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185화 “야! 무슨 개소리야!” 나는 다급히 외치며 유중혁을 향해 달려갔다. 보옥을 쥔 유중혁의 몸에 새카만 아우라가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보옥의 선택을 받은 존재가 마왕으로 진화합니다!] 보옥의 선택을 받은 자는, 73번째 마왕이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목표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나? 며칠 전, 유중혁의 의미심장한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 목표. 이 모든 시나리오의 끝에 도달하는 것······.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나는 거의 발작적으로 외쳤다. “유중혁 이 새끼야!” 쐐애애액, 하고 강선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뒤쪽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개의 와이어가 유중혁을 향해 쏟아지더니, 개중의 하나가 유중혁의 손에 쥐어져 있던 보옥을 낚아챘다. [마왕 계승이 취소됩니다.] 유중혁의 낯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독자 씨!” 뒤를 돌아보자, 유상아가 손에서 수십 가닥의 실을 내뻗고 있었다. 모두가 얼어붙은 사이, 오직 그녀만이 제정신을 차리고 기지를 발휘했던 것이다. [실 묶기]에 감겨든 마왕의 보옥이 실을 타고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유중혁이 어마어마한 살기를 폭사하며 일갈을 터트렸다. “방해하지 마라!” 강렬한 마력파가 유상아를 덮치려는 순간, 나는 [책갈피]에서 [바람의 길]을 발동해 녀석의 마력파를 흘려냈다. 쿠콰콰콰콰콰! 최대 레벨의 [바람의 길]을 운용하고 있는데도, 흘려내는 게 쉽지 않았다. 이게 바로 초월좌가 된 유중혁의 힘이다. 나는 이를 악문 채 외쳤다. “유상아 씨! 그거 잘 들고 있어요! 절대 사용하지 말고요!” “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일행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한수영이 분신을 수십 개로 분열시키며 소리쳤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김독자, 내가 말했잖아! 유중혁 저놈은 끝까지 자기 하나만 생각하는 놈이라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지, 한수영이 고래고래 악을 썼다. “김독자! 반드시 막아야 돼! 저 새끼 분명 마왕 돼서 다 죽이고 자기 혼자 시나리오 클리어하려는 속셈······!” 퍼퍼퍼퍼펑! 유중혁을 막아서던 한수영의 분신이 일거에 폭발하며, 한수영의 본체가 전당의 벽에 틀어박혔다. 다른 일행들도 다급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사부! 대체 왜 그래요! 꺄아악!” “유중혁 씨!” 콰아아앙! 이지혜도, 정희원도. 유중혁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지금의 유중혁은 진심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는 존재는 모조리 처단해버리겠다는 집념. 나는 일행들을 물리며 앞으로 나섰다. “상대하지 마세요!” 이글거리는 유중혁의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비켜라, 김독자. 마왕이 되는 것은 나다.” “무슨 개소리야! 갑자기 왜 그러는데?”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이 시나리오를 깰 방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허공에 떠 있는 시나리오 창을 흘끗 바라보았다. + <메인 시나리오 # 10 ― 73번째 마왕> 분류 : 메인 난이도 : SS+ 클리어 조건 : 당신은 두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옥을 차지하여 스스로 73번째 마왕이 되거나, 새롭게 태어나는 73번째 마왕을 살해하십시오. 이 시나리오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만 클리어 할 수 있으며, 다른 진행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한시간 : 30분 보상 : 200,000코인, ??? 실패시 : 사망과 동시에 시나리오 추방 + 이 시나리오는, 여태껏 있었던 ‘희생양’ 형태의 시나리오와 흡사했다. 모두를 위해 한 사람이 죽거나. 혹은, 한 사람이 살고 모두가 죽거나.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물었다. “그래서, 네가 희생하겠다 이거냐?” “나를 사냥하고 다음 시나리오로 가라.” “왜 갑자기 그딴 짓을 하겠다는 건데?” “이게 옳은 일이니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이 믿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답. 유중혁은 그 특유의 뉘앙스로 말을 이었다. “나는 고통에 익숙하다. 마찬가지로, 죽음에도 익숙하고. 네놈이라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을 확신하는 말투. 하지만 유중혁은 틀렸다. 나는 유중혁을 모른다. 