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화
310화
Episode 59. 김독자 컴퍼니
“유중혁, 미친놈아!”
나는 거의 괴성을 지르며 유중혁을 향해 달려갔다. 얼마나 놀랐는지 스킬의 위력을 조절할 수조차 없었다. [책갈피]를 통해 [전인화]와 [바람의 길]이 동시에 발동했고, 섬전처럼 쏘아진 내 신형은 유중혁의 몸과 그대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앙!
[백청강기]의 마력이 허공을 물들였고, 장식대 위의 별이 날아올라 바닥을 굴렀다. 내 마력을 받아낸 유중혁이 나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비켜라.”
“비키긴 뭘 비켜! 너 진짜 미쳤냐?”
어이가 없었다.
다른 등장인물들이라면 모를까, 뻔히 모든 걸 알고 있는 유중혁이 ‘별’을 건드리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46번 시나리오가 뭔지 몰라? 시나리오 제대로 안 읽었냐고!”
물론 저 유중혁이 시나리오를 제대로 안 읽었을 턱이 없었다.
“읽었다.”
“저걸 집으면 모두 끝장이야!”
“그렇지만은 않다. 대부분은 저 별을 획득하며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가니까.”
유중혁이 느릿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일말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
놈은 46번 시나리오가 처음이 아니었다.
「46번 시나리오는 같은 성운 소속이거나, 자신이 ‘동료’로 인정한 사람만 함께 참가할 수 있다.」
앞선 회차에서, 유중혁은 모든 것을 계산해 46번 시나리오에 뛰어들었다. 제약을 받기 싫었기에 대성운에 가입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이 꾸린 동료들을 모아 시나리오에 도전했다. 미래의 신유승에게 받은 41회차까지의 정보들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그런 유중혁도 단 하나, 예상하지 못한 존재가 있었다. 유중혁이 바꾼 새로운 미래에 적응하여, 유중혁의 동료로 나타난 인물.
「“당신을 믿어요, 유중혁.”」
예언자 ‘안나 크로프트’.
지난 회차에서, 그녀는 유중혁의 일행이었다.
나는 손으로 녀석을 막아서며 말했다.
“유중혁.”
괜찮아졌을 거라 생각했다.
이전의 회차와는 완연히 다른 삶을 살아오며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다.
몇 번이나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며 여기까지 왔으니, 신뢰라는 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안나 크로프트가 아니야. 널 배신하지 않아.”
「“당신이 배신하지 않을 것을 믿었어요.”」
유중혁은 안나 크로프트 때문에 46번 시나리오를 실패했다.
일행들을 잃었고, 가진 모든 것들을 잃었다. 유중혁은 살아 남았지만, 살아 남은 것이 아니었다. 안나 크로프트에게 모든 것을 잃고, 존재 자체를 복속 당한 채 46번 시나리오 이후를 노예처럼 살다가 죽었다.
유중혁이 나를 보며 말했다.
“김독자, 너는 예언자라고 했지.”
유중혁의 표정에 냉기가 깃들었다.
“난 네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처음부터 그랬다.”
고오오오오!
유중혁의 전신에서 초월좌의 기파가 터져 나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발도하는 [흑천마도]의 검격에, 나도 [전인화]의 힘을 한도까지 끌어 올렸다.
까드드드드득!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충격파와 함께 벌레처럼 튕겨 나가는 내 몸.
이젠 나도 정말 화가 났다.
“이 망할 자식이―!”
꽈아아아아앙!
[‘마왕’의 격을 개방합니다!]
[전인화]에 이어 [마왕화]까지.
나는 가진 모든 힘을 집중하여 유중혁의 힘에 대응했다.
일전에 다하지 못했던 2차전의 개막이었다.
격의 충돌에 휩쓸려 저만치 나뒹굴고 있는 ‘별’을 일별하며, 나는 외쳤다.
“이제 다 왔는데, 겨우 여기서 포기하려는 거냐? 내 스킬이랑 설화들이 그렇게 탐나냐고!”
유중혁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발악하듯 검을 휘둘러댔다. [부러지지 않는 신념]과 [흑천마도]가 부딪치며 귀청이 찢어질 듯한 파찰음을 자아냈다.
······그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유중혁은 지난 회차에서 예언자에게 배신당했고, 그러니 녀석이 가장 가지고 싶은 힘도 예언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고 녀석은, 아직도 나를 ‘예언자’라고 오해하고 있다.
「김독 자는 멍 청 하다」
뭐?
[전용 스킬, ‘제4의 벽’이 발동합니다!]
[‘제4의 벽’이 몸을 들썩이며 웃습니다.]
순간,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머릿속이 냉철해졌다.
