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113화
한동안 주변을 샅샅이 살핀 후에야, 나는 이곳이 어딘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절망했다.
젠장, 아무리 봐도 틀림없다. 여기는······.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쟤 가까이만 안 가면 안 문다고.”
이죽대는 김남운을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했다.
이곳은, 명계의 지옥인 ‘타르타로스’의 감옥이었다.
나는 감옥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머리 셋 달린 괴수를 바라보았다. 신화에서만 보던 괴물견 켈베로스. 녀석은 따분한 얼굴이었는데, 머리 두 개는 졸고 있었고 오직 머리 하나만이 눈을 부릅뜬 채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저건 새끼야. 고작해야 4급 괴수종이지. 아래층에는 더 엄청난 놈들이 있다고.”
김남운은 자기가 지옥 가이드라도 되는 것처럼 마구 떠들어 댔다.
저놈이 새끼인 건 맞았다.
‘멸살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으니까.
타르타로스는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강한 죄수들이 갇혀 있기 때문에, 각 층을 지키는 켈베로스도 내려갈수록 크기가 커진다.
김남운이 킬킬대며 물었다.
“그래서, 지옥에 온 감상은?”
나는 건들대는 녀석의 태도를 경계하며 입을 열었다.
이 사이코패스 녀석은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 긴장할 필요가 있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뭔데?”
“혹시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없냐?”
“아저씨 있잖아.”
“나 말고.”
나는 지나가는 망령들의 얼굴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질문의 재앙 명일상이라든가, 인외종 송민우 같은 놈들.
“내가 알기론 없어. 지하철에 타고 있던 사람 중 여기 온 건 나뿐이야.”
하데스의 명계는 세상의 무수한 저승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아마 죽은 화신들은 생전의 신념에 따라, 혹은 무작위적인 구별에 따라 각자 다른 저승으로 떠났을 것이다.
아마 명일상이나 송민우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김남운의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최근에 젊은 여자가 이곳에 온 적은 없냐?”
“젊은 여자?”
“하얀 머리카락에, 음······ 포니테일이고. 꽤 예뻐.”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김남운이 갑자기 킥킥거렸다.
“아하, 이제 알겠구만.”
나는 혹시나 녀석이 신유승을 본 걸까 싶어 귀를 기울였다.
“아저씨, 여자 구하려다 죽었구나?”
“······.”
“하여간 꼰대들은 그게 문제라니까. 사랑 때문에 죽느니 사느니······ 대체 언제 적 얘기야?”
“봤어, 못 봤어? 그것만 대답해.”
“당연히 못 봤지. 어쩌나, 사랑하는 여친 못 만나서?”
역시, 신유승의 영혼도 이곳으로 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직 아케론강을 못 건넜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다른 세계선에서 온 영혼이니, 그녀는 잠깐 이곳에 머문 뒤 세계선 바깥으로 추방당할 것이다.
내가 할 일은, 그 전에 그녀의 영혼을 손에 넣는 것이다.
“넌 여기서 뭐하던 중이었냐?”
“뭐하긴, 저거 만들던 중이었지. 이제 아저씨도 같이 만들게 될 거야.”
김남운이 손에 묻은 재를 털며 뒤를 가리켰다.
“저거야. 건담 같이 생긴 거, 보여?”
나도 마침 보고 있었다. 거인의 형체를 닮은 외양. 검은 광택이 도는 금속으로 마감한 거병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천천히 호흡하고 있었다. 신화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을 준비하는 병기.
거신병(巨身兵).
과연, 하데스는 벌써 <기간토마키아>를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놀고먹고 싸질러대면서 <기간토마키아>를 준비한다는 핑계를 대는 올림포스 12신들과는 다르다.
생각해 보면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의 성좌이긴 해도 올림포스 성운 소속은 아니었지.
입구 바깥쪽에서 북적이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김남운이 정색하며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리와. 나랑 같이 가자.”
“왜?”
“관리자들 오는 거 안 보여? 저기 내가 작업장 튼 곳 있으니까 가서 망치질하는 척이라도 해. 신참일수록 빠릿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알겠어?”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곳이 정말 타르타로스의 ‘노예 대장간’이라면, 나도 대강은 아는 바가 있으니까.
그러니 내가 놀란 것은 타르타로스 때문이 아니었다.
김남운이 입술을 비죽였다.