내가 아는 유중혁은, 절대 이런 짓은 하지 않으니까. 어쨌든 대화의 여지가 생긴 것 같아서, 나는 이 망할 개복치 녀석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네가 나서서 희생할 필요는 없어. 회귀자라고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건 아니잖아? ‘부활’을 가진 건 내 쪽이야. 그러니 ‘마왕’이 되기에 적합한 건 네가 아니라 나라고.” “부활. 좋은 능력이지. 하지만 이번 시나리오에서도 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나? 시나리오 실패 대가를 확인했다면, ‘부활’이 이번에도 널 구해줄 거란 확신은 못 할 텐데?” 나는 순간 말을 잊었다. 확실히 유중혁의 말은 맞았다. 이번 시나리오는, 단순히 ‘사망’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이 자식······ 설마 거기까지 계산하고 움직였다는 건가? “그만 비켜라, 김독자.” 쿠구구구구! 내 [부러지지 않는 신념]이 거칠게 울었고, 녀석의 [진천패도]가 나를 가리키며 멈춰섰다. 그 아찔한 대치 상태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이 자식을 설득할 수 있지?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방법은 떠오르질 않았다. 이대로라면, 이 자식은 마왕이 되고 빌어먹을 회귀 루트를 밟고 말 것이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발동합니다!] 나는 놈의 생각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번 시나리오의 실패 대가는 ‘시나리오 추방’이다.」 「시나리오에서 추방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렇게 되면 김독자의 부활 능력은 무의미해진다.」 「아마 놈의 [운명]이 가리키는 죽음이 바로 이것이겠지.」 「김독자가 마왕이 되면, 녀석은 반드시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쏟아지는 그 생각의 폭포를 받으며, 나는 심장 끝이 찌르르 울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희생해야 할 것은, 나다.」 이 녀석은, 정말로 여기서 희생할 생각인 것이다. 그 오만하고 고고한 ‘유중혁’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 갑자기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북받쳐 올랐다. “그럼 너는? 너는 어떤데. 네가 여기서 죽어버리면, 네 빌어먹을 목표는 다 어쩔 거냐고!” “네가 대신 이뤄주겠지.” “뭐?” 유중혁이 내 뒤쪽의 일행들을 보고 있었다.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일지도 모른다.” 이현성, 이지혜, 신유승, 이설화······.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유중혁의 눈빛에 깊은 회한이 담겨 있었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일행이 여기까지 올라온 적은 없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지도 모른다.」 유중혁의 지난 인생 회차에서도, 그리고 유중혁이 미리 정보를 전해 들은 41회차까지의 인생 역정에서도. 이번 회차와 같은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유중혁을 흔들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개복치 자식을, 대체 어떻게 설득해야······. “그만 비켜라.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쿠구구구구! [거신화]를 발동한 녀석의 기운이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사흘 사이에 또 성장했는지, 내뿜는 기운만으로 일행들의 발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공포에 질린 유상아와, 보옥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유중혁. 나는 결국 ‘신념의 칼날’을 활성화했다. “그만둬! 멈추라고 개자식아!” 기이이잉! 화려한 백청의 에테르가 유중혁의 [파천강기]와 충돌했다. 일방적으로 손해를 본 것은, 물론 내 쪽이었다. 지금의 이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소 [전인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놈이 회귀하도록 둘 수는 없다. 별수 없이 [책갈피]를 열려는 순간, 유중혁이 말을 이었다. “혹시, 내가 ‘회귀한 후의 세계’가 걱정되는 건가?” “뭐?” “너는 두려운 것이겠지. 내가 사라지는 순간 이 세계도 없어질까 봐. 그렇지 않은가?”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그걸 안 걸까. 내가 아니라 녀석이 [전지적 독자 시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나는 그런 생각조차 잊고 말았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배후성에게 이미 물어보았으니까.” ······뭐? “내가 회귀해도 이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죽는다고 해서 세계가 리셋되거나 하는 일은 없다는 소리다.” 