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9화

329화 “시나리오를 부수다니? 당신은 대체 무슨 말을······.” 무슨 뜻인지, 사람들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시나리오를 깨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도 벅찼던 존재들이 그런 발상을 할 수 있을 턱이 없겠지. 시나리오는 이미 그들에게 삶의 조건이 되었으니까. [정말 호탕한 성좌로군! 그대는 <올림포스>에 맞설 생각인가?]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익숙한 거한이 있었다. 커다란 일 장 팔 척의 거창에 덥수룩한 수염. 내가 알고 있는 성좌였다. “그렇습니다.” [크하하핫!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대의 이름을 묻고 싶군.] “저는 ‘구원의 마왕’입니다.” 구원의 마왕. 내 수식언을 들은 몇몇 화신과 성좌들이 곧바로 반응해왔다. “설마 ‘마왕 선발전’의······?” “수, 수르야를 쓰러트렸던 마왕이다!” 거창의 사내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나는 ‘장판파의 호신’이라 하네.] “장판파의 호신! 장비도 있었어!” 장비는 자신의 거대한 흉부를 탕탕 두드리며 외쳤다. [이 장모가 그대를 돕고 싶네. 안 그래도 유치한 놀이에 김이 샌 참이었거든!] 장비가 <올림포스>의 테마파크에서 수확한 물품들을 내던지며 말했다. 어린 히드라의 머리와 황금 사과, 가짜 황금 양털 같은 것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장비 정도의 위인급 성좌라면, 분명 큰 전력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히든 시나리오, ‘신화 전복’이 메인 시나리오에 영향을 끼칩니다.] 나는 다른 화신들과 성좌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이제 선택하시죠.” 무시무시한 거신들이 뿜어내는 격과, 바다를 건너 달려오는 아르고호 사이에서, 화신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 성운의 꽁무니에 붙어, 평생 그들의 수족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이 신화 속의 거신들과 함께 새로운 ‘신화’의 주인이 될 것인지 말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성운이 받은 ‘메인 시나리오’의 내용이 갱신됩니다!] + <메인 시나리오 # 60 ―기간토마키아> 분류 : 메인 난이도 : SSS+ 클리어 조건 : 고대의 거신들이 <기간토마키아>의 전장에 도래했습니다. 당신들은 ‘거신’ 또는 <올림포스>의 편을 들어 전장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적장의 목을 베어, 새로운 신화의 등장을 <스타 스트림>에 선언하십시오! 제한시간 : ― 보상 : 새로운 거대 설화, ??? 실패 시 : 보유 중인 ‘거대 설화’의 일부 소멸 * 적장의 화신체를 멸살할 시 해당 시나리오는 종료됩니다. * 세력별 수장은 각각 2명입니다. + 시나리오 수주와 동시에, 내 머리 위에 초록색 화살표가 떠올랐다. [당신은 이미 세력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거신’의 세력을 이끄는 두 수장 중 하나입니다.] 주변의 화신들은 말이 없었다. 아마 그들 또한, 갱신된 시나리오를 받았을 것이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간만의 구경거리에 즐거워합니다.] [성좌, ‘심연의 흑염룡’이 당신의 고난을 즐거워합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전략을 궁금해합니다.] 바다 쪽에서 포격이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뾰족한 한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독자! 언제까지 폼 잡고 있을 거야? 다 뒈지는 꼴 보고 싶냐?” 나는 검을 뽑으며 거신의 어깨 아래로 내려갔다. “슬슬 시작하자고.” “어떻게 싸울 건데? 우리 쪽 전력이 압도적으로 부족해.” 한수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압도적’이라고 말할 것까진 아니더라도, 아직 나와 함께 포탈을 넘어온 거신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핵심 전력인 헤카톤케이레스의 ‘브리아레오스’는 아직 참전하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아마 그가, 나와 함께 거신 세력을 담당할 ‘수장’일 것이다. [거신들을 죽여라.] 