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318화 경매장은 ‘도깨비 보따리’나 일반 ‘거래소’에서는 구하기 힘든 성유물급의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그리고 예언자 ‘안나 크로프트’는, 이곳에서 꼭 얻어가야 할 아이템이 몇 가지 있었다. 안나 크로프트는 등 뒤에 선 <올림포스> 출신 성좌들에게 말했다. “경호는 문제없겠죠?” [물론이다. 애초에 이 경매장은 우리 <올림포스>의 법권 지대. 우리의 가호가 있는 한 ‘별자리의 맥락’에서는 누구도 너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안나 크로프트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그녀를 보호하던 성좌들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안나 크로프트가 곁의 셀레나 킴을 향해 말했다. “그럼 들어가죠.” “······예.” 셀레나 킴이 어두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경매장의 통로를 걷는 내내, 안나 크로프트는 그런 셀레나 킴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싹싹하던, 언제나 미소를 띠고 있던 셀레나 킴은 언제부턴가 웃지 않게 되었다. “셀레나.” “네.” 사실 그것이 언제부터인지, 안나 크로프트는 잘 알고 있었다. 미식협(美食協). 정확히는 ‘구원의 마왕’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개를 숙이며 다시 앞을 보는 셀레나 킴의 모습. 어느 정도는 ‘예언’했던 일이었음에도, 안나 크로프트는 이상하게도 고독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미래는 알고 있어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특히,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그러하다. [제 8611회, ‘별자리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에 얽매일 때가 아니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성좌들과 화신들의 열기를 보며, 안나 크로프트는 자신의 결심을 재확인했다. 어디를 둘러 보아도 만만한 ‘격’은 없다. 모두, 그녀가 죽여야 할 적들이었다. [첫 번째 경매품입니다!] 경매를 진행하는 것은 단상의 준 상급 도깨비였다. 안나 크로프트와 셀레나 킴은 미리 선점한 자리에 앉아 경매에 참가했다. 순식간에 몇 가지 아이템들이 팔려 나갔고, 안나 크로프트도 개중 몇 가지를 샀다. ‘만티코어의 이빨.’ ‘에인션트 드래곤의 비늘 조각.’ ‘늙은 예티의 가죽.’ 그녀가 주로 매입한 것들은 희귀한 재료 아이템들이었다. 모두 그녀의 [미래시]를 통해 확인한 아이템들이었고, 그 목록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거신병을 제작하려면, 반드시 이 아이템들이 필요해.’ 낙찰 경쟁에 참가한 몇몇 화신들이 있었지만, 이미 [미래시]를 통해 그들의 최고 낙찰가를 확인한 후였기에 물품의 낙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목록 점검을 마친 안나 크로프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충 끝난 것 같군요. 그럼 슬슬······.” [자, 오늘은 특별한 상품이 들어왔습니다!] 별안간 무대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안나 크로프트가 흠칫 고개를 돌렸다. 안나 크로프트의 반응에 셀레나 킴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표정이 굳어진 안나 크로프트가 경매장을 노려보았다. [이것은 ‘헌집 두꺼비’라 불리는 아이템입니다!] ─뀌룩, 뀌룩. [하하, 귀엽죠? 이래봬도 이 아이템은 ‘성유물’급 아이템으로······.] ─헌 집주 면 새집 줄 게. 헌집 주 면 새 집 줄 게. [말도 제법 할 줄 아는 녀석이죠. 아직 이 경매품은 상품 감정이 끝나지 않은 상태긴 합니다만, 분명 엄청난 가치의―] ‘······저런 아이템은 ‘예언’에 없었는데?’ 이미 [미래시]를 통해 경매품의 목록은 전부 확인했다. 그런데, 그녀가 본 단편 미래의 어디에도 저런 아이템은 출품된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미래시]를 흔드는 어떤 변수의 개입이 있다는 것. 안나 크로프트는 <올림포스>의 성좌들이 있는 쪽을 흘끔 보았다. 안심하라는 듯, 몇몇 성좌들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무대를 향해 [대악마의 눈동자]를 발동했다. 기이이이잉······. 붉은빛을 뿌리며 밝게 타오르는 눈동자. 그리고 잠시 후, 안나 크로프트의 망막에 아이템 ‘헌집 두꺼비’의 숨겨진 기능들이 떠올랐다. “저건 사야 돼.” “······안나 님?” [최초 경매가는 ‘50만 코인’입니다!] 도깨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나 크로프트는 곧바로 입찰을 신청했다. “60만 코인.” [60만 코인 나왔습니다! 