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256화
혹부리가 등을 돌리는 순간, 샛노란 스파크로 만들어진 세 자루의 창이 그의 바로 앞에 꽂혔다.
츠츠츠츠츳!
혹부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분명 [거대 설화]의 힘이 담긴 공격이었다.
[상급 도깨비인가.]
허공을 물들이는 노란 궤적 너머로, 둥둥 떠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말끔한 거적을 걸친, 아기 크기의 도깨비.
비형이었다.
[좋게 말할 때 애 놓고 꺼져라.]
으르렁거리는 비형의 입 안에서 새빨간 송곳니가 번뜩였다.
<스타 스트림>의 도깨비들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채널의 성좌들은 도깨비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도깨비도 진심으로 화를 낼 때는 있다.
지금처럼 송곳니를 세울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어차피 이 도깨비는 ‘관리국’ 소속도 아닐 텐데, 왜 나서는 거지?]
[도깨비는 다 같은 도깨비야.]
[우습군.]
[······내가 낳은 녀석이다. 키우진 못해도, 부모 도리는 해야 되지 않겠어?]
그 말에, 혹부리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부모? 부모라!]
어찌나 큰 웃음이었는지, 그의 뺨에 매달린 혹이 덜렁덜렁 흔들릴 지경이었다.
[도깨비에게 언제부터 그런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고······ 그런 게 있었더라면, 내 선조들에게도 베풀어주지 그랬나.]
[미안하지만 그때 난 태어나지도 않았어.]
[그러면 우리가 겪은 고통은 누가 보상해주지?]
안대로 가려져 있던 혹부리의 한쪽 눈이 드러났다. [대악마의 눈동자]였다. 노란 홍채가 팽그르르 회전하며, 살벌한 기세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네놈들에게 우리가 가진 ‘이야기 보따리’를 빼앗긴 고통은, 대체 누가 보상해주느냔 말이다.]
[뭔 개소리야? 나도 그 설화 아는데, ‘이야기 보따리’는 돌려줬잖아? 그것도 두 배로―]
츠츠츠츠츠!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자 비형의 표정도 굳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진짜로 혹부리가 자신과 싸우려 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차게 등장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 또한 혹부리와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혹부리와 싸우는 것만큼은 피해라.
그것은 선대의 도깨비들이 남긴 충고 중 하나였다.
비형도 서울 지부에서는 꽤 오래된 도깨비였지만, 혹부리들과 도깨비들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아직 ‘채널’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기 이전의 어느 시절부터 두 종족이 반목해왔다는 것뿐.
혹부리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너희들은 ‘혹부리의 것’을 돌려주지 않았다.]
비형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난 그딴 건 모르겠고, 빨리 그 애나 내놔! 내놓지 않으면―]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악이 있지.]
혹부리의 목소리에 섬뜩한 한기가 깃들어 있었다.
비형이 뭐라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혹부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마치, 오래된 노랫말 같은 문장이었다.
[‘첫 번째 악’은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드는 악이고.]
혹부리의 혹주머니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불현듯 비형의 머릿속에 경고성이 울려퍼졌다.
[‘두 번째 악’은, 그 불행에 즐거워하는 악이며.]
노랫말과 함께 혹부리의 주머니에서 뭔가가 풀려나오고 있었다.
절대로, 풀려 나와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가장 혐오스런 악’은, 그 불행을 다른 이들에게 전시(展示)하는 악이다.]
비형은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거대 설화의 권한을 사용합니다.]
비형은 상급 도깨비가 되며 거대 설화의 권리를 일부 양도 받았다.
<스타 스트림>을 조작하는 이 힘이라면, 아무리 혹부리라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혹부리가 웃고 있었다.
[선대들이 말하지 않았나? 절대로 혹부리 앞에서는 그 힘을 쓰지 말라고.]
츠츠츠츠츠츳!
혹에서 흘러 나오는 새카만 설화가 비형의 전신을 설화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언어들이 전부 까만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검은색 물감으로 세상을 덮듯이.
[거대 설화의 작동이 ■■■■······.]
비형은 깜짝 놀랐다.
이런 종류의 조작이 가능한 존재는 대도깨비 이상의 최고위급 도깨비들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혹부리가 이런 힘을······?
[설마······ 이계의 언어?]
[멍청한 도깨비여. 이곳에 혼자 온 것이 너의 실수다.]
부풀어 오른 혹주머니를 뚫고 뭔가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끔찍한 형상을 가진 괴생물체가 찢어진 혹 사이로 자신의 촉수들을 내보냈다.
【그. 그으, 그으으으읏.】
푸슈슈슛!
빠르게 쏘아진 촉수들이 비형의 작은 몸을 순식간에 그러쥐었다.
