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152화 [암흑성]의 1층에 진입한 것도 벌써 닷새 째. 이지혜는 다친 이길영을 업은 채 신유승과 함께 암흑성의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5급 악마종, ‘어둠 추적자’가 당신을 쫓고 있습니다!] “뛰어!” 어둠 추적자가 내뻗는 낫을 피하며, 이지혜는 [귀살]을 불태웠다. 허공에 흩뿌려진 청염의 마력이 불타오르는 동안, 이지혜는 전력을 다해 꼬마들을 데리고 달렸다. “젠장, 쟤네는 [길들이기] 안 먹혀?” “······전 괴수종밖에 못 길들여요.” “망할!”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이지혜는 줄행랑을 치고 있었다. 따라오는 악마종의 숫자는 얼추 열을 넘었다. 5급 악마종은 다른 괴수종들보다 강하다. 그녀의 실력으로는 한 마리도 버거운데, 심지어 지금은 성흔도 제대로 쓸 수 없는 환경이었다. ‘들어오는 게 아니었어.’ 김독자가 죽은 뒤, 일행들의 사기는 완전히 흐트러졌다. 구심점을 잃자 일행들은 개별 행동을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유중혁까지 행방이 묘연해진 와중에 아홉 번째 시나리오인 [암흑성]이 등장했다. 처음 시나리오가 시작 되었을 때, 도깨비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시나리오는······. 음. 하하, 아마 여러분은 실패할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이지혜의 반응은 남달랐다. 실패할 거라고? 언제나 시나리오는 불가능해 보였고, 우리는 늘 그걸 이겨왔다. 그러니,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장 가요. 저 새끼들 다 부숴버리자고요!’ 왜 그렇게 성급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죄책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괴물들을 베고,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 붙여야만 지울 수 있을 것 같은,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어쩌면, 이지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희원도, 이현성도, 다른 모든 일행들도 비슷한 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그 비감을 떨쳐내기 위해 시나리오 지역에 성급하게 발을 내딛었다. 누가 뭐래도 그들은 서울 시의 랭커들이었고, 가장 강한 화신들이었다. 그러나 그 결정이 실수였다는 것을,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시발, 말도 안돼······ 말도 안 된다고.’ [암흑성]에서 이지혜의 힘은 통하지 않았다. 레벨 7을 돌파한 [검도]의 궤적은 좀처럼 먹히지 않았고, [귀살]의 힘은 오히려 악마들을 자극할 뿐이었다. 그녀의 검은, 오래전에 부러졌다. “지혜 언니!” 신유승의 외침에 이지혜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어둠 추적자]의 칼날을 피했다. 그녀는 주변의 화신들이 떨어트린 병장기를 아무거나 주워 스킬을 남발했다. [검도]를 쓰고, [귀신 걸음걸이]를 쓰고. “언니! 뒤쪽!” 츠츠츠츠츳! 허공에 비산한 어둠 추적자의 암액(暗液). 퍼더덕! 끄르르르륵! 어디선가 날아온 이길영의 작은 곤충들이 이지혜를 대신해 그 액체를 맞았다. 검은 액체에 빠져 허덕이던 곤충들은 기괴한 세포 변형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폭발했다. 곤충이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이지혜는 운 좋게 [어둠 추적자]에게 제대로 된 몇 방을 먹일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까가각! 스가가각! 부러진 병장기와 함께 [어둠 추적자] 하나의 목이 달아났다. 그러나 아직도 뒤쪽에는 아홉 마리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어둠 추적자]는 장난일 뿐. 그보다 무서운 것은, [어둠 추적자]들의 건너편에 있는 녀석이었다. [악마 자작 노소로크] 인간의 몸에 거대한 코뿔소 머리를 얹은 듯한 외양. 그 덩치가 다가올 때마다, 이지혜는 전신의 솜털이 떨려왔다. 저런 괴물은 처음 봤다. 개별적인 강함으로 따지자면 ‘범람의 재앙’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범람의 재앙’이 자신의 힘을 억제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저 악마 자작이란 놈은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게다가 이지혜 본인이 그때보다 강해진 것이 지금은 독이 되었다. 상대방의 강함을 알 수 있게 된 것이, 그녀의 두려움을 부추긴 것이다. 