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345화 Episode 65. 선과 악 ‘만다라의 수호자’는 신비한 성좌다. 다른 성좌들과는 달리 채널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입장하더라도 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드물다. 그는 일정한 주기를 두고 ‘화신’을 선택하며, 선택한 화신에게 ‘환생자’의 특성을 부여한다. 눈앞의 니르바나 또한 그렇게 탄생한 환생자들 중 하나였다. 「(네놈은 환생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른다. 더 이상의 환생자는 만들어져선 안 돼.)」 “그건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냐.” 나와 니르바나는 동시에 유상아를 바라보았다.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그녀는, 멍하니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아마 머릿속으로 지금 돌아가는 대화의 맥락을 열심히 읽어가는 중일 것이다. 「(······저 여자에겐 이미 배후성이 있을 텐데?)」 “이제 없어.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했을 때 디오니소스에게 부탁해서 연결을 끊었으니까.” 「(그 ‘올림포스’가 순순히? 막대한 개연성은 어떻게 부담한 거지?)」 나는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어차피 <올림포스> 전의 자세한 내막이나 디오니소스와의 거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나중에 ‘벽’을 통해 읽어 봐. 어차피 내가 벌이는 사건들은 전부 읽고 있을 거 아냐. 그보다 빨리 내 질문에나 답해. 네 배후성 지금 어디 있어?” 「(나도 ‘벽’에 흡수당하면서 그와의 인연이 끊어졌다.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니르바나가 흘기듯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넌 이미 예상하고 있을 것 같은데?)」 사실 그 말은 맞았다. 내가 니르바나에게 한 질문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유상아 씨. 너무 걱정 마세요. 저 녀석들, 보기만큼 나쁜 놈들은 아니―” 나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쿠구구구구! 공간 전제가 쪼그라드는 느낌과 함께, 내 몸이 도서관 밖으로 퇴출당하고 있었다. 놀란 유상아가 이쪽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내 몸은 스파크 속에서 흩어지는 중이었다. 「건 방 진김 독 자」 그리고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 「“······독자 씨는 아직인가요?”」 「“네.”」 「“벌써 사흘째인데······.”」 먼 곳에서부터 일렁이는 목소리에, 조금씩 의식이 깨어났다. 잘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한 감각들도 한꺼번에 밀려왔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전기 고문을 당하고 있는 느낌이랄지. 「“전기 뱀장어도 아니고······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상아 언니는 어떻게 된 걸까요? 갑자기 화신체까지 통째로 사라졌는데······.”」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내가 대충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조금씩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설마 사흘째 기절해 있었던 건가. 의식은 돌아왔지만 몸은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츠츠츠츠츳! [동료의 죽음을 막기 위한 당신의 행동이 ‘개연성 적합 심사’에 적발되었습니다.] [당신은 현재 ‘개연성 폭풍’의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총 5일 동안 당신의 거의 모든 행동이 제약됩니다.] [남은 제약 기간 : 2일 3시간 31분] 그렇게 피해가려고 애썼는데, 기어코 개연성 폭풍에 휘말리고 만 모양이었다. 그나마 이 정도의 피해에서 그친 것이 지금으로서는 기적이었다. [‘도깨비 통신’을 통해 당신에게 도착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비형에게 온 메시지였다. ―김독자 이 미친놈아. ―또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함’한테 먹히고 싶은 거냐? ―내가 미리 제동 안 걸었으면 지구로 재앙이 밀려왔을 거라고. 너 계속 운 좋게 넘어가니까 개연성이 무슨 개똥인 줄 알지? 비형의 메시지는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시나리오의 결말에 잘 도달하려면 개연성을 착실하게 잘 쌓아야 한다는 둥, <스타 스트림>에게 미움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둥, 뻔한 잔소리였다. 언제부터 이 녀석이 이렇게 바가지 긁는 캐릭터가 된 건지. ―하여간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은 조심해. <스타 스트림>의 의지가 이번 사태로 널 굉장히 주목하고 있어. 강제로 [제4의 벽]의 일부를 뜯어내고 유상아를 들여보낸 것이 이만한 후폭풍을 불러올 줄은 몰랐다. 하긴, 성좌들 입장에서야 황당할 것이다. 무대 위의 배우가 무대 세트를 부수고 사라진 느낌일지도 모른다. [현재 ‘제4의 벽’이 자신을 수복 중입니다.] [다수의 성좌들이 당신이 저지른 행위의 개연성을 의심합니다.] [다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정체를 엿보지 못해 아쉬워합니다.] [일부 성좌들이 당신이 ‘최후의 벽의 파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나마도 [제4의 벽]이 재빠르게 대응해서 피해는 최소화한 모양이었다. 