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209화
[등장인물 ‘장하영’이 ‘투사’로 각성하였습니다!]
[경호관]에게 핵심 스킬인 ‘경호’가 있듯, [투사]에게는 핵심 스킬인 ‘투사화’가 있다. 자신의 모든 공포와 두려움을 녹여 그것을 무력으로 바꾸는 스킬. 때문에 이 스킬은 피착취 계층에 오랫동안 머무른 사람일수록 더 강력한 힘을 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장하영은 ‘정체불명의 벽’이 없더라도 투사가 되기에 적합한 인재였다.
“하아아아아아압!”
문제는 너무 신난 것 같다는 거지만.
콰콰콰콰콰!
하늘을 깎는 폭음이 들려왔다. [투사]는 [처형관]을 상대로 할 때만큼은 절대적인 힘을 낼 수 있는 포지션. 아마 지금 장하영은 성좌라도 된 기분일 것이다.
“너무 까불지 마 멍청아!”
뒤늦게 목청을 높였으나, 장하영은 이미 닿지 않는 거리까지 날아가 있었다.
장하영은 이래서 문제다.
사실 내가 걱정한 것은 장하영의 재능이 아니라 그 재능으로 인해 비롯될 폭주였다.
「김독자는 생각했다. 장하영은 재능이 없는 게 아냐. 오히려 재능이 지나치게 많다.」
‘멸살법’의 유일한 올라운더 화신인 장하영.
장하영이 가진 ‘정체불명의 벽’은, ‘벽의 거래’를 통해 전수 받은 스킬에 한해 가공할 성장력을 보장한다.
물론 초월좌의 심오한 경지를 개척하는 것은 무리지만, 적어도 하나의 경지라 불릴 만한 수준까지 장하영은 누구보다 빠르게 올라설 수 있다.
단지 몇 시간만에 다른 이들의 수련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재능.
그런 재능은, 필히 재능의 소유자를 위험하게 만든다.
[네 놈 은 뭐······.]
쾅! 쾅! 콰아앙!
간신히 장하영을 따라잡자, 장하영은 이미 처형관 하나와 난투극을 벌이는 중이었다. 장하영의 몸을 휘감은 투사의 불꽃이 처형관의 낫으로부터 장하영을 보호했다.
[해당 포지션에게는 ‘표식’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처형관은 지금쯤 그런 메시지를 받고 있을 것이다.
[이 런······ 너 는 설 마······.]
하지만 깨달음은 너무 늦었다. 처형관을 압도하는 움직임으로 녀석의 낫을 제압한 장하영은, 능숙한 움직임으로 녀석의 목을 틀어쥐었다.
[커 억······!]
[투사]라고 해서 모두 저 정도의 전투력을 보여줄 수는 없다.
고작해야 [처형관] 하나를 넘어서는 수준의 전력이 보통.
그런데 지금 장하영은, [처형관]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오직, 장하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목을 붙잡힌 처형관은 볼썽사나운 쥐새끼처럼 버둥거렸으나, 조금씩 죄어오는 장하영의 악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내 우드득 하고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처형관의 몸이 축 늘어졌다.
파스스스스, 하고 흩어지는 처형관의 옷자락. 수십 년 동안이나 공단의 밤을 지배했던 존재라기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허망한 최후였다.
[‘투사’에 의해 ‘처형관’이 사망했습니다.]
[남은 처형관의 숫자 : 6]
처형관에게 다친 공민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장하영의 불꽃. 마치 눈부신 태양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장하영은 태양이 아니었고, 지금은 여전히 밤이었다.
“처, 처형관이 죽었다! 처형관이 죽었어!”
“말도 안 돼! 지금은 밤이라고!”
“투사가 나타났다!”
투사라는 말에, 지금껏 집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오랫동안 [밤]의 그늘에 숨어 간신히 생을 연명했던 사람들.
[공민들이 ‘혁명’의 열기에 감화됩니다.]
