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143화
우리 일행은 약속 시간 30분 정도를 남기고 광화문 인근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아까와 같은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당신은 현재 서울시 최강의 화신입니다.]
젠장, 그만 알려줘도 이제 잘 알겠다고 말하고 싶다.
솔직히 들을 때마다 당황스러운 감이 있었다.
지금의 유중혁은 내가 전력을 다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고, 니르바나도 상성을 이용해 겨우 꺾는 수준인데, 대체 왜 내가 ‘최강’이라는 걸까.
그런데, ‘멸살법’의 51회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스타 스트림>에서 강함과 약함은 힘의 세기나 기술의 숙련도와는 무관하다. 모든 강약의 기준은 ‘이야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니르바나가 했던 말이기도 했다.
강함과 약함은 결국 이야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
“독자 씨!”
멀리서 이현성과 정희원이 서로를 부축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험한 일을 함께 이겨냈기 때문인지, 부축한 어깨에서 예전보다 서로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느껴지는 듯했다. 정희원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선전포고 잘 봤어요. 아주 화려하던데요.”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난 괜찮아요. 현성 씨가 좀 다치긴 했는데······.”
“전 완전 괜찮습니다!”
“······하여간 허세는.”
정희원의 말에 이현성이 끄떡없다는 듯 자기 가슴을 탕탕 쳤다.
과장된 느낌이긴 했지만 정말 ‘허세’라고 보긴 어려웠다.
‘강철의 주인’의 설화를 본격적으로 계승하기 시작한 이현성에게서, 벌써부터 이야기의 격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아마 이제 이현성은 서울 돔 내에서 5위 안에 들만한 화신이 되었을 것이다.
설화를 계승함으로써 강해진다.
지금의 이현성은 ‘강함은 곧 이야기’라는 설명 그 자체였다.
이 세계에서 ‘강함’을 결정하는 것은 이야기의 ‘격’.
아마 내가 ‘최강의 화신’에 랭크 된 것은 이번 생에 내가 쌓은 설화들이 죄다 불가능한 수준의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회귀자 유중혁이나 환생자 니르바나가 쌓아온 이야기들 역시 만만치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지난 생의 것이었다.
멀리서 광화문의 정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첫 번째 웨이브가 몰려온 뒤 벌써 세 시간 하고도 사십분이 경과했다. 네 시간마다 한 번씩 괴수들이 몰려올 테니, 곧 두 번째 웨이브가 올 시간이었다.
“곧 5급 괴수종이 몰려올 텐데, 다른 화신들은 괜찮을까요?”
“여기라면 괜찮을 겁니다.”
내가 주변을 돌아보자, 정희원과 일행들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10분 전보다 인파가 많아졌다 싶더니, 사람들의 밀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이건······.”
그제야 정희원도 깨달은 듯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
서울의 모든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구원교주를 물리치자!”
“놈을 죽여야 이 시나리오가 끝난다!”
병장기를 든 사람들이 제각기 구호를 외쳐댔다.
자유나 평등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거대한 개념을 말하기에 지금의 인간은 너무나 초라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생존을 위해 모였다.
“패왕을 따르라!”
“구원교를 부수자!”
이현성이 복잡한 눈으로 그 정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독자 씨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군요.”
“예상은 했습니다.”
아무리 신규 화신들이 많이 들어왔다 해도, 또 아무리 구원교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도 여전히 서울 인구의 대다수는 ‘기존 화신’들이다.
그들에겐 단지, 파벌을 넘어 모일 구심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밀려오는 인파를 보며, 공필두가 탄식했다.
“······한국이 망하긴 망했구만. 빌어먹을. 내 땅 돌려줄 국회의원 놈들은 죄다 죽어버린 건가?”
“아저씬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와?”
이지혜가 혀를 차자, 공필두가 입술을 비죽였다.
“······유상아는 안 구할 거냐? 듣자하니 구원교주한테 붙잡혀 있다는 것 같은데.”
“구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서둘러서는 안 된다. 아무리 니르바나라고 해도, 성운 ‘올림포스’의 단말을 함부로 건드리지는 않을 테니까.
성운 간의 전쟁이라도 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지.
허공에서 반짝이는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광화문 전체가 화신들의 열기로 뜨거워질 무렵이었다.
+
<힌트 2>
현재 서울 돔에서 아홉 번째로 강한 화신은 ‘곤충소년 이길영’입니다.
+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이길영이 눈을 반짝였다.
“형, 제가 9위래요!”
“······말도 안 돼. 내가 저 꼬맹이 보다 약하다고?”
“다들 그만 떠들고, 돌입 준비해.”
일행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힌트가 발표 되었다는 건, 곧 두 번째 웨이브가 시작되다는 이야기.
서울시의 외곽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괴수들의 스산한 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5급종부터는 경우에 따라 ‘소재앙’ 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괴물들이 등장한다. 즉, 평범한 화신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된다는 것. 다행히 서울시의 화신들이 광화문 인근으로 모두 모였으니, 영 불가능한 싸움은 아니었다. 지키는 지역이 좁을수록, 화신들의 수비는 더 용이해진다.
