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17화
나는 가끔 생각했다.
왜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는 ‘뻔한 악당’이 등장하는가?
그런 상황에서까지 강간이나 절도 같은 범죄가 무분별하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작가들의 게으름이 아닐까.
어쩌면 진짜 ‘멸망’이 닥친다면, 인간들은 생각보다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을까.
“안 나갈 모양이네. 야, 가서 죽여!”
그 대답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눈치를 보며 슬글슬금 다가오는 사내들과, 그 사내들의 뒤에서 감상이라도 하듯 이쪽을 보는 남자.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정당한 심판을 기대합니다.]
새삼 깨닫는다.
인간의 상상력은 진부하고, 실제의 인간은 그 상상보다도 더 진부하다는 것을.
휘이익!
쇠파이프의 궤적이 어설프게 허공을 스쳤다. 살의가 느껴지는 일격은 아니었다. 사실 맞아도 거의 아프지 않았겠지만.
“도, 도망가지 않으면 진짜로 죽는다. 꺼져!”
포위하듯 나를 둘러 싼 네 명의 사내. 떨고 있는 녀석도 있었지만, 다들 아까 보다는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숫자가 많아졌기 때문이겠지.
“뭐해 자식들아!”
우와아아! 하는 고함과 함께 사내 하나가 달려들었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무방비한 자세였다. 나는 가시를 움직였다.
푸욱!
“아아아악! 내 다리! 내 다리!”
“이 개새끼가!”
“다 같이 쳐!”
흥분한 사내들이 연달아 달려들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녀석들의 근력 레벨은 5를 겨우 상회하는 수준이다. 나는 쏟아지는 공격을 죄다 두들겨 맞으며 묵묵히 가시를 찔렀다.
탕! 까앙!
푸욱! 푸욱!
연달아 허벅지가 꿰뚫린 사내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죽이진 않았다. 시나리오 클리어 조건은 어디까지나 ‘무력화’라고 했으니까.
[절대선(絕對善) 계통의 성좌들이 당신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인간성을 비웃습니다.]
[성좌들이 100코인을 후원하였습니다.]
살인귀가 되면 잠깐 성좌들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그저 잠깐일 뿐이다. 자극의 역치를 한 번에 높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지 않다.
[서브 시나리오 종료까지 3분 남았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2분.
타임어택은 시간 계산이 중요하지.
“이, 이 자식 뭐야 대체! 왜 안 죽어?”
그쯤 되자, 뒤쪽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리더가 나섰다.
“꽤 맷집이 있는 놈이었군. 다들 물러서. 내가 상대한다.”
“철수 형님! 저놈 아무래도 배후성이 있는 놈인 것 같습니다!”
“잘 됐지. 딱 봐도 코인깨나 가진 것 같은데.”
검은 광택으로 빛나는 너클. 평범한 아이언 너클이 아니었다.
배후성의 후원을 받은 녀석인가?
우드득.
너클을 낀 남자의 손에서 뼈마디가 이완되는 소리가 났다.
[등장인물 ‘방철수’가 ‘위협하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종합 능력치의 격차가 심해 ‘위협하기’가 듣지 않습니다.]
“호, 제법 강단 있는 놈이네? 전혀 쫄질 않잖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주먹이 움직였다. 정확히 내 턱을 노린 공격. 나는 빠르게 두어 걸음을 물러났다. 녀석이 히죽 미소를 지었다.
“제법인데? 운동 좀 했나봐?”
별다른 스텝 스킬이 없어도 민첩 레벨이 10을 넘으면 이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아이템을 사고 남은 코인을 대부분 능력치에 투자했기에, 지금 내 체근민 레벨합은 도합 33에 달했다.
어디, 이 녀석은 얼마나 되나 볼까?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을 발동합니다!]