입찰자는······ 화신 ‘안나 크로프트’!] 생각보다 큰 금액이었지만, [헌집 두꺼비]는 그럴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었다. + 이 아이템은 전설급 설화를 품고 있습니다. 이 아이템은 ‘낡은 아이템’을 먹어 치워 동급의 ‘새 아이템’으로 교환해줍니다. + 기능 자체는 간단했다. 낡은 아이템을 먹고, 동급의 다른 아이템을 뱉는다. 말은 간단하지만, 그 응용은 무궁무진한 아이템이었다. “성운에 연락해서 최대한 많은 코인을 끌어모으세요. ” “왜 저런 아이템을······.” “저것만 있으면 우리가 원하는 아이템을 언제든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아직 다른 성좌나 화신들은 저 두꺼비의 쓰임새를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낙찰을 받을 기회는 바로 지금뿐이었다. [현재 최고 입찰가 60만 코인입니다! 더 없으시면······.] 그런데 그때. “70만 코인.” 누군가가, 입찰을 신청했다. [오오! 70만 코인 나왔습니다!] 그녀가 앉은 객석의 정 반대편에 입찰을 신청하는 불빛이 들어와 있었다. 햇볕을 흡수하는 거무튀튀한 마도(魔刀). 안나 크로프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입찰자는 화신 ‘유중혁’입니다!] * 안나 크로프트에 이은 유중혁의 등장에, 경매장 곳곳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두 사람 모두 지구 시나리오에서는 유명한 화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안나 님, 잘못하면······.” “재미있게 됐군요. 패왕이 이곳에 있을 줄이야.” 오히려 불이 붙은 것처럼, 안나 크로프트가 웃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외쳤다. “80만 코인!” [화신 ‘안나 크로프트’, 80만 코인!] “90만 코인.” [90만 코인! 바로 90만 코인 나왔습니다!] 유중혁도 지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붙는 경매 전쟁. 금액이 100만 코인을 넘어서자 경매장의 분위기도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가격 거품이 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안나 크로프트는 여유로웠다. ‘당신은 날 이길 수 없어.’ 츠츠츠츳······! 짧은 두통과 함께 밀려오는 현기증. 안나 크로프트의 망막 속으로 미래 단편의 일부가 떠올랐다. 찰나의 [미래시]를 통해, 그녀는 유중혁이 낼 최대 금액을 읽어내는 데 성공했다. “128만 코인.” [화신 ‘안나 크로프트’, 128만 코인입니다!] 안나 크로프트의 입찰에, 유중혁은 말이 없었다. 예상대로였다. [자, 더 입찰할 분 없으시면······.] 안나 크로프트가 미소를 지었다. 128만 코인은 굉장히 큰 금액이었지만, 손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헌집 두꺼비]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었고, 저걸 얻기만 한다면······. “200만 코인!” 바로 위에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안나 크로프트의 몸이 휘청했다. 놀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이, 이 백만 코인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그런 금액을······.] “이 구역 신흥 부자 한수영 님 등장이시다.” [누구신지······.] “나 몰라? 흑염마황 한수영. <한수영 코퍼레이션>의 대표이사이자, <김독자 컴퍼니>의······ 실질적 권력자다.” 한수영의 말에 곁에 있던 이현성이 깜짝 놀라 물었다. “수영 씨, 진짭니까? 대체 언제······.” 안나 크로프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수영을 노려보았다. 한반도의 흑염마황. 안나 크로프트도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무슨 수작이죠, 흑염마황?” “난 저 두꺼비가 무지 갖고 싶을 뿐이야.” 안나 크로프트는 다시 한번 [미래시]를 발동했다. 아무리 초단기간의 미래 예측이라 해도, 하루에 이렇게 많은 [미래시]를 사용하면 몸에 엄청난 부담이 간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이 싸움은 자존심이 걸린 대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츠츠츠츳, 하는 소리와 함께 안나 크로프트의 눈앞에 한수영이 낼 최대 금액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화신체의 과부하로 흘러내린 코피를 슥 닦은 안나 크로프트가 입을 열었다. “······300만 코인, 입찰하겠습니다.” “안나 님!” 깜짝 놀란 셀레나 킴이 외쳤다. 그러나, 안나 크로프트는 요지부동이었다. “사야 합니다.” 안나 크로프트의 [미래시]에 떠오른 한수영의 금액은 ‘299만 9999코인’이었다. [300만 코인 나왔습니다!] 