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123화
「숲 지대를 걷는 내내, 스즈키는 생각했다.
‘정말 운이 좋았어.’
스즈키는 조금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괴수들을 조종하고, 단도술을 수준급으로 사용하던 여자애. 동료였던 무라카미가 일격에 숨이 끊어지던 것을, 스즈키는 아마 당분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한국은 무섭군. 어린애까지 벌써 그런 수준이라니.’
어린애가 그 정도였는데, 지금 곁에 있는 이 사내는 어느 정도의 실력일지 스즈키는 좀처럼 짐작할 수 없었다. 새하얀 코트에 백색의 칼을 꿰어찬 사내. 코트 색깔을 제외하면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차림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스즈키에게 생명의 은인이었다.
“아깐 정말 고마웠습니다. 당신이 없었더라면 그대로 죽었을 겁니다.”
“뭘요.”
“솔직히 감동했습니다. 설마 한국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서로 돕고 사는 거죠.”
하얀 코트 사내는 겸손했다.
무엇보다 일본어를 잘 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분명 스킬 탓이겠지만, 일본어 통역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평소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는 방증이겠지.
“참, 아직 통성명을 못 했군요.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저는 스즈키 타츠야라고 합니다.”
“저는 독자입니다. 김독자.”
“키무-도게자?”
“······김독자.”
“호오.”
김 도게자라.
무척 예의 바른 이름이 아닌가?
스즈키는 이 한국인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근데 그 아이는 못 보셨습니까? 내 동료를 죽인······.”
“안타깝게도 놓쳤습니다.”
“후······ 그렇군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설령 사실이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이 남자도 한국인.
아이를 숨겨줬다거나 못 본 척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잡을 수만 있다면 아주 쉽게 복수할 수 있었을 텐데.
일본측의 3차 투입자인 그는, ‘여섯 번째 시나리오’의 히든 피스인 ‘소인화’에 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저를 구해주셨으니, 김 상도 ‘소인화’를 목격하셨겠군요.”
“몸이 작아지는 걸 말씀하시는 거라면, 물론 저도 봤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우리는 분명 타국이지만, 이 시나리오에서는 대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적은 ‘소인’이지, 같은 인간이 아니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즈키 씨를 구한 거고요.”
다행히 눈앞의 한국인은 자신의 견해에 동의하는 듯했다.
김 도게자가 말했다.
“그나저나, 일본측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예. 저희는 시나리오 진행도 빨랐고, 앞선 투입자들 중 비슷한 경우가 몇 있었으니까요.”
“비슷한 경우라면?”
“지구인이었는데, 소인으로 변한 경우가 몇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대부분은 죽었고, 한 사람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김 도게자는 뭔가를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체 알 수 없는 한국인.
살짝 불안해진 스즈키가 입을 열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한국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다들 한국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일본의 1차 투입자였던 ‘총리’가 한 말이었다.
물론 진짜 총리는 아니고, 별명이다.
―한국인들은 아직도 민족주의 정서가 강해. 누가 자기 나라를 욕하면 자기가 욕을 먹는다고 생각하지.
그는 총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었다.
“김 상. 저는 김아연도 박성지도 좋아합니다.”
“······.”
“가을연가도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좋아하시고요.”
한국인을 만나면 김아연, 박성지, 가을연가를 언급하라.
그것은 총리의 조언이었다.
“저도 일본 만화를 좋아합니다.”
“오, 오옷. 역시 그러셨군요.”
확실히, 총리는 옳았던 모양이다.
스즈키는 괜히 신이 나서 물었다.
“무슨 만화를 좋아하십니까?”
“한 가지를 꼽기는 어렵군요. 애초에 이젠 계속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확실히 그건 좀 아쉽죠. 저도 매주 기다리던 만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만화가가 살아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일들을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스즈키 역시 좋아하던 것들이 있었다.
만화도 그중 하나였다.
“모든 것이 변해버렸으니까요.”」
―아저씨.
몰입이 깨어진 것은 신유승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를 최대치로 사용하던 중이었기에, 나는 곧바로 신유승의 말에 답하지 못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 2단계가 종료되었습니다.]
[등장인물 ‘스즈키 타츠야’에 대한 이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물에 몰입하는 연습을 하면 이해도를 쉽게 올릴 수가 있다. 아무래도 인물 깊이가 얕은 단역이었기에 더욱 원활했을 것이다.
