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342화
유중혁과 일행들이 지구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유중혁, 한수영, 이지혜, 정희원, 이현성, 신유승, 이길영, 이설화까지.
포탈을 통해 무사히 하위 시나리오로 내려온 그들이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공단]의 중심지에서 번쩍이는 스파크였다.
츠츠츠츠츳!
마치 번개라도 치는 듯, [공장]의 한가운데로 내려꽂히는 개연성의 스파크.
이지혜가 물었다.
“······대체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러나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키메라 드래곤이 날갯짓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들은 [공장]에 도착했다. 흉벽 위로 뛰어내린 일행들은 곧장 병실을 향해 달렸다.
막무가내로 뛰어 들어온 일행들을 본 비천호리가 손을 흔들었다.
“허, 벌써들 돌아오셨소?”
정희원이 물었다.
“독자 씨······ 아니, 유상아 씨 어딨어요?”
“그분은 저쪽에― 그보다 여러분도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소만······.”
“우린 멀쩡해요. 일단 현성 씨만 부탁해요.”
“자, 잠깐만요! 저도 피부만 좀 탔지 멀쩡―”
“닥치고 누워 있어요.”
정희원과 일행들은 새까맣게 타버린 이현성을 침대차에 내던진 뒤, 유상아의 병실을 찾아갔다.
분명, 김독자라면 제일 먼저 그곳으로 향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독자 씨! 상아 씨!”
“여, 여러분! 그렇게 막 들어오시면······!”
그러나 도착한 곳에서 일행들이 마주한 것은 전혀 뜻밖의 광경이었다.
한수영이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유상아의 병실에는 최소한의 의원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여전히 부서지고 있는 유상아의 영혼. 김독자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쿠구구구구.
한수영의 몸에서 새카만 격이 흘러나왔다.
“묻잖아.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 위압감에 의원들이 묻지도 않은 말까지 줄줄이 모두 토해냈다. ‘귀환전쟁’에서 있었던 일부터, 김독자가 돌아온 후의 일까지.
“······그래서, 이수경 씨 먼저 처치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거의 마지막 단계로―”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한수영의 신형이 움직였다. 누구도 말리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근처의 의자 위로 뛰어오른 한수영은, 자신보다 키가 큰 사내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이 개자식. 넌 다 알고 있었지?”
“······.”
“왜 제대로 이야기 안 했어? 이런 줄 알았으면―”
“말했다면, 네가 바꿀 수 있었나?”
유중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굳어진 한수영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알았다면 바꿀 수 있었는가?
모른다. 한수영은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유중혁이 다시 한번 물었다.
“너 따위가, 바꿀 수 있냐고 물었다.”
“이 개새······!”
이번에는 유중혁도 양보하지 않았다.
허공에서 부딪친 두 사람의 격이 주변을 황폐화시키려는 그 순간.
정희원이 두 사람을 막아섰다.
“둘 다 멈춰요! 지금 여기 유상아 씨 안 보여요?”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분노합니다!]
유중혁은 한수영의 손을 뿌리치며 의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김독자는 어디냐.”
그 물음에, 한수영도 의원 쪽을 돌아보았다.
의원들은 대답 대신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았다. 시선 끝에는 이수경의 수술이 진행 중인 병실이 있었다.
한수영이 물었다.
“저 방에 김독자도 같이 있어?”
“그렇습니다. 아일렌 님께서 필요하다고 하셔서······.”
일행들은 수술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수술실 문으로 다가갔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병실 안쪽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아일렌과 김독자가 보였다. 조명의 역광 때문에 김독자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수척한 것만은 확실했다.
떨리는 김독자의 손과, 조금씩 낮아지는 시선.
먼저 입을 연 것은 신유승이었다.
“······아저씨 상태가 좀 이상해요.”
*
수술이 시작된 후, 집도의를 맡은 아일렌이 제일 먼저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함께 들어와 주셔야 합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네.”
병실에 들어서자, 부서진 어머니의 파편들이 보였다.
풍백을 강림시켜 귀환자들을 물리친 어머니는, 모든 설화의 맥이 끊어진 상태였다.
「······독자야.」
어디선가, 그런 말이 들려온 것도 같았다. 어쩌면 어머니의 설화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듯 생각했다.