“네 시간 안에 결착을 지어야 합니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4급 괴수종이 나오기 시작해요. 그렇게 되면 끝장입니다.”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소재앙’만해도 무서운데, 그 윗선의 괴수들이 난립하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공필두와 이현성에게 화신들을 이끌어 수비망을 형성해줄 것을 부탁했다.
“맡겨주십시오.”
“흥, 대신 시나리오가 끝나고 나면 광화문은 내 땅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러든가. 맘대로 해.”
안타깝게도 이번 시나리오가 끝나고 나면, 공필두가 원하는 ‘서울의 노른자위’는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나머지 일행들을 이끌고 광화문의 중심으로 달려갔다.
광화문의 중심지에 본래는 존재하지 않던 대형 돔이 설치되어 있었다.
원래 있던 건축물은 아니었다.
광화문에 스타디움 따윈 없으니까.
즉, 저건 구원교가 임시로 증축한 공간인 셈이었다.
돔의 내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였는데, 자세히 보니 꼭대기에 한 인형(人形)이 올라 한창 연설을 하고 있었다.
―화신 여러분, 우리의 ‘진짜 적’은 누구입니까? 왜 우리는 지금 서로를 향해 창과 칼을 겨누고 있는 것입니까?
목소리를 들은 정희원이 인상을 찌푸렸다.
“······‘중립의 왕’이군요.”
‘중립의 왕’ 전일도가, 돔의 꼭대기에서 마치 도깨비라도 된 양 [음성 증폭]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들의 심정, 물론 이해합니다. 하지만 구원교든 다른 세력들이든, 우린 모두 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시나리오에 휩쓸린 피해자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사실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겁니다. 이곳에서 우리끼리 싸우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그게 바로 도깨비 놈들이 바라는 것이란 걸 말입니다!
“닥쳐라! 먼저 싸움을 시작한 건 구원교도잖아!”
“옳소! 죽여버려!”
전일도가 가볍게 웃었다.
―여러분, 곧 괴수들이 몰려온다는 건 알고 계시죠? 우리가 싸우게 되면, 서울은 멸망합니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이번 시나리오가 ‘가장 강한 화신’ 하나만 희생하면 모두가 살 수 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화아앗― 하는 느낌과 함께 불투명했던 스타디움의 겉면이 투명해지며, 그 내부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사정없이 꽂히는 무대 위에, 두 존재가 서 있었다.
―서울 돔의 화신들을 위해 손수 나선 두 영웅! 최강의 화신 후보들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우와아아아―!
돔의 반대쪽에 몰려와 있던 구원교도들이 갈채를 쏟았다.
“유중혁! 유중혁!”
“니르바나! 니르바나!”
급변한 분위기에 당황한 화신들이 주춤거리는 게 보였다.
“뭐, 뭐야 저거!”
“둘이 벌써 싸우고 있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만약 이대로 시나리오를 클리어 할 수 있다면?」
「최강이 패왕이든 구원교주든, 이 싸움을 통해 둘 모두가 죽는다면 우리야 좋은 거 아닌가?」
모든 인간은 겁쟁이다.
그리고 니르바나는 인간이 언제 가장 겁쟁이가 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지 않은 미래’를 가지려 할 때다.
벌써 감언이설에 넘어간 몇몇 사람들은, 이제 투지를 꺾고 자신이 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돔을 향해 다가가 벽면을 내리쳤다.
츠츠츠츳― 까아앙!
[등장인물 ‘전일도’가 성흔 ‘공정한 결투 Lv.3’을 발동 중입니다.]
[결투 당사자들을 제외한 모든 화신은 무대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벌써 ‘광해군’의 성흔을 발동했을 줄이야.
이렇게 되면 유중혁과 니르바나, 즉 당사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전투에 개입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정희원과 이지혜를 향해 말했다.
“전일도를 죽여요!”
그러나 다음 순간, 스타디움 안쪽에서 폭음이 터졌다.
콰아아아앙!
마침내 유중혁과 니르바나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도깨비가 끼어든 것인지, 돔의 위쪽으로 거대한 스크린이 떠올라 있었다.
[재밌는 일을 벌이고 있군요. 흥미로운 싸움이 될 것 같으니, 다들 보실 수 있게 제가 준비했습니다.]
스크린 위로,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르는 유중혁과 백색 마력이 깃든 양수를 교차하는 니르바나의 모습이 보였다.
파바바밧!
유중혁의 [파천검도]가 천공을 수놓았고, 니르바나의 [만다라]가 폭풍처럼 쏟아지는 강기를 쳐내며 빈틈을 파고들었다.
짧은 사이에 수십 합의 교환이 이루어졌다.
조심스레 오고가는 공방 속에 치밀한 수싸움이 숨겨져 있었다.