정말 유중혁은 내가 ‘예언자’라서 죽이려는 것일까?
내가 가진 스킬들과 설화를 손에 넣기 위해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일까?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녀석은 모든 걸 연기해온 것일까?
[‘한낮의 밀회’에 읽지 않은 메시지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난 3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아이템.
나는 유중혁의 검격을 받아내며 ‘한낮의 밀회’를 발동했다.
[부재중 메시지가 ???통 있습니다.]
[메시지가 손상되어 읽을 수 없습니다.]
젠장······.
「도 와줄 까?」
그 말과 함께, 내 머릿속에서 메시지들이 정렬되기 시작했다.
[‘제4의 벽’의 권능으로 손상된 메시지들이 불완전하게 복구됩니다.]
유중혁이 남겼을 메시지들이 [제4의 벽]의 입을 통해 불완전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길 영 신유 승 짜증 나는 꼬마」
「이 현성 어 리석 은 군 인」
······우스운 메모였다. 이 자식은 채팅창을 메모장으로 썼나?
「정 희원 한 수 영 사 이 나 쁘다」
「이지 혜 머리 안 좋 아」
「유상 아 쓸데 없 이 영 리」
누가 보면 일행들 욕만 써놓은 줄 알겠다.
하지만 유중혁을 잘 아는 나는 알 수 있었다.
유중혁은, 관심이 없는 존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조차 않는 녀석이다.
「김 독 자.」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현기증이 일었다.
“유중혁, 너 지금······.”
애초에 이 시나리오는 ‘동료’로 인정이 될 때만 발동하는 시나리오다.
만약 녀석이 나를 믿지 않았더라면, 나를 동료로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이 시나리오에는 진입조차 할 수 없었다.
[등장인물 ‘유중혁’에 대한 이해도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전용 스킬, ‘전지적 독자 시점’이 발동합니다!]
나는 멍하니 유중혁을 바라보았다.
유중혁은, 내가 가진 스킬이나 설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녀석이 입을 열었다.
“네 방만을 용납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놈의 [흑천마도]가 정확히 내 목을 겨누고 있었다.
“네놈이 멋대로 굴어서 3년을 날렸다. 또 그럴 수는 없다.”
“필요한 일이었어. 제대로 된 ■■으로 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네놈이 추구하는 ■■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내 ‘생사여탈권’을 네놈이 가지겠다는 거냐?”
유중혁의 눈동자에서 고요한 분노가 이글거렸다.
“적어도 이렇게 하면 네놈은 또 멋대로 희생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녀석들도······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않겠지.”
[제4의 벽]은 계속해서 [한낮의 밀회]의 문장들을 읽고 있었다.
「이지 혜가 자 신의 목 숨을 가 벼이」
「이 현 성 일 부러 괴수 들 속에 뛰어 들 었 다」
일행들이 벌였던 ‘쓸데없는 짓’이 무엇인지,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선언하듯 말했다.
“이제 그런 짓은 절대로 안 해.”
“······.”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딨냐? 나도 거기서 그러기 싫었어.”
유중혁은 나를 겨눈 검을 내리지 않았다.
나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는 눈빛.
결국, 설득의 방향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유중혁, 그 ‘별’을 사용하게 되면 너는 내 ‘생사여탈권’을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배신자 설화’를 얻게 된다.”
배신자 설화.
“그 설화를 얻게 되면, 다음 시나리오로 가게 되더라도 너는 일행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게 돼. 이제 아무도 너를 믿지 않을 거라고. 너는 그렇게 살고 싶은 거냐?”
미움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냉혈한 회귀자 유중혁이라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이제야 제대로 된 ‘동료’를 얻게 된 유중혁이라면 더욱.
“상관없다.”
“뭐?”
유중혁이 나를 보았다.
‘전지적 독자 시점’을 통해 녀석의 마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너였다면 좋았을 것을.」
내가 아는 유중혁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발이 굳어진 찰나, 유중혁의 신형이 ‘별’을 향해 움직였다.
순간, 누군가가 시간의 양극을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느려졌다.
―근데 네 세계선의 유중혁은 아직 괜찮냐?
느려진 시간 속에서, 1863회차 한수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유중혁이야 닳고 닳은 놈이지만, 3회차면 정신 상태가 아직 말랑할 거 아냐? 너 같은 녀석이 나타나서 설쳐대면 분명 기가 꺾일 텐데 말이지.
‘별’을 향해 다가가는 유중혁의 표정은, 이제 주인공의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던 오만하고 자신감에 넘치던 유중혁은 이제 없었다.
유중혁은, 오히려 무언가에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이 세계에는 김독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에게도······.」
「시나리오를 끝까지 클리어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니야.」
[제4의 벽]이 말했다.