<인물 정보>
이름 : 방철수
나이 : 34세
배후성(背後星) : 잡배의 군주
전용 특성 : 돌격대장 (일반)
전용 스킬 : [개싸움 Lv.2], [허세 Lv.2]
성흔 : [위협하기 Lv.1]
종합 능력치 : [체력Lv.6], [근력Lv.7], [민첩Lv.6], [마력Lv.2]
종합 평가 : 운 좋게 배후성을 손에 넣은 흔한 잡배입니다. 실제 전투력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 이제야 기억이 났다.
“철두파의 방철수.”
“뭐야, 날 알고 있냐?”
“글쎄.”
작품 초반에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진 놈들이라 기억이 희미했지만, 분명 ‘방철수’라는 등장인물이 있었다.
금호역 ‘그룹’의 인간들 중 제일 얼간이 같은 놈이었지.
내가 알기로 이놈들은 본래 유중혁에 의해 맞아 죽었어야 하는데, 어째서 아직도 살아있는 것일까.
“오호라, 혹시 네놈도 ‘그쪽’ 부류냐? 너도 사람깨나 죽였나봐. 그렇지? 네겐 왠지 동류의 느낌이 나.”
[등장인물 ‘방철수’가 ‘허세’를 발동하였습니다.]
허세. 한가락 하는 깡패 새끼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스킬. 정신력이 약한 상대방의 전투력을 위축시킬 수 있는 좋은 디버프지만, 이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제 4의 벽’이 등장인물 ‘방철수’의 허세를 차단합니다.]
[등장인물 ‘방철수’의 자신감이 급감합니다.]
“무시하는 거냐? 진짜로 뒈지고 싶은가 보군.”
그레코로만 레슬링 자세를 취한 방철수가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듯 위협적인 기세를 풍겼다. 하지만 저것도 다 허세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놈은 [레슬링]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주접 그만 떨고 덤벼.”
“개자식!”
녀석이 가진 핵심 스킬은 2레벨의 [개싸움].
난전으로만 가지 않으면 녀석의 전투력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죽어!”
민첩 차이가 많이 나서 그런지, 놈의 공격은 좀처럼 적중하지 않았다.
나는 약간 동정하듯 놈을 바라보았다.
모든 성좌들이 자신의 화신을 시나리오의 ‘주인공’으로 키울 욕망을 가진 것은 아니다.
가령, 녀석의 성좌인 ‘잡배의 군주’는 자신의 화신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냥 적당히 굴려서 놀만한 멍청이를 화신으로 삼아, 그 화신이 다른 화신들에게 작살나는 걸 즐기는 마조히스트.
그게 바로 ‘잡배의 군주’였다.
[성좌, ‘잡배의 군주’가 즐거워합니다.]
[성좌, ‘잡배의 군주’가 당신에게 100코인을 후원하였습니다.]
심지어 자기 화신이 박살나게 생겼는데 적을 응원하는 놈이다.
본래였다면 타임어택을 생각해 한 방에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서브 시나리오 종료까지 2분 남았습니다.]
그럼 남은 시간을 최대한 유용하게 활용해볼까.
“쥐새끼 같은 놈!”
말하는 대사까지 전부 ‘잡배의 군주’ 스타일이다. 불쌍하게도.
퍼억!
“하하! 맞았다!”
운 좋게 녀석의 공격이 적중했지만, 당연하게도 데미지는 거의 없었다. 그저 맞은 곳이 살짝 아릴 뿐.
“어떻게!”
어떻게긴. 지금 내 체력 레벨은 12다. 저놈의 근력 레벨은 고작 7이고. 종합 능력치에서 앞자리 숫자의 차이는 커다란 전투력 격차를 낳는다.
“이제 내 차례지?”
얼이 빠져 있는 방철수의 뺨을 착착 건드려 준 나는, 있는 힘껏 놈의 얼굴을 후려쳤다. 단번에 이빨 두어 개가 날아간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이어서 망설이지 않고, 가시를 들어 녀석의 팔을 정확히 꿰뚫었다.
“으아아악!”
나는 놈의 한쪽 팔을 가시로 찍어 벽에 고정한 후, 무차별적인 폭행을 시작했다. 등허리, 허벅지, 대퇴부와 옆구리를 비롯하여,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한 번에 기절하지 않을 부위만을 골라서.
