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10화
그때, 유상아가 소리쳤다.
“독자 씨! 뒤!”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이자, 피 묻은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왔다. 거무튀튀한 기운이 휘감긴 익숙한 주먹이었다.
쓰러지며 반사적으로 내뻗은 발차기에 뭔가가 걸려 나가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어떤 놈일지 감이 왔다.
9등급 인외종, 마인(魔人).
검은 에테르에 감염된 인간의 변이종.
마인은 9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고위험종으로 분류되는 괴물이었다. 보통의 인간을 베이스로 만들어진 마인들은 좀비와 다를 바가 없지만, 지금처럼 숙주가 남다를 경우는 특히나 위험했다.
나는 머리가 터진 남고생의 명찰을 보았다.
“······김남운.”
십여 분 전에 머리가 터졌던 녀석이, 이젠 마인이 되어 나를 노리고 있었다.
터져나간 김남운의 성대가 기괴한 형태로 꿈지럭대고 있었다.
“그워어억.”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을 발동합니다!]
[해당 인물은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젠장, 역시 안 되나.
촤아악!
길게 자라난 김남운의 검은 손톱에 허벅지가 긁혔다. 화상을 입은 듯한 통증이 다리 전체로 번졌다. 나이프로도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던 피부가 겨우 손톱에 찢어졌다. 마인이 된 인간은 생전보다 몇 배나 강해진다.
“유상아 씨, 당장―”
그 말을 하는데 뭔가 기분이 싸아했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무슨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 놔요! 놓으라구요! 독자 씨! 독자 씨!”
분명 방금 전까지 다리를 절고 있었던 한명오가, 반항하는 유상아를 들쳐 멘 채 놀라운 속도로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호구력에 감탄합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당신의 희생정신에 감동합니다.]
[100코인을 후원받았습니다.]
······그렇구만.
날 버리고 갔다 이거지?
그런데 달려가는 본새가 좀 이상했다. 외발로 달리는데도 올림픽 선수 못지않게 빠른 발놀림. 당연히 배 나온 한명오의 전용 스킬일 리는 없고, 배후성의 성흔일 것이었다.
[외발 준족]
나는 그 성흔을 제공하는 성좌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나는 멀어지는 한명오를 향해 ‘등장인물 일람’을 사용했다.
[해당 인물의 정보는 ‘등장인물 일람’으로 열람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도 ‘등장인물 일람’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외발 준족]의 성흔은 성좌 ‘절름발이 사기꾼’의 것이다. 그리고 절름발이 사기꾼은 정신 방벽계의 성흔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명오가 원래부터 그런 스킬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다.
즉, 내 스킬이 실패한 것은 한명오가 가진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바보였군.
나는 눈앞에 떠있는 메시지 창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등장인물 일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되는 걸 어렵게 생각했다. ‘등장인물 일람’은 말 그대로 등장인물들의 정보를 읽어내는 스킬. 그리고 유상아와 한명오는 본래의 ‘멸살법’에는 나오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내가 살리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인물들. 그러니 ‘등장인물 일람’으로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륵! 그륵! 그륵!”
한쪽에는 의미 모를 소릴 지껄이며 다가오는 김남운과 마인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다리를 반절 이상 건너간 한명오. 이현성과 이길영은 이미 다리 건너편 안전 지역으로 진입해버렸기에 도움을 구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마인 하나를 제압해서 다리를 건넌다? 시도할 가치는 있겠지만 성공률이 너무 낮았다. 마인은 이름과 달리 분류상 인외종이었고 인외란 곧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아아악!”
달려들던 마인 몇 마리가 중심을 잃고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콰지지직!
떨어진 마인들은 그대로 어룡들의 먹이가 되었다. 피라냐처럼 달려든 어룡들은 삽시간에 마인들을 수십 조각의 육편으로 으깼다.
스멀스멀 공포가 밀려왔다. 한순간이라도 다리 위의 인원이 ‘홀수’가 되면, 나는 저놈들과 같은 꼴이 될 것이다. 혼자서 건너는 것은 무리. 그렇다면?
