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18화
천인호의 난장에도 불구하고 성좌들은 ‘현상금 시나리오’를 요청하지 않았다.
즉, 아직은 놈을 처리할 최적기가 아니라는 얘기.
그로부터 약 반나절 동안 나는 금호역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주로 정보를 준 것은 이현성이었다.
“현재 금호역에 모여 있는 인원은 총 86명입니다. 아, 독자 씨까지 합치면 이제 87명이겠군요.”
“생각보단 적네요.”
“예. 시나리오가 터질 때 역 인근에 있었던 사람들이랑 열차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만 살아남았습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지만, 아마 모두 첫 번째 시나리오를······.”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안다. 누군가의 생명을 짓밟고 살아남은 자들. 이곳의 모든 인간들은 살인자들이다.
“현재 금호역은 크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하나의 그룹과 나머지 사람들이지만요.”
이현성은 어두운 얼굴로 사람들 쪽을 보았다. 제각기 쇠파이프나 연장으로 무장한 사내들. 척 봐도 주류가 어느 쪽인지는 명확했다.
“나만 믿으라고! 그룹 회장님이 힘쓰고 있으니까 다들 곧 구출될 거야.”
한경 그룹의 막내아들인 한명오 부장.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여러분. 모두 희망을 잃지 마세요. 우린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명오를 품에 안고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는 실세 천인호. 그들이 바로 ‘주류 그룹’일 것이다.
“심심해 엄마······ 폰 게임 하면 안 돼?”
“조금만 참아. 곧 구조대가 올 거야.”
“정부가 움직일 거라니까. 국가라는 게 그리 쉽게 무너지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런 주류 그룹의 보호를 받으며, 어떻게든 삶을 꾸려가고 있는 것이 ‘소외 그룹’으로 통칭되는 나머지 사람들이었다.
사람을 죽인 이들이라기엔 지나치게 의지박약한 모습들. 하지만 살인자도 백 명을 모아 놓으면 강자와 약자가 나뉜다. 어쩌면 저들은 자신들이 살인범이 아니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그렇게 믿는 것이다.
이현성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주류 그룹 쪽을 보며 말했다.
“식량 배분은 주류 그룹에서 결정하고 있습니다. 역내 편의점이나 음식점들은 벌써 털었고······ 당장 먹을 수 있는 식량들은 거의 떨어져 가는 추셉니다.”
“그렇군요.”
“그 때문에 어제부터 주류 그룹에서 몇몇 인원을 차출해 지상으로 식량 탐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저희랑 같이 다니던 희원 씨도 차출 대상이었고요.”
“희원 씨라면······?”
“아, 낮에 독자 씨가 구해오신 여성분의 이름입니다.”
나는 지하철 벤치 위에 누워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밝은 곳에서 보니 그럭저럭 미인상의 얼굴이었다. 볼이 도톰하고 인상이 순해서, 평소에 귀염성 있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으리라.
원숭이 허파 덕분인지 여자의 혈색은 아침보다 많이 밝아져 있었다.
“차출된 인원들 중 낙오된 건 희원 씨 하나 뿐입니까?”
“아닙니다. 사실 아침에 몇 명 더 나갔었는데, 소외 그룹 인원들만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돌아오지 못했다고요?”
“예.”
다시금 침통해지는 이현성의 얼굴. 대충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이현성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실제로 만져 보니 확실히 알겠다. 과연 강철검제. 이 정도면 곧 근력 레벨 10을 넘을 것이다.
“왜, 왜 그러십니까······?”
“이현성 씨 정도면 저쪽에서 러브콜을 받았을 텐데, 용케 가지 않으셨네요.”
“아, 그건.”
이현성의 객관적인 전투력은 방철수 이상이다. 천인호가 노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잘 설명하진 못하겠습니다만,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거창한 도덕이나 윤리 같은 건 잘 모릅니다만······.”
이현성은 민망한 듯 볼을 긁으며 말을 이었다.