이지혜는 칼날을 끌어 당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여기서······. [암흑성 1층에 ‘고대 마력 결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언니, 저기로 가요!” 복도의 끄트머리에 형성된 파란색 방. 그곳은 이 [암흑성]에서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지혜와 아이들은 전력을 다해 방으로 달려갔고, 간신히 [어둠 추적자]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 평도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어떻게 세 사람이 간신히 몸을 피할 공간은 되었다. [‘고대 마력 결계’에 진입하였습니다. 30분간 특수한 결계가 활성화됩니다.] 하루에 세 번만 활성화 되는 이 안전 지대가 없었더라면, 이지혜와 아이들은 진즉에 목숨이 끊어졌을지도 모른다. 츠츠츠츠츳! 푸르스름한 결계에 닿은 [어둠 추적자]들이 신음하며 물러났다. 그들은 몇 번인가 결계 내부에 진입을 시도하더니, 이내 포기한 듯 물러났다. 그러나 한 녀석만큼은 달랐다. “저 새낀 왜 안가?” 코뿔소를 닮은 악마. [악마 자작 노소로크]는, 마치 이 결계의 원리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그들에게서 몇 미터 떨어진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릴 기다리나봐요.” 악마의 긴 혀가 입술을 쓸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는 미식가처럼, 녀석은 이지혜와 신유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소름끼치는 시선에 신유승이 어깨를 떨며 물었다. “이제 어떡하죠? 더 이상 불러올 괴수종도 없는데.” “아직 30분 있어. 생각해 보자.” 마침 결계가 형성된 것이 성채의 가장자리였기 때문에, 이지혜는 성채의 창문으로 바깥의 정경을 볼 수 있었다. 특수한 결계가 처져 있어서 창을 통해 나갈 수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바깥의 모습은 보인다. 갸아아아아! 이지혜와 일행들이 열어 젖힌 [암흑성]의 입구에서 악마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은 하급 악마들이었지만, 평범한 화신들에겐 그런 악마종도 벅찼다. [암흑성]의 악마들은 서울의 화신들을 먹어치웠고, 감염시켰다. 그르르르······. 덕분에, 성채 바깥으로 보이는 악마종들 중 다수는 본래 그녀가 알던 사람들이었다. 민지원의 화랑들. 니르바나의 구원교도들. 그녀가 스쳐갔던 사람들이, 모두 마인이 되어 사람을 뜯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모두 그녀의 성급함이 낳은 결과였다. 만약, 만약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말했잖아요? 지금까지와는 난이도의 차원이 다르다고.] 허공에서 들려오는 도깨비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지혜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젠장! 젠장! 멍청한 년!’ 이제와 자신의 성급함을 탓해 보았자 늦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온 일행들은 암흑성의 미로 속에서 뿔뿔이 흩어졌고, 그나마 만난 것이 이 아이들이었다. 다른 일행들은 어떻게 됐을까. 모른다. 어쩌면 모두 죽었을지도. ‘사부라도 있다면. 아니······ 사부가 아니라······.’ “독자형이 있었다면······.” 뒤쪽에서 들려온 이길영의 목소리에, 이지혜가 인상을 찌푸렸다. “쓸데 없는 소리 하지마, 멍청아. 다쳤으면 잠이나 자라고.” 뒤통수를 얻어 맞은 이길영은 다시 잠잠해졌지만, 안타깝게도 입은 하나 더 있었다. “아저씨가 죽었을 리 없어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이 녀석들은 왜 자꾸 죽은 사람 얘길 꺼내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 뒈졌어. 그런 못 생긴 얼굴은 빨리 잊어버려.” 그런데 홧김에 쏟아낸 그 말에 신유승이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근데 전 사실 이해가 안 가요. 다들 아저씨 보고 못 생겼다고 하는데, 대체 어디가 못 생겼다는 거예요?”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받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다 같이 ‘김독자는 못 생겼다’를 구호처럼 밀다 보니(심지어 가끔 코인을 주는 성좌도 있었다) 김독자의 ‘못 생김’에 딱히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눈이나 코의 모양이······ 전체의 조화랄까······.” 말을 할수록 이지혜는 혼란에 휩싸이는 느낌이었다. 