“······천천히 하자.”
스스로를 다스리듯 중얼거렸다. 지금은 그런 침착함이 필요했다. 아직 몇 가지 쓸만한 방법은 남아있고, 중요한 것은 눈앞의 것들을 처리하는 것이다. 나는 호흡을 조절하며 달려드는 마인들의 다리를 잡아 걸었다.
“그워억?”
다행히 눈이 없는 놈들이어서 관성을 이용해 난간 아래로 추락시키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갸아아악― 콰지직!
착실하게 떨어트리면서 숫자를 줄인다. 허공에서 도깨비의 초시계가 깜빡이고 있었다. 이제 시나리오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15분.
“후······.”
사각에서 날아든 손톱에 어깻죽지에 상처가 났다. 아무리 마음이 침착해도, 아무리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아도, 훈련되지 않는 육체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그워어어억!”
야성만 남은 김남운의 공격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왼쪽 어깨.
오른쪽 허벅지.
정수리.
흐름을 끊어야 했다. 나는 날아드는 손톱을 가까스로 피하며, 녀석의 다리를 발로 찍었다.
“갸아악?”
그러나 통각을 잃은 녀석은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뒷걸음질을 치자 끊어진 다리의 철골이 밟혔다. 먹이를 원하는 어룡들이 기둥 아래쪽에서 날뛰는 소리가 들렸다.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의 역경에 즐거워합니다.]
[소수의 성좌들이 당신에게 200코인을 후원합니다.]
코인은 꾸준히 축적되었다. 이제 보유 코인은 5000코인. 초반치고는 상당히 많은 코인을 모았다.
[와우, 제법 잘 버티네요. 자자! 저 불쌍한 친구를 위해 가호를 내려주실 성좌님들, 안 계신가요?]
장사꾼 같은 도깨비의 목소리.
찢어 죽이고 싶다.
[이런, 진짜 아무도 안 계신가요?]
당연히 없겠지. <배후 선택>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나를 후원하는 성좌가 있는 게 이상하다.
[그러게 뭐랬어요. 있을 때 잘해야지. 가엾게도.]
또다시 이어진 김남운의 공격에 허리를 내주고 말았다. 물론 나 역시 김남운의 왼쪽 옆구리와 어깻죽지를 칼로 헤집어 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녀석의 배에서는 내장이 줄넘기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마인을 해치우기 위해선 심장을 완전히 터뜨려야 한다.
하지만 마인의 피부는 심장 부근이 가장 단단해서, 맥가이버 칼의 예리함만으로 뚫는 것은 무리였다.
젠장, 전투 스킬 하나만 있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전용 스킬, ‘책갈피’가 발동합니다.]
······책갈피?
[‘인물 책갈피’가 활성화 됩니다.]
[사용 가능한 책갈피 슬롯 : 3개]
[활성화 가능한 책갈피의 목록을 불러옵니다.]
+
<책갈피에 등재된 인물 목록>
1. 망상악귀 김남운 (이해도 25)
2. 강철검제 이현성 (이해도 35)
3. 빈슬롯
+
책갈피. 3천 편의 ‘멸살법’을 읽었지만 이런 이름의 스킬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본 적은 없어도 어떻게 쓰는지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1번 책갈피 활성화.”
샤라락, 하는 느낌과 함께 머릿속에서 책장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등장인물 김남운이 남긴 ‘멸살법’의 장면들이었다.
「하하하하핫! 힘이 넘친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법칙이 필요한 법이야.」
김남운의 기억들이 밀려들어오며, 온몸의 근육 신경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타인의 힘이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1번 책갈피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책갈피 스킬의 레벨이 낮아 활성화 시간이 단축됩니다.]
[활성화 시간 : 1분]
1분. 충분하다.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등장인물이 가진 스킬의 일부만이 활성화됩니다.]