‘걱정마세요. 난 누굴 택한 게 아니니까.’
최대한 빠르게 정확하게 어머니의 영혼을 수복해야 한다. 그래야, 유상아를 살릴 시간을 벌 수 있다.
지금부터는 집도의를 맡은 아일렌의 시간이었다.
“의원들은 마력 공급을 시작하세요.”
아일렌은 품속에서 작은 붓을 꺼내든 뒤, 허공에 떠다니는 설화 파편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수술 자체는 간단했다. 흩어진 설화 파편들을 모으고, 그 설화들을 맥락에 맞게 이어 붙이는 것.
맥락에서 빠져, 그 의미를 잃어버린 문장들에게 제자리를 되찾아주는 일.
말은 쉽지만, ‘멸살법’ 전체를 뒤져도 이 정도의 대수술을 행할 수 있는 존재는 손에 꼽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가 바로 내 옆에 있는 ‘설화전문가’ 아일렌 메이크필드였다.
[설화, ‘이야기를 수선하는 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손끝에 닿는 모든 단어가 제자리를 되찾으니」
설화를 이어 붙이는 것도 결국은 설화의 몫이다.
아일렌의 붓이 움직일 때마다, 부서진 설화들이 하나둘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 설화들의 접착을 담당하는 것은, 내가 구해온 성유액들이었다.
[아이템, ‘소마’가 효력을 발휘합니다!]
[아이템, ‘넥타르’가 효력을 발휘합니다!]
집도 시간이 사십여 분을 넘어서자, 아일렌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멸살법’에서도 아일렌의 집도 장면은 등장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살짝 감탄했다.
전반적인 설화의 수복이 끝나자, 아일렌은 선반에 놓인 물 한 모금으로 입을 축였다.
나는 그런 아일렌을 향해 물었다.
“······저 파편은 맥락에 안 맞는 것 같은데, 괜찮은 겁니까?”
보는 내내 내가 조마조마했던 것은, 아일렌이 이어 붙인 설화의 파편들이 완벽하게 정갈하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입술을 가볍게 닦은 아일렌이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그게 인간이란 것이니까.”
확실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인간은 생각도 기억도 정연하지 못한 존재니까.
그런데, 아일렌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붙이지 않으면 큰일 나는 문장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저런 부위들.”
아일렌이 어머니의 영혼체를 가리켰다.
수복된 다른 부위와는 달리, 반쯤 무너진 심장은 아직 시술이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수경 씨는 회복시키기에 좀 늦었어요. 벌써 ‘테마’가 손상된 상태라.”
“테마요?”
물으면서도, 언뜻 ‘멸살법’의 내용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사람의 영혼은 모두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들은 적이 있습니다.”
페르세포네에게도 들은 이야기였다. 아일렌이 계속해서 말했다.
“모든 영혼에는 그 영혼을 꿰뚫는 ‘핵심 테마’가 존재해요. 그 영혼의 본질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
뒤늦게, ‘멸살법’의 문장이 명료하게 떠올랐다.
「모든 이야기는 ‘테마(Thema)’가 있다. 심지어 테마가 없는 이야기조차, ‘테마가 없다’는 것이 테마가 된다.」
“이 영혼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만이, 테마를 건드릴 수 있어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설마 제가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맞아요.”
아일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테마’는, 저 영혼을 가장 잘 아는 사람만이 수복할 수 있어요. 저건 마왕님이 직접 하셔야 해요. 제가 설화를 공유해 드릴 테니······.”
아일렌의 뒷말은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설화, ‘이야기를 수선하는 자’가 일시적으로 당신의 손 끝에 깃듭니다.]
내가, 직접해야 한다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요. 당장 시작해야 합니다. 의원들, 마력 공급 준비하세요!”
나는 멍하니 붓을 쥔 채, 어머니를 영혼체를 바라보았다.
수의를 입고 영면에 든 사람처럼, 고요히 눈을 감은 어머니.
못 본 사이 늘어난 주름과, 내가 모르는 상처들.
강직한 눈썹과, 마른 볼우물.
아일렌이 말했다.
