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231화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상인이 인상을 썼다. 돌아보자, 그곳에는 예상대로 유중혁이 서 있었다. 나는 슬며시 인상을 쓰며 경고했다. “야, 함부로 그런 소리 하고 다니지 마.” 유중혁이 말한 ‘<제1 무림> 멸망’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시나리오였다. 본래 원작대로라면 몇 년은 더 지나야 찾아올 비극. 물론 지난 회차에서 그 모든 것을 목격한 유중혁에게는 앞으로 찾아올 미래 또한 ‘과거’일 것이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하지 마라. 저런 쓰레기로 강해질 수 없다는 건 네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냥 일행들 구경 좀 하라고 냅둔 거야.” “우린 한가하게 관광 온 게 아니다. 잊었나?”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 유중혁의 한 손엔 뭔가가 바리바리 들려 있었다. 종이 포장지 안쪽에서 뜨끈하고 달큰한 냄새가 샘솟았다. ······만두? 유중혁은 뻔뻔한 얼굴로 만두 하나를 우적우적 먹으며 말했다. “현시점의 <제1 무림>에서 찾을 수 있는 히든 피스는 총 세 가지다. 멸황(滅皇)의 무공서, 흑마령(黑魔靈)의 흑천마도(黑天魔刀), 그리고 혈마교의 마혼단(魔魂丹).” 유중혁의 말에 상인이 끼어들었다. “하하하! 멸황의 무공서에 흑마령의 흑천마도? 혈마교의 마혼다안? 아직도 그런 걸 찾는 인간이 있다니······!” “······.” “정신 차리게! 그것들은 말 그대로 전설이야! 구무림시절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고!” 상인의 비웃음에도 유중혁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유중혁은 그것들이 정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중 몇 개는 입수 방법도 알고 있다. 이걸 뻔뻔하게 남들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건, 어차피 말해도 믿을 턱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겠지. 나는 일단 녀석의 말에 대답했다. “일단 혈마교의 마혼단은 얻어도 효용 가치가 낮아. 너라면 흡수가 가능하겠지만 나나 다른 일행들은 잘못 먹으면 주화입마가 온다고.” 유중혁은 과연, 싶은 얼굴이었다. 한편 우리가 전설의 비보에 대해 태연히 이야기하자, 상인의 표정은 당황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멸황의 무공서는 입수 요건이 까다로워. 얻으려면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여기 머무를 수는 없다고.” “그것도 그렇군.” “마지막으로 흑마령의 흑천마도는······ 아마 네 칼이 부러진 것 때문에 구하려는 것 같은데, 그보다 구하기 쉬우면서 성능이 비슷한 무기가 있다는 거 잊었어?” 내 말에, 유중혁의 안색이 변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눈치챈 투였다. “······정말 갈 생각인 건가?” “그래. 이번엔 파천검성의 힘이 꼭 필요해.” “나는 안 가겠다.” “맘대로 해. 그래도 무관까지는 안내해 줄 수 있지?” 유중혁이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상인이 또 끼어들었다. “자네들, 설마 파천검성을 찾아가는 길인가?” “그렇습니다만.” “허······.” 상인은 살짝 질린 얼굴로 우리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주섬주섬 상품들을 회수했다. “됐네. 이리 주게. 당신들한텐 안 팔아.” 빙화신녀의 무공 구결을 열심히 듣고 있던 한명오는 갑자기 이어폰을 빼앗기자 당혹스런 표정이었다. 그런 한명오를 향해 상인이 빙긋 웃었다. “아직도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친구들이 있다니, 놀랍구만. 직접 시대의 변화를 느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자네들의 고행에 무운이 있길 비네.” 상인은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이내 가판대를 끌고 다른 곳으로 가서 또 호객 행위를 시작했다. 나는 그런 상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한명오가 물었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린가?” “부장님은 구무림이 좋다고 하셨죠?” “응? 뭐, 그렇지.” “잘 됐네요. 지금 우리가 찾아가는 사람이 이 ‘무림’에서 유일하게 예전의 훈련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그렇게만 말해두고 앞서 가는 유중혁의 뒤를 쫓았다. 