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336화 ······뭐? 나는 멍한 눈으로 메시지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성좌, ‘부유한 밤의 아버지’가 ‘구원의 마왕’을 <명왕>의 후계로 삼고 싶어 합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멀리서 이쪽을 향해 싱긋 웃는 페르세포네의 모습이 보였다. 본래 <명계>의 후계로 지목받아야 할 유중혁 대신, 내가 그 후계로 지목받아버렸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왜 나를? 포세이돈이 말했다. [······미쳤군, 신혈을 잇지 않은 존재를 후계로 삼겠다는 건가?] [고리타분한 적통을 따질 시기는 지나지 않았나요?] [후계를 위한 과업조차 수행하지 않은 존재가······.] [그는 ‘과업’을 수행했어요.] 페르세포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내가 ‘후계’를 위한 과업을 수행했다고? 별안간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당신에게 ‘과업’을 내리겠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준다면서요? 성공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영혼을 찾아주도록 하죠. ―당신의 과업은 뱀의 머리를 베어오는 거예요. 분명 그런 적이 있었다. 41회차의 신유승, 비유의 영혼을 되찾아오기 위해 치렀던 시험. 그때 나는 분명 페르세포네의 ‘과업’으로 야마타노 오로치의 머리를 베어 왔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후계’를 위한 과업이었다고? 그렇다면 이 여왕님은 대체 언제부터······. [하데스! 진심인가? 저 하찮은 성좌를 너의 후계로 삼겠다고?] 포세이돈의 사나운 외침에 하데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면, 하데스 또한 언제나 내게 호의적이었다. 부유한 밤의 아버지. 그는 겉으로 엄격하고 무서운 것 같아도, 단 한 번도 내게 해가 될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원작에서 <명계>에 갔던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페르세포네의 눈빛이 깊어졌다. ―구원의 마왕,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명계>의 후계가 되는 것. 그것은 앞으로의 모든 시나리오에서 <명계>의 개연성을 일부 빌려올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나아가서는, 하데스의 승계를 받아 <명계>의 주인이 될 자격을 갖추는 일이기도 했다. 「김독자는 감탄했다.」 여기서 내가 저 제안을 받아들이면 <명계>는 정식으로 <기간토마키아>에 참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로 <기간토마키아>의 거대 설화 일부를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후계 제안을 거절하면, <명계>는 엄청난 손실을 입고 다시금 지하로 잠겨 들게 되겠지. 그것으로, 나와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될 것이다. ······정말 영리하시군, 명계의 여왕. <명계>는 <기간토마키아>의 참전권을 얻고. 나는, <올림포스>의 전복을 준비한다. 내가 이 제안을 거절하면 이득을 보는 쪽은 포세이돈뿐. 그런 상황에서 내가 뭘 더 고민하겠는가. 최대한 빨리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저는 <명계>의 후계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재빨리 내 조건을 말했다. 적어도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나는 이 후계 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성좌, ‘부유한 밤의 아버지’가 당신의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명계>의 후계가 되었습니다!] 내 선언과 동시에, <스타 스트림>의 개연성이 움직였다. 수많은 별들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누군가는 나를 질시했고, 누군가는 감탄했으며, 또 누군가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리고 명왕이 말했다.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이여.] 내가 본 그 어떤 목소리보다 두텁고. [우리는 <명계>의 ‘차기 후계자’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왔다.] 믿음직스러운 음색이었다. 정말로 내게 그런 아버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스타 스트림>이 ‘부유한 밤의 아버지’가 제시한 ‘명분’을 납득합니다.] [<스타 스트림>이 ‘부유한 밤의 아버지’의 강림에 개연성이 있음을 받아들입니다.] 거대한 저울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규모의 저울이었다. 두 명의 신화급 성좌가 각각의 저울대에 올라섰고, 자신의 ‘격’을 마음껏 방출하며 시나리오 전체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었다. [<관리국>이 시나리오의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개연성의 벽을 구축합니다!] 츠츠츠츠츳! [다수의 성좌들이 두 신화급 성좌들의 충돌에 주목합니다!] [다수의 성좌들이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의 수식언을 외칩니다!] [다수의 성좌들이 ‘부유한 밤의 아버지’의 수식언을 외칩니다!] . .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자신의 적수들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간만의 ‘진짜 대결’에 흥분합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묵묵히 상황을 지켜봅니다.] [다수의 성좌들이 대결을 성사시킨 ‘구원의 마왕’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700,0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그제야 실감이 난다. 지금 내가 저지른 일이, 이 <스타 스트림>에서도 얼마나 큰일인지. 디오니소스가 허탈한 웃음으로 말했다. [너는 진짜······ 네가 무슨 짓을 벌인 건지 모를 거야.] “아뇨, 압니다.” 그리고 두 성좌가 움직였다. 거대한 산을 연상시키는 어둠 속에서 새카만 낫이 나타났고,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 트리아이나가 나타났다. 정면으로 부딪치는 격의 파동에, 주변의 파도와 공기가 핵폭발을 연상시키는 먼지구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하데스의 몸이 사라졌다. 포세이돈이 외쳤다. [빌어먹을, ‘퀴네에’로구나!] 