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319화
내가 이곳에 때마침 올 수 있었던 것은 한수영이 보낸 메시지 덕분이었다.
한수영이 [헌집 두꺼비]를 가져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만한 아이템을 몰래 빼가는데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예언자 엿 좀 먹이려는데, 너도 올래?
마침 경매장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안나 크로프트가 내 예상대로 움직이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했고.
―왔군.
―타이밍 맞춰서 잘 왔네?
동시에 들려오는 [한낮의 밀회]의 메시지.
일시적으로 일어난 혼선에, 유중혁과 한수영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냐.”
“내가 할 말이야. 너도 [한낮의 밀회] 있었어?”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앞을 보자, 완전히 표정을 잃어버린 안나 크로프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녀를 도발했다.
“뭐하십니까. 300만 코인 달라니까.”
미식협 때의 조우 이후 첫 만남이었다.
안나 크로프트의 곁에 선 셀레나 킴이, 나를 보곤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안나 크로프트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설마 이 상품의 출품자가 [구원의 마왕] 당신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당신이 이런 수준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 아이템은 최소 후반부 시나리오에서나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에요.”
아직까지 현실을 부정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도깨비 쪽을 일별했다. 그러자 도깨비가 대답했다.
[출품자는 <김독자 컴퍼니> 소속 성좌 ‘구원의 마왕’. 확인 결과 이분이 맞습니다.]
도깨비까지 사실을 증언하자 안나 크로프트의 안색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300만 코인.
현시점에서 화신 단일의 재력으로 그만한 코인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스타 스트림>에 없을 것이다.
그만한 돈이면, 어지간한 설화급 성좌들에게도 부담이 되는 금액이니까.
멀리서 한수영이 이죽거렸다.
―야, 300만 코인은 반띵하는 거지? 나 아니었으면 없는 돈이었다?
안나 크로프트는 떨리는 주먹을 잠시 쥐었다가, 셀레나 킴을 한 번 보곤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지만, 낙찰가는 줄 수 없습니다.”
어느새 안나 크로프트의 표정은 평소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물건을 받지 않는 대신, 위약금을 지불하겠습니다.”
예언자다운 신중한 선택이었다.
지금 그녀의 자금 현황으로 300만 코인을 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그 300만 코인이 고스란히 내 수중에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을 안 이상, 구태여 상품을 구매하려는 욕심도 싹 사라져버렸겠지.
[등장인물, ‘안나 크로프트’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좋으실 대로 하시죠.”
정색이 된 한수영이 나를 노려보았다.
―야, 돌았어? 300만 코인이라고!
―우리한테도 이쪽이 이득이야.
안나 크로프트의 말마따나, [헌집 두꺼비]는 상당히 유용한 아이템이다.
특히나 곧 있을 <기간토 마키아>를 생각하면 더욱이.
지금은 여기서 300만 코인을 받는 것보다,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편이 더 낫다.
도깨비가 말했다.
[위약금은 최초 입찰가인 50만 코인입니다.]
게다가 아무것도 안 주고 50만 코인을 받을 수 있다니, 이쪽으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안나 크로프트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품속에서 천천히 코인을 꺼냈다. 그런데 그녀가 꺼낸 것은 50만 코인이 아니라 100만 코인이었다.
“구원의 마왕, 저랑 내기 하나 하지 않겠습니까.”
“내기? 싫은데요.”
“······당신은 내기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쉽게 발뺌을 하다니 실망이군요.”
유치한 도발에 나는 웃었다.
이거, 갑자기 재미있어지는군.
안나 크로프트가 계속해서 말했다.
“나와 내기를 해서 당신이 이긴다면 두 배인 100만 코인을 드리죠.”
“100만이라······ 당신이 이긴다면?”
“이 이야기는 없었던 일로 하고, 각자 갈 길을 가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없는 셈이죠.”
붉게 빛나는 안나 크로프트의 눈동자를 보며, 나는 ‘멸살법’의 오래된 문장을 떠올렸다.
「안나 크로프트는 타고난 도박사다.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그녀는 ‘라스베이거스의 예언자’로 불리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손해볼 게 왜 없습니까? 난 아무것도 안 해도 50만 코인을 받을 수 있는데, 뭐하러 이상한 도박을 해야 합니까?”
“질까 봐 두려운 모양이군요. 하긴, 제게 지면 ‘패배 설화’가 생길 수도 있을 테니까.”
······이것 봐라.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당신의 선택에 주목합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선택에 주목합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당신이 내기를 거절하길 바랍니다.]
채널의 간접 메시지까지 들려오자, 안나 크로프트의 입가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구원의 마왕’. 당신의 성좌들이 보고 있습니다.”
[다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선택을 궁금해합니다.]
[일부 성좌들이 당신의 소심함을 비난합니다.]
영리한 여자였다.
<기간토 마키아>를 앞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성좌들의 여론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내 행동에 따라 동맹이나 지원군이 생길 수도 있고, 적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도발해오시겠다 이거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질까 봐 두려운 게 아냐. 내기 조건이 맘에 안 드는 것뿐이지.”
안나 크로프트의 눈동자에 이채가 스쳤다.
[성좌, ‘드러누운 드래곤’이 당신의 말에 흥미를 갖습니다.]
“조건이라. 내기 금액을 더 올려주길 원합니까?”