의식이 멀쩡한 상태였기 때문에 집중도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즈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저씨?
―미안, 스킬 연습 좀 하느라.
작아진 신유승은 지금 내 주머니 속에 있었다. 배후 계약을 통해 맺어진 직결 채널로, 신유승이 말했다.
―······조금 놀랐어요.
무엇에 놀란 것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곁에서 자기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스즈키 타츠야를 보았다.
‘멸살법’에서 스즈키는 지나가는 단역으로 등장한다. 원활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 잠깐 그의 시점으로 세계가 서술되기는 하지만, 그 긴 ‘멸살법’에서 조차 그 몇 장이 그에게 주어진 지면의 전부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인생은, 때로 그 몇 장으로도 충분히 요약된다.
―이해가 잘 안 가요. 저런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잔인한 짓을······.
외국어라 잘 이해할 수 없었을 텐데, 신유승은 용케도 대화의 골자를 잡은 모양이었다.
하긴, 저렇게 흥분해서 떠드는 걸 듣고서도 모를 수야 없겠지.
“그러니까, 김 상······.”
자기가 아는 것을 이것저것 떠들어 대는 스즈키의 모습은, 평범한 대학생의 그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기쁨을 느끼는, 세계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청년.
―한국에서도 많이 봤잖아. 평범한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 죽이고 살아남는 거.
―그때는 시나리오 때문에 어쩔 수 없었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야. 저 사람도 시나리오 때문에 저러는 거니까.
―그건 핑계에요. 이번엔 실패해도 죽지도 않고······!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는 사이를 두고 물었다.
―아까 죽어간 소인들이 우리 위치에 있다면, 상황은 지금과 달랐을까?
스즈키를 악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소인들을 선하다고 말할 생각도 없었다.
―원래 악은 평범한 거야. 우리에겐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이, 어떤 존재에겐 가장 끔찍한 재앙인 거지.
―그럼 저 사람도 사실은 나쁘지 않은 거예요?
―아니, 인간은 누구나 서로에게 재앙이야.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신유승은 사람을 죽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저도 미래에 재앙이 된 걸까요?
―걱정 마. 그렇게 되지 않게 내가 막을 테니까.
귓가에서 뭔가가 앵앵거린다 싶더니, 날벌레들이 근처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야기를 계속하던 스즈키가 짜증을 냈다.
“여기서도 벌레는 크기가 똑같군요. 소인들 입장에서는 재앙이겠는데요?”
“그렇군요.”
그럴 리가 없다.
모든 것이 작은 세계에서, 벌레만 원래 크기일 리가 없잖은가.
―유승아. 뭐라고 하는지 알겠어?
신유승과 이길영은 길들일 수 있는 종은 다르지만, [다종 교감]을 통해서 다른 종의 언어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은 비슷했다. 괜히 신유승과 이길영을 다른 조에 배치한 것이 아닌 것이다.
―‘형······ 2조랑······ 만났어요······’ 라고 하는 거 같아요.
―좋아. 그럼 내가 하는 말도 전할 수 있지?
품속에서 신유승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잠시 근처를 떠다니던 날벌레들이 이윽고 날갯짓을 하며 숲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벌레들을 보는 내게, 스즈키가 물었다.
“김 상. 제 이야기 듣고 계십니까?”
“듣고 있습니다. ‘이계 전생물’에 관해 얘기하고 계셨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만화 얘기를 하는 이놈도 참 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애써 받아주었다.
“일본에 그런 장르가 유행했다는 건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하, 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그 ‘이계 전생물’이거든요.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상황과도 비슷하군요. 어려운 것만 빼면 말이죠.”
그러고 보면 멸망 직전의 일본도 한국이랑 콘텐츠 상황이 비슷했지.
한국이 모두 과거로 회귀하기 바빴다면, 일본은 죄다 이계로 전생하기 바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상황이 나쁘냐면, 아마 일본일 것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과거로 돌아가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니까.
내가 말했다.
“그래도 어려운 편이 더 재미있지 않습니까?”
“예?”
“제 취향이 그쪽이라서요.”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키가 낮은 수풀을 베어가던 스즈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측 1차 투입자 중에 만화가가 한 명 있습니다. 아스카 렌이라는 사람인데······.”