비록 며칠 동안 발이 묶이긴 했지만, 어머니도 살렸고 유상아도 구했으니 그 대가로는 싼값이었다. 물론 유상아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기에,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유상아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환생자들의 왕’이자 ‘최초의 환생자’인 그 성좌를 만나야만 한다. 시기가 조금 이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른 시기도 아니었다. ‘마계의 봄’부터 ‘신화를 삼킨 성화’까지. 기(起)와 승(承)을 맺으며, 나는 ‘단 하나의 설화’의 절반을 완성했다. 나와 <김독자 컴퍼니>의 등장으로 인해 총체적인 시나리오 전개는 가속화되었을 것이고, 본래 원작에서는 훨씬 후에 등장했어야 할 소재들도 속속들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본래 전(轉)으로 얻을 ‘거대 설화’의 후보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예를 들면 성운 <아스가르드>의 <라그나로크>라든가, 성운 <황제>가 가진 몇몇 거대 설화들도 후보에 있었다. 기와 승과는 달리, 전(轉)은 ‘단 하나의 설화’의 절정을 소화할 규모가 되어야 한다. 이제껏 있었던 설화들을 바탕으로 한, 차원이 다른 규모의 시나리오. 그런 수준의 무대가 아니면, 절대로 내가 원하는 ‘결’에는 도달할 수 없다. 어쩌면 세 번째 ‘거대 설화’의 발판으로, 최초의 환생자가 머무르고 있을 ‘그 섬’은 괜찮은 무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츠츠츠츠츳. 그나저나, 이래서야 언제쯤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절한 동안 사흘이 지나긴 했어도, 아직 이틀이나 더 이 꼴로 있어야 하다니······.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때워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거대 설화’ 일부를 조금 희생한다면 후폭풍의 여파를 잠재울 수 있겠지만, 간신히 모은 설화를 고작 여기서 희생하기엔 아까웠다. ······‘멸살법’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김 독자」 ‘······제4의 벽?’ 「너계 속 그 럴 거야?」 어쩐지 심통 난 어린애 같은 말투. 기회다 싶은 생각에, 나는 재빨리 답했다. ‘이젠 안 그럴게.’ 「거 짓 말」 음절 하나하나에 나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박혀 있었다. 녀석이 이렇게까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나는 조금이지만 진심으로 미안해졌다. ‘믿어줘, 정말이야.’ 「흥」 ‘······유상아 씨는 어떻게 됐어? 잘 있는 거지?’ 아무리 명석하고 적응이 빠른 유상아라도, 저 도서관 안에 있는 존재는 죄다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족속들이다. 하나는 이계의 신격, 하나는 성좌의 창작품, 나머지 하나는 환생자였던 존재다. 게다가 도서관의 주인인 [제4의 벽]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녀석이었다. ‘유상아 씨한테 너무 박하게 대하지 말아줘. 좋은 사람이야.’ 「그 건 유상 아 가 하기 에 달 렸 어」 지금으로선 유상아를 믿는 수밖에 없다. 나처럼 ‘멸살법’ 같은 치트가 없어도 여기까지 잘 버텨낸 사람이다. 그러니, 도서관 안에서도 분명 잘 해낼 것이다.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 「안 돼」 ‘그러지 말고 이야기라도 들어줘.’ 「안 돼」 ‘······우리 예전엔 꽤 친했잖아. 마계 막 도착했을 때 생각해 보라고. 그때 서로 얘기도 많이 했었잖아.’ 「그 때뿐 이 었잖 아」 ‘앞으로도 얘기 많이 하면 되지.’ 「김독 자 내 가 말 해도 별 관 심 없다」 어쩐지 뼈가 느껴지는 말이라, 나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제4의 벽]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개중에는 ‘멸살법’의 문체를 빌린 서술도 있었고, [제4의 벽] 특유의 빈정거림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내가 녀석에게 제대로 반응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김독 자 말 도 못하 는 도깨 비 더좋 아 해」 ‘비유를 말하는 거야?’ [제4의 벽]은 대답이 없었다. 나로서는 조금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너······.’ 이 녀석도 외로움을 느낄까. 기쁨이나 슬픔, 고통을 느낄까. 한 번도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갑자기 낯선 기분이 되었다. ‘······앞으로는 자주 말을 걸게. 미안해.’ 「흥」 ‘화 풀어. 약속할게.’ 「정말 이 지」 ‘정말이야.’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제4의 벽]이 말했다. 「하지 만 김독 자 하 나로 는 부 족해」 ‘뭐?’ 「내 친구 들 을 모 아줘」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친구라니, 대체 어떻게 ‘벽’에게 친구를 만들어 준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설마? 그 느낌을 증명하듯, [제4의 벽]이 입을 열었다. 「김 독자 는 ‘최 후 의 벽’을 모 아 야해.」 * ‘설화를 더 모아야 한다.’ 멍하니 하늘을 보던 유중혁은, 강박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레몬 사탕을 으드득 씹었다. 