑들이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등장인물 ‘공필두’의 마력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물약이 묻은 입술을 닦은 공필두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멍청한 놈. 이런다고 네놈을 용서해줄 것 같아? 내가 여기에서 나가면, 그날이 네놈 제삿날······.”
“입 다물어, 공필두.”
[계약 조항에 따라 ‘명령권’이 발동합니다!]
“읍, 읍읍? 읍읍읍읍?”
불쌍한 녀석, 자기가 어떤 처지인 줄도 모르고.
“그럼 열심히 싸워라. 내 일행은 건드리지 말고.”
“읍! 으읍읍······!”
두두두두두!
고분고분 내 말을 듣는 공필두를 보며 유상아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도, 독자 씨? 저 사람 갑자기 왜 저러는 거죠······?”
“‘갑’을 ‘을’로 만든 것뿐입니다.”
“···뭔가 수를 쓰신 거예요?”
“이제 공필두에 대해선 안심하셔도 됩니다.”
성좌들의 폭탄 메시지가 쏟아진 것은 그때였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발상을 재미있어합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당신의 전략에 여의봉을 떨어뜨립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당신을 건방지다고 생각합니다.]
······.
나름 비밀스레 계약을 진행했는데도 벌써 눈치챈 녀석들이 나타났다. 디펜스 마스터는 상위권의 성좌는 아니지만, 그래도 성좌다.
한낱 인간인 내가 무려 ‘성좌’와 ‘공동 배후자’가 되었으니, 성좌들이 받을 충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개중에는 ‘심연의 흑염룡’처럼 내게 반발하는 녀석도 있겠지. 하지만.
[상당수의 성좌들이 당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배후성이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내 가치를 깨달은 성좌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았다. 내 배후성이 될 수만 있다면 ‘디펜스 마스터’의 전력까지 이용할 수 있게 되니, 탐낼 만도 하지.
공필두가 있던 채널의 주인, 도깨비 비류가 허공에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성좌님들! 왜, 왜······ 갑자기 다 가시는 건데요! 가, 가지 마세요!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졸지에 채널이 망하게 생긴 비류가 허공을 향해 호소하고 있었다. 금호역에서 ‘생존비’와 ‘식량 패널티’를 걸었던 망할 도깨비 자식.
[히, 히이이익! 아, 안돼애······.]
도깨비 비류의 모습이 서서히 흐릿해져 갔다.
[채널 # BIR-3642가 구독좌 감소로 강제 종료되었습니다.]
채널 하나가 허망하게 망해버리는 광경을 보며, 비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독자님?]
‘왜.’
[너······ 설마 처음부터 공필두를 노리고 있었던 거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미친······ 어떻게 인간이······ 나 대체 뭐랑 계약한 거지?]
비형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럼 이쪽은 정리가 됐고,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볼까.
나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죄송한데 저는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지금요?”
“급하게 가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현성 씨랑 유상아 씨가 남아 주세요. 딱히 하실 일은 없고, 시나리오가 끝날 때까지 필두 녀석한테 물약이나 던져 주면서 쉬시면 됩니다.”
정희원이 물었다.
“저랑 길영이는요?”
“저랑 같이 가시죠.”
“어디로요?”
“음······ 잘 설명하긴 어렵지만, 나쁜 놈이 하나 있습니다.”
“나쁜 놈이요?”
“네. 사람들이 죽든 말든 혼자 아이템 처먹겠다고 사라진 나쁜 놈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놈 뒤통수를 때려주러 갈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세게. 잠시 고민하던 정희원이 물었다.
“···공필두보다 나쁜 놈이에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훨씬 나쁜 놈이죠.”
“가요, 그럼.”
“자세한 건 가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반색하는 정희원과 이길영을 데리고 움직였다. 그런데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지혜였다.
“잠깐, 아저씨 지금 어디 가려는 거야?”
하여간 감은 좋아서.
“잘 됐다. 너도 따라와.”
“어딜?”
“유중혁이 위험해.”
이지혜는 그 말이 농담이라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피식 웃었다.
“무슨 개소리야? 사부가 위험하다고?”
내 표정이 여전히 심각하자, 이지혜의 얼굴에서도 곧 웃음기가 가셨다.
“···진심? 아니,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어떻게 알긴. 아마 네 사부에 대해선 내가 세계 제일, 아니, 제이(第二)의 권위자일거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 자식, 1번 출구에 있는 히든 던전에 들어갔지?”
“어, 어?”
“그리고 이제 들어간지 11시간이 지난 참이고?”
“어어······.”
이지혜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내가 기억하기로 유중혁이 충무로 ‘히든 던전’을 공략한 것은 총 여덟 번이다. 개중 두 번은 실패했고, 여섯 번은 성공했다. 문제는 실패한 두 번이 초반 회차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8회차와 11회차.
그리고 8회차의 유중혁은, 충무로의 ‘히든 던전’에서 죽었다.
그런데 지금의 유중혁은... 3회차다.
“이대로 두면, 유중혁은 오늘 죽어.”
내 예상이 맞다면, 우리의 망할 회귀자는 지금쯤 한창 ‘개복치 루트’를 타는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