[전승] 혹은 [계승]된 스킬을 읽어 상대방의 패를 알아내려는 수싸움.
저것이 바로 회귀자와 환생자의 대결인 것이다.
먼저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은 니르바나였다.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니르바나의 만다라가, 실처럼 마력을 내뿜더니 유중혁의 전신을 급습했다.
스가가각!
유중혁은 아슬아슬하게 백색의 마력 다발을 피하며,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얼핏 패착으로 보일 한 수였다. 녀석의 움직임에 맞추어 백색의 마력 다발들이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중혁은 칼날을 빠르게 회전시켜 만다라의 마력을 받아쳤으나, 안타깝게도 두 다발을 놓치고 말았다.
푸슈슈슛!
왼쪽 어깨와 허벅지에서 피가 쏟아졌다. 화신들의 입에서 안타까운 목소리가 터졌다. 정희원을 피해 달아나는 전일도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 이대로 승부가 날까요?
하지만 유중혁은 침착했다. 돔의 천장 가까이 뛰어 오른 유중혁은 [천총운검]의 검극을 아래로 한 채, 그대로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푸른 마력이 불꽃을 일으키며 검극에 깃들었다. 하지만 이미 니르바나는 방비를 마치고 있었다.
“와라, 유중혁!”
그 순간, 하늘을 가르는 [천총운검]의 크기가 급변했다.
2척을 조금 넘던 길이의 장도가, 어느새 거검(巨劍)으로 바뀌더니 집채만한 크기로, 이내 고층 빌딩만한 크기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칼을 잡은 유중혁의 팔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흡사, 거신(巨神)의 오른팔.
[거신화].
깜짝 놀란 니르바나가 다급히 칼날의 반경을 벗어나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하늘을 쪼개는 칼날의 무게가 그대로 지상의 니르바나를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앙!
마치 멘틀을 찢는 듯한 폭음이 울리며, 무대 전체에 희뿌연 먼지가 차올랐다.
“크으으으읏!”
엄청난 타격을 받은 니르바나가, 십여 미터는 파인 구덩이 속에서 유중혁의 칼날을 받아내고 있었다. 화신들이 감탄사를 내질렀다. 그의 만다라에서 솟아난 수많은 팔들.
[천수관음(千手觀音)].
진리를 지탱하는 불가(佛家)의 손이, 거신의 거검과 힘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만약 돔이 없었다면 일대가 진즉에 파괴되었을 무력의 충돌.
현실성이 없는 압도적인 광경 앞에 모든 화신들이 넋을 잃었다.
「저것이 서울의 최강을 가리는 대결.」
최강은 난데······ 뭔가 씁쓸한 기분이다.
그 와중에도 나는 쓴맛을 삼키며 전력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발동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힘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니르바나와 유중혁의 머릿속에서는 터질듯한 사고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신 방벽 레벨이 올랐나? 마력 파장이 강해졌군.」
「생각보다 근접 스킬 숙련치가 낮아. 뭘 [계승]한 거지?」
「왼쪽 어깨를 다친 것처럼 굴지만, 저건 함정이다.」
「거신화는 지속 시간이 짧아. 열 합 안에 승부를 본다.」
·····.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전장의 풍경이었다.
서로 닿지 않는 두 생각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전장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순수하게 감탄했고, 그 정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이 돔의 누구보다 빠르게 이 대결의 ‘결과’에 도달했다.
나는 훌쩍 뛰어 올라 스타디움이 내려다보이는 근처의 한산한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한수영. 보고 있는 거 아니까 빨리 나와.”
뒤쪽의 공간이 갈라지며 새카만 어둠 속에서 한수영이 등장했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한수영은 몸에 착 달라 붙는 청색의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아마 [피스 랜드]에서 구한 히든 피스인 듯했다.
“확성기를 듣고도 네가 안 왔을 리 없으니까.”
“쳇.”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당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냅니다.]
역시, 저 녀석이 한수영의 배후성이 되었군.
한수영은 건들거리며 내 곁으로 다가와 난간 아래로 다리를 늘어트렸다.
“그래서, 한참 재밌었는데 왜 불렀어?”
“뭘 빠져서 보고 있냐? 시나리오 클리어 할 생각은 안 해?”
“아, 누가 최강인지 알아야 클리어를······ 잠깐. 넌 아는 거야?”
“알아.”
“둘 중 누군데? 설마 유중혁?”
“아냐.”
그러자 한수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저 자식 죽으면 세계가 회귀해버릴 텐데, 그럼 곤란하지.”
한수영이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구원교주······ 쟤 죽이면 되는 거지?”
벌써 강하 준비를 마친 한수영을 향해, 내가 고개를 저었다.
“쟨 최강이 아냐.”
“아냐? 그럼? 누구 죽이라고?”
나는 말없이 한수영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눈동자가 불신으로 가득 차올랐다.
“······설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시나리오의 피날레를 장식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