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103화 Episode 21. 바꿀 수 없는 것 「“······대장, 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어이없다는 듯한 신유승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봐. 방금 뭐라고 지껄였어? 뭐? 동료?” “······.” “저 사람이 대장 동료라고?”」 불신 가득한 그 목소리에,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의외였는데, 신유승의 충격은 오죽할까. 설마 저 자존심 강한 유중혁이 나를 ‘동료’라고 표현할 줄이야. 「“그래.”」 ······이거 갑자기 두려워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이 나한테 ‘동료’라고 할 리가 없는데······. 저 자식 나중에 내가 부활하는 거 보고 바로 쳐 죽이는 거 아냐? [성좌, ‘해상전신’이 당신들의 전우애에 감동합니다.] [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당신들의 전우애에 눈시울을 붉힙니다.] [5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그래, 이제야 납득이 간다. 유중혁, 저 자식 분명 후원을 노린 거다. 전우애를 좋아하는 우리엘이 안 보여서 조금 이상하긴 한데, 어쨌든 저건 후원을 노린 신의 한 수가 틀림없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비장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걸 보니, 심증은 점차 확신으로 변해간다. 거기다 유중혁이 아직 3회차라는 걸 생각해 보면, ‘동료’라는 말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원작의 초반 회차에서도 이현성이나 이설화가 죽었을 때 ‘동료’라는 말을 지껄였었으니까. 놈이 지금쯤 받고 있을 엄청난 코인들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이렇게 생각하니 차오르던 감동도 싹 달아나는구만. 젠장, 저 대사를 내가 했어야 했는데. 「“대장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물론 유중혁의 속내를 모르는 신유승은 세상이 멸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41회차의 신유승은······. 그녀는, 회차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유중혁에게 ‘동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콰가가가각! 신유승의 주먹이 유중혁의 칼날과 부딪쳤다. 신체와 병기의 싸움임에도, 손상이 일어나는 쪽은 유중혁의 칼이었다. SS급 도검 진천패도(振天覇刀). 특수 옵션은 없어도 내구도와 강도 하나는 끝내주는 칼인데, 그 칼이 신유승의 맨주먹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꽈드드득. 결국 충격을 못 이긴 진천패도의 칼날이 휘어졌다. 파천강기가 휘감긴 무적의 패도가 무력하게 몸을 굽히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감히 내 앞에서!”」 대단한 스킬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극한까지 응축된 에테르를 내던진 일격. 콰아아앙! 그 일격에, 유중혁이 피를 쏟으며 뒤로 날아갔다. 공격도, 속도도, 변화도. 신유승은 모든 면에서 유중혁을 앞섰다. 유중혁이 자랑하던 [주작신보]나 [파천검도]도, 이 순간만큼은 신유승의 앞에서 빛이 바래고 있었다. 끔찍한 파육음(破肉音)과 함께 유중혁의 얼굴이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였다. 아무리 모든 그녀가 약화된 채 강림한다 해도, 41회차의 신유승은 [비스트 로드]로서 신유승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치에 가깝게 성장했던 존재. 그에 반해 이번 회차의 유중혁은 강해봤자 초반의 유중혁일 뿐이었다. 「“어째서 그 사람을 동료라 부르지? 당신을 위해서 희생해줬으니까?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쉴 새 없이 울컥거리며 터지는 핏줄기. 그럼에도 유중혁은 굴하지 않았다.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저 멍청이가, 대체 왜 싸우고 있는 거야? 전신에서 피를 뿜는 유중혁을 보며, 나는 차츰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불리한 걸 알면 진즉에 도망갔어야 하잖아? 평소에는 잘 하면서, 대체 왜? 다시 한번 주먹을 날린 신유승이 입을 열었다. 「“그럼 나와 다른 사람들은 뭔데? 지혜 언니는, 현성 오빠는. 그리고 설화 언니는? 당신만을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은, 당신에게 대체 뭐였는데?”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 “내가 아는 것은 하나뿐이다.” 유중혁이 피묻은 입술을 닦으며 말했다. “너는 이번 회차에서 내 동료를 죽였다. 