“코인은 그 정도면 됐고, 그보다 다른 조건을 하나 더 걸었으면 싶은데.”
“다른 조건······?”
“내가 이긴다면 ‘셀레나 킴’에게 걸려 있는 [주종 서약]을 풀어주십시오.”
[성좌, ‘정의와 화목의 친구’가 당신의 말에 깜짝 놀랍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셀레나 킴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아마, 셀레나 킴은 ‘별자리의 맥락’을 지나며 ‘별의 증명’의 구속을 받았을 것이다. 그 ‘안나 크로프트’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자를 곁에 두었을 리가 없으니까.
안나 크로프트는 당황한 모양새였다.
“구원의 마왕! 그건······.”
“<아스가르드>의 개연성을 빌린다면 셀레나 킴 하나 정도는 충분히 해방시켜 줄 수 있을 텐데?”
‘별의 증명’으로 맺어진 주종 관계를 해방시키는 것은 안나 크로프트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
애초에 [주종 관계]를 맺었다는 것 자체가 그녀가 ‘셀레나 킴’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 한다는 증거였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안나 크로프트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셀레나 킴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허공에서 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아앗!]
[다수의 성좌들이 해당 ‘내기’의 시나리오 승격을 요청합니다!]
[성좌들의 승격 요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새로운 서브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
<서브 시나리오 ― 파멸의 한탕>
분류 : 서브
난이도 : ???
클리어 조건 : 안나 크로프트와 ‘구원의 마왕’이 내기를 시작했습니다. 해당 내기를 관망 중인 구독좌와 화신들은 내기에 코인을 걸 수 있습니다.
제한시간 : ―
보상 : 내기에 승리한 구독좌는 비율에 따른 배당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실패시 : ―
+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50,000코인을 걸었습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50,000코인을 걸었습니다!]
[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1,000코인을 걸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번 시나리오는 나나 안나 크로프트가 아닌 다른 존재들도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깜짝 놀란 한수영이 [한낮의 밀회]를 통해 외쳤다.
―야!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코인이나 잘 걸어.
―누구한테? 너한테?
나는 안나 크로프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기 내용을 말하시죠.”
“간단합니다.”
안나 크로프트는 ‘100만’이라 적힌 코인을 허공으로 던졌다.
팽그르르 돌며 상승한 코인은 상공의 30미터가 넘는 지점까지 솟아오르더니, 이내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섰다.
“저 코인을, 당신 손으로 직접 가져가시면 됩니다.”
내기의 내용을 들은 성좌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깜짝 놀랍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자신의 코인을 돌려달라 말합니다!]
한수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화신 ‘한수영’의 시선을 피합니다.]
코인에는 부유 스킬이 걸려 있는지, 제자리에서 가만히 맴돌고 있었다.
얼핏 보면 너무 간단하고 쉬운 내기였다.
그냥 스킬을 사용해 점프한 뒤, 저 코인을 가져가면 끝인 셈이니까.
하지만 내기가 간단하다는 것은 그만큼 함정도 치밀하다는 이야기였다.
한수영이 외쳤다.
―야, 김독자. 저거 함정이야! 절대로 내기하지 마!
나도 알고 있었다.
이 ‘안나 크로프트’는, 절대로 자신이 질 내기는 시작하지 않는다.
“내기 내용에 동의하십니까?”
“좋아.”
[내기의 성립이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허공에서 회전하는 코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수의 성좌들이 지켜보는 상황이니, 저 코인에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저 ‘코인’ 자체가 아니라 다른 곳에 함정이 있다는 뜻.
[전용 스킬, ‘책갈피’를 활성화합니다!]
[전용 스킬, ‘바람의 길 Lv.11(+1)’이 활성화되었습니다!]
30미터는 꽤 높고, 일반인이라면 맨손으로 저 코인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 세계에 시나리오가 시작된 이후, 나는 일반인이 아니었다.
슈우우우!
[바람의 길]을 발동하여 가볍게 점프하자, 내 몸은 쾌속하게 상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코인까지 남은 거리는 10미터.
츠츠츠츠츳!
그때,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성운 ‘올림포스’의 개연성이 당신에게 반응합니다!]
한 사람이 아니었다.
객석의 곳곳에서 솟구치는 강력한 격.
몇몇 성좌들의 화신체가 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구원의 마왕. 당장 스킬 발동을 취소해라.]
진언에서 느껴지는 격의 파장이 익숙했다.
내 앞을 막아선 이들은 <올림포스>였다.
위인급 성좌 셋에, 설화급 성좌가 하나.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짓입니까?”
[이곳에서 ‘전투 스킬’ 발동은 금지되어 있다. 모르는 것인가?]
성좌들 사이에서 익숙한 인형이 튀어나왔다.
머리 위로 뱅글뱅글 도는 작은 운석들을 가진 성좌.
나는 녀석의 수식언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저 녀석은, <올림포스>에서도 제법 끗발이 있는 성좌니까.
‘헤매는 공포’.
객석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헤매는 공포’, 포보스다! 아레스의 아들이야!]
올림포스의 12신좌. ‘흉포의 군신’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전쟁이 낳은 ‘공포’의 신.
이 녀석이 바로 ‘헤매는 공포’라 불리는 ‘포보스’였다.
나는 안나 크로프트를 내려다보았다.
보아하니 이 녀석이 안나 크로프트가 믿는 뒷배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