그들이, 하나둘 집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장하영은 그런 사람들을 마치 지도자라도 되는 듯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등장인물 ‘장하영’이 ‘투사화’에 경도됩니다.]
······이 자식은 자기가 혁명가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나는 손바닥으로 장하영의 뒤통수를 가볍게 때렸다.
“읏······!”
그제야 붉게 물들어가던 장하영의 눈빛이 조금씩 되돌아왔다.
뒤늦게 고통을 인지한 장하영이 뒤통수를 부여잡은 채 나를 노려보았다.
“아파! 왜 이렇게 세게 때려?”
“정신 차리라고. 너까지 얼빠져 있으면 곤란해.”
「“타오르는 것은 군중들이어야 한다. 수뇌부가 되는 사람까지 그 열기에 휩쓸리면, 혁명은 불씨를 제대로 지피기도 전에 맞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꺼질 것이다.”」
111회차에 나오는 유중혁의 말이었다. 차마 내가 뱉기엔 부끄러운 대사라서, 속으로 생각만 하고 말았다.
못마땅한 듯 나를 보던 장하영이 입술을 실룩였다.
“처형관한테 당한 것보다 더 아프네.”
“그럼 제대로 맞은 거야.”
지금 장하영이 가진 힘은 시나리오에 한정된 힘, 그것도 [처형관]을 상대할 때에 한정된 힘일 뿐이다. 그런 힘에 도취되면 위험하다.
멀리서 아일렌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서쪽에 둘! 남쪽에 하나! 나머지는 모두 북쪽에!”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명백했다.
“움직이자.”
장하영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밤하늘을 달렸다. 다시 앞서 나가는 장하영의 뒤를 보는데, 머릿속에서 메시지가 들려왔다.
[‘제4의 벽’이 등장인물 ‘장하영’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십니다.]
“쟨 안돼. 허튼 생각하지 마.”
니르바나 때도 그랬고, 이계의 신격과 싸울 때도 그랬듯 역시 이번에도 ‘제4의 벽’은 장하영의 설화가 탐나는 모양이었다. 아마 정확히는 ‘장하영’을 향한 것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벽’을 향한 것이겠지.
[‘제4의 벽’이 아쉬워합니다.]
“저 벽이랑 친구하고 싶다며. 친구는 먹는 게 아냐 인마.”
「라고 ‘제4의 벽’과 친구가 되고 싶은 김독자가 말했다.」
이 자식이 진짜.
“우와아아아아!”
달려나오는 군중들의 아우성.
“투사가 나타났다! 조금만 버텨라!”
[처형관]을 향해 무기를 굳게 움켜쥔 몇몇 장정들이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공단]의 곳곳에서 마력의 불길이 튀어 올랐다.
사람들이 맞서 싸우고 있었다.
자신이 싸울 수 없는 상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저들 중 누가 ‘혁명가’라고 해도, 나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투사’에 의해 ‘처형관’이 사망했습니다.]
[남은 처형관의 숫자 : 5]
장하영이 또다시 한 명의 처형관을 쓰러트렸다.
이제 남은 숫자는 다섯.
모든 처형관이 죽게 되면, 공작은 더 이상 숨어있을 수 없게 된다.
진짜 혁명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모두 죽여버려!”
“우와아아아!”
공민들이 용기를 내자, 처형관들의 기세가 조금씩 주춤했다. 어차피 [투사]를 제외한 누구도 밤의 [처형관]을 해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분위기다.
[어 리 석 은······.]
낫을 휘두르던 처형관이 장하영의 공격을 받았다.
이미 두 명의 처형관이 사망한 시점이기 때문인지, 녀석은 장하영을 정면으로 상대하지 않았다. 마치 겁에 질리기라도 한 것처럼 허공을 격하고 달아나는 처형관.
꽁무니를 빼는 놈을 보며 공민들이 함성을 질렀다.
“놈들이 물러간다!”
