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339화
[등장인물 ‘유중혁’이 ‘파천붕권 Lv.???’을 발동합니다!]
[해당 스킬의 레벨 수치를 일시적으로 표기할 수 없습니다!]
[설화의 힘으로 인해 스킬이 비정상적으로 강화됩니다!]
유중혁의 [파천붕권]에 파괴된 테세우스의 오른팔이 수중을 부유했다.
테세우스가 멍한 얼굴로 이쪽을 보았다.
잘못이 없는 그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포세이돈이 테세우스의 몸에 강림한 이상, 테세우스를 해치우는 것만이 저 ‘신화급 성좌’를 시나리오에서 퇴거시킬 유일한 방도였다.
유중혁의 전신에서 스파크가 튄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일부 도깨비들이 해당 설화의 개연성을 의심합니다!]
[등장인물의 화신체가 해당 스킬의 숙련도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역시, 아무리 362회차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의 유중혁은 3회차의 몸. 포세이돈의 결계를 부수고 테세우스의 화신체를 멸하기엔 부족했다.
[아이템, ‘리코메데스 왕의 가죽 장갑’의 권능이 발동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을 메워줄 아이템.
‘안나 크로프트’에게서 구매했던 바로 그 아이템이었다.
[‘리코메데스 왕의 가죽 장갑’의 효과로 「무대화」가 발동합니다!]
‘리코메데스 왕’은 신화 속에서 ‘테세우스’의 살해자로 알려진 인물.
성유물을 확인한 테세우스의 안색이 변했다.
그럼에도 테세우스는, 굴하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양팔을 펼친 채, 마치 자신을 죽여 달라 간청하듯이.
[······테세우스!]
분노한 포세이돈의 진언과 동시에, 유중혁의 [파천붕권]이 다시 한 번 작렬했다.
[성좌, ‘버려진 미로의 연인’이 슬퍼합니다.]
뻥 뚫린 자신의 심장을 내려다보던 테세우스가 유중혁을, 아니 어쩌면 그 안에 깃들어 있을 나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순간, 테세우스의 표정에는 안도하는 듯한 미소가 스쳤다.
[성좌, ‘미궁의 영웅’의 화신체가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그저 화신체의 사망이니,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테세우스의 진체도 당분간은 시나리오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입었으리라.
테세우스는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 이 시나리오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것이다.
[<올림포스> 측의 ‘수장’이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시나리오 클리어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개별 화신 및 성좌의 공헌도를 산정합니다!]
.
.
[‘1인칭 주인공 시점’이 해제되었습니다.]
울컥 입으로 피를 쏟아내며, 나는 다시 나의 몸으로 돌아왔다.
망가진 플루토의 내부.
김남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나 그만 불러······ 메뚜기남. 안녕······.]
소환 시간이 끝난 플루토가 <명계>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테세우스의 화신체가 소멸한 일대에 어마어마한 수중 폭풍이 몰아쳤다.
쿠구구구구구!
테세우스의 화신체에 강림해 있던 포세이돈이 폭주하고 있었다.
몰아치는 물보라 속에서 호흡이 버거워진 화신들이 몸부림쳤다.
쏟아진 포세이돈의 격 일부가 무방비 상태의 유중혁을 향해 쇄도했다.
이미 중상을 입고, 362회차의 재능까지 끌어다 쓰며 넝마가 된 유중혁이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나는 외쳤다.
[하데스!]
[알겠다.]
‘퀴네에’와 함께 허공에서 나타난 하데스가 유중혁을 품에 끌어안았다.
포세이돈의 창은 애꿎은 심해의 바닥만을 부쉈다.
그러나 위기는 끝이 아니었다.
해역의 바닥을 찍은 트리아이나를 중심으로 균열이 급격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우!
균열은 곧 진공청소기처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청소의 대상에는 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상세가 위중한 내 화신체는 흡입 기류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급류에 휩쓸린 채, 공허하게 뻗는 손.
그러나 내 손을 잡아줄 이는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다.
「독자 씨!」
「이 멍청아!」
수중에서 아름답게 흩어지는 머리카락. 인어처럼 헤엄쳐온 이설화가 내 왼쪽 팔을 잡았고, 함께 따라온 한수영이 내 오른쪽 팔을 붙잡았다. 내 상처를 점혈한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해 나를 끌어올렸다.