「너 도 이 걸원 했 잖 아」
귓가가 왱왱거리며, 지금껏 내가 했던 짓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유중혁이 얻어야 할 것을 대신 얻고, 유중혁이 올라서야 했던 자리를 빼앗으며 살아온 내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흐르고 있었다.
「“나는 유중혁이다.”」
장난처럼 지껄였던 말들이, 고스란히 내게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내가 별다른 생각 없이 빼앗았던 역사들이, 지금의 유중혁을 만들었다.
「주인 공 이 되고 싶었 잖 아」
아니야.
[제4의 벽]이 말했다.
「너는 유중혁이다.」
나는 유중혁이 아니야.
「김독자는 유중혁이다.」
내가 되고 싶은 건, 주인공이 아니라고.
「그 럼 너 는 무 얼 위 해 시 나 리 오를 수 행 하 는 거 지?」
무엇을 위해 시나리오를 수행하는가.
‘별’을 향해 손을 뻗는 유중혁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걸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뭐하러 시나리오를 깨 왔겠어.
[‘제4의 벽’이 알 수 없는 반응을 일으킵니다.]
머릿속에서 쩌저저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단단한 뭔가에 작은 금이 가는 것 같은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유중혁을 향해 달려갔다. 기다렸다는 듯 돌아본 유중혁이 나를 향해 격을 발출했다.
완숙한 경지에 오른 초월좌의 힘.
지난 3년간, 유중혁은 강해졌다.
[등장인물 ‘유중혁’이 거대 설화 ‘마계의 봄’을 이야기합니다.]
“너는 내 상대가 안 된다.”
“그럴지도 모르지.”
1863회차에 다녀온 내가 이길 수 없을 만큼, 유중혁은 강해졌다.
이렇게나 강해진 녀석이 저렇게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난, 널 이길 수 있는 녀석을 알아.”
유중혁은 두려워하고 있다.
41회차의 신유승에게 받은 정보들이 슬슬 떨어져 가고 있을 테니까.
이제 곧 녀석이 모르는 이야기들이 시작될 테니까.
[‘이계의 언약’의 보상으로 받은 ‘설화’를 해금합니다.]
그러니 알려줘야 한다.
너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라고.
네가 뻗어 나갈 수 있는 곳은, 겨우 41회차까지가 아니라고.
[당신은 ‘신화급 설화’를 획득하였습니다!]
[해당 설화는 누군가가 당신에게 전승한 것입니다.]
눈부신 빛살과 함께, 머릿속에서 메시지들이 폭발했다.
[‘단 하나의 설화’가 당신의 신화급 설화에 반응합니다!]
[해당 신화급 설화는 거대 설화를 대체하기에 충분합니다!]
[당신의 첫 번째 신화급 설화가 ‘승(承)’의 일부를 완성하였습니다!]
[전승 과정에서 설화의 일부가 소실되어 ‘승’이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다른 신화급 설화나 거대 설화를 획득하십시오.]
······본래 이 설화를 손에 넣을 계획은 없었다.
내가 만들 이야기에 1863회차의 설화가 끼어들 줄도 몰랐고.
하지만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이 설화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해당 설화의 크기가 당신의 이야기 역량을 까마득하게 넘어섭니다.]
[당신의 독해 수준으로는 해당 설화의 일부만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코피가 흘러나왔고, 온몸이 감전이라도 된 듯 떨렸다.
나와 유중혁의 주변으로 새카만 그림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방의 정경이 뒤바뀌며 어디선가 유황 냄새가 났다. 뜨거운 지옥불과 혈향이 바닥을 덮고 있었다.
당황한 유중혁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에 반응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는 무수한 그림자들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독해 수준으로 해석 가능한 회차를 가늠합니다.]
숫자들이 망막 위를 빠르게 지나쳤다.
[당신이 독해 가능한 ‘유중혁’의 최대 회차는 ‘41회차’입니다.]
[‘41회차’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유중혁의 감정이 머릿속을 가득 메워갔다.
지독한 절망감과 무력감.
고된 시나리오 속에서 닳아버린 감정들.
미쳐버릴 것 같은 우울이 형상을 띤 채 나를 공격해왔고, 비웃음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뎠다.
[해당 회차의 ‘유중혁’의 재능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아득한 고독감 속에서, 그림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41회차의 유중혁.
신유승을 과거의 자신에게 보냈던, 비정한 사내.
그가 나를 향해 말했다.
「내 특기는 ‘창’이다.」
새카만 그림자로 존재하는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창을 손에 쥐었다.
[설화, ‘영원불멸의 지옥도’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