“왜 사람을 그렇게 봐?”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너 날 보고 아무런 생각도 안 드냐?”
“무슨 생각?”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김남운의 얼굴에, 순간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아하, 내가 무서워서 그러는구나?”
“······.”
“내가 복수라도 할까 봐. 그치?”
안 무서우면 그게 비정상이다.
원작에서 유중혁보다 더한 사이코패스로 군림하던 녀석을 내가 죽였다.
그런데 그놈이 갑자기 나한테 살갑게 구는데 그게 공포스럽지 않으면 이상한 거지.
“하하, 그렇게 쫄지마. 벌써 뒈진 사람들끼리 냉정하게 굴 필요 없잖아? 그리고 나 여기와서 많이 바뀌었거든. 반성도 많이 했다고.”
택도 없는 소리 하고 있네.
그 ‘망상악귀 김남운’이 반성이라니, 어느 날 유중혁이 미소녀가 되었다는 것만큼이나 현실성이 없는 소리다.
당연히 거짓말일 건 알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발휘해 [거짓 간파]를 발동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이럴 때 쓰려고 입수한 스킬이니까.
그런데.
[당신은 해당 발언이 진실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뭐?
나는 어이가 없어져서 놈을 보았다. 김남운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진짜라니까?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나 속죄하면서 살고 있다니까? 심지어 아저씨가 나 죽여준 거 감사하게까지 생각하고 있어.”
“······아니, 왜?”
“밥때 되면 밥 나오지. 잠잘 때 되면 잠도 재워주지. 학교도 안 가, 잔소리하는 엄마, 아빠도 없어······. 좀 덥긴 하지만 여기 최고라고.”
지옥 ‘타로타로스’를 그렇게 말하는 놈이 있다니.
“게다가 심심하면 건프라도 조립할 수 있고. 얼마나 좋아?”
거신병을 보고 건프라라니.
“아저씨 덕분이야. 진심이야. 진짜 고맙다고.”
이 새낀 역시 미친놈이다.
[등장인물 ‘김남운’이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길, 시스템 메시지까지 저렇게 뜨는데 안 믿을 수도 없고.
“아무튼 빨리 이쪽으로 와. 시간 없으니까!”
나는 김남운에게 이끌려 녀석의 작업장 쪽으로 향했다.
작업대 위에는 녀석이 쓰던 공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남는 금속으로 만든 ‘건프라’도 보였다.
명계의 금속으로 이런 짓을 하다니.
이 자식 설정이 중2병이었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난다.
“온다. 망치 들어.”
말하기가 무섭게 지옥문의 켈베로스가 짖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소리를 듣는 순간 뼈마디가 으스스 굳는 것 같았다. 켈베로스가 지키는 문을 지나쳐, 방망이와 채찍을 하나씩 손에 쥔 관리자들이 타르타로스로 입장했다. 새카만 케이프를 두른 하데스의 권속들. 심판관들만큼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들키는 것은 좋지 않았다.
나는 어정쩡하게 서서 몇 번인가 망치질하는 척을 했다.
김남운이 옆에서 킥킥거렸다.
관리자는 곧장 입구 쪽의 단상 위에 올라가 철을 긁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1층의 노예들에게 알린다. 지금부터 불시 점검이 있을 예정이다.
김남운이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저 새끼들은 맨날 저 지랄이야. 할 일 없으면 맨날 점검이니 뭐니······.”
그러나 이어진 관리자의 말에, 김남운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명계에 불법 침입자가 나타났다. 생자의 영혼으로 아케론강을 건너온 놈이 있다고 한다.
망치와 톱을 든 망령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관리자의 말은 계속되었다.
―위대한 죽음께서 이 일을 알게 되시면, 너희들에게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고로 이번 점검은 그 불순한 침입자를 색출하기 위함이다. 일단은 형식적인 거니까 긴장하지 말고. 다들 제자리에서 대기하도록 해라.
빌어먹을, 내 예상보다 일의 진척이 빨랐다.
하필 이럴 때······.
김남운이 내씹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멍청한 소리 하고 있네. 설령 살아있는 놈이 여길 왔어도, 뭣하러 ‘타르타로스’에 숨어들었겠어? 들어오면 영영 못 나가는 곳인데. 그렇지?”
“······.”
“이봐, 아저씨?”
“어, 응.”
