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화
518화
유중혁은 곁의 남자가 누르는 포털 사이트의 기사를 보고 있었다.
―프로게이머 유중혁, 언제까지 잠적할 것인가?
팀 내의 불화와, 감독의 갑질로 인한 횡포. 남들은 알지 못하는 몇 가지 사정이 한꺼번에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일이었고, 생각해봤자 답이 없는 일이었다.
―집 주소를 찾았습니다.
스마트폰에 떠오른 문자 메시지. 얼마 전 흥신소에 의뢰했던 그의 부모님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모처럼 밖에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유중혁은 자신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그를 낳은 것은 누구인지, 그를 버린 것은 누구인지. 성공가도를 달리는 그에게, 여동생을 떠맡긴 것은 누구인지.
유중혁은, 그것이 너무나 알고 싶었다.
―응? 여기 그런 사람들이 살았었나?
―에잉, 나도 몰라. 언제적 일인데.
막대한 돈을 써서 흥신소에 의뢰를 넣었지만, 돌아온 것은 빈 집의 주소뿐. 흥신소에서도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마치 이 세계에서 증발한 것처럼 사라진 그의 부모.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부모에 대한 기억도, 어린 시절의 마땅한 추억도 없이, 28세의 유중혁은 홀로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성인으로 조형된 존재처럼.
덜컹거리는 3호선 전철 안에서, 유중혁은 처음으로 철학적인 고민에 직면했다.
‘나는······ 대체 누구지?’
그것이 유중혁이 곧바로 행동하지 못한 이유였다.
“흐으······!”
“으아아아아아아!”
소란을 알아챈 것은 조금 후의 일이었다.
꾀죄죄한 턱수염을 가진 거한. 그의 손에 쥐어진 수제 폭탄과, 틱틱거리는 라이터의 줄날 바퀴.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 후에야, 유중혁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깨달았다.
「테러」.
지하철이 암전된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열차가 급정거하며, 주변이 어둠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유중혁은 팔뚝의 솜털이 비죽 솟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테러인가? 정말 말로만 듣던 테러가,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대피는 어디로?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아니면―
[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런 유중혁의 고민은, 허공에서 나타난 작은 CG 덩어리와 함께 조심스레 소멸했다.
[이 인사도 매번 하려니까 지치는데······ 자, 이 상황은 영화 촬영도, 테러 사태도 아닌······ 응?]
훗날 ‘도깨비’라고 자신을 소개하게 되는 녀석들.
그 미지의 존재가 허공에서 열차 안의 사태를 보며 대소하고 있었다.
[뭐야, 이거? 하하하핫! 성좌님들. 여기 좀 보세요! 시나리오도 안 나왔는데 이미 뭔가 재밌는 게 벌어지고 있네요!]
나른하고 잔혹한 목소리로 도깨비가 웃었다.
[이 칸은 아주 기대가 되는군요. 부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 주세요.]
[메인 시나리오가 도착했습니다.]
+
<메인 시나리오 # 1 ―가치 증명>
분류 : 메인
난이도 : F
클리어 조건 : 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시오.
제한시간 : 30분
보상 : 300코인
실패시 : 사망
+
그리고 지옥이 시작되었다.
*
······비형 자식, 이땐 좀 귀엽네. 이런 적도 있었지.
열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을 들으며, 나는 때아닌 감회에 젖어 있었다.
「지금 나랑 <스트림 계약>을 맺잔 말입니까?」
녀석을 처음으로 만나고, 전속 계약을 나눴던 때가 어제 일 같았다.
그때는 정말 운이 좋았지. 그때 계약에 실패했다면······.
「“김독자. 너와 나는 동료가 아니다.”」
그날, 비형은 죽지 않았겠지.
「“네 설화를 끝까지 보고 싶었다.”」
아마 이 고통은, 저기서 떨고 있는 ‘유중혁’이 앞으로 천 번이 넘는 회귀를 겪으며 느끼게 될 감정일 것이다.
“······시나리오? 이게 대체 뭐야?”
첫 번째 시나리오를 받은 3707칸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허공의 패널에서 방영되는 다른 지역의 난투들.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죽는 시나리오.
“게, 게임······ 이건 게임이다!”
테러범 최한규가 외치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테러범 최한규. 그에 관한 정보는 ‘멸살법’에서 유중혁의 회상을 통해 언급된 적이 있었다.
「최한규가 살아나면, 놈은 훗날 ‘폭살괴마’로 진화하게 된다.」
허리춤에서 망치를 꺼낸 최한규가, 바로 곁에 있던 중년인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허망하게 무릎이 꺾이는 중년인.
“이, 이렇게 하면······.”