따지고 보니 김독자의 어디가 못 생겼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심지어는 김독자의 얼굴도 선명하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마치 뿌연 안개 속에 가려진 것처럼······. 혹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얼굴처럼······. 왜지? 왜······ 얼굴이 잘 떠오르지가 않지? “아, 아무튼 내 취향은 아냐.” “······그런 것 치고는 장례식 때 엄청 울던데요.” “당연히 연기지 바보야. 그때 성좌들이 코인 엄청 줬다고.” [몇몇 성좌들이 이지혜에게 정말 연기였냐고 묻습니다.] 이지혜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멀었네요 언니는. 사람은 얼굴이 다가 아니에요.” “요게 진짜······.” 이지혜는 신유승의 정수리를 잠시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였다. 안다고 해서 모든 걸 인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이지혜는, 아직 그런 나이였다. 김독자에게 많은 빚을 졌고. 그로 인해 살아남았다. 안다. 잘 알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가, 빚을 갚고 생색을 내고 싶었다. 사실 나도······ 꽤 도움이 되는 사람이지 않냐고. 하지만 이제 그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고대 마력 결계’의 지속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눈앞의 결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한층 짙어진 악마종의 미소. 이지혜는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유승아. 길영이 업을 수 있지? 내가 신호하면 데리고 도망가.” “네?” “내 말 들어.” 살기 위해 친구를 죽인 자에게 누군가를 구하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렇게 살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죽은 자의 가르침이었으니까. “빨리! 달아나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나 뒈지기 전에!” “······알겠어요. 조금만 참아요 언니.” 아마, 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는 떠나지 않을 테니까. 결계가 사라진 순간, 이지혜의 몸이 앞으로 돌진했다. 놀란 악마종이 움찔했지만 그것 뿐이었다. 금세 그녀의 주변을 포위한 악마종들이 그녀의 몸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새하얀 허벅지와 팔뚝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푸슛, 파가각! 만약 근처에 호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하다 못해 며칠 전부터 끊어진 [배후성]과의 연락이라도 닿는다면. “······죽고 싶지 않아.” 전력을 다한 [검도]의 궤적이 조금씩 흐트러졌다. 악마종의 미소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뒤통수에 커다란 충격이 일더니, 시야가 한순간 크게 흔들렸다. 이지혜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도 살고 싶다고······.” 왠지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어땠더라. 콰아아아아! 앞쪽에서 빛이 쏟아진 것은 그때였다. 어둠 추적자들의 몸이 두쪽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마치 메시아가 강림한 듯. 파도가 두쪽으로 갈라지듯이. 콰콰콰콰콰! 이지혜는 홀린 듯 그 정경을 바라보았다. 당황한 악마 자작 노소로크가 고개를 돌린 순간, 노소로크의 머리에서 강력한 전류가 튀며 폭발했다. 황홀한 전류가 빚어낸 빛의 길 위에 사내가 있었다. 아, 아······. 이지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는, 그녀가 얼굴을 기억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얼굴을 덮고 있던 안개가 사라졌다. 그는 분노하며, 악귀처럼 악마를 쥐어 뜯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이번에는 그의 ‘얼굴’이 확실히 보였다는 것이다. ······아저씨, 저런 얼굴이었던가? [아직 이름이 없는 한 성좌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 메시지를 들으며, 피식 웃은 이지혜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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