심해의 균열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한수영의 옆얼굴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곧 수면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푸하아!”
“김독자 이 미친놈!”
[메인 시나리오가 곧 종료됩니다!]
나는 한수영에게 대꾸하는 대신 해류의 흐름을 살폈다.
내 예상이 맞다면, 강림할 화신체를 잃은 포세이돈은 이제 귀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좌,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이 포효합니다!]
그런데 사태는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츠츠츠츠츠츳!
분명 약해져야 할 포세이돈의 힘이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어째서?”
뭔가 잘못된 것을 감지한 것은 일행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관리국>이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에게 철수를 권고합니다!]
<관리국>의 권고에도 포세이돈의 격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상황은 명백했다.
이미 끝난 시나리오에서, 명분도 없이 부리는 행패.
[<관리국>이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에 대한 제재를 준비합니다.]
다행히, <관리국>도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바닷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격의 낌새를 살폈다.
문제는 본격적인 제재가 들어가기 전까지 포세이돈이 무슨 짓을 하느냐인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수의 성좌들이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을 비난합니다!]
[닥―쳐―라!]
머릿속이 새하얗게 탈색될 듯한 진언파(眞言派).
멀리서, 쓰나미 같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수백 미터 높이에 달하는 파도였다.
“미친! 저거 뭐야!”
“포세이돈이 미쳤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화신들이 달아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거신들을 비롯한 일부가 첫 물결파에 휩쓸렸다.
그 누구도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바다의 격.
나는 하데스를 바라보았지만, 하데스는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가 나서지 않는 이유는 뻔했다.
하데스는, 지금 나와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별을 헤아리는 부자(父子)처럼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아무리 <올림포스>에 관심이 없어도, 이번만큼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겠지.」
[<관리국>이 누군가에게 개연성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늘의 색이 변했다.
방금전까지 푸르던 하늘에 시각과 청각마저 마비시키는 빛이 번뜩였다.
세상이 사라지는 듯한 빛이었다.
그것이 아주 커다란 벼락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조금 후의 일이었다.
파도를 찢어발기는 벼락.
바다를 두 쪽으로 쪼개버리고, 저 깊은 심해 속의 지면마저 까맣게 태워버릴 정도로 강력한 번개.
단말마와 같은 포세이돈의 마지막 포효가 들려왔다.
그아아아아아······!
[성좌,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이 시나리오에서 퇴장하였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성좌, ‘번개의 좌’가 <올림포스>를 내려다봅니다.]
그 어떤 12신좌들이라 해도, 감히 마주 볼 수 없을 격.
간접 메시지가 떠오르는 순간,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이 그 자리에 굳었다.
저 시건방진 디오니소스도, 고결한 아테나와 아르테미스조차.
천천히 움직인 하늘의 시선이, 이번엔 명계의 왕을 향했다.
「지하와 하늘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것으로 대화는 충분했다는 듯, ‘퀴네에’를 쓴 하데스가 시나리오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성좌, ‘부유한 밤의 아버지’가 시나리오에서 퇴장하였습니다.]
페르세포네가 함께 사라지며 내게 윙크를 했다.
[곧 다시 만나죠, 우리 귀여운 아들.]
순식간에 3주신 중 둘이 사라졌으나, 긴장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세상의 천칭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개연성의 저울대가 다시 한번 기울고 있었다.
이로써 <관리국>이 개연성을 부여한 존재가 누구인지는 명백해졌다.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
대성운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시나리오’에 도달한 존재.
포세이돈을 퇴장시키고, 다른 성좌들의 반응도 불러오기엔 제우스만한 성좌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비유의 채널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관리국>의 대도깨비들이 ‘번개의 좌’에게 허용된 개연성을 회수합니다.]
[<관리국>의 대도깨비들이 ‘번개의 좌’에게 철수를 권고합니다!]
하지만 축제는 짧기에 ‘축제’인 법.
제우스 급의 존재가 하위 시나리오에 오래 머무르면 <스타 스트림>의 균형을 해치게 된다. 자칫하면 지난번처럼 ‘형언할 수 없는 아득함’ 따위의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제우스는, 제우스답게 안하무인이었다.
[재촉하지 마라. 난 네놈들 부탁 때문에 온 게 아니다. 내 씨앗들을 보러온 거지.]
그 말과 함께, <올림포스>의 하늘이 12신좌들을 내려다보았다.