아스카 렌?
“······그 사람도 김 상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쉽게 풀어가는 이야기는 재미없다고 말이죠.”
“그 사람은 지금······.”
“아, 도착했군요.”
숲 지대의 중심지에 들어서자, 작은 공터가 나타났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예기가 피부를 간질였다.
아마 이곳이, 일본측 초기 투입자들이 만든 본진인 모양이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당신은 누군가의 ‘식민지’에 진입하였습니다.]
[당신의 신체 조건이 ‘피식민인’의 요건에 부합합니다.]
[‘식민지’ 효과로 당신의 종합 능력치가 격감합니다.]
나를 보는 스즈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어렵게 풀어가는 쪽이 더 좋다고 하셨죠?”
숲지대 곳곳에서 수풀이 일렁이더니, 무장한 십여 명의 일본인들이 튀어나왔다.
“잘 됐군요. 마침 그렇게 만들어 드릴 참이었거든요.”
뜻밖의 배신에 나는 조금 놀랐다.
스즈키는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닐 텐데?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이 발동하였습니다!]
+
<등장인물 요약 일람>
인물 : 스즈키 타츠야
전용 특성 : 이중인격자 (희귀)
배후성 : 소리 없는 검
+
그랬군. 이 자식 특성이 이거였지.
나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멸살법’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소설이다.
몇 페이지로 요약되는 인물은 없다 이거지?
그나저나 [식민지] 효과가 발동한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지대의 왕은 ‘뱀’이 아닌 듯했다.
내가 한국인이란 걸 알고 일부러 이쪽으로 몰아온 모양인데······.
“조센징을 데려왔군.”
수풀에서 튀어나온 사무라이 하나가 앞으로 나서자, 스즈키가 고개를 숙였다.
“3차 투입자인가 보군. 총리님의 그룹이냐?”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공물인가?”
“그렇습니다.”
“이름이 뭐지?”
“스즈키 타츠야입니다.”
“그렇군. 잘 했다 스즈키. 지금부터 너는 우리 그룹이다.”
총리라······.
이거 상황이 안 좋게 됐다.
내가 알기로 일본 측 투입자들 중 ‘총리’라는 말을 듣는 인간은 하나뿐이니까. 심지어 그는 내가 잡아야 할 ‘뱀’을 제외하면, 가장 경계해야 할 적 중의 하나였다.
왜냐하면 녀석의 능력은, ‘한국인’에게는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니까.
사무라이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일단 이 녀석은 ‘총리’가 아니다.
“대일본제국의 노예가 제발로 식민지에 걸어들어왔구나.”
나는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꺼내 들며 물었다.
“지금 날 공격하면 ‘소인화’가 진행될 텐데?”
“우리는 너를 공격하지 않는다. 네가 우리를 공격해야지.”
“내가 왜?”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동료들이 죽을 테니까.”
뭐?
“읏, 독자 씨······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자, 나란히 잡혀 있는 네 명의 소인이 보였다. 정확히는, 이젠 ‘소인이 되어버린 자들’이었다.
이현성, 이길영, 이지혜, 거기다······.
흘흘 웃는 406번 할머니까지.
사무라이가 이현성의 목에 일본도를 갖다 대었다.
“이제 상황 파악이 되었겠지?”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평소라면 암 걸리는 전개였겠지만, 나는 오히려 기뻤다.
역시, 우리 동료님들께서는 가뿐히 일본인들을 해치우고 벌써 소인으로 변모해계셨던 모양이다.
신유승이 말했다.
―아저씨, 어떡해요?
어쩌긴.
[10분 안에 ‘소인종’을 사냥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스타 스트림>은 당신에게 재앙 활동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이미 시간상 뱀을 잡긴 틀렸다.
그러면······ 뭐, 별수 없군.
“어서 덤벼라, 조센징.”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창공의 별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해 반짝였다.
[한반도의 모든 성좌들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네. 그렇게 혐한 정서를 마음껏 표출하신다면야······.
[한반도의 모든 성좌들이 일본의 만행에 분노합니다!]
[특정 시기를 살았던 일부 성좌들이 당신의 부름을 기다립니다.]
이쪽도, 그에 합당한 응징을 해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