“그쪽은 뭔가 ‘옳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옳지 않다······.
별 것 아닌 대답이었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역시 이현성은 이현성이다.
“그 마음 잊지 마세요.”
그래야, 나도 당신을 계속 믿을 수 있을 테니까.
꼬르륵.
어디선가 귀여운 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뒤쪽에서 유상아와 이길영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미새를 기다리는 아기새 같은 얼굴들이라,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저녁 시간이네. 다들 배고프죠? 하나씩 들어요.”
나는 편의점에서 가져온 음식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앗. 정말요? 그래도 돼요?”
“이번에는 공짜지만, 다음부턴 돈 받을 거예요.”
“넷? 어, 얼마나······.”
“다들 코인 있죠? 한 개당 10코인 씩 받을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그, 그런······.”
유상아와 이현성의 얼굴이 일순 당황으로 물들었다.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표정들이다.
“당연한 거죠. 그냥 지금부터 낼게요. 공짜는 필요 없어요.”
놀랍게도 그 말을 한 것은, 여태껏 벤치에 누워 있었던 여자였다. 그새 정신이 든 모양이다.
“정희원이에요. 아침엔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아닙니다.”
그저 귀여운 마스크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유상아 씨, 이현성 씨. 다들 정신 차리세요. 그런 표정 짓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요. 이 식량들, 전부 저 사람이 목숨 걸고 구해온 거예요. 지금 그걸 공짜로 받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망설임 없이 자기 할 말을 내뱉는 얼굴엔 거의 표정이 없었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유상아가 볼을 붉혔다.
“제 생각이 짧았어요, 죄송해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데······ 맞아요. 저도 공짜는 싫어요.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도 싫구요.”
“저도 유상아 씨와 같은 생각입니다. 코인은 지금부터 내겠습니다.”
뜻밖의 반응들이라 나는 조금 놀랐다. 과연, 아포칼립스가 왔다고 해서 모두 같은 종류의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다들 코인 거래법은 아시죠?”
“네. 며칠 전에 배웠어요. 서로 검지를 맞대고, 음, 그리고······.”
“주실 만큼의 코인을 속으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곧 정희원부터 시작해서 유상아와 이현성까지, 물건 하나씩을 집어가는 대가로 10코인을 지불했다.
생각보다 일행들의 저항이 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고작 몇십 코인을 벌겠다고 이런 일을 벌인 건 아니었다.
처음에야 이런 판단이 야속해 보일 수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들도 이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길영’이 당신에게 20코인을 지불하였습니다.]
“응? 넌 10코인을 더 냈는데?”
“낮에 먹은 초코바 값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이길영의 표정은 꽤 의연했다. 어쩌면 새로운 세계에 제일 빨리 적응하는 것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겐 자신이 가진 상식을 깨부수는 과정이 보다 수월할 테니까.
“그럼 독자 씨는 계속 저희와 함께하시는 겁니까?”
“아, 그건······.”
“김독자 씨.”
나를 부른 것은 이현성이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니, 천인호를 위시한 ‘주류 그룹’들이 서 있었다.
그래, 슬슬 올게 왔군.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개중에는 이빨이 죄다 없어진 채 나를 노려보는 방철수도 끼어 있었다. 가늘게 마주 노려봐줬더니 금세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운다. 같잖은 녀석.
“좋죠, 이야기 해봅시다.”
내 말에 천인호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분들은 잠깐 자리를 비워 주시겠습니까? 김독자 씨와 단 둘이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아, 그러시다면······.”
“아뇨, 다들 갈 필요 없습니다. 같이 들으세요.”
내 말에 천인호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물러서려던 이현성들이 엉거주춤 내 곁에 멈춰 섰다.
“흠, 그러신가요?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들을 테면 들으라는 듯한 여유.
천인호는 벤치를 휘휘 닦더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철두파의 사내들이 양쪽에서 나타나 담배를 건네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녀석이다.
“거추장스러운 건 싫어하는 성격이신 것 같으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시죠.”