그러니, 너도 죽을 것이다.”」 젠장, 이번엔 나도 모르게 감동이 차올랐다. [과도한 몰입으로 ‘제4의 벽’의 일부 기능이 제한됩니다.] 아무리 연기라도 저 정도라면 속아줘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다. 그래, 이 맛에 ‘멸살법’ 읽는 거지. 생각해 보니 죽은 이현성에게 유중혁이 비슷한 말을 했을 때도 나는 눈시울을 붉혔던 것 같다. 갑자기 기분이 싱숭생숭해진다. 한낱 독자였던 내가, 무려 주인공인 유중혁의 ‘동료’가 되다니. 신유승은 모든 것을 다 잃은 듯한 얼굴로 유중혁을 보았다. 「“당신은 그래선 안 돼······.”」 불길한 아우라가 그녀의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다. 공허감이 배신감으로, 배신감이 다시 분노로 바뀌는 과정. 「“이제 와 그런 식으로 변하는 거, 내가 용납할 수 없어.”」 신유승의 주먹에 깃드는 가공할 에테르. 신명나게 맞는 게 보기 좋아서 좀 더 지켜볼까 싶었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과도한 몰입으로 ‘전지적 독자 시점’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잘못하면 진짜로 유중혁이 죽게 생겼으니까. 그럼 진짜 죽도 밥도 안 된다. 나는 빠르게 ‘전지적 독자 시점’의 모드를 전환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시점을 1인칭으로 변경합니다.] ······.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의 변경에 실패했습니다.] 뭐? 왜? [시점 변경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사용 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 내가 죽어서 유체이탈 상태일 것. 둘, 나와 이입 대상이 동시에 서로를 생각하고 있을 것. 첫 번째 조건은 충족했으니 문제는 두 번째 조건인데, 아무리 충족이 안 될 리 없었다. 저 자식이 지금 내 생각을 안 하고 있다고? 아니, 복수한다고 길길이 날뛰더니 그건 다 뭐였는데 그럼? 미친 듯이 검격을 쏟아내기 바쁜 유중혁을 보며, 나는 잠시 멍해졌다. 「“죽인다. 나는 반드시 네놈을 죽인다.”」 ······저 자식, 혹시 아무 생각도 없는 건가? 유중혁을 가만히 바라보던 신유승이 입을 열었다. 「“······안 되겠다. 간단히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신유승의 입가에, 악귀 같은 웃음이 걸렸다.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대장의 세계를 끝내줄게.”」 신유승의 눈이, 유중혁이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간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제기랄, 이제 진짜로 두고 볼 수 없다. 유중혁이 아니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에게라도 이입하지 않으면······. 그 순간, 날카로운 감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인물한테 이입할 수 있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아, 그런가. 방금 유중혁이 그 말을 해서······? 그래, 어쩌면 이쪽에 이입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 모르겠다, 일단 되는대로 해보자. 나는 해당 인물에 내 모든 심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곧 시야가 흔들리며 어지러운 구토감이 찾아왔다. [시점을 1인칭으로 변경합니다.] 사위가 뒤바뀌며, 내 의식이 어디론가 빨려 나갔다. * ‘동료라고?’ 처음 그 말을 들은 순간, 신유승은 귀를 의심했다. 동료라니. 어떻게 그런 말이 가능하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유중혁이. 신유승은 그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동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천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그녀가 잊었던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 유중혁이, ‘동료’라니. 대체 유중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혹시 이번 회차의 유중혁이라면, 어쩌면, 나한테도······. 콰아아앙! 신유승은 자기도 모르게 바닥을 내리쳤다. ‘저열하다.’ 신유승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마지막 기회야.” 그런 저열한 생각을 하는 스스로를, 그녀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그 말 취소하면 고통없이 보내 줄게. 당신 입으로 말해봐. 당신은 동료가 없다고, 당신밖에 모르는 인간이라고 당장 말하라고.” 