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화

551화 완결 ······클라우드에 파일을 올릴 수 없다고? 갑작스런 메시지에 한수영은 몇 번이나 성흔을 점검했다. 하지만 성흔은 작동하지 않았다. 마치 시스템의 은총이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실제로 아까부터 몸의 느낌이 달라지고 있었다.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던 육체가 조금씩 무거워지는 느낌. ······설마? 아니, 잠깐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그 시기가 너무나 빨랐다. [당신이 가진 ‘관리국’의 설화가 이야기를 멈춘 상태입니다.] 아직 한수영은 소설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쓰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클라우드 시스템이 없으면, 원고를 쓰더라도 전파가 불가능해진다. “이런 씨······.” 때마침 누군가가 병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한수영!” 일행들 역시 사달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 “전혀 방법이 없어? 진짜로?” “······지금으로서는 그래요.” 마력으로 움직이던 기기들이 하나씩 작동을 멈추고 있었다. 덕분에 이설화의 병원은 급하게 의료 기기들의 동력원을 교체하는 중이었다. “김독자 상태는?” “다행히 큰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아요.” 시스템의 힘이 사라졌지만, 잠든 김독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살지도 죽지도 않은 채 조용히 잠든 소년. 소년의 다른 환생체들은 세계선 각지에서 그녀가 쓴 원고를 읽고 있을 것이었다. “마지막 원고를 업데이트하지 못했어. 이렇게 되면······.” “‘가장 오래된 꿈’들이 마지막 이야기를 읽지 못했겠군요.” 유상아의 말에 이지혜와 장하영이 연달아 소리를 질렀다. “그럼 어떡해요? 마지막 원고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니에요?” “내 외전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유중혁이 얼마나 많은 세계선을 순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쯤이면 상당한 숫자의 세계선이 최신화까지 연재를 따라왔을 것이었다. “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연중인데······.” 소설의 최종장은 ‘가장 오래된 꿈’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야기를 그들이 온전히 상상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어쩌죠? 마지막 에피소드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아직 방법은 있어.” 손가락을 잘근잘근 씹던 한수영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 말고도 원고를 고칠 수 있는 녀석이 하나 더 있어. 지금은 그 녀석을 믿어보는 수밖에.” * “······원고 업데이트가 멈췄군.” 보통 원고는 하루에 한 번꼴로 업데이트되어왔다. 하지만 약 한 달 전부터 업데이트 내역이 완전히 끊겼다. 처음에는 잦은 세계선 이동으로 인한 오류라고 생각했지만, 확인해 보니 로그인 내역 자체가 없었다. [대장,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가설은 둘이었다. 하나는 한수영이 원고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 둘은 지구의 시스템이 드디어 마비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든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동기화 중인 세계선으로 파일이 자동 전송 중입니다.] 벌써 원고의 최신 연재분이 다른 세계선으로 전송되었다. 가장 빠르게 연재를 시작한 세계선에서는 휴재 공지가 올라온 곳도 있었다. 갑자기 이야기가 떠오르질 않자, 당황한 작가가 휴재를 선언한 것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평정심을 잃은 작가들이 한수영이 쓰지 않은 원고를 제멋대로 창작하여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대장, 시간이 별로 없어.] 유중혁은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펴 보기도 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수영이 원고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원고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마지막을 완성해야만 한다. [특성 효과가 활성화됩니다!] [당신은 클라우드 시스템의 원고를 편집할 수 있습니다.] [원고 편집에는 다량의 개연성이 필요합니다.] 유중혁이 천천히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 시스템이 소멸 시퀀스에 접어든 후 2개월이 더 지났다. 한 번 무너진 시스템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던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고, 스킬과 성흔들도 하나씩 자취를 감추었다. 설화들의 목소리도 이제 들려오지 않았다. ―마력 엔진으로 운행되던 여객기가 동해안 상공에서 추락하여······. 아직 교체되지 않은 지난 세대의 전유물들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 내가 그렇게 교체하라고 말했는데!” 떠오른 뉴스 화면을 보던 정희원이 기어코 역정을 냈다. 한수영이 물었다. “저긴 누가 갔어?” “지혜랑 애들. 걔넨 아직 미약하지만 성흔을 사용할 수 있어서······.” 두 사람은 실시간 뉴스로 구조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이지혜와 이길영, 그리고 신유승의 모습이 보였다. 예전보다 크기가 많이 줄어든 이지혜의 거북선과 신유승의 키메라 드래곤. “파도가 너무 높아.” 속출한 부상자들이 하나둘 구조되고 있었으나, 밀려오는 파도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키메라 드래곤과 거북선. 악천후 속에서 구조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상황은 순탄치 않았다. 보다 못한 한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유상아한테 연락해서 헬기 대기시켜. 쟤들만으로는 무리야.” “벌써 연락해 놨어. 