생각하다가 대답이 한 박자 늦고 말았다.
순간 나를 바라보던 김남운이,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말이야. 저거 혹시 아저씨 얘기는 아니······.”
“맞아.”
“이런 씨발.”
망치를 내던진 김남운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와, 진짜 사람 뒤통수 치는 거 대박이네. 나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한테 신세타령 한 거야?”
화가 난 건지, 재미있어하는 건지 모를 표정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여기 어디 숨을 곳 없냐?”
“씨발, 감옥에 숨을 데가 어딨어? 정 안 되면 저기 건프라 안에라도 숨든가!”
나는 거신병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저 안에 숨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문제는, 저 녀석이 이미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에 가까워서 저 안에 들어갔다간 그대로 소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만.
“저거 완성은 됐냐?”
“아직. 코어에 뭔가 문제가 있다든가 어쨌다든가. ······정말 저기 숨으려고?”
“아니.”
“잘 생각했어. 저기 들어가면 아저씨 그대로 뒈질거거든.”
“······너 착하게 살기로 했다며?”
“난 뒈진 사람들한테만 착해. 간만에 만났는데 아쉽게 됐네. 아저씨도 곧 뒈질 테니, 그땐 다시 착하게 굴어줄게.”
김남운은 내 처지가 꼴 좋게 됐다는 듯, 손날로 목을 그으며 말했다.
헛소리를 나누는 사이, 관리자는 벌써 근처까지 다가왔다.
만약 거신병이 완성되어 있었다면 저걸 타고 켈베로스를 때려잡은 다음 하데스의 궁전으로 직행하는 선택지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나마도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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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필사적으로 ‘멸살법’의 내용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유중혁도 중후반 회차에서 명계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녀석은 어떻게 했더라?
「“명왕에게 전해라. 거신병 플루토는 내가 가져간다고.”」
「“죽고 싶지 않으면 모두 꺼지라고 해.”」
······빌어먹을. 미친 사이다 새끼.
읽을 때는 좋았는데, 막상 내 상황이 되니까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하데스의 심판관에 정면으로 대항하다니.
그런 건 유중혁 같은 회귀자나 가능한 일이다. 놈에겐 그만한 무력도 있고, 기회도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아니지, 잠깐만.
내가 그놈처럼 못할 건 뭐지?
갑자기 발상을 바꾸자 생각의 방향도 달라졌다.
물론 정말 놈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도 배짱을 부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왜 내가 심판관에게 붙잡히면 안 되지?
히든 시나리오에 실패해서 ‘명계의 주민’이 될 테니까?
아니면, 하데스의 눈치를 본 심판관 놈들이 나를 영멸시키려 들 테니까?
바보였다.
애초에 그런 건 하나만 해결되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마침내 관리자는 우리 작업장까지 다가왔다.
나는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관리자가 물었다.
“넌 뭐냐?”
“네가 찾던 사람.”
그 순간, 관리자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차 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윽고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아마 지금 돌아보면, 하데스의 심판관이 내 목을 잡고 있으리라.
나는 뼛속을 얼리는 듯한 한기에 저항하며 입을 열었다.
“날 영멸시킬 모양인데, 잘 생각하는 편이 좋을 거야.”
내게 유중혁 같은 무력은 없다.
하지만, 내겐 녀석에겐 없는 것이 있다.
“지금 날 죽이면, 너희는 <기간토마키아>에서 반드시 패배하게 될 테니까.”
관리자의 눈동자가 일순 흔들렸고, 잠깐이지만 한기가 누그러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신병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유한 밤의 아버지’께 전해. 나는 저 거신병을 완성 시킬 방법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 무시무시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몸은 목덜미를 중심으로 천천히 얼어붙고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반항하지 않았다.
이것은 시험이다.
어느새 얼음이 목과 어깨를 지나 가슴까지 내려왔다.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그리고 마침내 냉기가 심장 언저리까지 파고들려는 순간.
한기가, 마법처럼 멎었다.
그리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든 시나리오 내용이 갱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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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나는 심판관의 안내를 받아 하데스의 궁전을 오르기 시작했다.
크르렁거리는 켈베로스의 뒤편으로 멀어지는 김남운의 모습이 보였다.
멍하니 나를 보는 김남운을 향해, 나는 가만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럼 지옥에서 잘 지내라, 남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