“책이라고 생각하세요. 눈앞의 설화들이, 전부 한 권의 책에서 나온 거라 생각해보세요.”
눈앞을 부유하는 난해한 문장들을 보며, 나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애썼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듯, 나는 눈을 감은 채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래, 그 책이 읽고 싶니?”」
보얗게 쌓인 먼지를 치우고 커버를 열었을 때, 부서질 것처럼 낡아버린 첫 페이지. 다시 눈을 뜨자, 둥둥 떠 다니던 설화들이 내 손 끝으로 모여 있었다.
「“독자야.”」
한 문장씩, 파편들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천천히 붓을 움직인다. 어머니를 떠올린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
퀴퀴한 곰팡이가 피어 있던 그 말들을, 오래된 기억의 우물 속에서 하나둘 길어 올린다.
「“독자야, 너는 어떤 인물이 제일 좋았니?”」
기억난다.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읽었던 책들.
나는 무의식 중에 붓을 움직였다.
흘러넘친 문장들이, 내 붓을 통해 이어져 간다.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해피 엔딩일 수는 없단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만들어 준 사람.
내가 저지른 죄를 대신해 치렀고, 감옥에 갔던 사람. 우리의 이야기로 책을 쓴 사람.
보고 싶었던 사람. 원망했던 사람.
내 어머니였지만, 오히려 내게서 가장 멀리 있었던 사람.
「“독자야.”」
거실에 낭자한 피, 떨어지는 칼의 감촉.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
「“다시 읽어보렴.”」
그리고 거기까지 완성한 순간, 나는 붓을 멈췄다.
여전히 어머니의 ‘테마’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구원의 마왕님?”
내가 아는 ‘어머니’의 이야기도, 여기까지였다.
「“······죄라. 그것도 죄라면 죄겠지.”」
「“수감자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가?”」
「“우습구나, 세상의 정의라는 것이.”」
여전히 무수한 설화 파편들이 내 주변을 떠돌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더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맥락에서 온 파편들이었다. 내가 듣지 못했기에, 알 수 없는 문장들이었다.
나는 갑자기 처음 읽는 책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것처럼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알고 있는 ‘이수경’은, ‘내 어머니’로서의 ‘이수경’뿐이었다.
붓을 쥔 손이 떨린다. 그 떨림이, 나를 대신해 말하고 있었다.
할 수 없다고.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뒤늦은 후회가 파도처럼 범람했다.
더 이야기했어야 한다.
더 말했어야 했고.
더 많은 것을, 나눴어야 했다.
붓을 쥔 손의 고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다시 무너져 가는 어머니의 설화들이 보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머니의 설화들이,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떠돌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단 한 사람조차.」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나도 아일렌도 아닌 누군가가, 작은 붓을 쥔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건 나한테 했던 말이군.”
하늘색 수감복 위로 멋드러진 정장을 걸친 중년 여인이 그곳에 있었다.
조선제일술사를 배후성으로 둔 조영란이었다.
그녀의 옆으로도 또 다른 이가 붓을 쥐고 있었다.
“흘흘, 설마 빵에 있던 시절을 그리워할 줄은.”
피스 랜드에서 함께 했던 이복순이 웃었다.
병실 안으로 몇몇 방랑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붓을 쥐고, 성유액을 바른 뒤 문장들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내게는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그녀들에겐 자유롭게 흘러들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채워지는 퍼즐들.
모든 방랑자들이 ‘이수경’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쩐지 시야가 흐려져서,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서 내가 몰랐던 어머니의 삶이 그려지고 있었다.
내가 알아야 했지만, 알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방랑자들’조차도 모든 ‘테마’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몇 개의 파편들.
곁에서 누군가가 내 손을 잡은 것은 그때였다. 붓을 쥔 내 손이 멋대로 움직이더니 내가 모르는 문장을 이어 붙였다.
당황한 내가 뭐라 말하려는 순간, 손의 주인이 내 말을 잘랐다.
“김독자, 넌 네가 무슨 신인 줄 알지.”
투덜거리는 목소리에서 레몬 사탕 향이 났다.
답답하다는 듯 내 손에서 붓을 빼앗은 한수영이 말했다.
“세상엔 네가 모르는 것도 있어, 멍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