[화신 ‘최한규’가 ‘최초의 살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눈앞에 쏟아지는 코인을 보며, 최한규가 각성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스타 스트림>에 가장 빠르게 적응하는 것은 현실 세계의 부적응자들이었다.
“다, 다들 봤어? 바, 방금 내가.”
“으아아아! 살인! 살인이다!”
기겁하며 물러서는 사람들을 보며, 최한규의 고개가 갸웃했다.
“다, 다들 왜 가, 가만히 있어? 나, 나만 이상한 것 같, 같잖아.”
“오지마!”
“호, 혹시. 이, 이게 필요해?”
그는 사람들을 향해 히죽 웃더니,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있던 공구들을 사람들을 향해 던졌다. 그는 다시 한번 스패너를 휘둘러 이미 죽은 남자의 등을 푹푹 찍었다.
“쉬, 쉬워. 이, 이렇게. 이렇게 하면.”
남자의 등에서 흥건한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모두 부, 부자가 되는 거야.”
허공의 타이머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잔여 시간이 감소했습니다.]
[현재 남은 시간 10분.]
유중혁은 자신의 발치까지 굴러온 스패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최한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그냥 내가 다, 주, 죽여 줄까?”
그리고 잽싸게 손을 뻗은 사내 하나가, 최한규가 던진 망치를 손에 넣었다.
“시, 시발······ 나도 모르겠다!”
“아저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사내는 최한규가 던진 스패너를 쥐고 곁의 사람들을 무차별로 가격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유중혁이 살아남았던 3707칸의 현장이었다.」
“미,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으아아아아아!”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속에, 사람들은 현실을 깨닫고 있었다.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극소수의 성좌들이 해당 칸의 정경에 만족합니다!]
[극소수의 성좌들이 화신 ‘최한규’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수식언을 밝히지 않은 한 성좌가 화신 ‘최한규’에게 100코인을 후원합니다.]
사람들을 향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 최한규.
그리고 나는, 그런 최한규의 곁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 독 자」
나는 최한규의 목덜미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알고 있으니까 걱정마.’
나는 이 이야기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허리를 숙인 유중혁이, 최한규의 품에서 떨어진 스패너를 주워들고 있었다.
유중혁의 표정에 어린 고뇌가 여실히 느껴졌다.
누군가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표정.
하지만 왜일까, 그 표정은 내가 알고 있던 유중혁과는 달랐다. 내가 아는 유중혁은 누군가의 배신에 치를 떠는 녀석이었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고, 쉽게 동료를 만들지 않는 유중혁. 늘 최선의 길을 도모하고, 어차피 배신할 사람들이라면 미리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유중혁.
「그랬기에, 3회차의 유중혁은 같은 칸의 사람들을 망설임 없이 몰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유중혁은, 3회차가 아니었다.
4회차도, 5회차도, 1863회차도 아니었다.
「그는 0회차였다.」
0회차의 유중혁.
그의 발이 달리기 시작했다. [주작신보]도 [바람의 길]도 사용할 수 없는 발.
타깃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바닥에 엎드려 몸을 떨고 있는 대학생, 노약자석 옆에 숨은 중년인. 다른 사람을 공격하느라 뒤돌아볼 틈이 없는 회사원.
유중혁은 그 모든 이를 지나쳐 달렸다. 그리고
「이 칸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적을 타깃으로 삼았다.」
“으흐······ 흐?”
허공에서 날아드는 스패너를 보며, 최한규가 비릿하게 웃었다. 가뿐하게 물러선 최한규의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서바이벌 나이프가 튀어나왔다. 스팟, 하는 소리와 함께 유중혁은 간발의 차이로 칼날을 피했다.
「왜 유중혁은 그런 선택을 했는가.」
나는 모른다. 저토록 겁에 질린 녀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최한규는 아직 여러 개의 연장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수제 폭탄도 가지고 있었다. 반면 유중혁이 가진 것은 어린애 팔뚝만한 스패너 하나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0회차의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이곳에서 유중혁은 죽지 않는다.
그 모든 비극을 겪기 전까지, 그리하여 마침내 저 아득한 회귀의 굴레로 들어가기 전까지, 유중혁은······ 죽지 않을 것이다.
[화신 ‘유중혁’이 특성 ‘프로게이머’를 개화합니다!]
녀석의 전용 특성이 개화하고 있었다. 나도 잘 알고 있는 특성이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게임처럼 수치화해 판단하는 스킬. 마치 게임 아바타를 움직이듯,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스킬.
유중혁의 스패너가 최한규의 팔목에 명중했다. 짧게 비명을 지른 최한규의 품에서 수제 폭탄이 굴러떨어졌다.