세상을 오시하던 12신좌들 조차, 제우스의 시선 앞에서는 모두 긴장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쓰레기 같은 놈들뿐이군.]
제우스의 한마디에 12신좌들은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주저앉았다.
파르르 떨리는 디오니소스의 어깨가 보였다. ‘설화급 성좌’이니 간단한 저항 정도는 할 수 있을 텐데도, 디오니소스는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란 그런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쌓이고 축적되어, 끝내는 저항하지 못하게 되는 것.
하늘의 구름이 걷히며 제우스의 격이 흐릿해졌다.
농부가 척박한 땅에 등을 돌리듯, 제우스가 시나리오를 떠나고 있었다.
12신좌들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자식조차 아니었던가······.]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휘이익!
하늘을 향해, 작은 돌멩이 하나가 날아갔다.
내가 던진 돌이었다.
츠츠츠츠츠츳!
돌멩이는, 허공에서 개연성의 스파크를 맞아 소멸했다.
[성좌, ‘번개의 좌’가 당신을 노려봅니다.]
순간 강력한 ‘격’이 내 전신을 옥죄어 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오히려 눈에 힘을 팍 준 채 하늘을 노려보았다.
어차피 제우스에게 허용된 개연성은 저게 끝이다.
[성좌, ‘번개의 좌’가 시나리오에서 퇴장합니다.]
나는 12신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왜 저딴 말을 듣고만 있습니까?”
[······넌 대체.]
어이없다는 듯 디오니소스가 입을 떼려는 순간, 하늘에서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아니, 그것은 메시지가 아니었다.
뭔가 말을 하려던 디오니소스도, 12신좌들도, 그리고 나도. 제우스가 사라진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았다.
별처럼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하늘을 다스리는 제우스와는 관계없는 눈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제우스보다도 더 오래전에 존재했던 성좌의 힘.
<올림포스>가 만들어지기도 전, 최초의 하늘을 다스렸던 존재의 빛이었다.
외로운 섬처럼 바다에 우뚝 선 브리아레오스와 기간테스들이 떨어지는 눈을 보며 울부짖었다.
[메인 시나리오 #60 ― ‘기간토마키아’가 종료되었습니다.]
[히든 시나리오 ― ‘신화 전복’을 완수하였습니다.]
[보상 정산이 시작됩니다.]
세상의 성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주요 4인방 성좌들을 제외하고도,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성좌들과 잘 모르고 있던 성좌들까지.
디오니소스가 말했다.
[······네가 이겼구나, 김독자.]
파천검성과 거신들이 자신들의 커다란 몸을 배처럼 띄워 우리를 태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중혁과 한수영이 각각 다른 하늘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희원과 이현성이 서로를 부축했고, 이설화가 자신의 양손을 꼭 쥐었다. 신유승과 이길영을 안은 이지혜가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아마 그들도, 자신의 시스템 메시지를 듣고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거대 설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설화 3개를 추가로 획득하였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준비한 계획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이미 결말이 정해진 소설을 읽듯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훤히 알 수 있었다.
[당신의 두 번째 거대 설화가 ‘승(承)’을 완성하였습니다!]
[히든 시나리오 ― ‘단 하나의 설화’의 두 번째 조건이 완수되었습니다!]
마침내, 기다렸던 ‘승(承)’이 나를 맞이할 것이고.
[성운, <김독자 컴퍼니>의 명성이 <스타 스트림>에 널리 알려집니다.]
우리의 승리를 축하하는 시스템 메시지가 우주에 널리 울려 퍼질 것이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여의봉을 치켜듭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해방의 붕대를 휘날립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당신을 자랑스러워합니다.]
내 채널의 사인방도, 나를 축하해주겠지.
[‘마지막 시나리오’의 일부 성좌들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제우스와 같은 ‘마지막 시나리오’의 존재들이 나를 주목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계의 마왕들이 당신의 행보에 주목합니다.]
[<에덴>의 대천사들이 당신을 주목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이계의 신격들이 당신의 존재를 응시합니다.]
[‘종말의 구도자’들이 당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얀 눈이 내린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선과 악, 그리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존재들이 이야기를 지켜볼 것이다.
오랜 세월 이 세계를 지배했던, 한 신화의 종말을.
그리고 나와 함께 그 이야기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나를 찾을 것이다.
“김독자.”
하지만 그때.
“······김독자?”
나는, 이미 그곳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