[성좌, ‘잡배의 군주’가 즐거워합니다.]
[성좌, ‘잡배의 군주’가 서브 시나리오 시간 연장을 요청했습니다.]
[서브 시나리오가 1분 연장됩니다.]
여자가 다친 부위도 참고했다.
“커헉! 크헉! 크허헉!”
피가 튀고, 살점이 튀었다. 부서진 이빨이 바닥을 굴렀고, 부러진 뼈마디가 기형적으로 휘었다. 그래도 나는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 그만해! 제발! 형님을 놔줘!”
곁에 있던 사내들이 패닉에 빠져서 외쳤다. 나는 그런 사내들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그리고 반쯤 옷이 벗겨진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보았다.
인간은 약하다.
그처럼 약한 인간이, 어째서 이토록 잔혹한 일을 벌일 수 있는 걸까. 단지 세계가 멸망했다는 핑계 하나로. 다른 이들을 죽이고, 여자를 강간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본능 때문에?
더 강한 폭력 앞에서 두려움으로 얼룩진 방철수의 눈을 보며,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그랬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렇기에 대답을 기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발길질을 가하려는 순간 방철수가 눈을 부릅떴다.
“씨바알······ 그냥 죽여 이 개새끼야.”
그 눈을 보는 순간, 나는 그가 자신의 방식으로 내 질문에 대답했다는 것을 알았다. 생에 대한 어떤 미련도 보이지 않는 눈빛. 그런가. 본능 때문이 아니었나.
잦아드는 목소리로, 방철수는 지껄였다.
“개 같은, 개 같은 세상······.”
이 녀석은 이 세계가 멸망하기 훨씬 전부터, 줄곧 절망해 있던 종류의 인간인 것이다. 마치 나처럼.
[서브 시나리오 종료까지 10초 남았습니다.]
나는 더 지체하지 않고 녀석의 목에 강한 발차기를 먹였다.
흐끅, 숨을 토해낸 방철수가 결국 기절했다.
[서브 시나리오의 클리어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3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이만하면 녀석도 만족했겠지.
[성좌, ‘잡배의 군주’가 만족하며 100코인을 추가로 후원하였습니다.]
바닥을 기듯 사내들이 하나 둘씩 다가왔다.
“어, 어떻게 이런 잔인한······.”
그들은 넝마 짝이 된 방철수를 살피더니, 입도 벙긋 못하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처분을 기다리는 도살장의 개들처럼.
나는 쓰러진 여자를 들쳐 업고, 편의점 봉투를 쥐었다.
어찌됐든 세상은 멸망했고, 나는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그룹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
본래 금호역은 유중혁에 의해 정리가 된 후 지역 거점으로 성장하는 곳이었다.
회귀 1회차때만 해도 유중혁은 금호역 그룹과 함께 두 번째 메인 시나리오를 돌파했고, 덕분에 그룹의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서 제각기 한 자리씩을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1회차의 얘기고, 3회차 회귀의 유중혁은 다르다.
3회차의 유중혁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괴물로 태어났다.
“······그렇다곤 해도 기본적인 정리는 하고 가는 녀석이었는데.”
“예?”
나를 안내하던 사내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혼잣말입니다. 버릇이거든요.”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혼잣말을 좋아합니다.]
“예에······ 아무튼, 이쪽입니다.”
서로를 부축하던 철두파의 사내들이 멈춰 섰다. 불이 꺼진 플랫폼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계단참을 내려가자마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두파다! 사람이 다쳤어!”
몇몇 사람들이 달려와 방철수 일행을 부축했다. 생각보다 체계가 잡혀 있는지,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맙소사. 독자 씨! 김독자 씨!”
다행히 별 일 없었던 모양이다.
“유상아 씨.”
“다행이에요.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의 유상아가 눈앞에 있었다. 놀란 유상아에게 나는 어색하게 악수를 청했다.
나흘 간 꽤나 고초를 겪었는지 유상아의 손등에는 자잘한 생채기들이 있었다.