그런데 폭풍 때문에······.” 빌어먹을. 한수영은 욕설을 내뱉으며 짐을 챙겼다. ―속보입니다. 동해안 인근에 대기권을 뚫고 나타난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가······. 화면 속, 먹구름 너머로 뭔가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오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바다의 먼 곳에서 빛이 발생했다. 풍랑을 뚫고 날아간 드론들이 인근 해역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었다. 뿌연 포말 사이로 드러나는 비행 물체의 외연. 캡슐형 방주 안에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유중혁?” * 뉴스를 확인하자마자 한수영과 일행들은 곧장 동해로 달려갔다. ―외계 존재의 도움으로 부상자 전원 무사 구출······. ―문제의 외계인은 2년 전 지구를 떠났던 테러범으로 알려져······. 끊임없이 떠오르는 뉴스의 속보. 부두 쪽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멀리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구조선들이 보였다. 대형의 중심을 차지한 이지혜의 거북선. 이지혜와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너······!” 낯선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녀석의 더벅머리가 군데군데 희게 새어 있었다. “오랜만이군.” 한수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멈칫거리다, 저도 모르게 쏘아붙였다. “임무는? 왜 벌써 돌아온 거야?”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중혁이 버틴 세월은 그런 식으로 말해질 수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유중혁이 말했다.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빠!” 뒤쪽에서 달려온 유미아가 유중혁의 품에 안겨들었다. 유중혁은 하염없이 우는 유미아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한수영은 잠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뒤에 달고 온 건 누구야?” 그러자 유중혁의 뒤쪽에 있던 소녀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진짜······ 또 못 알아보네.” 한숨을 푹 내쉰 소녀가 지겹다는 듯 중얼거렸다. “바앗.” * 유상아가 직접 리무진을 끌고 일행들을 태우러 왔다. 이송 도중 이설화에게 건강검진을 받으며, 유중혁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지구를 떠나고, 세계선을 표류하고, 이계의 신격들에게 도움을 받고, 암흑 단층에서 비유를 만나고, 마침내 세계선 일주를 완수하기까지. “······설화 에너지가 다 떨어져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다.” 아무래도 시스템의 소멸은 우주에 있던 유중혁에게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대체 우주에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거야?” “궁금한가?” 유중혁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 같은 것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지극히 유중혁답지 않은 그 모습에 한수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웃어?” “걱정하지 마라. 갈 수 있는 세계선은 모두 방문했다. 비유의 도움으로 실시간 링크를 걸어뒀으니, 소설은 그곳의 작가들이 순차적으로 업로드하고 있을 거다.” 유중혁의 말에, 대화를 엿듣던 일행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지점이 남아 있었다. “전부 전송한 거야? 마지막 원고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어떻게 됐는데?” “네놈이 보내주지 않은 그 원고 말인가?” “그래! 네가 고칠 수 있는 그 원고 말이야!” 한수영이 기어코 역정을 냈다. “너도 작가 특성 가지고 있었잖아. 내 소설 쭉 따라 읽었으면, 완결이 어떻게 나야 할지는 잘 알고 있었을 거 아냐. 응? 썼지? 네가 대신 쓴 거지?” 유중혁은 그런 한수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유중혁은 묵묵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수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 너 설마―” “내가 그것을 썼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무슨 개소리야 이 자식아! 당연히―”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희망을 결말로 쓰는 것이, 정말 온당한 일이라고 믿는 건가?” 순간적으로 굳은 한수영을 보며, 유중혁이 계속해서 말했다. “한수영.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그 이야기는 우리가 살았던 삶과는 다르다.” “······너, 누가 그걸 몰라서―” 한수영도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야말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장이 쌓일 때마다 느껴지는 괴리감. 아무리 정확한 단어를 쓰고, 고심한 표현을 써도 이야기 속에 그들이 기억하는 시간을 온전히 담는 것은, 한때 이 세계에 살았던 김독자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설화를 이용해 마지막 에피소드를 써보려고 했었다. 너희가 그랬듯이. 하지만.” 김독자를 재현하기 위해, 일행들의 설화가 모였다. 한 조각, 두 조각. 그들이 기억하는 문장들이 쌓여 가상의 김독자가 되었다. 「······우리 애 어릴 때 이야길 듣고 싶다고?」 「내가 기억하는 독자 아저씨는······.」 「형이 그때 그랬다니까요! 진짜에요!」 1퍼센트의 김독자, 다시 2퍼센트의 김독자. 많은 사람들이 김독자를 기억하고 있었고, 그렇게 모인 김독자는 어쩌면 99퍼센트의 김독자가 될 수도 있었다. “우리가 만든 이야기로 김독자가 살아 돌아온다 한들, 너는 정말 그것이 김독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나?”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1퍼센트의 김독자.