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307화 그런 문전박대는 간만이었다. 나는 잡은 문고리를 쥐었다 놨다를 반복하다가 흘끗 뒤를 돌아봤다. 정희원은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지켜보겠다는 눈빛이었고, 한수영은 묘하게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이현성은, 당장이라도 걱정으로 녹아내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방문 앞에 조심스레 등을 기대앉았다. “들어가지 않을게요. 대신 잠시 여기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상아다. 유상아가 나를 만나기를 거부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답은 한참 뒤에 돌아왔다. ―······그러세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어쩐지 힘이 없었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깊은 정적 속에, 나는 유상아에 대해 생각했다. 아직 미노 소프트에 다니던 시절의 유상아. 내게 유상아와 친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상아가 어떤 사람인가, 하고 묻는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제가 너무 늦었죠?” 나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그래요. 입사 첫날에도 늦어서 유상아 씨 도움받았었는데······ 혹시 기억하세요?” 잠시 침묵하던 유상아가 대답했다. ―······그땐 둘 다 늦었었잖아요.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유상아지만, 사실 그런 유상아의 완벽함도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유상아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더 성실한 노력파다. “그때 같이 면접장 찾던 거 기억나세요?” ―기억나요. ‘미노 소프트’의 신입사원 면접은 업계에서도 꽤 유명한 편이었다. 면접에는 매해 다른 종류의 ‘퀘스트’가 나왔는데, 제일 흔히 나오는 것이 ‘면접관 호감도 올리기’나 ‘숨겨진 면접 힌트 찾기’였다. 참고로 나와 유상아가 면접을 보던 해의 퀘스트는, ‘면접장 찾기’였다. ―······제가 독자 씨 도움을 더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요. “저는 퀘스트 아이템만 찾았을 뿐이에요. 아이템을 활용해 길을 찾아내는 건 유상아 씨가 모두 해냈었고요.” 당시 나는 유상아와 팀을 이뤄 면접장을 찾아냈다. ―독자 씨는 비효율적인 퀘스트 동선을 지적했었죠. “상아 씨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퀘스트 승급 시스템을 지적했었고요.” ‘퀘스트’는 단순히 클리어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퀘스트의 문제점과 약점, 그리고 효율성을 짚어내는 것. 그것이 미노 소프트 신입 사원 면접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유상아와 나는 모두 최고 득점으로 면접을 통과했다. “입사 후에 부서가 갈라져서 아쉬웠어요. ······뭐, 당연한 일이었지만요.” ―······. 나는 QA팀. 그리고 유상아는 인사팀. 입사 후, 우리는 지나가며 간신히 인사만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전 유상아 씨와 다시 같은 팀이 되어서 기쁩니다.” 아주 작게, 누군가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처럼, 저는 유상아 씨가 필요합니다. 같이 길을 찾아줄 사람이 필요해요.” 이현성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정희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한수영은 칫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유상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독자 씨. “예.” ―저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에요.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단언컨대 유상아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세상에 좋은 사람은 없다. ―탕비실 사건, 기억하세요?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기억합니다.” 누군가가 회사의 탕비실에 있던 원두통 안에 후추를 잔뜩 뿌려놨던 사건. 그 일 때문에 한동안 회사가 시끄러웠다. 상사들은 후추 맛 커피를 먹고 역정을 냈고, 애꿎은 신입사원들은 고스란히 질타를 받았다. ―그거 제가 한 거예요. “······그랬습니까?”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덕분에 한동안 신입들이 커피 심부름 면했잖습니까.” 사실 나는 유상아가 범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 탕비실 범인을 잡으라며 QA팀의 직원들이 강제 당직을 섰기 때문이다. 주로 그 임무를 도맡았던 건 팀의 막내인 나였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멸살법’을 읽으며 탕비실의 청소 도구함에 숨어 있었고, 한밤중 홀로 탕비실에 들어오는 유상아를 보았다. ―그 일뿐만이 아니에요. 유상아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은 별거 아닌 사건들이었고, 별거 아니었음에도 뭔가가 조금씩 바뀌었던 일들이었다. 누군가는 피해를 보았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자신의 권리를 찾았고, 또 누군가는 통쾌함을 느꼈던 사건들. “유상아 씨.” 그녀는 ‘등장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 ‘멸살법’이 오기 전, 그녀는 누구보다도 내게 ‘등장인물’ 같은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현실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저러다 죽겠어요.”」 첫 번째 시나리오가 시작되던 그때부터 유상아는 그랬다. ‘멸살법’에는 존재하지 않는 ‘윤리’를 유일하게 지키려 했던 사람. 「“내가 할게 길영아. ······그래도 내가 할게.”」 그곳에 유상아가 없었다면 일행들은 분명 무너졌을 것이다. 「“독자 씨는 정말 좋은 말씀을 하시네요.”」 내가 어떤 헛소리를 하든, 웃으며 받아 준 유상아가 없었더라면. 「“그럼 저에게는 상아의 삶이 있는 거군요.”」 내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든, 지켜야 할 것을 놓지 않았던 그녀가 없었더라면······. 「“전 오늘처럼 독자씨가 미운 날이 없었어요. 돌아와요, 꼭.”」 나는 안심하고 ‘이계의 언약’을 맺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저요, 정말 참을 수가 없어서······. 두서가 없는 유상아의 말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상아 씨.” 마치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계속해서 말을 잇는 유상아.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다가, 다시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도움을 원하지 않는 사람을 구태여 돕는 것은 민폐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분명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 번도, 그런 것을 청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마치, 내가 처음 면접장에 갔던 그날처럼. “잠깐만요, 독자 씨―!” 나는 정희원의 말을 무시하고 잠긴 문고리를 강제로 돌렸다. 삐거덕거리며 문이 부서질 듯한 소리가 들렸고, 이내 방안의 정경이 드러났다. 