“우리 그룹에 들어오세요.”
역시나, 예상했던 제안이었다.
“김독자 씨 정도라면 우리 그룹에서도 높은 자리를 줄 수 있어요. 함께 그룹을 이끌어 주셨으면 합니다.”
“왜 하필 나죠?”
“이유는 잘 아실 텐데요?”
천인호는 상처투성이의 철두파들을 흘끗 보며 말했다.
“김독자 씨는 괴물들에게서 사람들을 구한 영웅입니다. 그런 영웅에겐 마땅한 자리가 필요한 법이죠.”
그것 참 흥미로운 발상의 전환이다. 내 존재를 그렇게 이용하겠다 이거지.
“거절한다면요?”
“거절? 재미있군요. 그런 경우는 생각해 보질 않았는데.”
천인호가 담배 연기를 내 쪽으로 훅 뿜으며 웃었다.
“김독자 씨,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당신에겐 그럴 의무가 있어요. 저기 불쌍한 사람들이 안 보이십니까?”
꾀죄죄한 얼굴로 이쪽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배를 곯으며 울먹이는 아이와 지친 노인들.
“달리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모두의 생존을 위해 협력해 달라는 거죠. 김독자 씨는 그럴 힘이 있으시잖습니까?”
“정확히 뭘 바라는 겁니까?”
“히트맨이 될 사람이 필요합니다.”
히트맨?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혼자 식량을 조달하고, 약수 쪽 터널에서 사냥하는 법도 알려 주셨죠. 정확히는 저희가 일방적으로 훔쳐본 겁니다만.”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다.
이건 유중혁의 이야기다.
“그런데 어젯밤 그분이 갑자기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다?”
“철수 씨를 저렇게 만들 정도면 충분히 증명도 된 것 같고요.”
그 말에 이현성과 정희원의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이제야 그들도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눈치 챈 것이다.
“김독자 씨에게 나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영웅이 되고, 우리와 함께 그룹의 지도자가 되는 겁니다. 모두가 당신을 좋아할 거고, 또······.”
“미안하지만 난 누굴 책임 질 그릇이 못됩니다. 당신네 그룹과 함께할 생각도 없고.”
“흐음. 그렇습니까?”
“무엇보다 당신이 그룹을 운영하는 방식은 내게 맞지 않습니다.”
나는 혈색이 건강한 철두파의 대원들과, 안색이 나쁜 소외 그룹의 일원들을 일별했다. 특히 정희원은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보듯 천인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별 수 없군요. 하지만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하하, 그건 두고 봐야 알겠죠.”
천인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철두파의 인원들이 물러서자,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그룹원들이 몰려왔다. 소외 그룹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나를 붙들고 언성을 높였다.
“이봐요, 소문이 진짭니까?”
“식량을 독점한다는 게 정말이에요?”
“모두가 나눠도 모자랄 판에 지들만 먹고 살겠다고?”
“다 같이 구해온 거라며! 그걸 니들만 가지는 게 어디 있어!”
“인호 씨에게 식량을 맡겨라! 그리고 공평히 분배를 받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만했다. 사람들의 뒤쪽에서 빙긋 웃고 있는 천인호의 면상이 보였다. 그의 입술이 말하고 있었다.
‘선택하시죠.’
식량을 나눠 주고 영웅이 될 것이냐.
아니면 홀로 식량을 독점하고 악당이 될 것이냐.
영웅이 되길 선택한다면 나는 천인호의 계략대로 놀아나게 될 것이다. 식량을 나눠줬으니 그룹원들과 함께 식량 사냥에 나서야만 할 테고, 언젠가는 뒤통수를 맞게 될 것이다.
반면 식량을 독점한다면, 그룹 내에서 순식간에 고립되어 혼자가 되겠지.
[소수의 성좌들이 눈을 반짝입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콧김을 뿜습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 천인호가 나섰다.
“아아, 여러분. 진정하세요.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김독자 씨는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얼씨구. 바람잡이까지?