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그 김독자는, 이 우주의 어디에 남게 되는 것일까. “영혼이 흩어지기 전에도, 김독자는 ‘가장 오래된 꿈’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나? 그 녀석은, 왜 자신의 행복을 상상하지 않았는지.” 한수영이 발작적으로 대꾸했다. “······가장 오래된 꿈이라고 해도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상상할 수는 없어. 꿈의 대부분은 무의식이라고!” “그렇다면 김독자의 무의식은, 이 결말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단 한 번도 자신의 행복을 상상해본 적 없는 존재. 그들이 알고 있는 김독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알아! 김독자가 그런 놈이란 거. ······넌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왜······” 뭔가가, 발등으로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다. 소리를 지르고, 유중혁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오랜 피로감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흘러가듯 들려온 유중혁의 목소리에, 한수영이 고개를 들었다. “네 이야기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수영은 붉어진 눈으로 유중혁을 노려보았다. “너 같은 놈한테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어.” 멀리서 공단의 정경이 보였다. 그들의 집. 한때 모든 <김독자 컴퍼니>가 모여 살았던 곳. 누군가의 불가능한 꿈이 만들어 낸 장소. 모두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운전대를 잡은 유상아가 말했다. “·····그렇게 된 거군요.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중혁 씨.” 아무도 우는 사람은 없었다. 유중혁의 선택을 탓하는 사람도 없었다. 슬픔이 희석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일행들은 그만큼이나 강해진 것이다. 유중혁뿐만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쓰고, 다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리고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읽어주기를 기대하면서, 일행들은 다시 남은 시간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꿈꿨던 기적이 눈앞에서 사라져도 무너지지 않을 용기. 단지, 저 우주 너머에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제 그들은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지혜가 물었다. “······근데 그 소설, 인기 있었어요?” “나쁘지 않았다.” “독자 아저씨들이 좋아했을까요?” “야 시커먼 놈! 환생한 독자형 본 적 있어? 어땠어?”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걸 물어보려는 듯, 일행들의 질문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유중혁이 대답했다. “환생한 김독자를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창밖으로 지나치는 김독자 동상을 보며, 유중혁이 말을 이었다. “놈은 분명 이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다. 그런 기분이 든다.” “독자 아저씨 짜증내고 있겠다. 결말 또 못 봐서······.” 다른 세계선의 김독자들에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기억될까. 한수영은 알 수 없었다. 좋은 결말을 낸다는 건 헤어지는 연인에게 이별의 이유를 납득시키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니까. “······다른 세계선의 독자 씨들이 여기로 쳐들어오는 거 아냐?” 그러자 누군가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일행들 사이에 깊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유상아가 타이밍 좋게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빗소리처럼 떨어지는 반주. 일행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것만이, 지금의 그들이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예의였다. 한수영은 그 무거운 다정함 속에서 자신의 노트북 안에 담겨 있을 소설을 생각했다. 마지막 편이 없는 이야기. 이제 그 누구도, 그 소설의 결말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때로 이 세상에는 그런 이야기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 다시 한집에서 살면 어때요?” 누군가의 목소리에, 일행들이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한수영도 깨닫고 있었다. 「이것이 김독자가 그들에게 준 이야기였다.」 일행들은 일상을 되찾았고, 유중혁은 돌아왔다. <김독자 컴퍼니>의 모험은 여기까지다.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이 보고 싶었던 결말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한수영은 불현듯 유중혁 쪽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네 ■■는 뭔지 알았냐?” “아직. 하지만 이젠 꼭 그걸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기묘한 감각이 엄습한 것은 그때였다. 어디선가 츠츠츳, 하는 소리가 들렸다. 「··················.」 희미한 노래처럼 귓가에 어른거리는 소리. 유상아가 스피커를 끄는 순간, 앞 좌석에 앉아있던 비유의 모습이 바뀌었다. [······바앗?] 비유가 커다란 솜털 인형으로 변신해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차에 탑승하기 전, 비유가 시스템 소멸로 인해 변신 기능이 마비되었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어?” 허공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점점 더 명료해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설화가 이야기하는 소리였다. “······뭐야. 시스템은 부서졌을 텐데?” 