어디선가 튀어나온 진언과 함께, 아르고 호에서 도약한 인간 영웅들이 거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기간토마키아’의 무대화가 진행됩니다.] 츠츠츠츳, 하는 스파크와 함께 주변의 정경이 뒤바뀌었다. 고대의 전장. 최초의 <기간토마키아>가 일어났던 학살의 땅이었다. <올림포스>의 성좌들이 허공을 격하고 날아왔다. 대부분은 위인급이었지만, 그들이 합세하여 거신에게 맹공격을 퍼붓자 전황은 순식간에 기울었다. 「영웅과 신의 합공에, 지고의 거신들은 무릎을 꿇으리라.」 그오오오오오! 신과 영웅들이 함께 내지른 공격에, 강맹한 기간테스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와 일행들이 거신들을 도우려 했으나, 그때마다 바다 쪽에서 날아오는 무지막지한 포탄 세례에 운신이 자유롭지 않았다. 이현성이 외쳤다. “저쪽의 설화 병기부터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화 병기 ‘아르고 호’. <올림포스>의 원정 영웅들이 타고 있는 배가, 막대한 마력을 품은 포탄들을 연달아 발사해대고 있었다. 이대로는 해상 쪽으로 접근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물론,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잊었습니까? 우리한테 누가 있는지.” 나는 일행들 사이에서 멀뚱한 얼굴로 서 있는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나?” 정확히는, 이지혜의 배후를 지키는 한 성좌를 바라보았다. [성좌, ‘해상전신’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대경한 이지혜가 소리쳤다. “······ 미쳤어? 나보고 저걸 상대하라고?” <올림포스>의 아르고 호는 이지혜의 ‘유령 함대’보다 훨씬 규모가 큰 배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초계함과 이지스함 정도의 크기 차이랄까. 그러니, 무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할 수 있어.” 나는 안다. 이지혜는, 정말로 할 수 있다. “네 배후성과 함께라면, 할 수 있어.” 한반도의 성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해상전신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한반도’에 갇혀 있었던 성좌. 나라의 이름을 등에 업어야 했고. 삶 전체를 바쳐 국가의 상징으로 남아야만 했던 성좌. 언젠가 ‘고려제일검’은 말한 적이 있었다. 한반도의 위인급 성좌들 중, 자신과 자웅을 겨룰만한 것은 충무공뿐이라고. 그런데 왜 ‘고려제일검’이 설화급 성좌가 된 후에도, 충무공은 여전히 ‘위인급’으로 남았던 것일까. [성좌, ‘해상전신’이 자신의 전우들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그가 설화급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성좌, ‘서애일필’은 ‘해상전신’이 스스로를 위해 싸우기를 원합니다.] ‘위인급’으로 시작한 성좌가 ‘설화급’이 되는 순간이 있다. 하나의 성좌가 민족이나 국가의 단위를 떠나,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이지혜의 몸에서 눈부신 광채가 솟아나고 있었다. [성좌, ‘해상전신’이 자신의 격을 개방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듯, 충무공이 품고 있던 격이 풀려나왔다. [<스타 스트림>이 성좌 ‘해상전신’을 응시합니다.] 시나리오의 하늘이 충무공을 내려다보았다. 줄곧 자신의 역량을 숨겨왔던 노련한 배우처럼, 하늘을 향한 충무공의 격은 한없이 웅장하고 담담했다. 물러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기백. [다수의 성좌들이 ‘해상전신’의 격에 깜짝 놀랍니다!] 오랜 세월 끝에, 충무공이 마침내 한반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스타 스트림>이 ‘해상전신’의 승격을 받아들입니다.] [성좌, ‘해상전신’이 ‘설화급 성좌’가 되었습니다.] “지혜야.” <기간토마키아>의 개전은, 해상제독(海上提督)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다 부숴버려.” ‘해상전신’의 기백에 휩싸인 이지혜가 검을 뽑았다. [등장인물 ‘이지혜’가, 성흔 ‘유령함대 Lv.10’을 발동합니다!] [배후성의 격이 상승하여 ‘유령함대’의 파괴력이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쿠구구구구구! 해안선을 가르고 나타난 열두 척의 배. 분명 초계함급이었을 함선들은, 어느새 구축함급의 크기로 자라나 있었다. 