간만에 <제 1무림>에 왔기 때문일까. 유중혁은 잠시 그리운 얼굴로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슬픈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기도 했다. 거리는 점차 한산해졌다. 번화한 시장가의 떠들썩함이 잦아들고, 동물의 대소변 냄새 같은 것이 희미하게 풍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더 걸었을까, 마침내 유중혁의 걸음이 멈췄다. 번화가에서 봤던 장원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한 장원. 장원의 중심을 차지한 작은 움막. 그리고 그 움막으로 향하는 길에 세워진 작은 명패. [파천검문(破天劍門)] ―제자 상시 모집. 이곳이, 파천검성이 기거하는 무관이었다. “나는 여기까지다.” 그 말과 함께 유중혁은 훌쩍 물러서더니 근처의 벚나무 위로 올라갔다. 정말 어지간히 파천검성을 만나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한명오가 의심스러운 투로 말했다. “뭔가 허름한데······.” “은거 고수들은 원래 허름한 곳에 머물잖아요.” 장하영이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에 나한테 무공을 준 사람이 있는 거지?” 그러고 보면 장하영은 ‘벽’을 통해 파천검성의 [불사지체]를 전수 받았었지. 아무나 무공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유중혁도 그 개고생을 해서 무공을 배웠는데······. “파천검성, 계십니까?” 나는 일단 장원의 문을 두드렸다. “파천검성!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쳐도, 파천검성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대답이 없다고 여기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뻔뻔하게 외치며 장원의 문을 열었다. “들어오라는 신호로 알겠습니다!” 끼이익, 하며 열리는 장원의 내부. 생각보다 장원의 내부는 한산했다. 딱히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전혀 뜻밖의 존재였다. 장하영이 반색하며 외쳤다. “앗, 개를 키우나 보네?” 웬 개 한 마리가 마루 위에 드러누워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색 무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혀를 쭉 내민 중형견. 한명오가 긴장하며 내 곁으로 붙어섰다. “설마 저게 파천검성인가?” “아닙니다.” 헥헥거리는 개를 보고 있자니, ‘멸살법’의 내용이 떠올랐다. 「검은 빛깔의 털에 적갈색 눈동자. 마치 사람처럼 우아한 자태로 드러누워 고독한 장원을 지키는 번견(番犬).」 틀림없다. “저 개는 파천검성의 제자입니다.” “······제자라고?” “제 기억이 맞다면, ‘파천신군’이라고 불리는 녀석이에요.” 한명오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개를 제자로 들이는 경우도 있나?” “사람이 개보다 못하면 그렇게 되기도 하지요. 애초에 사람이 개보다 낫다는 발상 자체가 인본주의적인 겁니다.” 나는 개의 주변을 둘러싼 묘한 기류를 읽어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이 발동합니다.] 오래된 것에는 이야기가 발생하고, 이야기가 모이면 설화가 된다. 일대에 맺힌 설화의 파편들이, 원작의 활자가 되어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설화,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가 발동 중입니다.] 가령, 무림 최강자의 무공을 오래도록 곁눈질한 개가 있다면 어떨까. 그 개가, 어느 날부터인가 주인을 따라하기 시작했다면. 그렇게 따라하고 또 따라한 세월이 10년이 되고, 20년이 되고, 30년이 되고······ 마침내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면. 장하영이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뭐, 뭐야 저거······!” 천천히 두 다리로 일어선 번견이, 마치 사람처럼 우리를 보고 있었다. 생각을 전혀 읽을 수 없는 기묘한 눈동자. 한 걸음씩 다가오는 기세에 적의는 보이지 않았으나, 딱히 호의적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웠다. 그 기이함에 한명오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섰다. “보아하니 환영 인사는 아닌 것 같군. 내가 상대하지.” “······부장님이요?” “나도 백작급의 악마일세. 무시하지 말게.” 백작급이면 확실히 약하지는 않다. 그래도 제법 설화를 다룰 수 있어야 백작급이 되니까. “흐아아압!” 자신만만하게 달려간 한명오가 자신의 설화를 발출했다. 