한수영이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유중혁 또한, 똑같은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설화, ‘왕이 없는 세계의 왕’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차창 밖의 하늘로, 눈부신 활자들이 무리지어 흘러가고 있었다.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설화였다. “유상아!” 유상아가 엑셀을 강하게 밟았다. 한수영은 품속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아일렌이었다. ―수영 씨! 지금······! 전화는 주변의 잡음 때문에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설화, ‘예상표절’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시스템의 소멸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던 설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모두,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였다. 「작가가 멈춘 이야기는 정말로 끝난 것일까.」 한수영은 허공을 떠다니는 활자들 올려다보았다. 개별적으로 존재할 때는 의미를 가지지 못했던 활자들. 그런 활자들이 하나둘 서로의 짝을 찾아 이어지고 있었다. “······끊어진 필름 이론?” 공단 내로 진입한 일행들이 동시에 리무진에서 내렸다. 일행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쌓아온 설화들. 그들이 이야기해온 설화들이 곁을 스치고 있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리 그들이 노력해도 ‘김독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99퍼센트의 김독자를 만들어도, 채울 수 없는 1퍼센트는 늘 존재한다. 그런데 세상에 단 한 사람, 그 마지막 1퍼센트를 채울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어떨까. 저 먼 우주의 무의식으로 흩어진 활자들을 가진 존재. “수영 씨! 저쪽!” 멀리, 이설화의 병원이 보였다. 유유히 흘러가는 설화들이 그들을 안내했다. 설화들이 그들이 아는 병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한수영은 생각했다. 작가가 쓰지 않으면, 이야기의 결말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대 설화, ‘신화를 삼킨 성화’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읽는 이들이 정말 그 이야기의 결말을 상상하지 못할까. 한수영은 굳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 이야기. 그 이야기의 끝에서, 그녀가 모르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의 상상이 작가의 문장을 앞지르는 순간이 온다면.」 아직 스킬과 성흔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한수영은 금세 숨을 헐떡였다. 유중혁이 그런 그녀의 곁을 보조하며 달렸다. 뛰듯이 계단을 오르다 신유승이 넘어졌다. 일행들의 손을 뻗어 그녀를 일으켰다. [거대 설화, ‘빛과 어둠의 계절’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거대 설화, ‘잊혀진 것들의 해방자’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들이 쌓아온 거대 설화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었다. 이름 붙여지지 않았던 <김독자 컴퍼니>의 마지막 설화가 감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을 노래하고 있었다. 오래전 분리된 이들이 다시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 누군가를 대신해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절망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다른 이가 되어주고자 하는 것.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주고 있었다. 차오르는 숨 속에서, 한수영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 이야기가 너를 살릴 수만 있다면.」 네가, 조금의 기억이라도 되찾아, 우리를 다시 한번 기억해준다면. “저기에요!” 나는 언제까지고 영원히, 너를 위한 종장을 쓰겠다고. 숨을 헐떡거리며 도착한 병실 앞. 지난 4년간 매일같이 방문했던 바로 그 방 앞에, 마침내 한수영은 섰다. 한발 늦게 계단참을 뛰어 올라온 일행들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한수영은 그들을 보며, 미처 쓰지 못했던 결말의 마지막 문단을 떠올렸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정희원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한수영!”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일행들. 함께 동해에 가지 못했던 동료들도 창밖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떨리는 한수영의 손이 문고리를 잡았다. 두려웠다. 만약 이 너머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떨까. 그저, 이 모든 것이 달콤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면. 곁을 돌아보자, 유중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이 너머에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든, 이제 그들은 그것을 볼 준비가 되었다. 삐걱거리며 열리는 문. 활짝 열린 창밖으로 희미한 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밤새 수정하던 원고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눈부시게 흩어지는 활자들. 그녀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가 그곳에 있었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쓰고 싶었던 문장. 그 문장을 생각하며, 한수영은 바보처럼 웃었다. 「이것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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