츠츠츠츳! 간단히 유상아를 제압한 유중혁이 [보옥]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런 유중혁을 원하는 듯, [보옥]에서 뻗어 나온 심유한 마기가 유중혁의 손끝에 얽혀들었다. “계속해서 살아가라, 김독자.” 낯선 얼굴의 유중혁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네가 이 세계를 구해야 한다.” * 쿠르르릉! [암흑성 2층]의 하늘에서 천둥이 내리쳤다. 마치 암흑성의 붕괴를 암시하듯 불길하고 사나운 천둥. 방랑자들을 움직여 사람들을 수습하던 이수경도, 우두커니 굳은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하늘의 너머에, 아마 그녀의 아들이 있을 것이다. “흘흘, 걱정이 많아 보이시는구만.” 그 말을 한 것은 이복순이었다. 그녀는 정희원에게 자신의 암흑성 랭킹을 넘겨준 뒤 이곳에 남는 것을 택했다. 잠시 이복순을 바라보던 이수경이 답했다. “엄마 노릇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가 봅니다.” “누군들 익숙해지겠나? 평생이 걸려도 익숙해질 수 없을 거야. 나도······.” “또 육남매 키운 이야기 꺼내시려는 건 아니죠?” “흘흘, 들켰나?” 이복순이 껄껄 웃었다. 방랑자들 중 이복순이 홀몸으로 키워냈다는 육남매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복순은 다정한 목소리로 이수경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 아인 반드시 살아 돌아올 거야. 너무 걱정마시게.” “그렇다면 좋겠지만······ [운명]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모름지기 [운명]이란 극복하는 것 아니겠나? 나만 해도······.” 결국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 육남매를 키워냈다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읊는 이복순을 보며, 이수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운명]이 그렇게 단순하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누구도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시나리오로 가지 않으면, 화신 김독자는 살 수 있다.」 20년의 수명을 바쳐, 이수경은 [운명]의 그 구절을 읽어냈다. 다음 시나리오로만 가지 않으면 김독자는 살 수 있다. 그 말은 곧, 다음 시나리오로 가게 되면 김독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독자야.’ 그렇지만 모든 지표가 아들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수경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놓을 수가 없었다. 파스슷. 모래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에, 이수경은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회복이 더디어 아직 결합이 불완전한 그녀의 육체는 여전히 바스라졌다 붙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모두, [제4의 벽]에 들어갔다 나왔던 후유증 때문이었다. 이수경은 [제4의 벽]에 먹혔던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마치 존재 자체가 형태소 단위로 분해되는 듯한, 끔찍한 경험. 아마도 그녀는 그때 한 번 죽었다. 부서진 이야기처럼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간 그녀는, 그곳에서 어떤 인간도 하지 못할 경험을 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자신의 아들 안에 그런 ‘벽’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것. 그리고 그 ‘벽’ 안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에 전율하는 것 뿐이었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 그곳에서, 이수경은 ‘벽 안의 존재’와 대면했다. 존재가 한 번 으스러졌다가 재생되는 바람에 정확한 기억은 남지 않았다. 그게 대체 뭐였는지, 벽의 내부가 정확히 어떤 구조로 되어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그녀가 기억하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어떤 질문에 관한 대답이었다. 「내 아들이 살아날 방법은, 대체 뭐야? 그 빌어먹을 [운명]은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이수경은 그런 것을 물었다. ‘벽 안의 존재’는 그런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대답했다. 「[운명]을 벗어날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장난스럽다는 듯, 괴이쩍은 미소를 지은 채로. 「김독자는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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