장하영은 공단의 낮은 지붕들을 밟으며 거주구 쪽으로 달아나는 처형관의 뒤를 쫓았다.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오늘 ‘밤’도 무사히 지나갈 것이다. 처형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공작은 강제로 [밤]을 회수하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김독자는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마계의 역사에서 혁명을 코앞에 두고 죽은 ‘혁명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모든 [밤]이 물러가기 전까지, 혁명가는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설령 내가 가짜 혁명가라 해도 말이다.
「김독자는 생각했다. 책사 노릇을 하던 한명오는 내게 붙잡혔고, 낮에는 세 명의 처형관이 죽었다.」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고, [공단]의 분위기는 급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작이 아무 작전도 없이 [밤]을 보낼 턱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세이스비츠 공작’이라면······.
스가가가각!
아니나 다를까.
뒷덜미로 날아드는 스산한 기척에,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콰지지지직!
허공을 날카롭게 베어 넘기는 네 자루의 낫이 지붕들을 반파시키며 지나쳤다.
조금만 늦었어도 목 위가 사라졌을 것이다.
······숨어있었나.
장하영이 쫓던 처형관을 제외한 네 명의 처형관이 모두 나를 노리고 있었다. 첫째 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흉흉한 기운. [책갈피]로 [바람의 길]을 발동하고는 있었지만, 날아드는 공격들을 모두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경호관!”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력을 사용해 당신을 경호합니다.]
숨어있던 마르크가 나에게 ‘경호’를 걸어 주었다.
이제 마르크의 남은 포인트는 두 개.
내게 ‘경호’의 효력이 발동하고 있음에도, 처형관들은 길을 비키지 않았다.
「순간 김독자는 생각했다.」
마치 시간을 끌려는 듯한 움직임.
나는 공작의 작전을 알아챘다.
「공작은, ‘투사’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
······장하영이 위험하다.
나는 [바람의 길]을 이용해 바람을 응축시킨 후 뒤쪽에서 강력한 폭발을 만들었다.
쏜살같이 쇄도하는 내 움직임에, 당황한 처형관들이 외쳤다.
[막 아 라!]
쿠콰콰콰콰!
나는 ‘경호’와 [바람의 길]의 힘을 빌려 단숨에 처형관들의 방호벽을 돌파했다. 장하영은 아마 하나 남은 처형관을 뒤쫓아 갔을 것이다.
그리고 예상컨대, 아마 그곳에는―
“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피를 뿌리며 날아 오르는 장하영이 보였다.
빌어먹을, 이래서 아까 뒤통수를 때려줬던 건데.
나는 바람을 컨트롤해 허공에서 떨어지는 장하영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야, 괜찮아?”
“흐윽, 컥······.”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내상이 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전투를 지속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대체 누가 밤의 [투사]를 이 꼴로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커다란 덩치의 [처형관] 하나가 보였다.
[혁 명 가 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밤]의 [처형관]은 절대로 [투사]를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저놈은······.
스스스슷.
천천히 다가오는 처형관의 옷깃이 흩어지며, 고고한 악마종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제야, 나는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장하영은 [처형관]의 힘에 당한 게 아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봤던 악마 남작이나 백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설화의 힘.
나는 녀석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물었다.
“머리를 좀 썼네. [처형관] 외의 복병을 넣을 줄이야······ 보아하니 공작 본인은 아니고, 후작쯤 되는 것 같은데. 맞나?”
“내가 먼저 물었다. 네가 ‘혁명가’를 자처하는 녀석인가?”
“맞아. 내가 혁명가야.”
“건방진 말투군.”
짙은 눈썹이 꿈틀거린 악마종이, 어쩐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후작 ‘오스테온’이다.”
악마 후작 오스테온.
세이스비츠 공작과 함께, 이 [공단]을 이끄는 두 명의 후작 중 하나.
“하나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눈썰미가 좋은 놈이군.”
그 말과 함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악마종이 나타났다.
그쪽은 [처형관]의 힘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았다.