무슨 설화인진 모르겠지만 어디서 역사급 설화 몇 개를 주워서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스모데우스의 권속이니, 이참에 한명오의 실력도 확인해 보면······. 터엉! “꾸아아아아악!” 그러나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한명오의 몸이 북 터지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았다. [등장동물 ‘파천신군’이 ‘백보신권 Lv.10’을 발동합니다!] [등장동물 ‘파천신군’이 ‘주작신보 Lv.10’을 발동합니다!] ······맙소사. 스스슷. 간단히 한명오를 장원 밖으로 날려버린 번견은 순식간에 나와 장하영의 방위를 점하며 달려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장하영을 밀치며, [책갈피]를 발동했다. [전용 스킬, ‘바람의 길 Lv.10(+1)’이 활성화됩니다!] 고오오오오! 순간적으로 피어오른 바람의 감각이 번견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고, 나는 장하영을 옆구리에 끼고 바람의 길을 달려 번견의 앞발을 피했다. 허공에 스파크를 튀기며 지나가는 앞발에 무시무시한 권격이 깃들어 있었다. 저 온순하게 생긴 개가 [파천권격]을 사용하고 있다면 대체 누가 믿을까. “잠깐만요! 우린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자, 번견이 장원에 굴러다니던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자 상시 모집. 그제야 나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깨달았다. “······제기랄. 하필 제자 모집 기간이라니.”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 말고도 예전의 무림을 동경해 파천검성을 찾은 이들은 꽤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입문조차 불가능했는데, 바로 저 개 때문이었다. 「“나는 개만도 못한 녀석은 제자로 받지 않겠다”」 말하자면 저 ‘개’······ 그러니까 ‘파천신군’은, 파천검문에 입문하기 위한 등용문인 셈이었다. 내 움직임에 자극을 받았는지, 개가 으르릉거리는 소리를 냈다. 츠츠츠츳. 개의 주변에 희미한 스파크가 올라오고 있었다. 장하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저, 저거 뭐야? 개 맞아?” 놀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스파크의 색깔이 노란빛으로 변하는 것으로 봐서, 틀림없었다. 저건, ‘초월형 1단계’다. 설마 파천신군이 이 정도일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빌어먹을. 물론 내가 전력을 드러내면 상대할 수는 있겠지만, 아직 몸도 회복되지 않은 상황인데다 고작 개를 상대로 설화를 남발할 수는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유중혁! 한 번만 도와줘!” 유중혁은 조용했다. 이 자식, 반응이 없다 이거지? “내가 혈마교의 마혼단 찾는 거 도와줄 테니까, 딱 이 녀석까지만 정리해줘!” 이번에도 유중혁은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개가 움직였다. [바람의 길]을 사용해도 피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이를 악문 내가 [전인화]를 발동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타앙! 간발의 차이로 나타난 유중혁이, [천총운검]으로 파천신군의 앞발을 막아선 채 말했다. “마혼단만으론 부족하다. 흑마령의 흑천마도도 구해와라.” 제기랄. 그렇게까지 쫀쫀하게 나오겠다 이거지. “······알겠으니까 개 좀 처리해봐.” 가볍게 검을 흔들어 개의 공격을 흘려낸 유중혁이 고고한 얼굴로 검도 자세를 취했다. 츠츠츠츠, 하는 소리와 함께 유중혁의 전신에서 노란 스파크가 흐르기 시작했다. 역시, 유중혁도 초월형 1단계는 돌파했군. 본래는 이 시기에 오를 수 없는 경지일 텐데. 파천신군은 자신과 같은 힘을 사용하는 존재가 나타나자 긴장한 기색이었다. 개와 사람의 대치라기엔 믿을 수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이윽고, 가공할 마력파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원작에서도 유중혁은 파천신군과 겨뤘던 적이 있다. 「파천검성에게는 두 명의 제자가 있다.」 바로, 파천검성에게 처음 검을 배우러 왔던 그때였다. 「하나는, 파천검성이 기르는 번견인 ‘파천신군’.」 아마 그때는 졌었지.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패왕 유중혁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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