피떡이 된 상태에서도, 유중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유승에게 맞은 한쪽 팔은 으스러졌고, 다리는 근육이 난자되었다. 그럼에도 유중혁의 고고한 눈동자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신유승은 유중혁을 잠시 바라보다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유중혁을 붙잡아.” [몬스터 게이트]를 통해 넘어온 6급 괴수종 [유황 미라]들이 움직였다. 미라의 새하얀 붕대가 유중혁의 전신을 옭아매자, 당겨진 유중혁의 사지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처럼 팽팽해졌다. 신유승이 말했다. “하나씩 죽여줄게 대장. 대장이 보는 눈앞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신유승은 유중혁을 내버려 둔 채 섬의 바깥쪽을 향해 걸어 나갔다. “죽여! 저년이 재앙이야!” 신유승을 발견한 화신들이, 물가에서 하나둘씩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신유승은 그들을 향해 좌에서 우로,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촤아아앗! 가벼운 손놀림에, 달려들던 화신들이 물 먹은 신문지처럼 찢어졌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는 학살. “범람하라.” 그 한 마디에, [몬스터 게이트]에서 괴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두 마리는, 마치 호위라도 하듯 그녀의 뒤에 섰다. 5급 해수종 킹 매스우드. 5급 괴수종 헤비메탈콩. 가히 한 세계의 ‘소재앙’으로 군림할 수 있는 괴수들.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지려는 순간, 옆쪽에서 날카로운 공격이 날아들었다. “어딜 가려고?” 번뜩이는 장도. 날씬한 스커트에 검정색 후드 짚업. 신유승은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이지혜의 분노한 눈동자에서 [귀살]이 타오르고 있었다. “감히 사부를 저 꼴로 만들어?” 이지혜의 전신에서 위인급 성좌의 위엄이 뿜어져 나왔다. 바다에서 그 누구보다 강력한, 해상의 전신. 신유승은 이지혜가 사용하려는 성흔을 눈치챘다. 그랬지, 그러고 보니 이곳은 강이었지. “······신에게는.” 구결을 읊는 순간, 한강의 곳곳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며 투명한 함선이 떠오른다.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았으니······!” 기세등등한 패기를 흩뿌리며, 열두 척의 함선이 한강의 파고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린 광경. 충무공의 성흔, 유령함대. 자신을 압박해오는 함선들의 기파 속에서도, 신유승은 그저 그립다는 듯 미소할 뿐이었다. “······그랬지. 그게 언니의 특기였지.” “언니? 나보다 나이도 많아 보이는 게 뭔 개소리야!” “하지만 아직 멀었어. 함장은 배 위에 있어야지, 이런 곳에 있으면 어떡해?”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신유승이, 이지혜의 턱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반항할 틈도 없는 쾌속이었다. “불쌍한 언니.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런 씨발? 무슨 속도가······!” 황급히 물러섰지만, 이지혜는 신유승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당신은 모를 거야. 유중혁이 당신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버릴지. 당신이 어떻게 죽게 될지.” 이지혜의 칼날이 신유승을 향해 날아들었다. 신유승은, 그런 칼날을 아주 가볍게 쥐어 잡으며 말을 이었다. “평생 유중혁한테 인정받고 싶어했던 당신은, 당신이 그렇게 좋아했던 해상에서 죽어. 당신의 배후성이 그토록 증오했던 일본인들에게, 끔찍하게 참살 당하지.” “전군, 포격하라!” 이지혜의 처절한 외침에, 열두 대의 함선이 동시에 발포를 개시했다. 날아드는 포탄을 보며, 신유승이 웃었다. “그런 당신을 잃고 유중혁이 한 말이 뭔지 알아?” 포탄이 신유승의 몸을 그대로 난타했다. 꽈르르릉, 하는 폭음이 울렸다. 포연이 걷힌 자리에 나타난 신유승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해상전은 조금 힘들겠군.” 무수한 포탄의 세례는, 신유승의 하얀 장갑(裝甲)에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신유승의 고유 스킬이자, 최강의 방어 스킬 중 하나인 [야수왕의 감수성]. 그녀를 감싼 백색의 옷깃은, 단 한 치의 흠집도 용납지 않겠다는 듯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걱정마, 언니. 이번 회차에선 그런 일 없을 거야.” 신유승이 하얗게 웃었다. “내가, 고통 없이 보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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