「병법에 이르길, 죽으려 하면 살 것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동시에 불을 뿜어대는 열두 척의 함대. 처음에는 비등해 보이던 포탄의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르고 호의 선두가 뭉개지고 있었다. 쏟아내는 포탄의 개수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선체의 외피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저 단단한 아르고 호가 흔들리고 있었다. 포탄을 방어할 화망이 갖춰지자 우리도 발을 움직였다. 거신들을 향해 달려들던 <올림포스> 측의 화신들을 베고, 전열의 앞으로 나아갔다. 더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결국 아르고 호의 영웅들이 나섰다. [모두 상륙하라!] 강렬한 진언과 함께 등장한 이는 아르고 호의 원정대장인 ‘바람의 원정왕’이었다. 아르고 호의 원정대장, 이아손. [거신들은 인간과 신의 합공을 막아낼 수 없다! 이 전쟁의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와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군세들. 나는 주춤하는 일행들 사이로 앞장서며 말했다.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우린 거신이 아니니까요.” 우린 거신이 아니다. 즉, 우리에겐 「무대화」의 영향이 없다. 커다란 덩치의 이아손이 달려오자, 우리 쪽에도 그에 맞서 달려나간 거한이 있었다. “이 덩치는 제가 맡겠습니다.” 이현성이었다. 엄청난 돌진력으로 이아손과 부딪친 이현성은, 마치 힘겨루기를 하듯 깍지를 낀 채 기합을 터뜨렸다. “하아아아아압!” 콰드드드드드! 주변의 지축이 밀려날 정도의 엄청난 힘 대결에, 이아손도 깜짝 놀란 눈치였다. ‘멸살법’의 후반으로 갈수록, 이현성은 힘 하나만큼은 그 어떤 화신이나 성좌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성좌, ‘강철의 주인’이 동조율을 높입니다!] 뿌드드득 자라난 강철의 갑피가 이현성의 전신을 감쌌다. 이현성이 이룬 [강철화]의 경지는, 가히 고절한 수준. 영웅의 주먹질에도, 이현성의 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하늘에는 드래곤을 타고 날아오른 신유승과 이길영이 있었다. 신유승은 용살의 설화를 가진 영웅들을 피해, 허공에서 브레스를 뿌렸다. 바다는 순식간에 독무로 번져갔고, 그 독무 사이로 스며든 이길영의 충왕종들이 허덕이는 적군들을 베어갔다. 독조를 사용해 영웅들을 상대하는 이설화와, [흑염]을 발동해 <올림포스>의 성좌들을 막아서는 한수영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 다들 위인급 성좌 하나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은 넘었다. 고작 열 명 남짓할 성운의 구성원들이, 저 막강한 거대 성운의 성좌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뒤쪽에서 전투를 관망하던 화신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올림포스가 밀리는 것 같은데······?” “······저런 작은 성운에게?” 내가 노렸던 효과도 바로 이것이었다. 전투는 아직 초전. 지금 확실히 전력을 어필해야, 더 많은 지원군을 불러들일 수 있다. 하지만 승리의 신 니케는 아직 우리의 편을 들어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쿠구구구구! ······결국 나타났구만. 나는 시야를 가득히 메우는 20미터 높이의 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체고는 아니었다. 휘황한 황금빛 갑옷. 망토처럼 두른 사자 가죽.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의 이름을 모를 수는 없었다. 그 장엄한 외양에 몇몇 거신들이 주춤거리며 외쳤다. [헤라클레스······!] 12신좌들조차 꺼려하는 영웅의 ‘격’이 전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주변을 덮는 새카만 그림자를 올려다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괴물을 상대하려면 이쪽도 괴물을 불러야겠지.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여기서 물러나진 않는다. “······잠자는 거신을 베기 위해 벼려진 검이여.” 나는 조용히 시동어를 외쳤다. “지금, 이곳에 강림하라.” 와라, 김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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