기쁨에 어깨춤을 추는 도깨비의 모습. 객석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예언자’다!] [약삭빠르고 교활하다 들었는데, 통도 큰 작자였군!] 객석은 열광에 휩싸였지만, 안나 크로프트는 조금도 들뜨지 않았다. “안나 님, 300만 코인은 무리에요. 이건 너무 큰 손해라고요!” “도깨비 대출을 받으면 됩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손해는 봤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손해도 아닙니다. 저들에게 내주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손해를 면하는 셈이니까요.” “그게 무슨······.” “저렇게까지 입찰을 따라왔다는 것 자체가, 저들도 이 아이템이 간절했다는 이야깁니다.” 안나 크로프트는 이쪽을 쏘아보는 한수영과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을 마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저들 또한 <기간토 마키아>에 참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 언젠간 맞부딪칠 상대라면, 지금 기를 꺾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한수영은 졌다는 듯 양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런. 별수 없네. 우리가 졌어. 완전히, 일백 퍼센트 져버렸다네.” “······.” “이래서 세상은 불공평해~ 금수저 화신한테는 이길 수가 없다니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낙찰을 받은 건 이쪽인데, 왜 저쪽이 즐거워 보이는 거지? [자, 물건을 낙찰받으실 분은 단상으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도깨비의 부름에 안나 크로프트가 단상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킬킬거리며 이쪽을 보는 한수영과, 무표정한 유중혁의 얼굴. [미래시]를 사용해 앞으로의 미래를 읽고 싶었지만, 벌써 오늘의 제한치를 모두 사용한 후였다. ‘잠깐, 설마?’ 마침내 경매품 앞에 섰을 때, 안나 크로프트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이 상품, 출품자가 누군가요?” [그게, <김독자 컴퍼니>의······.] “사지 않겠습니다.” [예?] 도깨비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낙찰된 상품을 환불할 수는 없습니다. 금액을 지불하지 않으시면―] “이건 명백한 사기입니다. 그러니 사지 않겠습니다.” [사기라뇨?] 안나 크로프트의 손가락이 <김독자 컴퍼니> 일행들을 가리켰다. “저들이 편을 먹고 인위적인 가격 경쟁을 유도했습니다. 애초에 저들은 이 물건을 살 생각이 없었단 얘깁니다.” 안나 크로프트의 주장에 한수영이 혀를 차며 말했다. “뭔 소리야? 진짜 살 거였거든?” “설령 정말 살 생각이었더라도, 이 경매는 무효입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들은 이 상품의 출품자니까요. 출품자 본인이 경매에 참가하는 경우는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한수영과 유중혁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도깨비가 말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확실히 출품자 본인이 자기 상품의 경매에 참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안나 크로프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출품자를 확인해 보십시오. 분명 경매품의 출품자는, 저 둘 중 하나일 테니까요.” [좋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김독자 컴퍼니>의 일행들 사이로 곤란한 표정이 번졌다. 반면, 안나 크로프트의 표정에는 안도와 승리감이 번지고 있었다. 꽤 괜찮은 함정이었다. 하마터면, ‘예언자’인 그녀조차 당할 뻔했으니까. 그런데, 출품자를 확인하던 도깨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요. 그들 중 출품자는 없습니다.] “예?” 한수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아~ 정말 갖고 싶었는데 그 두꺼비······.” “그럼 출품자는 대체······.” 그 순간, 경매장의 문이 활짝 열렸다. 경매장 바깥의 눈부신 빛살과 함께, 백색의 코트가 바람에 흔들렸다. 백색 코트의 사내는 한수영과 유중혁을 흘끗 보곤, 휘적휘적 이쪽으로 걸어왔다. 마침내 단상 위로 올라온 사내는, 안나 크로프트도 익히 아는 자였다. 반갑다는 듯 미소를 지은 사내가 악수라도 청하듯 손바닥을 내밀었다. “300만 코인입니다.” 김독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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