[설화, ‘혹부리의 노래’가 효과를 발휘합니다.]
자신을 옭아맨 설화들을 보며, 비형은 뒤늦게 깨달았다.
어째서 선대의 도깨비들이 혹부리를 피하라고 말한 것인지를.
[종족 특성으로 인해 ‘혹부리’에 대한 저항력이 급감합니다.]
[혹부리의 증오가 당신의 정신력을 나약하게 만듭니다.]
[혹부리의 원한이 당신의 전투력을 급격하게 하락시킵니다.]
모처럼 느끼는 그 무력감에, 비형은 마치 ‘화신’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허공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들이 그의 몸에 화살처럼 박혔다.
[성좌, ‘흥무대왕’이 혹부리의 힘에 경악합니다.]
[성좌, ‘술과 황홀경의 신’이 혹부리의 힘의 원천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주먹을 부르쥡니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크게 분노합니다!]
혹부리가 웃었다.
[우리는 다른 종족에게는 이런 힘을 낼 수 없다. 하지만 도깨비에게만큼은 다르지.]
꾸우우우욱!
착즙기처럼 압박해오는 촉수의 힘에 비형은 조금씩 숨이 막혀 왔다. 꽉 조인 촉수로 혹부리들의 깊은 원한이 느껴졌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는 한, 도깨비를 대상으로 무적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는 설화. 태생부터 한 종족에 대한 증오로 점철된 혹부리의 설화에 비형은 기가 질렸다.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성좌들의 관음 속에서 죽어가거라. 오늘은 아주 좋은 설화를 얻겠구나.]
끄으으으윽······.
과일처럼 쥐어 짜인 비형에게서 조금씩 설화가 흘러 내렸다. 뒤늦게 [관리국]에 연락을 취했지만, 그들이 오기 전에 비형은 도깨비 주스가 될 판이었다. 죄어오는 촉수에 의해 의식이 서서히 사라지려는 순간.
스가가각!
비형을 휘감던 촉수들이 새카만 피를 흘리며 터졌다.
놀란 혹부리가 침음하며 물러났고, 풀려난 비형의 작은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비형의 거적을 낚아챈 것은 큰 키의 사내였다.
“본체로 혹부리에게 맞서다니, 멍청한 도깨비로군.”
냉막한 사내의 목소리에 비형이 고개를 움직였다. 피묻은 부츠. 새카만 롱코트의 끝자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새장 속에 갇혀 있던 비유가 “바아앗”하고 울음을 터트렸고, 하늘의 성좌들이 간접 메시지를 쏟았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비명을 지르며 환호합니다!]
사내의 손에 쥐어진 흑색의 패도를 보는 순간에야, 비형은 사내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너, 너는······?]
사내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비형은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사내가 가진 스킬― 전 차원에서 가장 오래된 인간이 설계한 [현자의 눈] 때문도 아니었고, 그의 전신에서 피어나는 강맹한 살기 때문도 아니었다. 비형은 이제껏 무수한 화신들을 만나왔다.
하지만, 이런 눈빛의 화신은 이 사내 하나 뿐이었다.
마치 여기서 비형을 죽일지 말지를 가늠하는 듯한 표정.
화들짝 정신을 차린 비형이 발버둥치는 순간, 사내가 비형의 몸을 뒤로 집어 던졌다.
“뒤로 꺼져 있어라.”
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비형의 신형이 먼 바닥을 굴렀다. 사내는 말없이 오른손의 검을 고쳐쥐었다. [흑천마도]가 울음을 토하자, 초월에 이른 격이 견고한 설화를 이루어 사내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잘려 나간 촉수가 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다. 그 광경을 멍하니 응시하는 혹부리를 향해, 유중혁이 입을 열었다.
“네가 ‘지평선의 악마’인가.”
[그렇다. 간만이구나. 가장 오래된 꿈의 꼭두각시여.]
“······난 네놈을 처음 본다만.”
[하하하! 너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천 번의 죽음을 겪고, 다시 만 번의 생을 살더라도, 너는 결코 알지 못하겠지. 왜냐하면 너는······!]
쐐애액!
혹부리의 헛소리 따윈 들을 생각이 없다는 듯, 유중혁의 검은 거침없이 공간을 갈랐다. 아슬아슬하게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칼날을 보며, 혹부리가 대경하여 외쳤다.
[이쯤에서 서로 물러서는 게 좋을 텐데? 너는 이 사태와는 아무런 관련이―]
“신유승을 내놔라.”
[뭐?]
유중혁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 비유가 갇힌 새장이 있었다.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은 혹부리가 이를 갈며 말했다.
