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333화 새하얀 격을 내뿜는 정희원은, [심판자의 검]으로 아테나를 겨눴다. 아테나가 말했다. [우리엘······. <에덴>이 온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난 <에덴>의 자격으로 참전한 게 아냐.] [그럼?] [내 화신을 돕는 것뿐이지.] 우리엘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테나. 여기까지 해. <올림포스>도 그만하면 많이 해먹었잖아? 대체 언제까지 <기간토마키아>를 우려먹을 셈이야? <관리국>이라도 만들 참이냐?] [우려먹다니. 말이 심하네, 우리엘. 우리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설화를 기억시키려는 것뿐이야. 선은 승리하고, 악은 패배한다. 그건 몇 번이나 강조해도 옳은 일이야.] [권선징악이라······.] [선한 설화가 늘어날수록, 성좌들은 선한 시나리오를 소비할 거야. 그럴수록 <스타 스트림>은 청결해지겠지.] 그 말을 듣는 순간만큼은 우리엘의 눈동자도 흔들렸다. 선한 설화, 선한 시나리오를 많이 수행하면 세상은 좋아질 것이다. 분명, 그렇게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스타 스트림>이 좋아졌어? 성좌들이 선한 설화를 좋아하게 되었나?] [지금은 충분치 않지. 하지만 언젠가는―] 펄럭, 하고 천사의 날개가 움직였다. [아테나, 너는 주로 약자의 편이었지.] 우리엘의 시선이 지상에서 싸우는 거신들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거신, ‘파천검성’을 보고 있었다. [묻겠다, ‘정의와 지혜의 대변자’여.] 우리엘의 말투가 바뀌자, 아테나의 표정도 엄격해졌다. [저 ‘거신’은 악인가?] 아테나는 거신 파천검성을 내려다보았다. 달려드는 영웅들을 쳐내고, 하늘을 부수는 파천유성우의 검결이 성좌들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파천검성은 작았지만 강했다. 어쩌면, <타르타로스>에서 나태해져 있던 그 어떤 거신보다도 강했다. 하지만, 그녀도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저리 가! 저리 꺼지라고! 재수 없는 년!」 「저주받은 년! 네년 때문에 우리 집안이 망했다!」 「거신의 핏줄이다. 저년의 심장을 먹으면 호랑이 같은 힘이 생긴다더군.」 파천검성이 받던 핍박들이, 고스란히 설화가 되어 아테나의 두 눈에 흘러들어왔다. 거신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혹은 남과는 다른 생김새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짊어져야 했던 고난. 아테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거신들은 모두 위험하다. 그들의 본성은 흉포하고, 또다시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어.] [재앙? 그 재앙은 누구에게 위험한 것이지?] 아테나가 자신의 창을 굳게 쥐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우리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당연히 인간에게······.] [인간? 언제부터 <올림포스>가 인간을 신경썼어?] [우리엘!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아테나, 너도 알고 있잖아.] 반쯤 벌어졌던 아테나의 입이 닫히고, 우리엘이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네가 하려는 ‘권선징악’은 가짜야. 임의로 ‘악’을 지정하고, 그것을 심판하며 ‘선’이 되기 위한 ‘가짜 신화’라고.] 아테나의 눈썹이 부르르 떨렸다. [가짜면 어때? 설령 가짜라도······.] [아테나, 잊었어? 권선징악의 시나리오가 사라지기 시작한 건, ‘가짜’의 횡행 때문이었잖아.] ‘악마 사냥’ 당시를 떠올리는 듯, 우리엘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테나. 지금 이 시나리오에는 ‘선’도 ‘악’도 없어. 이야기를 보고 싶어하는 우리의 욕망만이 있을 뿐이지.] 우리엘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하늘에서 서광이 비쳤다. [나는······ 이제 이런 이야기는 보고 싶지 않아.] 대천사 우리엘이 <스타 스트림>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진짜 악’을 부수는 것을 보고 싶어.] 아테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며 흘러나왔다. [······그런 설화는 오래전에 사라졌어.] [아니, 있어.] 하얗게 웃는 우리엘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야.] [심판자의 검]과, 아테나의 창이 서로를 가리켰다. [더이상 타협의 여지는 없겠네.] <에덴>의 대천사와 <올림포스>의 여신이 충돌했다. 개연성을 넘어선 격을 내뿜는 아테나의 맹공. 정희원은 얼핏 밀리는 듯했지만, 곧 유중혁의 참전으로 인해 상황은 비등해졌다. 