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가 내 다리에 들러붙은 것은 그때였다.
“살아 있었구나.”
이길영. 나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 있었냐?”
이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를 얼마나 곯았는지 뺨이 홀쭉했다. 나는 봉지에서 초코바 하나를 꺼내 이길영의 손에 쥐어 주었다.
“역시 살아 계셨군요, 독자 씨. 하아······.”
마지막으로 나를 찾은 것은 이현성이었다. 그간 약간의 성장을 한 모양인지 상반신 근육이 더 탄탄해져 있었다. 아마 이현성이 이 둘을 지켜준 것이리라.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독자 씨를 두고 가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휴, 유중혁 씨 말이 맞아서 천만 다행입니다.”
······유중혁? 그 이름이 왜 거기서 나오지?
이현성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그게, 유중혁 씨가 김독자 씨는 아마 살아있을 거라고······.”
“······유중혁은 지금 어디 있죠?”
“그게, 지금은 여기에 없습니다.”
없다고?
“유중혁 씨는 어제 역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이현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역시 그렇게 된 건가.
하여간 급한 녀석이다.
“그러고 보니 없는 사람이 하나 더 있군요.”
“아, 부장님은.”
유상아의 말은 갑작스레 난입한 사내들 때문에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잘 된 일이었다.
“다들 비켜!”
설명을 듣지 않아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제각기 망치나 파이프 따위의 연장으로 무장한 서너 명의 사내들이 시위라도 하듯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익숙한 얼굴.
“너, 너는······!”
짝수 다리에서 나를 버리고 튀었던 한명오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역시 한명오는 저 그룹에 붙은 모양이다.
“저, 저놈을 내보내. 저거 아주 악독한 놈이야! 여기 있으면 안 될 놈이라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가 복수라도 할 거라 생각했는지 한명오가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내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한명오를 중심에 두고 있는데, 한명오의 말은 듣지 않는다?
“하하, 한 형. 다들 사이좋게 지내야지 왜 그러십니까.”
“아, 그, 그게.”
“그쪽이 오늘 새로 오신 분이시군요.”
사내들이 양 옆으로 갈라지며 길이 생겼다.
무리 속에서 나타난 호리호리한 체형의 사내.
눈빛만 봐도 느낌이 온다.
역시, 배후성을 가진 놈이다.
“반갑습니다. 성함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김독자입니다.”
“김독자 씨. 그렇군요. 저는 천인호라고 합니다.”
천인호? 뭔가 기억이 날 것 같은 이름인데.
나는 가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보아하니 철두파 녀석들은 이놈의 슬하에 있는 모양.
놈들을 반쯤 조져놨으니 이 녀석이 내게 시비를 걸어올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같이 오신 분들께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괴물들과 싸워 저희 그룹원들을 구해 주셨다고요.”
······뭐?
“여러분, 다들 모여주세요! 여기 용감한 새 그룹원이 왔습니다!”
천인호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 씩 이쪽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한명오의 카리스마로 이 정도 세력 규합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이 무리의 진짜 리더는 이 녀석이다.
“우왓! 먹을 거잖아!”
허기진 사람들의 시선이 편의점 봉투에 꽂혔다. 그러자 천인호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우릴 위해 직접 구해 오셨다는군요. 보기 드문 호인이십니다.”
그 말에 구원자라도 보는 듯한 시선들이 내게 꽂혔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도, 다리를 다친 노인도, 모두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천인호······ 기억날 것도 같다.
그래, 금호역 그룹에는 이놈이 있었지.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흥분합니다.]
멸망한 세계에서 진짜 위험한 놈은 방철수 같은 자들이 아니다. 절망 속에서 날뛰는 인간들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진짜 위험한 놈들은 타인의 절망을 권력의 비료로 사용하는 놈들이다. 바로 이 녀석처럼.
“금호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김독자 씨.”
시선이 마주친 천인호의 눈이 깊이 웃고 있었다. 녀석이 내미는 악수를 마주 받으며, 나는 속으로 웃었다.
천인호는 모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