[설마 네놈도 도깨비를 노리고 있었나? 흥! 인간인 네놈이 채널을 가져봤자 아무 소용도―]
“채널 같은 건 필요 없다.”
고오오오오오!
새장 속에 있던 비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쓰러졌던 비형도, 자리에서 일어나 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유중혁의 강고한 칼날에서 초월좌의 격이 일렁였다.
혹부리가 허탈하게 웃었다.
[어이가 없구나. 이 도깨비의 가치도 모르는 천둥 벌거숭이가······ 아느냐? 아무리 네놈이라 해도 이번 회차에서는 무리다. 그 ‘김독자’라는 녀석이 있다고 해도 소용없다! 그 정도 변수로는, <스타 스트림>의 흐름을 거스를 수······.]
콰콰콰콰콰!
초월좌의 스파크가 터지며 유중혁의 [흑천마도]가 마력의 폭포를 쏟아냈다. 터져 나간 혹부리의 팔이 허공을 날았다.
새로운 경지에 오른 [파천강기]의 칼날에서 오색의 마력파가 쏟아지자, 사색이 된 혹부리가 외쳤다.
[머, 멈춰라! 네놈은 아직 누적 회차가 낮아서 모른다. 다른 평행 차원에서는······!]
츠츠츠츳!
과도한 정보 누설로 인해 혹부리의 주변에도 개연성의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황급히 말을 삼킨 혹부리가 재차 외쳤다.
[아무튼, 너는 지금 실수하고 있다! 결코 나를 적으로 돌려서는―].
“내 동료와 약속을 했다. 복수해주겠다고.”
새장 속에 갇혀 있던 비유가 떨고 있었다.
이미 기억을 잃었을 텐데도, 전생의 많은 부분들이 사라졌을 텐데도, 비유의 몸은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지금 이곳에, 41회차의 기억을 가진 신유승은 없다.
그렇다면 이 복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유중혁도, 그것은 모른다.
다만 그는 검을 휘둘렀다.
1회차의 복수를 2회차에서, 다시 2회차의 복수를 3회차에서 완료했던 것처럼.
넘실대는 혹부리의 촉수들을 베었고, 혹부리의 한쪽 팔에 커다란 검상을 입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유중혁은 이미 혹부리의 배후에 서 있었다.
거대하게 솟아오른 [파천강기]의 칼날이, 공간 전체를 찢으며 쇄도했다.
[자, 잠깐만! 멈추―]
스거걱!
그토록 무시무시했던 혹부리의 혹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혹부리의 몸이 혹 안에서 튀어나온 어둠에 휩싸였다.
[저주하겠다. 너를 저주할 것이다. 모든 차원의 ‘나’는,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
끊임없이 주절대던 혹부리의 입에 [흑천마도]가 꽂혔다.
끄으아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과 함께, 혹에서 빠져 나온 어둠이 혹부리를 완전히 집어삼켰다.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은 것처럼 끄윽 트림을 토하는 어둠. 그 어둠은 잠시 잠깐 유중혁을 바라보더니, 이내 마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완전한 고요가 찾아왔다.
초월좌의 힘을 과도하게 끌어낸 탓인지, 유중혁은 한동안 가만히 선 채 숨을 골랐다. 그의 귓가에 무수한 시스템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새로운 전설급 설화를 획득하였습니다!]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설화, ‘혹부리의 혹을 베어낸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마계의 모든 혹부리들이 당신과 적대 관계가 되었습니다!]
유중혁은 천천히 새장 쪽으로 걸어가, 조심스레 비유를 꺼냈다.
비유가 크게 울었다.
그 조그만 손으로, 몇 번이고 유중혁의 손등을 내리치며.
유중혁은 그런 비유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주머니 속에 집어 넣고 걸음을 옮겼다.
[성좌, ‘악마 같은 불의 심판자’가 눈시울을 적십니다.]
[성좌, ‘대머리 의병장’이 자신의 머리를 닦던 수건을 내밉니다.]
[성좌, ‘해상전신’이 크게 감동받아 시를 적습니다.]
무수한 성좌들이 그를 향해 반짝였지만, 그들 중 누구의 빛도 유중혁에게 닿지는 못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온 성좌라 해도, 세계의 멸망을 두 번이나 겪은 회귀자를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들려온 메시지에, 유중혁은 고개를 들었다.
[성좌, ‘구원의 마왕’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지난 3회차의 인생 동안,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별.
그럼에도 왜일까.
유중혁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 별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중혁이 인상을 구긴 채 말했다.
“꺼져라, 김독자.”
그러자, 정말로 하늘의 별 하나가 꺼졌다.
“...김독자?”
김독자는 대답이 없었다.