우리엘의 동조율이 지속되는 동안이라면, 저 아테나를 붙들어 놓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성좌들의 혈투에 즐거워합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싸우다 둘 다 죽어버리기를 원합니다!] [‘절대 악’ 계통의 성좌들이 ‘절대 선’ 계통 성좌들의 충돌에 환호합니다!] 엄청난 관람료가 비유의 채널을 통해 쏟아지고 있었다. 비유가 작게 몸을 떨었다. [바앗······.] 나는 하늘의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문제는, 저기 날아오는 시뻘건 녀석인데. 붉은 태양을 등에 업은 채, 마차를 타고 달려오는 거대한 신좌의 모습. ‘전능의 태양’ 아폴론. 과연 신화대로, 멀리서 봐도 아주 잘생긴 얼굴이었다. 저 정도면 유중혁 뺨을 한 대······ 아니, 두 대도 칠 수 있겠는데. [성좌, ‘전능의 태양’이 당신에게 강렬한 분노를 토합니다!] <올림포스>의 12신좌 중 하나인 그는, 역시나 나 혼자서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거신병 플루토도 망가진 데다, 아까 무리를 해서 몸 곳곳이 성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저 녀석이 쏘아대는 볕을 한두 번만 정통으로 맞아도, 내 화신체는 그대로 잿가루가 되어버리겠지. 하지만 나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전능의 태양’을 맡을 상대는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기관차의 경적 같은 것이 들렸다. 궤도를 달리는 열차의 바퀴 소리. 한때는 저 소리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성좌, ‘전능의 태양’이 당황합니다.] <올림포스>에 12신좌가 있다면, <베다>에는 여덟 명의 로카팔라가 있다. 그리고 나타난 저 로카팔라는, 내가 아주 잘 아는 성좌였다. [수르야, 어째서 당신이 이곳에―!] 꽈아아아아앙! 태양 마차와 태양 열차가 부딪치며, 눈이 멀 듯한 폭발을 만들어 냈다. 개연성을 고려한 것인지 수르야의 열차는 예전의 그것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아폴론의 마차를 작살낼 정도의 크기는 되었다. [수르야······. 이것을 <베다>의 뜻으로 받아 들여도 되겠는가?] [<베다>와는 관계없다. 얼마 전 탈퇴했으니까.] 수르야가 웃었다. [나는 그저, 최고의 ‘태양신’을 가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 작렬하는 태양빛이 허공을 물들였다. 수르야와 아폴론의 대결. 아폴론의 빛의 힘을 담은 화살이 폭포처럼 창공을 수놓았고, 수르야의 [제3의 눈]이 그 화살들의 궤적을 흐트러트렸다. 신화와 신화가 충돌하고 있었다. 수르야라면, 아폴론을 맡겨도 충분하겠지. 나는 나머지 전황을 살폈다. “독자 씨! 새 방패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헤라클레스의 방패를 손에 넣은 이현성은 전장을 종횡무진하며 영웅들과 거신병들을 넘어뜨리고 있었고, 한수영도 적당히 마력 자원을 관리하며 양산형 헤라클레스들을 하나둘 처리하고 있었다. 「무대화」가 붕괴하기 시작하자, 승세는 조금씩 우리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힘을 낸 기간테스들이 영웅들을 밀어붙였고, 이길영과 신유승이 [키메라 드래곤]을 조종하여 해변의 일대를 브레스의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지혜는 추가로 다가오는 양산형 헤라클레스를 향해 끊임없이 함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이날을 대비해 이지혜의 마력 능력치를 상승시켜두었던 것이 아주 주효했다. [<기간토마키아>에 새로운 신화의 출현이 예고되었습니다!] <김독자 컴퍼니>의 신화는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모두가 잘 싸우고 있었고, 틀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김독자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예감이었다. 아주 미묘한 톱니바퀴 하나가 잘못 끼워진 듯한 느낌. 침착하게 점검해 보아도 잘못된 것은 없었다. 우리엘도, 수르야도 제때 참전했고 유중혁도 지구의 위기를 무사히 막아내고 돌아왔다. 그런데 왜. 「사실, 김독자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없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내가 찾는 존재가 없었다. 아테나, 이아손, 아폴론, 아킬레우스······. <올림포스>에서 이름을 날린다는 신좌와 영웅들이 난립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올림포스> 측의 수장은 아니었다. 시나리오의 내용이 맞다면, 아레스를 제외하고도 ‘수장’은 하나가 더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를 죽여야, 이 시나리오는 끝이 난다. 어쩌면 아직 나타나지 않은 ‘화산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마지막 수장이 아닐까 싶었지만, 원작에도 수정본에도 ‘헤파이스토스’가 <기간토마키아>에 직접 참전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올림포스> 측의 남은 수장이라는 걸까. 