당황한 최한규의 목을 향해, 유중혁의 스패너가 움직였다.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유중혁의 재능으로 인해 계산된 완벽한 역습.
하지만 그런 유중혁도, 단 하나 계산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화신 ‘최한규’가 900코인을 ‘체력’에 투자합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세계의 시스템이었다.
“아, 아프, 네.”
최한규의 목은 검붉은 자국이 남았지만 부러지지 않았다.
근육을 부풀린 최한규가 유중혁의 목덜미를 잡았다. 새파랗게 질린 유중혁의 몸이 허공에 매달렸다.
유중혁의 멱살을 틀어쥔 채, 최한규가 다른 손으로 망치를 꺼내 들었다.
“죽, 어.”
그 순간, 유중혁은 바닥에 굴러떨어진 ‘수제 폭탄’을 바라보았다.
나는 유중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깨달았다.
유중혁이 손에 쥔 스패너를 던진 것과, 내가 움직인 것은 거의 동시였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느릿하게 날아오는 스패너가, 정확히 수제 폭탄의 중심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폭탄이 터져도 유중혁은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읽은 것이 맞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런데 왜일까.
······왜 이렇게, 내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일까.
‘제4의 벽.’
허공에서 츠츠츳,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을 이었다.
‘이 세계에 유중혁의 배후성은 존재하는 거야?’
「존 재 해」
이 세계에는 ‘가장 오래된 꿈’이 있다.
나보다 더 오래전에 ‘가장 오래된 꿈’이 된 존재. 어린 시절의 나. 혹은 ‘어린 시절의 나’로 추정되는 무언가.
‘그런데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이상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나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나리오의 모든 것. 단 하나의 화신에서부터, 저 하늘을 뒤덮은 모든 성좌들까지.
그런데, 단 하나만은 느낄 수 없었다.
‘가장 오래된 꿈은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제4의 벽]은 대답이 없었다.
회전하며 날아온 유중혁의 스패너가, 이제 수제 폭탄의 바로 목전에 도달해 있었다.
‘설마······.’
「‘가장 오래된 꿈’은 어떻게 0회차의 유중혁과 계약할 수 있었는가.」
머릿속에서, 그동안 쌓아온 의문들이 폭발하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꿈’은 ‘멸살법’을 통해 꿈을 꾼다.」
어린 시절의 나는 ‘멸살법’을 읽고 이 세계를 상상했다.
「그리고 ‘멸살법’은, 유중혁의 3회차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였다.」
그 녀석이, ‘멸살법’의 0회차를 제대로 상상할 수 있었을까?
원작에는 없는 이야기를, 읽지 않은 세계를 그릴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유중혁의 0회차에 나타났던 ‘배후성’은 대체 누구인가.」
폭탄이 터졌다. 비산하는 조각들이 최한규의 등에 꽂혔고, 서로를 난도질하는 사람들의 육신에 꽂혔다. 굉음과 함께 지하철의 천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파편 조각 중 몇 개는, 정확히 유중혁의 심장과 목을 노리고 쇄도했다.
츠츠츠츠츳!
[당신은 ‘최후의 벽’의 주인입니다.]
[세계선에 간섭하기에 당신의 ‘장악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계선의 개연성이 당신에게 대항합니다!]
나는 개연성을 무시하고 날아드는 파편 조각을 움켜쥐었다. 손끝에 감도는 맹렬한 열감과 함께, 조각이 손안에서 파스스 흩어졌다.
[세계선이 알지 못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발동합니다!]
[세계가 당신의 간섭을 눈치챘습니다!]
「그 순간, 유중혁이 고개를 들었다.」
쓰러진 최한규의 밑에서 빠져나온 유중혁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유중혁은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누구······?”
[메인 시나리오 #1 – 가치 증명이 종료되었습니다.]
[기본 클리어 보상으로 300코인을 획득하였습니다.]
[채널 이용 수수료로 100코인이 감산되었습니다.]
[추가 보상 정산이 시작됩니다.]
시나리오 정산과 함께, 사람들의 머리가 폭발했다. 비산하는 혈흔 속에서, 나는 말없이 유중혁을 내려다보았다.
멀리서 신이 난 비형의 목소리와, [제4의 벽]의 경고성이 들려왔다. 개연성을 의심하는 성좌들의 메시지도 들렸다.
그리고 유중혁은, 흔들리는 눈으로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후 선택’이 시작됩니다!]
+
<배후(背後) 선택>
―당신의 배후를 선택하세요.
―선택한 배후는 당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1. 술과 황홀경의 신
2. 손톱을 먹는 쥐
3. 심연의 흑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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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성좌가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새로운 성좌가 ‘배후 선택’에 참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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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구원의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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