그리고 나는 어두운 표정의 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이설화와 아일렌, 그리고······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왔구나. 세 사람은 침대 근처에 서 있었고, 침대 위에는 지금껏 나와 이야기하던 유상아가 누워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 핏기가 하나도 없는 유상아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녀를 대신해 떠드는 것은 다른 녀석들이었다. 「그러니까······.」 유상아의 안에서, 부서진 설화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잠시 후, 나는 일행들과 함께 유상아의 병실에 모여 앉았다. “대체 언제부터 이랬던 겁니까?” “······얼마 안 됐어요.” 정희원이 대답했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 것은 이설화였다. “······과도한 성흔 사용 때문에 부작용이 심각해요.” 나는 유상아의 탈색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유상아가 보통의 배후성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올림포스> 성운 자체를 배후성으로 두고 있다. 그리고 정상적이지 않은 <배후 계약>은 화신의 수명을 깎는다. 여기서의 ‘수명’은, 단순히 육체적인 수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야기의 수명’이었다. “영혼은 의식 아래로 깊이 잠들어버렸고, 남은 건 「의식의 흐름」뿐이에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성흔들을 반복해 사용하면서, 유상아의 영혼에는 조금씩 부조리가 누적되었다. 개연성은 그녀의 몸과 정신에 균열을 발생시켰고, 결국 균열 사이로 설화들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일렌이 첨언했다. “······설화팩도 꾸준히 수혈하고, 부서진 파편들을 모아서 다시 투여하기도 했어요. 그런데도 차도가 없어요.” 둥둥 떠다니는 유상아의 말들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모두 나 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늦었기 때문에······. “······그딴 표정 지을까 봐 들어가지 말라고 한 거야.” 한수영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이설화를 보았다. “시간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3개월 정도······.” “방법이 없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이곳이 아니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요.” [성좌, ‘구암신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설화를 대신해 반응한 것은, 그녀의 배후성이었다. [성좌, ‘구암신의’가 화신 ‘유상아’의 병은 ‘인간의 질병’이 아니라 말합니다.] 인간의 질병은 인간의 힘으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병이 신(神)의 것이라면? [마왕, ‘구원의 마왕’이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러자, 어두운 <스타 스트림>의 곳곳에서 작은 별들이 반짝였다. [성좌, ‘버려진 미로의 연인’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성좌, ‘술과 황홀경의 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모두, 유상아와 관계되어 있는 <올림포스>의 별들이었다. 불쑥 화가 치솟았다. 확실히 힘을 사용한 것은 유상아 본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부조리한 계약을 유도한 것은 <올림포스>였다. [올림포스, 당신들의 개연성은 당신들이 감당하십시오.] 나는 밤하늘을 향해 고요한 진언을 퍼뜨렸다. 내 말에, 몇 개의 별들이 재차 반짝였다. [성좌, ‘버려진 미로의 연인’이······.] 츠츠츠츠츳! 다음 순간, 알 수 없는 스파크와 함께 허공에서 간접 메시지가 끊어졌다. 빛나던 별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가 그들의 간접 메시지에 간섭한 것이다. 나는 짓씹듯 말했다. “놈들이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놈들’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정희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도움을 청할 방법이 없어요. 저희도 몇 번이나 비슷한 시도를 해봤지만······.” 성좌들은 제멋대로고, 자신들이 원하는 일만을 행한다. 보고 싶은 이야기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아직도 유상아가 이런 상태라는 것은, 고위급 성좌들이 유상아의 기적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한수영이 물었다. “지난번처럼 명계에 다녀오는 건 어때? 너 명계의 여왕이랑 친하잖아.” “······그때는 상황이 특수했어. 그리고 유상아 씨는 아직 죽지도 않았고. 게다가 비유 때처럼 되라는 법도 없어.” 사실 아까부터 페르세포네에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지만, 답이 없었다. 연락이 되어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재앙 신유승’이 비유로 환생했을 때는 말 그대로 운이 좋았을 뿐이다. 이 세계에서 대부분의 죽음은 문자 그대로의 죽음이다. 환생이나 회귀는, 그야말로 <스타 스트림>의 기적 같은 이야기일 뿐이고. “장하영은 다른 시나리오 수행하러 갔다고 했지?” “······꽤 멀리 간 걸로 알아.” 장하영이라도 곁에 있다면 성좌들에게 직통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잠든 유상아의 얼굴을 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유상아를 살릴 방법.」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아직 방법은 있습니다. 제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기긴 하지만······.” “46번 시나리오를 돌파해야 한다.” 내 말을 끊은 것은 낮고 냉철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나는 인상을 쓴 채 그쪽을 돌아보았다. ······아주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시는군. 경기 연합을 해치우기 위해 파견을 나갔던 일행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신유승, 이길영, 이지혜. 그리고······ 유중혁. 쪼르르 달려온 아이들이 내 품에 안겨들었다. 나는 신유승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흉흉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유중혁을 한 번 보고, 나머지 일행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성좌들을 만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성좌들이요?” 살짝 열린 창밖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먼 하늘에서 도깨비들이 하나둘 나타나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위해 온 녀석들일 것이다. 그 너머로, 다시 시나리오를 지켜보는 수많은 별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나는 그 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47번 시나리오 지역에, 저 ‘성좌’들이 있습니다.” 47번 시나리오 지역. 그곳에 성좌들의 성간도시(星間都市), ‘별자리의 맥락’이 있다. “올림포스를 부수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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