“김독자 씨는 저희와 같이 활동하기로 하셨습니다. 오늘 가져온 식량은 당연히 주류 그룹에 맡겨서 공평히 나눌 것이고, 앞으로도 여러분들을 위해 함께 일할 거라고 약속을―”
당연히 내가 그쪽을 택할 거라 믿는 말투. 더 이상은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그만.”
나는 잠시 골몰했다.
유중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 그런가.
지금 이 곳에 그 녀석이 없다는 것이 그에 대한 답이겠지.
하지만 나는 유중혁이 아니다.
“물론, 식량은 나눠줄 겁니다.”
내 말에 천인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하지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아는 법이다.
“단, 공짜는 아닙니다.”
유중혁처럼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앞으로 나아가진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두를 책임지지도 않을 것이다.
음식은 주되, 공짜는 아니다.
사람들은 잠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자, 잠깐! 공짜가 아니라니?”
“쉽게 말씀 드리죠. 저는 식량을 독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천인호 씨네 그룹에 식량을 맡기지도 않을 겁니다. 저는 유니셰프도 아니고, 저 사람들을 믿지도 않거든요.”
나는 씩 웃으며 천인호 쪽을 바라보았다.
“저는 여러분과 거래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정당한 가격을 받고, 음식을 팔길 원합니다.”
“파, 판다고요?”
“그게 무슨······!”
“어, 얼마에······ 돈이면 됩니까?”
멀리서, 천인호의 안색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를 향해 마주 웃어주며 말을 이었다.
“아뇨, 저는 코인만 받습니다.”
*
그리고 잠시 후, 주변에는 나와 인연이 있는 소외 그룹 사람들만이 남았다.
“저······ 독자 씨. 이거 괜찮은 선택이었을까요?”
“쳇,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독자 씨, 잘 말했어요. 내가 속이 다 시원하더라.”
이현성의 염려에 정희원이 대거리를 했다.
내가 ‘거래 선언’을 한 후 많은 시민들은 내게서 등을 돌렸다. 아마 다들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저도 희원 씨 말에 동의해요. 이곳 사람들은 ‘주류 그룹’에 너무 길들여져 있어요.”
“맞아. 개새끼들······ 지금 금호역은 전부 그놈들 손바닥 안에 있어요. 사람들은 무슨 가축이라도 된 것처럼 주는 대로 받아 처먹고, 가끔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듯 정찰대에 동원된다고요. 오늘 아침에 내가 그랬듯이.”
정희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실, 그동안 식량을 진짜로 독점해온 것은 내가 아니라 ‘주류 그룹’이었다.
그들은 ‘정당한 배분’을 핑계로 식량을 독점해왔고, 그것을 먹이 삼아 사람들을 길들였다.
인간은 누군가가 자신을 보호해준다고 믿을 때 가장 나약해진다.
일방적인 관계에서 세워진 권위에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의존하고 복종하기 시작한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오늘 독자 씨 선언이 굉장히 의미 있었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뭔가를 할 의지를 가져야 해요. 그렇지만······.”
이현성의 말에 모두가 식량 쪽을 바라보았다.
“하나도 팔리질 않았네요. 개당 50코인이라니, 가격을 너무 비싸게 매기신 건 아닐까요? 그냥 저희한테 파셨던 것처럼 10코인에 주시는 게 어떠실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흘끔흘끔 주류 그룹의 눈치만 볼 뿐, 이쪽으로 올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죠.”
이윽고 밤이 찾아왔다.
지상에서 거대 괴수들의 발걸음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고, 악몽을 꾸는 사람들이 종종 잠꼬대를 했다. 이길영과 유상아가 가장 먼저 잠에 들었고, 정희원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독자 씨도 잠시 주무시죠. 제가 불침번을 서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현성 씨 먼저 주무세요.”
“하지만 피곤하실 텐데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요?”
나는 이현성의 뒤편을 가리켰다. 놀랍게도 그곳에 사람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저······ 식량 아직 파십니까?”
마침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