“너도 후작이냐?”
물음에 답한 것은 악마종 본인이 아니었다.
“쿠, 쿠아르테토 후작이다!”
공민들의 비명 속에서 인상을 찌푸린 쿠아르테토 후작이 달빛 아래 섰다.
오스테온과 쿠아르테토.
세이스비츠 [공단]을 이끄는 두 후작이 동시에 등장하자, 공민들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버렸다.
“으아아아······.”
세이스비츠 공작은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적의 정체를 확실히 모르니, 자신을 따르는 두 후작을 모두 내보냈을 것이다.
“이런 귀한 시기에 귀찮은 일을 만들다니, 간이 큰 놈들이구나.”
마치 귀찮은 뒤처리를 맡은 듯한 얼굴들.
수백 년 씩 공단을 지배하며 이런 일을 종종 겪었을 테니,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이미 날 죽었다고 치기로 했는지, 두 후작은 내가 아니라 다른 공민들 쪽을 보고 섰다.
쿠구구구!
주변의 압력이 솟아오르며, 공민들이 동시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벌벌 떨며 숨을 죽인 화신들.
그들을 향해, 후작들이 입을 열었다.
“이것은 너희들이 받는 대가다.”
[설화, ‘지배자의 언령’이 발동합니다.]
후작들이 만들어 낸 언어의 칼날이 공민들을 겁박하고 있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말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어 공민들의 상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너희는 소중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상상 속에서 공민들은 소중한 가족들을 잃었고.
“평화로웠던 [밤]을 상실할 것이다.”
평화로웠던 적 없는 시간을 모두 빼앗겼으며.
“이 [공단]을 어지럽힌 죗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지은 적 없는 죗값을 치렀다.
“그것이, ‘혁명’의 의미다.”
종언의 판결문처럼 떨어지는 문장들. 그 안에서 공민들은 허우적거렸다, 이제는 모두 끝이라는 투로 어깨를 부여 쥔 공민들이, 공포심 어린 눈으로 후작들을 올려다보았다. 그 상황이 만족스러운 듯, 후작들이 웃었다.
“보아라! 너희들의 희망이 무너지는 모습을.”
이 일을 지배체제를 공고히 할 기회로 삼기로 했는지, 연출이 과했다.
비형이 저 꼴을 봤어야 하는데.
내 쪽으로 돌아선 두 후작이, 나를 향해 동시에 ‘격’을 행사했다.
쿠구구구!
평범한 공민들이라면 당장에라도 겁에 질려 납죽 엎드릴 힘.
하지만 모든 공민들이 바닥에 주저앉은 와중에도, 나는 멀쩡히 서 있었다.
내가 멀거니 그들을 바라보자, 당황한 후작들이 다시 한 번 외쳤다.
“보아라! 무너지는 모습을!”
쿠구구구! 쿠구구구!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격’을 발출하는 후작들.
겨우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모양인지, 놈들의 이마에 핏대가 바짝 서 있었다.
“무너지는······! 무너······! 음? 아니, 대체······?”
나는 그런 후작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김독자는 생각했다.」
[투사]가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처형관] 뿐.
적들이 시나리오의 포지션이 아닌 본신의 무력을 활용하기로 했으니, 이쪽도 그에 응대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피할 수 없겠지.」
이번에 힘을 개방하면 화신체가 많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후작’급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다.
최소한도로.
그리고 최적의 효율로, 놈들을 없애야 한다.
“너는······?”
뭘 물을지 알았기에, 나는 미리 선수를 쳤다.
“내가 누구냐고?”
후작급은 강하다.
하지만 아무리 강해봤자, 그것은 ‘화신’의 척도일 뿐.
애초에 위인급 성좌에도 못 미치는 놈들인 것이다.
천천히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한다.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든다.
이제껏 ‘성좌’에 오르기만 했지,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으니까.
[‘성좌’의 격을 발출합니다.]
쿠구구구구구구!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격’이 일대의 시공간을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