그는 사탕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딱히 대체제가 없는 지금으로서는 별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무림 만두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취향을 누릴 때가 아니었다. ‘······아니, 이미 설화가 모이는 속도는 충분히 빨라. 중요한 것은 설화 자체를 단련하는 거다.’ 어쩌면 이제 ‘그 섬’에 가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키리오스가 다녀왔고, 그의 스승이 다녀왔던 섬. 유중혁은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며, 앞으로의 계획들을 구상했다. [당신의 배후성이 최근 당신의 행보에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자, 어렴풋한 배후성의 시선이 느껴졌다. 최근 그의 배후성은 저런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3회차의 회귀 동안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유중혁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뭐가 불만이라는 거냐.” [당신의 배후성은 당신이 주도적으로 행동하길 바랍니다.] 그 말은 유중혁의 뇌리 깊은 곳 어딘가를 건드렸다. 확실히 지난 회차와 비교했을 때 그의 삶은 많이 변했다. 말할 것도 없이 김독자를 만난 이후부터였다. ‘······그놈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심지어 그 정체도 모를 놈과 성운까지 창설했다. ‘예언자는 아니라고 했지.’ 유중혁은 미뤄 두었던 숙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듯 사고에 몰두했다. ‘그런데도 미래의 정보들을 알고 있고.’ 생각할수록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녀석이 왜 지난 회차에서는 없었던 걸까. 처음에야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하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침착하고 치밀한 녀석이, 지난 회차에서는 ‘첫 번째 시나리오’조차 통과하지 못했다고? 의심은 한 번 불어나기 시작하자 둑을 타고 넘쳐 흘렀다. [알 수 없는 힘이 당신의 상상력에 제동을 가합니다.]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유중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독자에 대한 생각을 할 때면 유중혁은 머리가 아파왔다. 특히, 녀석의 정체에 대해 몰두할 때면 더욱. “유중혁, 뭐하냐?” 돌아보자, 입에 레몬 사탕을 물고 있는 한수영이 보였다. 유중혁이 물었다. “김독자는 아직인가?” “아직.” “게으른 놈이군.” “······개연성 후폭풍 터졌는데 저놈이라고 별수 있나. 지금까지 안 터진 게 이상했던 거지.” 두 사람은 한가롭게 서서 [공단]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의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모처럼 찾아온, 평화 아닌 평화였다. 한 사람이 쓰러졌고, 다른 한 사람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공단]에 이런 시간은 흔치 않았다. 유중혁은 반쯤 눈을 내리깐 채 먼 곳을 응시하는 한수영을 일별했다. 그답지 않게 불쑥 뭔가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이 녀석이라면 내가 궁금한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김독자와 마찬가지로 이번 회차의 변수로 나타난 존재. 가끔 김독자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면, 이 여자는 김독자가 어떤 존재인지― 섬뜩한 감각이 뒷덜미를 훑은 것은 그때였다. “유중혁.” 한수영의 말과 거의 동시에, 유중혁은 등에 차고 있던 [흑천마도]를 빼들었다. 옆에 있던 한수영도 손의 붕대를 풀고 있었다. 먼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뭔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손님의 기척이었다. 창공에 어두운 빛살을 남기며 날아온 존재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긴장한 유중혁의 오른손에 거친 마력이 흘렀다. “아스모데우스. 여긴 무슨 일이지?”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웃었다. [‘구원의 마왕’을 만나러 왔습니다. 어디 있죠?] “녀석은 왜 찾지?” [긴히 전할 말이 있거든요. ‘종말의 구도자’로서.] “······종말의 구도자? 나한테 말하고 꺼져라.” [아, 정말 귀찮게······.] 비록 잠깐 아군이 된 적은 있었지만, 유중혁은 근본적으로 아스모데우스를 믿지 않았다. 더군다나, 저 마왕에겐 지난 회차에서의 은원(恩怨)도 있었다. 쿠구구구구! 험악한 기류가 발생하자, 유중혁의 격과 아스모데우스의 격이 용오름을 형성하며 부딪쳤다. [음? 이 정도로 강해졌을 줄은 몰랐는데······.] 자신을 상대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유중혁의 격에, 아스모데우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장난스러운 표정 이면에 깔린 명백한 악의. [회귀자 유중혁.] 악마 같은 미소를 지은 아스모데우스가 유중혁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붉게 그려진 마왕의 입술이, 금기를 범하듯 입을 열었다. [혹시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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