포세이돈에게 성유물 ‘트리아이나’가 있다면, 하데스에게는 황금 투구 ‘퀴네에’가 있다. <올림포스>의 퀴클롭스 삼형제가 만든 성유물이자, 쓰는 순간 세상의 모든 시선으로부터 ‘존재’를 감출 수 있는 투구. [비겁한 전투 방식은 여전하구나, 동생아!] [······아직도 네가 형이라는 전승을 주장하려는 모양이군.] 바람이 스칠 때마다 부연 물안개가 일대를 휩쓸었고, 포세이돈을 대신해 죽어간 물고기 떼가 피거품이 되어 흩날렸다. 분노한 포세이돈은 하데스가 있을 법한 방위를 향해 모조리 트리아이나를 찔러댔다. 파도의 폭풍이 어둠을 삼켰고, 다시 어둠이 그런 파도를 부수고 튀어나왔다. 신화의 자존심을 건 한 판 승부. 그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는 ‘신화급 성좌’들의 결투였다. [거대 설화, ‘명계’가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거대 설화, ‘대해의 패자’가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주력이 되는 거대 설화가 부딪치자, 디오니소스가 필사적으로 보호하던 해안 동굴의 초입마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하나의 신화가 탄생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이야기들이 부딪치고 있었다. 그 경쾌한 신화의 충돌 속에 어떤 문장은 사라지고, 어떤 문장은 태어났다. 살아 있는 포세이돈과 하데스의 설화가 지금 이 자리에서 새로이 쓰이고 있었다. 마치 소설 속의 한 장면을 읽듯,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밤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서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멸살법’ 속에서도 보지 못했던 장면.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전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절경이었고, 전율적이었으며, 심지어는 경이롭기까지했다. 나는 검을 꺼내 쥐었다. 놀란 디오니소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보고만 계실 건 아니시지 않습니까.” 만약 저 둘의 싸움이 계속된다면, 이곳의 모든 존재는 후폭풍으로 인해 절멸할 것이다. 그리고 <기간토마키아>의 거대 설화는 저 둘의 영향을 중심으로 지분이 재구성되겠지. 게다가 지금은 승세가 비슷해도, 이곳의 무대가 ‘바다’라는 것을 감안하면 승리의 신이 어느 쪽의 편을 들어줄지는 사실상 뻔한 이야기였다. “하데스를 도와야 합니다. ‘고래잡이’를 해보죠.” [방금 아테나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거 못 봤어? 너 같은 게 저기에 휩쓸리면 골로 간다고.] “‘아비 고래’를 잡으려고 하니까 그렇죠. 하지만 ‘새끼 고래’라면 어떻습니까.” 내가 가리킨 곳에 테세우스가 있었다. 포세이돈의 강림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는 그리스의 대영웅이, 파도의 결계에 휩싸인 채 설화를 토해내고 있었다. 「멈춰······.」 「이제, 그만, 제발······.」 디오니소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테세우스를 제압해서, 포세이돈을 귀환시키자?] “비겁하지만 지금으로선 그 방법이 최선입니다.” [비겁의 문제가 아냐. 저 생선 아저씨가 그걸 허락하게 둘 것 같아? 저 파도 결계를 부수는 건 설화급 성좌라도 무리야.] “단 하나의 설화로만 승부하려 한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횃불’을 드는 게 혼자는 아니잖습니까.” 그 순간, 디오니소스의 표정이 변했다. [설마······ 「성화」라도 만들어 보자는 거냐? 설화를 모아서 생선 아저씨의 결계를 뚫겠다고?] “비슷하죠.” 성화(聖火). 수많은 존재들이 힘을 모아, 자신의 설화를 태워 만드는 불꽃. 디오니소스가 물었다. [그 불을 누가 봉송할 건데? 네가?] “일단 방화복부터 입어야겠죠.” 나는 해안 동굴의 근처에 너부러져 있는 거신병 플루토를 바라보았다. 플루토는 아레스와의 일전으로 인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나는 품속에서 [헌집 두꺼비]를 꺼냈다. 두꺼비가 노래를 불렀다. “뀌룩, 헌 집 주 면 새 집 주 지.” “헌것 두 개 줄게. 대신 이건 새것으로 고쳐줘.” “좋 아.” [헌집 두꺼비]의 진짜 능력은, 단순히 헌 아이템을 새 아이템으로 교환해주는 것이 아니다. 이 녀석은, 제물만 있다면 망가진 아이템을 똑같은 ‘새 아이템’으로 교체해주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경매장에서 안나 크로프트가 이 두꺼비를 원했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방금의 전투로 얻은 하급 성유물과, 플루토의 거체를 두꺼비에게 먹였다. 두꺼비는 비정상적으로 입을 크게 벌리더니 야금야금 플루토의 거체를 먹어 치웠다. 그리고 잠시 후, 꺼어어억 하는 소리와 함께 플루토를 토해냈다. [우왓, 시바. 뭐야. 나 살아 있었어?] 2미터 남짓 크기로 작아진 플루토가 끈적한 체액과 함께 튀어나왔다.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모습이었다. 디오니소스는 다소 놀란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어두운 표정이었다. [‘성화’는 어떻게 만들 건데? 다른 12신좌들이 널 도와줄 것 같아? 게다가 ‘성화’는 반드시 태양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고, 지금은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다.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디오니소스의 옆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무시무시한 눈빛을 빛내는 녀석. “일어났냐?” “······포세이돈은?” 두통이 이는 듯 머리를 쥔 유중혁이 인상을 썼다. 다행히, 큰 타격을 입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저기서 싸우고 있어.” “······상대는 하데스인가.” 유중혁은 단번에 전황을 읽어냈다. 신화급 성좌의 대전쟁. 불안하게 진동하는 개연성. 아마, 녀석은 지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올림포스>에게 한 방 먹여줄 절호의 기회야. 알지?” “······지금 쳐야 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네가 싫어하는 여자의 협력이 필요해.” “내가 싫어하는 여자?” 나는 말없이 해안 동굴의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깊은 동굴의 안쪽에서, 하나둘 횃불 같은 것이 켜졌다. 그 불빛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여자. 새초롬한 얼굴의 그녀를 향해, 나는 웃으며 물었다. “안나 크로프트, 도와주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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