[「흑화 Lv.1」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거친 숨을 들이켜며 나를 향해 돌진하는 김남운. 온몸에 휘감긴 검은 기운이 터질 듯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나는 발뒤축에 있는 힘껏 힘을 싣고, 김남운을 향해 마주 달려나갔다.
적어도 똑같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로 지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김남운이었다. 주인공과 함께 ‘멸살법’의 세계를 호령하던 미친 살인마. 흑화가 제대로 발동한 상황에서는 누구도 쉽게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던, 전장의 망상악귀(妄想惡鬼).
“갸아아아아악!”
맥가이버 칼이 꺼림칙한 감각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후두둑 부서지는 근육과 살점들. 왼쪽 어깻죽지부터 심장 어림까지. 인간의 육체가 통째로 잘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마인 김남운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직 눈이 있었다면 그는 분명 나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으, 죽. 어어. 죽.으.어.”
세상을 비관하고, 오래도록 일탈을 꿈꿔온 청년. 그럼에도 ‘멸살법’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가서, 캠퍼스 라이프를 누렸을지도 모르는 청년.
“···죽고 싶지···않···.”
나는 난간 아래로 추락하는 김남운을 말없이 배웅했다. 분명 증오했던 인물임에도, 그 순간만큼은 어쩐지 묘한 비감이 들었다.
[등장인물 ‘김남운’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1번 책갈피가 비활성화 되었습니다.]
무지막지한 탈력감과 함께 밀려드는 피로감.
힘들다, 정말로.
“그워어어어!”
이제 남은 시간은 10분. 아직도 많은 숫자의 마인들이 주춤거리며 밀려들고 있었다. 레벨 10의 체력으로도 저 숫자를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혼자서 감당할 생각도 없었다.
……조금 늦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콰직! 콰지지직!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파쇄음. 그럴 줄 알았다. 놈이라면 업적과 후원금을 통째로 챙기기 위해 저런 무모한 짓을 벌이리라 생각했다.
콰지직! 뿌드득!
분명 사람의 육체끼리 부딪치는 광경임에도 꼭 거대한 철퇴가 살점을 으깨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사실, 코인을 이만큼 모았으면 아무리 주인공이라고 해도 한 판 붙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내가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겠다.
열차가 정지한 곳에서 정확히 일직선으로, 마치 전차가 돌격하는 것처럼 마인들이 마구잡이로 터져나가고 있었다. 저게 정말 ‘인간’이 만드는 풍경이라 할 수 있을까.
“가아악?”
얼굴이 없는 마인들 조차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는지 한둘씩 등을 돌렸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콰지직!
사내는 순식간에 나를 위협하던 마인들을 모조리 찍어 터뜨린 후 내 앞에 당도했다. 어떤 무기도 없이, 오직 두 주먹만으로 마인들을 격살하는 압도적인 무력.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녀석을 상대한다고? 절대로 무리다. 지금보다 종합 능력치가 두 배 이상 상승해도, 이 녀석은 이길 수 없다.
“너, 뭐냐.”
사내의 서늘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반사적으로 ‘등장인물 일람’을 가동했다.
[전용 스킬, ‘등장인물 일람’이 발동합니다!]
[해당 인물의 관련 정보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등장인물 일람’이 ‘요약 일람’으로 변환됩니다.]
+
<등장인물 요약 일람>
인물 : 유중혁
특성 : 회귀자 <3회차> (신화), 프로게이머 (희귀)
전용 스킬 : [현자의 눈 Lv.8], [백병전 Lv.8], [무기 연마 Lv.8], [정신 방벽 Lv.5], [군중 제어 Lv.5], [추론 Lv.5], [거짓 간파 Lv.4]······.
+
끝도 없이 이어지는 전용 스킬의 목록들. 그 목록의 끝에서, 억센 남자의 손이 나타나 내 목을 틀어쥐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첫 번째’ 방법. 그 방법을 살아 증명하는 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회귀자 유중혁.
이 세계의 장대한 비극은, 바로 이 인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