「그 순간, 김독자의 눈에 띈 한 영웅이 있었다.」 [멈추십시오! 그만두셔야 합니다!] 나는 그 영웅을 바라보았다. 현기가 가득한 두 눈동자에, 아름답게 다져진 근육질의 몸매. 그에게서 풍기는 ‘격’은, 내가 유상아에게서 줄곧 느껴왔던 그것이었다. ‘미궁의 영웅’, 테세우스. [이런 싸움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테세우스가,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여기서 그만둬야 합니다! 거신들도, 신좌들도,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짓은 <올림포스>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단 말입니다! 아테나시여! 아폴론이시여! 다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역대 <기간토마키아>에서 테세우스가 나타나 저런 기행을 벌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성정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제발! 멈추십시오! 이대로는 <올림포스>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테세우스의 머리 위에 적색 화살표가 떠올랐다. 그가 <올림포스> 측의 ‘수장’임을 알리는 화살표였다. 그때, 테세우스가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안돼, 안됩니다. 안됩니다, 아버지!] 츠츠츠츠츠츳! 뭔가가 잘못되었다. * <관리국>의 소파에 앉아 시나리오를 지켜보던 디오니소스는 벌떡 일어났다. 팝콘 상자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놀란 비형이 뭐라 입을 열려는 순간, 디오니소스가 외쳤다. [망할! 테세우스 저 자식이 왜 저기 있어!] 디오니소스는 도깨비들을 향해 소리쳤다. 마치, 자신이 ‘도깨비 왕’이라도 된다는 듯이. [빨리 「개연성 적합 심사」 준비해. 아니면 저 시나리오에 있는 놈들 다 뒈져 버린다고!] 그리고 다음 순간, 화면 속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귓가에 쉴 새 없는 이명이 밀려왔고, 시야가 완전한 백색으로 물들었다. 거기까지가 기억의 전부였다. 나는 폭발에 휘말려 드높은 파도와 암벽을 뚫고 한 절벽의 동굴에 처박혀 있었다. [당신의 ‘격’이 심각하게 손상되었습니다.] [화신체의 손상이 심각합니다. 긴급한 치료를 요합니다!] 상처를 점혈하고, 빠져나가는 설화를 막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해안 동굴 바깥을 보았다. 피바다로 넘실거리는 전장. 간간이 밀려온 포말이 발끝에 닿았고, 비린 바닷바람이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 전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드래곤을 타고 하늘을 날던 신유승과 이길영도. 유령 함대를 지휘하던 이지혜도. 분전하던 이설화와, 방패로 일행들을 지키던 이현성도. “유승아! 길영아!” 창공에서 아테나와 맞서던 유중혁과, 양산형 헤라클레스를 학살하던 한수영까지. 심지어는 우리엘과 수르야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다. “한수영! 유중혁!” 내 외침은, 밀려온 바닷바람에 의해 동굴 내부의 메아리로 공허하게 맴돌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잠시 후, 부연 물안개 속에서 거대한 뭔가가 일어났다. 인간의 인지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격을 품은 존재.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저것은 신(神)이다. 마치 내가 지금껏 보아온 모든 성좌들은 가짜였다는 듯. ‘신’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존재가 그곳에 강림해 있었다. [나는 ‘해역의 경계를 긋는 창’, 포세이돈.] <올림포스>의 대영웅, 테세우스의 신화적 아버지. 진언이 울려 퍼진 것만으로, 심장이 진탕되고 피가 쏟아져 나왔다. 오래전, ‘이계의 신격’을 만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중풍이라도 걸린 것처럼 손끝이 떨려왔다. 어째서 포세이돈이 강림한 거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껏 그 어떤 회차에서도 ‘포세이돈’이 <기간토마키아>에 개입하는 일은 없었다. 무려 ‘신화급 성좌’인 그가 개입하면, 올림포스의 개연성과 격이 크게 손상될 뿐아니라 시나리오 전체가 날아가 버리니까. 그런데도, 그는 이곳에 나타났다. 대체, 어떻게······ 무슨 생각으로. 손은 계속해서 떨렸다. 위이이잉. 그러나 그 떨림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무의식중에 꽉 쥐고 있었던 스마트폰이,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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